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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비티
2012.10.30 21:16 추천:18 댓글:2 조회:6,795
balisurf.net

 이번 여행에 제가 오래도록 묵었던 누사두아란 지역은 초행길의 여행자에겐 사실 장점보단 단점이 많은 동네입니다.
 남쪽 끝이라 공항에서 가깝긴 하지만 꾸따시내나 그 위의 우붓으로 가기엔 꽤 멀고, 고급호텔이 즐비한 지역이다보니
 물가도 타 지역에 비해 다소 비싼 편입니다.
 게다가 저같이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를 위한 만만한 와룽도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구요.
 더군다나 문화적인 코드읽기를 즐겨하는 제 입장에선 조그만 그림가게 하나 찾기조차 어렵다는 것도 보탤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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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서 이 동네에 묵기로 처음 결정했을 때는 "어느 정도의 불편함과 막막함은 감수하자." 싶었더랬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저의 그런 선입견을 불식시켜준 것이 "사바기따" 버스였습니다.
 숙소 언덕길을 내려오면 탈 수 있는 그 버스가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어디든지 데려다 주었으니까요.
 
 게다가 버스는 몸집이 크다보니 그동안 택시를 타면서 평면으로 보았던 갑갑한 시야에 상당한 입체감을 더해줍니다.
 못 봤던 가까운 사물과 안 보이던 먼 데가  통유리창을 통해 다이렉트로 접수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낯선 동네, 낯선 길들도 금방 익혀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해저물녘의 어느 날, 평소처럼 나갔다가 숙소인 뭄불 방향으로 버스를 타고오면서 언뜻 숨어있는 간판 하나를 보았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세히 본 게 아니라 휙하고 스쳐 지난 것이지요.
 우중충한 암청색의 간판이었지만 그래도 써있던 큰 글자만큼은 금방 눈에 들어왔습니다.
"MUSEUM PACIFIKA"  "뮤지엄 파시피카..." 몇 번을 입으로 되뇌이며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막바로 다금바리님에게 여쭤봤습니다.
"파시피카 뮤지엄이라고 아세요 ?"  다금바리님은 갑자기 탄식의 한마디를 내뱉습니다.  "아차!"
"왜요 ?"  "제가 정원이 아빠가 그림 좋아하는 걸 깜빡했습니다. 말씀드리는 걸 잊었네요."
"그러면 그 미술관이 이 근방에 있다는 말씀인가요 ?"  "그럼요. 아주 가깝습니다."

 저는 다음날 아침, 만사를 제치고(뭐 다른 바쁜 일도 없지만)일찌감치 그 미술관을 찾아갔습니다.
 시간이 아까워 택시를 탔는데 요금은 고작 2만Rp...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니 허망했습니다.
 얼마 전 다녀 간 발리 컬렉션의 소고백화점 바깥 출입구 앞이었으니까요. 등잔 밑이 어두웠던 것이지요.
 대신에 반가운 사실은 바로 그 미술관 앞이 사바기따의 남쪽 끝 종점이라 늘 버스가 정차하고 있다는 거였구요.





 게다가 미술관 옆 동물원이 아니라 미술관 옆 극장입니다.(이 극장, 떼아뜨르 누사두아의 소개는 다음에 하지요)
 조경이 잘 된 번듯한 도로에서 안쪽으로 깊숙히 물러 앉아있는 미술관은 사실 대부분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미술관 표시는 전혀 없으니까요.
 미술관 바로 앞 도로에 들어서야 저만치에 간판 하나가 달랑 보일 뿐입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그제서야 회화,조각,직물공예 전시를 알리는 포스터 한 장이 눈에 띄네요.
 회랑이 시작되는 그 홀 안조차 아무도 없어서 그냥 둘러보는데 오른편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한 아가씨가 나타납니다.
 그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니 작은 매표소 하나가 숨어 있었습니다.





 이제 거금 7만Rp를 내고서 들어갑니다.
 티켓은 아무리 앞뒤를 살펴봐도 웰컴 드링크를 준다는 내용은 없네요.(발리 미술관은 웰컴 드링크가 부록인데 쩝...)

 미술관 안의 동선도 아주 간결했습니다. 
 직사각형의 "ㅁ" 자형 구조라 오른쪽에서 계속 가면 나오는 왼쪽 끝이 처음 들어섰던 자리가 되니까요.
 저는 그림을 보기에 앞서 건물에서 군더기기가 하나도 없는 느낌을 먼저 받았습니다.
 이어서 아무도 없는 고즈넉함...(미술관을 둘러보는 1시간동안 중년의 서양커플만이 또다른 관객이었답니다.)

 그림 하나하나 마다와 눈맞추기를 통한 1:1 대화에 들어갑니다.
 그림들의 언어는 단순합니다. 그냥 보여주는 대로 듣고 느껴지는 대로 알아들으면 그 뿐이니까요.
 어떤 이는 춤으로, 어떤 이는 고단한 삶으로, 어떤 이는 화사한 미모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해댑니다.
 듣다가 지치면 회랑 바깥의 양지바른 정원에 나가 앉았다가 다시 들어오면 되구요.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여기서도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을 필연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이 많은 그림들의 대부분이 발리인이 아닌 서양인들의 작품이라는 것이지요.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델란드, 이탈리아 등의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백인들 말입니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본 발리가 되는 셈이지요.
 고유한 자기네 것을 죄다 남이 그린 셈인데 그걸 알고나니 그림 속의 발리니스가 더더욱 애잔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곳의 또다른 미덕은 발리뿐 아니라 태평양권의 전역을 아우르는 "파시피카"라는 이름처럼 다른 이웃나라의
 친근한 풍경들도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인도의 타지마할도,크메르의 앙코르와트도, 심지어는 일본의 게이샤나 항조우의 낯익은 수로도...
 그림들 사이를 걷다보면 굳이 "하나의 아시아" 운운하는 슬로건이 얼마나 무의미 한지를 절로 느끼게 됩니다.
 삶의 모습들이 이리도 똑같고 비슷한데 구호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





 비스듬히 누워서 보라는 걸까요 ?
 아니면 천사와 보살이 노니는 그림 속의 천상을 단잠으로나마 꿈꿔보라는 차원높은 배려일까요 ?
 그림들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때론 전설을 , 때론 삶을, 시끌벅쩍, 왁자지글...
 오랫만에 관객을 만났으니 지들도 반가왔을테지요. 그 마음 저도 익히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오래 전 사누르의 바닷가 미술관 "르 마요르"에서 본 그림들은 훨씬 더 외로워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림이 아무리 잊혀진다한들 사람 외로운 것에 비하겠습니까 ?




 
.1시간여라는 짧은 시간동안 대충 훑어 보고 나서면서 마지막 대한 그림은 작품이 아닌 대형 발리 지도였습니다.
 일반적인 지도와 좀 다른 게 있다면 발리 안의 유명한 미술관들이 색깔있는 핀으로 표시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걸 들여다보다 이내 곧 제가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이 적지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쪽의 멜라야나 북쪽의 싱아라쟈는 그렇다고쳐도 아직 우붓조차도 다 돌아보지 못한 것이지요.
 제가 훗날 발리를 다시 찾을 빌미가 또 하나 생긴 것입니다.
 무언가가 아직 남아있다는 건 어떠한 경우이든 그 인연을 붙들고 가야하는 것이니까요.


 
 이번 발리행에 지니고 온 책들 중에 마침 "그림공부, 사람공부(조정육 지음)"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림을 통해, 그리고 그림을 그린 작가의 삶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는 내용인데 그 서술이 무척 단단하고 야무집니다
 미술관 중정의 햇살좋은 뜨락에서 읽었던 그 중의 한 귀절로 저의 미술관 기행을 마감합니다.

"(중략) 이러한 상징은 단지 특정 쟝르에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산수화, 인물화, 동물화, 화조화, 등 모든 쟝르에 걸쳐 골고루 찾아볼 수 있다.
 그림은 자연의 아름다움 못지않게 인간의 염원과 바램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림이 암시하는 뜻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의자를 끌어당겨 무릎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여도 그 언어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히 쉬운 한국말인데도 외국어를 듣는 것처럼 낯설다.
 그래서 시인  정현종은 사람 사이의 오해와 단절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고 표현했다.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오해로 인해 헤어지는가.
 얼마나 많은 나라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전쟁을 하는가.
 그러므로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고 한 우주를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그의 말과 행동을 진심으로 알아차렸더라면 평생을 이별한 곳에서 서성이지는 않았으리라.
 그와 헤어졌던 장소를 날마다 기억 속에서 되새김질하며 가슴앓이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매몰차게 돌아서며 남긴 마지막 말 때문에 상처받지도 않았으리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여있는 단절을 넘어 "그 섬에 가고싶다"고 얘기한 시인의 말처럼,
 비로소 내가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는 이미 그는 내 곁에 없다. 너무 늦은 것이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운명일까, 
 그래서 우리는 기회 있을 때 그의 이름을 자주 불러주어야 한다.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불러야 한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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