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아빠
Lv.17
2012.10.09 21:36
댓글:7 조회:3,437
밤늦게 공항에 도착한 그제는 여독이랄 것도 없어 새벽까지 말똥말똥하더니 어젯밤은 그냥 골아떨어졌습니다.
그 차이는 명확합니다.
그제는 5000km가 넘는 여정이었지만 쾌적한 비행기를 탔으니 걸을 일이 거의 없었고 어제는 땡볕의 거리를
십리도 넘게 뚜벅이로 누빈 탓이니까요.
사서 하는 고생이 아니라 가난한 여행자인 저는 어딜 가든 그 나라의 대중교통을 선호합니다.
"느리게 그리고 느긋하게"가 제 여행의 모토인만큼 한국에서도 흔하게 탈 수 있는 택시는 가급적 이용을 자제하려는 게지요.
한 10년쯤만 젊었어도 요즘 발리를 누비는 꼬망님처럼 바이크의 자유를 만끽했을테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제 나이론
넘보기 어려운 영역이니 제껴두고요.
사실 지난 해 "사바기따"가 처음 운행을 시작했을 때부터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푸른 바다를 닮은 강렬한 블루톤도 매력적이었고, 때빼고 광낸 새 차의 쾌적함도 좋아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시험운행에 가까워보여 선뜻 타보기엔 주저스러웠지요.
돌아온 이후 발리서프를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봐도 이 놈의 버스를 이용했다는 말씀은 아무도 안 하시더라구요.
간간이 구간정보나 이용금액 정도는 올라온 걸 봤는데 그걸로는 제 호기심을 채우기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격이니
할 수 있습니까 ? 제가 직접 부딪혀 볼 수 밖에요.
언제나 그러하듯 이른 아침 숙소주변의 지형지물을 익히러 나왔다가 길에서 요상한 물체 하나를 목격했습니다.
제가 묵는 누사두아 뭄불에서 언덕길을 내려오면 사마사마라는 일식집이 있고 바로 그옆에 학교가 나란히 섰는데
그 길가 양쪽으로 하얀 계단이 만들어져 있더라구요.
마치 박정희정권 때였던 국민학교 시절 운동장 맨 앞 한복판에 놓인 조회대로 올라가는 계단모양으로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도대체 이게 뭐냐?"고 물어도 속시원히 대답해주는 놈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럴 수 밖에요. 나는 영어로 묻고 그들은 인니어로 답하니 거의 동문서답 수준으로 알아듣질 못하는 게지요.
하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주인장께 여쭤보면 될테니까요.
역시 주인장은 제 생각대로 그 물건의 쓰임새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사바기따 정류장입니다." 아니 스타일이 영 아니던데...
제가 길에서 간간히 봐왔던 정류장은 비를 피하고 그늘을 제공하는 천정도 있고, 옹색하지만 기다리는 장의자도 있었는데...
주인장 왈 "다른 곳은 모두 그런 형태지만 여긴 새로 생긴 데라서 아직 제 모습을 갖추지 않았다"구요.
이제 지난 일이지만 발리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분의 대답이니 그때 그걸 철석같이 믿었어야 했는데 회의론자인
제 성격은 다시 한 번 확인을 하려 들었습니다.
"다금바리님은 사바기따를 타보셨나요 ?" "아뇨."
혹시 아닐 수도 있다는 작은 균열이 슬며시 들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커져 갑니다.
마실을 나가기 전, 한참의 생각끝에 노트북을 켰습니다.
제일 가까운 버스 정류장은 어디인가요 ? (디 마나 할테 부스 양 빨링 드깟 ?)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를 외치는 동화 속 여왕 수준의 질문이지만 답변은 친절하게 돌아옵니다.
길지않은 그 한 마디를 몇 번이나 되뇌이며 저는 언덕길을 다시 내려갔습니다.
초행길에는 물어보는 것도 사람을 봐가면서 해야하는 게 일종의 팁인지라 나름 행인들을 눈여겨보다 바로 앞
사마사마 일식집의 정문 경비초소 직원녀석을 골랐습니다.(바로 코앞 길가가 근무지이니)
"내가 사바기따 버스를 타려는데 너 아니 ?" 녀석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서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한 그 한 마디를 나름 유창하게 내뱉았습니다.
디 마나 할테 부스 양 빨링 드깟 ? 헌데 어럽쇼, 녀석은 길 아래 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뜻밖의 대답을 하더군요.
"위로 가든 아래로 가든 거리는 거의 비슷할걸요. 한참 걸립니다."
순간 당황한 나는 바로 앞 그 계단 모양의 물체를 가리키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저건 뭐야 ? 내가 듣기론 저게 임시정류장이라던데..."
녀석의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랍니다. 아니 이럴 수가 ...
할 수 없이 시내로 들어가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걷다보니 묘지도 나오고, 고색창연한 사원도 나오고, 히잡을 두른 무슬림소녀들의 학교도 나옵니다.
하염없이 걷는 길...
너무 더워 중간에 시골스타일의 빛바랜 미장원 간판 앞을 지나다 아무 생각없이 들어섰습니다.
"머리 좀 잘라주세요.스타일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살짝..."
영어를 전혀 못하니 제대로 알아 듣질 못하겠지만 시골 미장원 아줌마는 눈치로 때립니다. 연륜의 힘인 게지요.
드나드는 버젓한 문도 없고, 그나마 한 켠엔 먼지가 잔뜩 앉은 과자를 내어 놓은 점방까지 벌린 손님없는 미장원에
일하는 사람은 셋이나 되더군요.
사람도 없고 심심하던 차에 외국인이 나타났으니 이들의 입장에선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습니까 ?
수다... 수다... 수다로 시작되는 아줌마들의 수다는 커트가 끝나고 머리를 감을 때까지 끝이 없습니다.
잠시 쉬었으니 또 출발...
저 멀리 교통량이 제법 많은 삼거리가 보입니다.
비행기의 초창기시절, 린드버그가 "세인트루이스의 정신" 호롤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며 고생끝에 했다는 말
"저기 파리의 불빛이 보인다."가 불현듯 떠오를 정도로 반가운 그 곳은 " 따만 그리야" 정류장이었습니다.
한 4km 정도를 걸어온 셈이지요.
"사바기따"는 고상버스(바닥이 높은)인지라 정류장을 마치 원두막처럼 돋아놓아 그 위에서 기다리는 독특한 구조인데
아직 노선의 불비로 이용자는 그리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저같은 호기심 덩어리의 외국인이나 학생들 아니면 바이크를 몰지 못하는 노인, 아줌마가 주고객층인 게지요.
정류장엔 운행경로도도 큼지막하게 붙어있고, 곧 GPS를 기반으로 한 운행시스템도 갖추려는지 전광판도 보이더군요.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배차간격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으니(그러니 아직 운행이 들쭉날쭉 제 멋대로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복불복으로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게지요.
하지만 차가 늦는다해서 크게 불만스러워하는 이도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이 사람들 코드와는 딱이고 성질 급한 우리와는 전혀 안 맞는 시스템인 것이지요.
저도 태연자약한 이 사람들의 모드를 따라 지녔던 책을 꺼내들었습니다.
그러길 한 30분, 저 아래에서 차가 올라오는 게 보입니다. 눈물겨운 순간이지요.
문이 열리자 냉큼 올라탔습니다.
헌데 안에서 반겨주는 초롱한 눈망울의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네요.
그렇습니다. 개발독재였던 우리네 80년대까지 상경한 시골소녀들의 애환어린 직업이었던 "버스차장"을생각지도 않게
발리에서 다시 만난 것입니다.
차장만 있는 게 아니라 차조수도 있었습니다.
시야가 많이 제한된 대형차량이다 보니 기사의 왼쪽에 앉아 정차를 확인하고, 우회전시 손을 내밀어 다른 차량의
진입을 통제하는 역할을 미소년(우리나라였으면 틀림없이 얼굴값을 했을) 하나가 묵묵히 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손님은 평균 10-20명 수준인데 스텝은 3명이나 되는 셈이지요.
차비도 우리처럼 먼저 내고 타는 게 아니라 한참을 있다가 와서 받고 영수증을 끊어주더군요.
모든 것이 좀처럼 익숙하지 않은 느림의 연속이지만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저로서는 과히 싫지 않습니다.
차는 가다서다를 반복합니다.
심빵시우르 부근의 대대적인 공사로 시내는 거의 귀성길 피크타임 수준으로 살인적인 교통체증입니다.
차는 그 혼잡한 심빵시우르에서 다시 옆길로 빠져들어 해리스와 까르푸 앞을 지나 선셋로드를 통해 다시 심빵시우르로
빠져나오는 코스를 도는데만 거의 30분 가량을 소진하네요.(이 구간은 정류장이 하나이니 이 구간에서 탑승하시면
반드시 물어봐야 합니다. 남으로 가는 지, 혹은 북으로 가는 지를 ...)
저는 창밖을 내다보다 심드렁해지면 책을 읽고, 그러다 졸기까지 합니다.
버스 안의 빵빵한 냉방과 천장 에어컨 통풍구에 달아놓은 포푸리 향으로 쾌적하기는 그지 없습니다.
우리 돈 500원도 안되는 발리 시내투어의 진수를 체험하는 셈이지요.
누사두아에서 바뚜불란 까지의 직선 거리는 사실 과히 멀지 않지만 돌고 돌아가는 길은 다소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 단조로움이 싫다면 저처럼 책이라도 한 권 지니거나, 스마트 폰을 반드시 휴대하는 건 필수겠지요.
바뚜불란까지는 거의 두 시간 반이 소요됐습니다.
돌아오는 그 사이에 생긴 일들은 나중에 후기로 다시 올리기로 하고 "사바기따" 이야기만 계속하지요.
낮에는 쾌적다고 느꼈던 버스 안이 해질녘이 되면서부터는 쌀쌀하기까지 합니다.
가디건이라도 한 벌 있으면 좋으련만...
제 맞은 편 자리에는 캠핑을 다녀오는 외국인학교의 10대 소년들이 해맑은 웃음으로 장난도 치고 노트북 검색에
여념이 없는데 저는 내릴 곳이 다가올수록 겁이 납니다.
어두컴컴한 저녁에 "따만 그리야"에 내려 낮처럼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 다음 정거장은 더더욱이나 모르는 곳이
뻔할테니 갈등과 번민의 연속입니다.
그러다가 내린 최종결론은 "따만 그리야"가 아닌 미지의 다음 정류장이었습니다.
"모 아니면 도" 식의 선택이 아니라 창밖의 차량통행을 바라보니 제가 가는 방향보단 그 반대편의 교통흐름이 더 원활해
보여 택시를 타기에 수월할 듯 싶어서였지요.
드디어 "타만 그리야"를 지나 차는 계속 달려갑니다.
저는 일찌감치 출입문 가까이로 나와 불안한 마음으로 제가 걸어왔던 길들을 되짚어봅니다.
"내가 가지않은 아랫쪽으론 얼마나 더 가야하는 걸까 ?"
가로등도 제대로없는 밖은 환한 실내등에 반사되어 잘 보이지도 않는데 억지로 고개를 빼들고 쳐다봅니다.
그러는 사이, 속도는 서서히 줄어들고 드디어 차가 멈췄습니다.
처음엔 쾌제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다음엔 허탈했습니다.
그 다음은 사마사마의 그 놈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내린 "따만 그리야"의 다음 정류장은 바로 아침에 봤던 다섯계단 탑, 다금바리님이 일러준 바로 그 자리였으니까요.
"사바기따" 버스에 대한 제 결론은 결국 타라, 타지 마라의 단도직입적인 한 마디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행의 성격과 본인의 취향과 성격까지 가늠해야 그에 알맞는 대답이 나올 것만 같아서지요.
버스 하나 타는데 무슨 그딴 것까지 헤아려야 하냐고 볼멘 생각을 한다면 당근 안 타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어린이를 동반하거나 어르신을 모신 가족여행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큰 볼거리는 없어도 발리의 중심지 남북을 종단하며 쾌적하고 여유있는 볼거리를 제공하니까요.
느린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이며 차며 건물들이 환한 햇살 쏟아지는 통유리창을 통해 아주 가깝게 다가온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체험일테니까요.
급한 여행이라면 외면해도 되고 시간이 난다면 한 번쯤 올라타 거리구경을 할 만 하다는 얘기이지요.
발리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
느리고 느긋하게 하지만 적당한 인내도 수반하는 색다른 경험을 저는 어제 "사바기따"를 타고 맛보았습니다.
그 차이는 명확합니다.
그제는 5000km가 넘는 여정이었지만 쾌적한 비행기를 탔으니 걸을 일이 거의 없었고 어제는 땡볕의 거리를
십리도 넘게 뚜벅이로 누빈 탓이니까요.
사서 하는 고생이 아니라 가난한 여행자인 저는 어딜 가든 그 나라의 대중교통을 선호합니다.
"느리게 그리고 느긋하게"가 제 여행의 모토인만큼 한국에서도 흔하게 탈 수 있는 택시는 가급적 이용을 자제하려는 게지요.
한 10년쯤만 젊었어도 요즘 발리를 누비는 꼬망님처럼 바이크의 자유를 만끽했을테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제 나이론
넘보기 어려운 영역이니 제껴두고요.
사실 지난 해 "사바기따"가 처음 운행을 시작했을 때부터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푸른 바다를 닮은 강렬한 블루톤도 매력적이었고, 때빼고 광낸 새 차의 쾌적함도 좋아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시험운행에 가까워보여 선뜻 타보기엔 주저스러웠지요.
돌아온 이후 발리서프를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봐도 이 놈의 버스를 이용했다는 말씀은 아무도 안 하시더라구요.
간간이 구간정보나 이용금액 정도는 올라온 걸 봤는데 그걸로는 제 호기심을 채우기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격이니
할 수 있습니까 ? 제가 직접 부딪혀 볼 수 밖에요.
언제나 그러하듯 이른 아침 숙소주변의 지형지물을 익히러 나왔다가 길에서 요상한 물체 하나를 목격했습니다.
제가 묵는 누사두아 뭄불에서 언덕길을 내려오면 사마사마라는 일식집이 있고 바로 그옆에 학교가 나란히 섰는데
그 길가 양쪽으로 하얀 계단이 만들어져 있더라구요.
마치 박정희정권 때였던 국민학교 시절 운동장 맨 앞 한복판에 놓인 조회대로 올라가는 계단모양으로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도대체 이게 뭐냐?"고 물어도 속시원히 대답해주는 놈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럴 수 밖에요. 나는 영어로 묻고 그들은 인니어로 답하니 거의 동문서답 수준으로 알아듣질 못하는 게지요.
하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주인장께 여쭤보면 될테니까요.
역시 주인장은 제 생각대로 그 물건의 쓰임새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사바기따 정류장입니다." 아니 스타일이 영 아니던데...
제가 길에서 간간히 봐왔던 정류장은 비를 피하고 그늘을 제공하는 천정도 있고, 옹색하지만 기다리는 장의자도 있었는데...
주인장 왈 "다른 곳은 모두 그런 형태지만 여긴 새로 생긴 데라서 아직 제 모습을 갖추지 않았다"구요.
이제 지난 일이지만 발리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분의 대답이니 그때 그걸 철석같이 믿었어야 했는데 회의론자인
제 성격은 다시 한 번 확인을 하려 들었습니다.
"다금바리님은 사바기따를 타보셨나요 ?" "아뇨."
혹시 아닐 수도 있다는 작은 균열이 슬며시 들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커져 갑니다.
마실을 나가기 전, 한참의 생각끝에 노트북을 켰습니다.
제일 가까운 버스 정류장은 어디인가요 ? (디 마나 할테 부스 양 빨링 드깟 ?)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를 외치는 동화 속 여왕 수준의 질문이지만 답변은 친절하게 돌아옵니다.
길지않은 그 한 마디를 몇 번이나 되뇌이며 저는 언덕길을 다시 내려갔습니다.
초행길에는 물어보는 것도 사람을 봐가면서 해야하는 게 일종의 팁인지라 나름 행인들을 눈여겨보다 바로 앞
사마사마 일식집의 정문 경비초소 직원녀석을 골랐습니다.(바로 코앞 길가가 근무지이니)
"내가 사바기따 버스를 타려는데 너 아니 ?" 녀석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서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한 그 한 마디를 나름 유창하게 내뱉았습니다.
디 마나 할테 부스 양 빨링 드깟 ? 헌데 어럽쇼, 녀석은 길 아래 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뜻밖의 대답을 하더군요.
"위로 가든 아래로 가든 거리는 거의 비슷할걸요. 한참 걸립니다."
순간 당황한 나는 바로 앞 그 계단 모양의 물체를 가리키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저건 뭐야 ? 내가 듣기론 저게 임시정류장이라던데..."
녀석의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랍니다. 아니 이럴 수가 ...
할 수 없이 시내로 들어가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걷다보니 묘지도 나오고, 고색창연한 사원도 나오고, 히잡을 두른 무슬림소녀들의 학교도 나옵니다.
하염없이 걷는 길...
너무 더워 중간에 시골스타일의 빛바랜 미장원 간판 앞을 지나다 아무 생각없이 들어섰습니다.
"머리 좀 잘라주세요.스타일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살짝..."
영어를 전혀 못하니 제대로 알아 듣질 못하겠지만 시골 미장원 아줌마는 눈치로 때립니다. 연륜의 힘인 게지요.
드나드는 버젓한 문도 없고, 그나마 한 켠엔 먼지가 잔뜩 앉은 과자를 내어 놓은 점방까지 벌린 손님없는 미장원에
일하는 사람은 셋이나 되더군요.
사람도 없고 심심하던 차에 외국인이 나타났으니 이들의 입장에선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습니까 ?
수다... 수다... 수다로 시작되는 아줌마들의 수다는 커트가 끝나고 머리를 감을 때까지 끝이 없습니다.
잠시 쉬었으니 또 출발...
저 멀리 교통량이 제법 많은 삼거리가 보입니다.
비행기의 초창기시절, 린드버그가 "세인트루이스의 정신" 호롤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며 고생끝에 했다는 말
"저기 파리의 불빛이 보인다."가 불현듯 떠오를 정도로 반가운 그 곳은 " 따만 그리야" 정류장이었습니다.
한 4km 정도를 걸어온 셈이지요.
"사바기따"는 고상버스(바닥이 높은)인지라 정류장을 마치 원두막처럼 돋아놓아 그 위에서 기다리는 독특한 구조인데
아직 노선의 불비로 이용자는 그리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저같은 호기심 덩어리의 외국인이나 학생들 아니면 바이크를 몰지 못하는 노인, 아줌마가 주고객층인 게지요.
정류장엔 운행경로도도 큼지막하게 붙어있고, 곧 GPS를 기반으로 한 운행시스템도 갖추려는지 전광판도 보이더군요.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배차간격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으니(그러니 아직 운행이 들쭉날쭉 제 멋대로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복불복으로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게지요.
하지만 차가 늦는다해서 크게 불만스러워하는 이도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이 사람들 코드와는 딱이고 성질 급한 우리와는 전혀 안 맞는 시스템인 것이지요.
저도 태연자약한 이 사람들의 모드를 따라 지녔던 책을 꺼내들었습니다.
그러길 한 30분, 저 아래에서 차가 올라오는 게 보입니다. 눈물겨운 순간이지요.
문이 열리자 냉큼 올라탔습니다.
헌데 안에서 반겨주는 초롱한 눈망울의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네요.
그렇습니다. 개발독재였던 우리네 80년대까지 상경한 시골소녀들의 애환어린 직업이었던 "버스차장"을생각지도 않게
발리에서 다시 만난 것입니다.
차장만 있는 게 아니라 차조수도 있었습니다.
시야가 많이 제한된 대형차량이다 보니 기사의 왼쪽에 앉아 정차를 확인하고, 우회전시 손을 내밀어 다른 차량의
진입을 통제하는 역할을 미소년(우리나라였으면 틀림없이 얼굴값을 했을) 하나가 묵묵히 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손님은 평균 10-20명 수준인데 스텝은 3명이나 되는 셈이지요.
차비도 우리처럼 먼저 내고 타는 게 아니라 한참을 있다가 와서 받고 영수증을 끊어주더군요.
모든 것이 좀처럼 익숙하지 않은 느림의 연속이지만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저로서는 과히 싫지 않습니다.
차는 가다서다를 반복합니다.
심빵시우르 부근의 대대적인 공사로 시내는 거의 귀성길 피크타임 수준으로 살인적인 교통체증입니다.
차는 그 혼잡한 심빵시우르에서 다시 옆길로 빠져들어 해리스와 까르푸 앞을 지나 선셋로드를 통해 다시 심빵시우르로
빠져나오는 코스를 도는데만 거의 30분 가량을 소진하네요.(이 구간은 정류장이 하나이니 이 구간에서 탑승하시면
반드시 물어봐야 합니다. 남으로 가는 지, 혹은 북으로 가는 지를 ...)
저는 창밖을 내다보다 심드렁해지면 책을 읽고, 그러다 졸기까지 합니다.
버스 안의 빵빵한 냉방과 천장 에어컨 통풍구에 달아놓은 포푸리 향으로 쾌적하기는 그지 없습니다.
우리 돈 500원도 안되는 발리 시내투어의 진수를 체험하는 셈이지요.
누사두아에서 바뚜불란 까지의 직선 거리는 사실 과히 멀지 않지만 돌고 돌아가는 길은 다소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 단조로움이 싫다면 저처럼 책이라도 한 권 지니거나, 스마트 폰을 반드시 휴대하는 건 필수겠지요.
바뚜불란까지는 거의 두 시간 반이 소요됐습니다.
돌아오는 그 사이에 생긴 일들은 나중에 후기로 다시 올리기로 하고 "사바기따" 이야기만 계속하지요.
낮에는 쾌적다고 느꼈던 버스 안이 해질녘이 되면서부터는 쌀쌀하기까지 합니다.
가디건이라도 한 벌 있으면 좋으련만...
제 맞은 편 자리에는 캠핑을 다녀오는 외국인학교의 10대 소년들이 해맑은 웃음으로 장난도 치고 노트북 검색에
여념이 없는데 저는 내릴 곳이 다가올수록 겁이 납니다.
어두컴컴한 저녁에 "따만 그리야"에 내려 낮처럼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 다음 정거장은 더더욱이나 모르는 곳이
뻔할테니 갈등과 번민의 연속입니다.
그러다가 내린 최종결론은 "따만 그리야"가 아닌 미지의 다음 정류장이었습니다.
"모 아니면 도" 식의 선택이 아니라 창밖의 차량통행을 바라보니 제가 가는 방향보단 그 반대편의 교통흐름이 더 원활해
보여 택시를 타기에 수월할 듯 싶어서였지요.
드디어 "타만 그리야"를 지나 차는 계속 달려갑니다.
저는 일찌감치 출입문 가까이로 나와 불안한 마음으로 제가 걸어왔던 길들을 되짚어봅니다.
"내가 가지않은 아랫쪽으론 얼마나 더 가야하는 걸까 ?"
가로등도 제대로없는 밖은 환한 실내등에 반사되어 잘 보이지도 않는데 억지로 고개를 빼들고 쳐다봅니다.
그러는 사이, 속도는 서서히 줄어들고 드디어 차가 멈췄습니다.
처음엔 쾌제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다음엔 허탈했습니다.
그 다음은 사마사마의 그 놈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내린 "따만 그리야"의 다음 정류장은 바로 아침에 봤던 다섯계단 탑, 다금바리님이 일러준 바로 그 자리였으니까요.
"사바기따" 버스에 대한 제 결론은 결국 타라, 타지 마라의 단도직입적인 한 마디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행의 성격과 본인의 취향과 성격까지 가늠해야 그에 알맞는 대답이 나올 것만 같아서지요.
버스 하나 타는데 무슨 그딴 것까지 헤아려야 하냐고 볼멘 생각을 한다면 당근 안 타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어린이를 동반하거나 어르신을 모신 가족여행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큰 볼거리는 없어도 발리의 중심지 남북을 종단하며 쾌적하고 여유있는 볼거리를 제공하니까요.
느린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이며 차며 건물들이 환한 햇살 쏟아지는 통유리창을 통해 아주 가깝게 다가온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체험일테니까요.
급한 여행이라면 외면해도 되고 시간이 난다면 한 번쯤 올라타 거리구경을 할 만 하다는 얘기이지요.
발리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
느리고 느긋하게 하지만 적당한 인내도 수반하는 색다른 경험을 저는 어제 "사바기따"를 타고 맛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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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기따타고 정원이아빠님처럼 하루정도 천천히 여행에 쉼표를 찍는것도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은 하고 있지만서도....차멀미를 하는 저에겐...고민 아닌 고민꺼리중에 하나랍니다 ㅎㅎㅎ 네...제가 좀 촌스러워요 -_-;;;; 새로 뽑은 차 냄새로 인해 쏠릴까 싶어서 ..혹은 드라이버의 운전솜씨가 의심스러워서 못타고 내내 눈으로만 탔었는데... 직접 탄것 같은 이기분은 뭘까요? ㅎㅎ 교통체증때문에 전 ... 일단은 도로공사가 왠만큼 끝나야 시도 할수 있을듯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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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차 특유의 냄새는 전혀 나질 않더군요.
드라이버 솜씨도 설마 유니폼 착용한 대형면허가 허튼 사고칠라구요 ?
설사 사고가 나더라도
발리의 도로를 달리는 차들중 도라꾸 빼고는 제일 큰 게 사바기따인데
탑승자의 안전은 거의 탱크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과 (통상 30분 안쪽이지만)
일부 정류장은 차와 정류장 상판 사이의 간격이 제법 있어서
토끼처럼 "깡총" 하고 점프를 해야한다는 게 좀....
큰 차로 다니는 최초의 라인말구
우리나라 현대버스로 시험운행중인 새 라인은 아직도
무임승차 기간이라는 것도 참고사항 입니다. -
여행팁에 올라온 사바기따 글 보면 정거장 이름까지 쓰여진 노선지도 있던데 한 장 카피해 가셨으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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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두 그런 줄 알았는데
막상 와서 보니
그게 그다지 도움이 되질 않더라구요.
현지 사람들도 대부분 정류장 이름을 모르는데다
시내구간은 양 방향 정류장이 아닌
단선 정류장이기도 하고...
아직 자리를 잡은 단계가 아니니 이해를 해야지요.
하지만
남쪽에서 시내까지 거의 모든 곳의 공사로
이젠 외곽 한산한 도로까지 밀리는 게 예사가 된 현지사정으론
한 번씩의 사바기따 이용도
나름 스트레스와 짜증을 푸는 참신한 접근이 될 것 같아요. -
저도 꼭 한번 타고 싶네요. 근데 할뜨가 제대로 안내가 안되어있으면 대략 난감.. 외국인도 쉽게 탈 수 있게 되려면 몇 년이 걸릴까요? ㅎㅎ 인니어 멋지신데요~ 부스보단 비스~ 할뜨 비스~ 나익 사르바기따 디 마나? 해도 되실거에요~ 느긋하게 시간 구애 받지 않으면서 발리를 느낄 날을 고대합니다
-
제 서툰 인니어를 손봐주셨네요.
혹시 그렇다면 발음이나 문장이 어눌해서
그 때 그 녀석이 못 알아들은 걸까요 ?
대신 고생으로 똘똘뭉친 추억의 뒷담화는
실컷 만들었지만 말입니다.
참, 한 번쯤 타 보세요.
할뜨(정거장)안내는 좀 부실하지만
그 정도로 인니어구사가 유창한데
뭐가 힘들겠습니까 ? -
인니어때문이 아니라 자신도 타본 적이 없고 별 관심이 없어서인 거 같아요^^ 그 정도면 훌륭한 인니어에요~~ 혹시 버스에서 내릴때는 우리나라처럼 버튼을 누르나요? 예전에 족자에서 버스 내리고 싶으면 "끼리~"라고 해야했거든요. 왼쪽~ 이라 외쳐야 멈춰줬고 완전히 멈춰주진 않기에 왠만큼 속도가 줄여졌으면 내리면서 몇 걸음 뛰어줘야 속도를 줄일 수 있었어요 잘못하면 넘어지고 익숙해지면 스릴만점이었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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