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비교적 오래되고 저렴한 사누르의 그랜드발리비치 호텔에 투숙하였는데 시설이 오래되어 그렇지 별다른 불편은 없었고, 전 객실이 오션뷰이고 일출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개발이 시작되면서 발리에서는 야자수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법을 만들었는데 이 호텔은 그 이전에 지어진 10층으로 발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며, 수카르노 시절인가에는 맨 윗층에 대통령의 로얄 스위트룸이 오랫동안 있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호텔과 바로 붙은 깨끗한 해변을 따라 산책이나 조깅을 할 수도 있고, 수심이 1.5미터-3미터나 되는 깨끗한 수질의 수영장(얕은 유아수영장도 있음)과 넓고 아늑한 안마실에서 아무 생각없이 하루종일 보낼 수 있다.
바다는 수심이 낮고 잔잔하며 썰물 때는 산호초로 둘러싸인 방파제 같은 곳까지 물이 빠져 걸어서 바다 중간까지 갈 수도 있으며 비치에서는 맛사지도 받을 수 있고 5천원정도 주면 머리도 땋을 수 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호텔의 바로 옆에 9홀이지만 코스길이가 제법되는 퍼블릭 골프장이 있고, 투숙객은 18홀(9홀 두 번)에 4만 5천원정도(전동카는 없고 버기 피, 캐디피 포함)면 예약없이 그리고 얼마든지 라운딩을 할 수 있어 좋았다(캐디 팁은 18홀에 4불).
말이 퍼블릭이지 거리가 그렇게 짧은 것도 아니고 해저드나 오비지역이 적은 대신 페어웨이에 수십년, 수백년 된 거목들이 많아 공이 나무 사이로 빠지면 파는 물 건너갔고 잘못하면 더불보기 이상은 맡아놨다고 봐야 한다.
필자는 롱아이언 훈련을 위하여 파5를 제외한 홀에서는 모두 아이언 3번으로 티샷을 하였는데 보기 플레이 하기도 만만치 않았다.
발리는 인도네시아 땅,
인도네시아는 많은 자원과 인구를 가지고 있지만, 워낙 국토가 넓고 군사정권과 중앙집권제도의 오랜 고착으로 발전이 지연되고 있었고, 특히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운 열대지방인 발리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활기차게 일을 하고 있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지는 몰라도 모두 표정이 밝았으며, 사람들마다 친절하고 적극적이어서 필자는 그들이 곧 크게 성장하여 노력의 대가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발리에서는 가정집이건 영업장이건 모두 각자의 제단 비슷한 것들을 가지고 있었고, 신들을 위한 잿밥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출입구에 꽃과 음식을 그릇에 넣어 향을 피우면서 액운을 막는 부적과 같이 두는 곳이 많았다.
또 큰 건물이나 사원의 출입구에는 탑의 가운데를 위에서 아래로 반토막으로 자른 형태의 출입문을 세워두는데 그 내부에는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한 쪽으로만 들어가고 나올 때는 반대쪽으로 나온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악마가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한 쪽으로만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악마의 출입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발리에서 하늘을 처다보면 어디에서든지 각양각색의 커다란 연들이 하늘에 널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슨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취미의 일환이라고 하는데 젊은이들이 단체로 모여 엄청난 크기의 연을 만들어 날리면서 국가의 발전과 개인의 행운을 기원하는 것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해상사원을 가는 길에 마침 길을 가로막고 트럭으로 커다란 연을 만들어 신고 가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었다.
보이 스카웃 이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들었고, 아무튼 지휘자의 통제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양방향의 차량통행을 차단하고 신주단지 모시듯 연을 몰고가는 그들의 기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 식구들은 아무쪼록 그들의 희망과 염원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하였다.
발리는 참 재미있는 나라로 보였다.
마치 우리의 60-70년대 풍경과 인심이 그대로 느껴졌다.
여기에도 우리 정부가 열심히 부르짖는 빈부의 양극화가 분명히 있을 터인데
일반 시민들은 월 20만여원의 월수입으로도 신나고 활기차게 그리고 모두 당당하게 살고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이 많아 보이는 관광객들을 적대시하지 않고
너무도 친절하게 너무도 착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호텔에서나 거리에서나 음식점에서나 어디에서든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반대로 우리를 실어 나르는 버스의 앞 유리창에는
운전사의 눈에 햇볕이 들지 않도록 차양역할을 하는 대형 부채가 부착되어 있었는데
그 부채에는“대. 한. 민. 국”이라고 크게 한글로 쓰고 “독도, 우리 땅”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애국자가 많은 나라인지, 발리까지 와서 열을 내고 갔는지 알 수 없지만
한국사람, 참 열많이 받고 살아간다는 것을 거기서도 알 수 있었다.
전에 다른 나라에 갔을 때도 어떤 한국사람이 골프장에서 홀간을 이동하면서 “대-한-민-국”을 큰 소리로 외치면서 흔히들 응원할 때 치는 “짝짝짝 짝짝” 박수를 쳐대는 것을 보았는데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소갈머리”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정열이 넘치고, 있는 행세를 하는 우리들 보다
가난하지만, 평화롭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한 발리사람들이 무척 행복해 보인다.
야그가 조금 샜는디(?) 각설하고,
발리는 정찰제인 백화점이나 미터기로 가는 택시를 제외하고 나머지 일반거래는 모두 네고를 하여 가격을 깎는 것이 보통이다.
아이들은(사실은 다 큰 대학생들이지만) 쿠따의 디스카바리 몰이나 마타하리 백화점 근처에 풀어놓아도(?) 자기들끼리 놀거리가 별로 없는가 보다.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Tattoo하는 곳에서 일종의 헤나를 하고 있었다.
보통 5천원 정도면 2주일 정도 가는 일종의 문신을 한다고 하였는데 모양이 예쁜 것들도 더러 있는 것 같았다.
식사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볶음밥 종류인 나시고랭이나 나시짬뿌르(밥), 해물 톰얌 파스타스프(Fusilli) 등이 입맛에 맞는 것 같고, 입에 잘 안 맞는 사람은 라면을 끓여먹어도 되지만, 디스커버리몰이나 여러 곳에 체인이 있는 BreadTalk이라는 빵집에서 파는 빵이 맛도 있고 값도 보통 우리 돈으로 700원 정도, 각종 케익도 1,000원 정도라서 맛있게 먹었다.
여행만 갔다오면 체중이 엄청나게 늘어 항상 걱정하는 필자와 아내는
입맛에 맛는 음식이 즐비한 이번 여행에서도 만만치 않게 먹어댔다.
이번에도 돌아가면 부지런히 뛰어서 체중을 줄여야겠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