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할 지 더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더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나짐 히크메트의 [진정한 여행] -
09.08.29(금)
어제의 늦은 저녁식사와 빈 속의 반주 탓인지 새벽 잠에서 깨어나는 잠자리가 제법 무겁습니다.
이 곳 시각은 6시. 서울에서도 7시면 눈을 뜨니 한 시간이 느린 시차를 감안하면 평상시처럼 눈을 뜬 건데
이 곳은 이른 새벽, 어둠이 걷히기만 하면 어디서든 새들이 작정을 한 듯, 울어대는 통에 어지간하면 시끄러워서라도
자동으로 눈이 떠지게 됩니다.
마당으로 나와 커피 한 잔을 끓이러 부엌엘 들어가보니 아구스의 엄마 까덱이 분주하게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잠시후 차려진 아침상은 깔끔한 감자채볶음과 제 입엔 좀 시게 느껴지는 김치와 깡꿍, 오징어채의 단촐한 반찬에
국은 놀랍게도 손색없이 끓여낸 소고기무우국입니다.
어제의 숙취때문인지,아니면 그저 제 입에 맞아서인지 어쨋거나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니
분도형님 왈 "내일부턴 국없이 마른 반찬만 내놓으라"는 그야말로 공포(?)의 농담을 하시더군요. ㅎㅎㅎ
룸이 네 개인 이 곳의 현재 게스트는 장기체류중인 앤디(어떤 때는 객이 아니라 사장권한대행급 직원처럼 느껴지는)와
호주퍼스에서 온 젊은 내외,그리고 저랑 어제 같이 들어온 한 쌍을(이틀만 묵고 다른 호텔로 옮길)포함하여 모두 여섯 명인데 수영장을 마주한 마당에서 좌탁에 둘러앉아 아침 식사를 하는 광경은 발리풍의 건물만 아니라면 마치 서울 어느 근교의
팬션에 가까운 사람들끼리 나와 앉은 듯 하기도 합니다.
식사와 함께 나온 한 접시의 후식용 과일도 거의 비우고 나니 일찌감치 가이드를 불러 나가는 분도 있고, 블루버드택시를
불러 나가는 분도 보이네요.
저야 바쁠 것 하나 없는 몸인지라 제 방 침대에 누워 가져온 책도 보고, 노트북으로 네이버에 접속하기도 하다가 정오무렵
느즈막히 나서려는데 분도형님께서 마침 나가는 길이니 태워 주겠다길래 엉겁결에 얻어 타고 뽀삐스로 향합니다.
- 꾸따비치의 한낮. 디스커버리몰 쪽의 바다는 이런 여유를 보기가 힘들지만 조금 올라간 하드락호텔이나 이나꾸따비치
호텔 앞의 바다에는 서양친구들이 이렇게 진을 치고 해변을 장악하거나, 서핑에 열중하고 있다.-
- 해변 한 켠의 백사장에서 서핑보드를 타고 입수하는 자세만 몇 번 익히고 용감하게 바다로 뛰어드는 젊은 친구들도
꽤 많았다. 파도에 허물어지고 다시 올라타는 무모한 도전이지만 어김없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점점 균형감각을 찾는
바다의 전사들로 만들어져 간다.-
뽀삐스1 앞에 내리니 바로 앞에 펼쳐진 해변으로 저절로 발걸음이 향하더군요.
아직 건기인지라 꾸따해변은 굳이 물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보기가 참 좋습니다.
불어오는 바람도 살갑고,크게 심술부리지 않고 잔잔하게 밀려 드나드는 파도도 보는 눈을 즐겁게 합니다.
방향을 바꿔 해변을 나와 뽀삐스1의 골목입구에 섰습니다.
해변에서 시작되는 입구라서 들어가는 골목은 승용차도 진입할 정도이지만 안으로 들어서 중간쯤 가면 길은 점점
좁아들고 결국 도로와 만나는 끝부분은 작은 스쿠터도 간신히 비껴 갈 정도가 되어버리는 곳.
그리고 그 안에서 미로처럼 혼재된 길이 사방으로 굽이 돌고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객을 위한 허름한 숙소들과 다양하고
값싼 길거리식당,세탁소며 마사지샵,좌판까지도 나름 질서를 지니고 공존하는 곳이 바로 뽀삐스의 골목입니다.
- 골목 중간쯤 못미쳐 만나는 "스웰", 여기서 곧장 좀 더 걸어가면 "뱀부코너"가 나온다.
가격의 저렴함은 결코 "뱀부코너"를 못따라 가지만 그래도 절대 비싸지는 않은 곳이다.
그리고 "뱀부코너"의 협소함과 위생적인 약점을 뛰어넘는 오픈된 넓은 실내가 장점이라면 장점.-
- 대형 멀티비젼을 통해 시간대별로 각종 쟝르의 DVD도 상영한다. 키높은 천정에 달아놓은 보드도 구경거리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또한 만만치 않다.-
- 이 골목의 무수한 값싼 숙소들중 간판스타격인 "마사 인"/ "스웰"에서 조금만 더 가면 있다.
입구에 가림막을 치고 주차장을 고치는 공사를 하는 중이라 들여다 본 안은 공사자재로 그야말로 난장판 -
- "뱀부코너"에서 왼쪽 차 다니는 좁은 도로로 몇 발자국 걸으면 나오는 저렴한 마사지샵 "제니퍼" -
- 사실 "제니퍼"를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사진처럼 너무도 착한 가격의 "세레네 맛사지 온 뽀삐스"가 바로 "뱀부코너"
맞은 편에 있었다. 바로 이 전단지를 보고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너무 싸잖아.... -
저는 이 곳에서 서울에선 이제 사라져버린 피맛골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립니다.
지나친 상상의 비약일까요?
키 작은 지붕과 지붕들이 이마를 맞대고 간신히 두 사람이 비켜 지나갈 만한 미로같은 그 골목은 이미 어귀에서부터
밥짓고 생선굽는 냄새가 민감한 후각을 자극하고, 만만한 가격과 푸짐함은 잠시 주머니 사정을 잊어도 될만큼
편안한 곳이었더랬습니다.(요즘 젊은 분들은 여길 잘 모르겠지만)
물론 공간을 달리하고 문화적 간극도 현저한 이곳을 그 추억의 장소와 비견한다는 게 무리이겠지만 그만큼 제게는
발리에서 가장 만만한 장소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늦은 점심은 "뱀부코너"에서 먹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예전부터 위생의 문제나 협소함은 저 역시 충분히 느끼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유별난 취향인지
이 집의 "나시고랭"은 옛날 시골중국집의 고슬고슬하고 기름기많은 볶음밥을 떠올리게 하는 까닭입니다.
(아쉬움이라면 국물인데 박소는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사실 그러고보니 볶음밥도 예전엔 썰어진 파가 제법 들어간 계란탕 국물을 쓰다가 언제부턴가 식어빠져 성의없어 보이는 짬뽕국물이 곁들여지는 방식으로 통일되면서 멀리 하게
되더군요.)
걷고 또 배도 부르니 졸음까지 겹쳐 오고, 해서 1시간짜리 값싼 전신마사지를 받아 보기로 했습니다.
우붓의 고급스파처럼 숲이나 라이스테라스를 배경으로 하거나 좋은 인테리어에 은은한 조명과 귀까지 맑아지는 음악은
없어도 받고나니 한결 걸음이 가뿐해지는 것 같습니다.
기운을 차려 또다시 거리를 걷습니다.
- 뽀삐스1의 차도에서 무성한 입간판들이 가리키는 방향이 바로 그 골목이다. 난 해변쪽 반대방향에서 들어갔으니
이 길로 나왔고.-
-전면 대형간판이 마치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T-셔츠샵 "락 아트" /옷구경은 마누라를 쫓아 다니는 것도 질색을 하는 내가
샵 안으로 들어선 건 순전히 저 간판때문이었다. 헌데 생각보다 심플하고 독특한 제품들이 꽤 눈에 띄인다.-
- 지나가다 얼핏 눈에 들어온 "올리브"라는 간판의 악세사리점/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발리서프의 열심당원인
올리브님이 생각나서 장난스레 찍어봤다.한동안 발리에 못가셨을테니 눈이라도 즐거우시라고.ㅎㅎㅎ.-
- 위 사진 바로 맞은 편 도로에 있던 이름이 생각나질 않는 공예품점/이 집은 밖에서 쳐다본 디스플레이가 너무 멋있어
들어갔는데 여직원이 하도 쫓아다니는 통에 찍고싶은 건 못찍고 결국 개구리들만 한 무더기로 사진에 담아 나왔다.-
- 나이트클럽 "바운티"와 패디스클럽은 여전히 안녕하시다. -
- 뽀삐스를 나오면서 잠깐 들린 DFS갤러리아(발리갤러리아)의 푸드테라스. 2층에서 아래로 향하니 보는 맛이 다르다.-
- 2층 하이퍼마트 전경과 환전소. 환전중인 서양아저씨가 너무 꾸물거려 결국 저 학다리를 비집고 사진을 찍었다.-
- 말이 필요없는 8월 29일의 환율시세.하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US달러의 가치하락과 호주달러,유로,엔,파운드 등의
강세를 알 수 있고 지난 번 방문때는 보이질 않던 인민폐(위안화)의 환율도 만만치 않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언제나 변함없이 똥값으로 대우받는 아아!!! 대한민국의 원화여.... -
- 하이퍼마켓 아래 1층쇼핑몰의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페리플러스"책방. 우붓왕궁 근처에도 이 책방이 있는데
발리관련 유용한 책자들이 제법 많다. 흠이라면 거의 모든 책들이 비닐포장이 되어있어 우리나라처럼 사지 않고
내용을 들여다 볼 종류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
-책방구경은 교보문고든 찌든 냄새 배인 고서적책방이든 언제나 재미있는 순례처럼 여겨진다. 미지의 세계와의
우연한 만남이 언제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행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 왼쪽 모퉁이로 책들이 보이는 이 곳은 어디일까? /차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그것도 무료해지면 오른쪽으로 난 대형
통유리 창 너머로 바깥구경을 할 수 있는 북카페. 물론 책을 사면 이용은 당근 무료이다. -
이것저것 찍었던 사진들을 추스리고 모아서 올리다보니 오늘 하루 제법 많이 돌아다녔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리를 하며 이런저런 이유로 안 올린 사진들이 훨씬 더 많은 걸 보면 말입니다.
아직 밤길에는 자신이 없어 자칫 어제같은 우를 범할까봐 해가 제법 많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택시를 타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뭐 혼자 있는 몸이라 가져간 햇반에다 신라면이나 말아 먹으며 하루를 반추하려했는데 분도형님이 또 그냥 놔두질 않네요.
스치듯 그냥 툭 던지는 한마디. "스미냑에 괜찮은 식당 하나가 있는데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때마침 이 곳에서 다이빙 강사를 하시는 분이(사전 허락을 얻지못한 관계로 이름은 묻어둡니다. 여성분이기 때문에)
방문한 까닭에 퍼스 신혼부부와 앤디까지 합세하여 도합 여섯명이 또 밤마실을 나가게 된 것이지요.
사실 스미냑의 한다하는 식당들은 몇 번의 방문을 통해 한군데씩 한군데씩 체험을 했더랬지만 이번 여행은 가족을 동반하지
않은 까닭에 혼자 찾아갈 이유가 없어 처음부터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울띠모에서 쿠데타 방향으로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 자리잡은 그리스 식당 "미코노스"가 오늘의 행선지였습니다.
그리스 전통요리인 양고기를 잘 한다는 집인데 메뉴판의 번호를 매긴 즐비한 음식들을 놓고 고민고민하다가
"내가 언제 또 양고기를 먹어보랴?"싶어 과감히 Lamb Chob을 주문했습니다.(11만 5천루피로 기억합니다.)
맛은 생각보다 좋더군요. 고기도 질기지 않고, 함께 주문한 셀러드와 서브푸드도 좋았고 또띠아도 맛있었습니다.
그런 자리에는 빼놓지 않고 언제나 동반하는 소주도 나름 잘 어울리더라구요.(이건 변함없는 제 생각입니다.)
좋은 음식과 좋은 만남의 궁합 속에서 생각같아선 아무리 먹고 마셔도 어지간해서는 취할 것 같지 않은 밤이지만
내일을 위해 적당한 시간에 자리를 털고 숙소로 돌아갑니다.
맨날 먹는 얘기로 끝을 맺는 아쉬움을 오늘도 어쩔 수 없어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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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gktg1님은 진정한 여행자이기 이전에 진정한 작가이십니다.
[진정한 여행]의 글 밑에 작가 이름을 적지 않았다면 님의 글이라고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사실묘사와 감정의 표현이 탁월합니다.
뽀삐스의 거리와 발리갈레리아를 직접 둘러보는듯한 느낌을 갖는 것은 저뿐만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글도 기다려집니다. -
블러그에 좋은 사진들이 많더군요.
짐작컨대 드러내시진 않아도 만만찮은 내공의보유자이신듯....
저마다가 보는 눈높이와 시선을 두는 데가 다르니 같은 곳을 다녀와서도
다른 스토리가 나올 수 있는 것일 겁니다.
잘 다녀오세요.
많이 보시고, 많이 느끼시고..... -
허걱.... 다금바리님이시네
죄송합니다. 인사도 못 드리고 총총히 서울로 돌아왔으니...
사실 오기 전 전화라도 한 통 올릴까하다가 잠깐 싱가폴에 가셨다길래
그냥 훗날의 재회만 고대하기로 했습니다.
부디 다시 뵐 때 까지 몸조심 하시고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길 기원합니다.
(이거 영 멘트가 노인네 멘트네요. ㅎㅎㅎ)
물에는 안 들어갔어도 그 날 그 바다 무척 유쾌했습니다. -
아 어딜가도 대우 못받는 조선의 화폐.....
완존히 와 닿습니다.
그나마 예전에는 아예 없던 원화 칸이 생겼다는점이 다행이네요. -
그곳에서 잠시 올리브를 떠올리시고 사진찍어오신 정원아빠 ㅎㅎ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여러님들 만나시면서 즐거운 여행하셧군요 .. 부럽습니다..
12월달에 발리에서 벙개나 치시져 ~~ 참석할게요 ㅎㅎ -
12월에 가신다는 말씀으로 들리네요. 헐...
저는 사실 11월 말이나 12월 초에 다시 가는 걸로 예상하고 있는데
생각만큼 날짜를 잘 맞출 수 있을런지...
어쨋거나 반가운 재회를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
낯익은 뽀피스1~~스웰도 반갑구 제니퍼 마사지샵 앞에 진을 치고 앉아서
지나갈때 마다 마사지 받으라구 호객하던 아가씨 일당??들도 그립네요..
역시 원화는 아직도 맨 꼴찌~~~
우붓서도 그러던데...
낮에 보는 바운티는 왜 이리 어색할까요?ㅎㅎ
사진으로나마 너무 반가운 뽀피스 풍경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페리플러스는 책값이 높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저만한 책방은 없으니....
발리홀릭님의 열정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저도 그대로 따라가기 신공으로
가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