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아빠
Lv.17
2010.06.01 20:56
추천:14 댓글:15 조회:4,837
- 족히 300년은 훨씬 넘어 보이는 나무 한 그루가 뉴쿠닝 마을의 하늘을 지고 그늘을 드리운 채 서 있습니다. -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는 옛 속담이 있습니다.
제각기 자신이 만지고 느낀 것만을 실체로 알고 다른 관점은 받아들이질 않는다는 의미일텐데 제 해석은 조금 다릅니다.
설사 자기가 만진 부위가 남과 다르다 할지라도 그 다른 관점도 수용할 수 있는 자세로 세상을 살자는 것이지요.
어차피 지식이나 아량의 깊이와 넓이가 그다지 보잘 것 없는 게 보통사람의 삶일진대 차이는 수용하고 차별은 멀리
하자는 나름의 소신인 것입니다.
해서 발리도 어떤 이는 이런 이유로 또 어떤 이는 저런 이유로 좋아할테지만, 제 입장에선 보이진 않지만 분명 존재하고
뭐라 딱 집어 설명할 수 없는 예술성(?)으로 인해 여직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우붓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그러한 마음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 몽키 포레스트 앞의 갈림길에서 좌우를 고민하다 오른쪽 언덕을 택했는데 결국 틀린 선택이었습니다. 뉴쿠닝은 차가 다니는
도로변이 아닌 맞은편 숲속 너머 작은 오솔길을 따라가야 나오더군요. -
- 몽키포레스트 바로 옆의 오솔길(오토바이와 사람만 다닐 수 있는)은 야트막한 경계석으로 공원과 구분되어 집니다.
울창한 숲길은 제법 깊은 계곡도 웅크리고 있고, 여기저기 나무에 앉은 원숭이들은 심드렁한 눈길로 이따금씩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더군요. -
큰 길을 따라서는 잘 왔는데 정작 근방에 다 와서는 만나기로 약속한 "커피&코퍼" 까페를 물어보니 대답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른 안내를 천연덕스레 합니다.
누구는 아예 모른다고 하고, 누구는 언덕 넘어 큰 길을 따라 가라고 하는데 더욱 가관인 건 길에 나와앉은 호객꾼
녀석 하나가 "거긴 꽤 먼데. 차를 타야 돼. 내가 싸게 해줄게."라고 하는데 정말 환장할 노릇이더군요.
결국 곰곰히 생각끝에 숲길 입구를 찾아 걸어 들어가니 금홍이님의 설명대로 숲이 끝나는 그 자리에 까페 하나가
숨어 있었습니다.
- 좌측은 원숭이 숲, 그리고 우측은 조악한 토산품을 놓고 파는 상가인데, 숲을 빠져 나온 원숭이들이 이따금씩
어슬렁거리며 들락거리기도 한답니다.-
- 숲을 따라 오느라 난 땀을 식힐 만한 거리에 자리잡은 "커피&코퍼". 그늘이 넓게 자리잡은 가게 안과 햇살아래
그대로 드러난 뒤편 돌담 조각들이 묘한 대조가 되는 곳입니다. -
잠시 자리에 앉아 있으니, 초면임에도 한 눈에 "아! 이 사람이구나."싶은 분이 들어섭니다.(물론 같은 한국인끼리니 더
그러했겠지요. ㅋㅋㅋ)
낯가림이 그리 심한 편은 아니지만 첫 만남은 으례 어색하기가 일쑤인데 성향이 비슷한(?) 덕인지 이내 짧은 대화로도
동질감을 느끼게 됩니다.(물론 금홍이님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요.)
이윽고 차 한 잔을 마시고 느린 걸음으로 동네 이 곳 저 곳을 돌아 다녔습니다.
우붓의 한가로운 농촌 길을 오늘 처음 만나 짧은 시간에 의기투합한 한국의 두 사내가 말입니다.
- 토종 한우로 착각할 만큼 살이 오른 우붓의 예쁜 소./아래 사진은 아직도 출산시 영아 사망율이 높은 이 지역에서
NGO와 같은 비영리 의료단체가 산부인과 활동을 하고 있는데 조만간 자그마한 진료소를 지을 부지의 표시랍니다.
마을 사원과 학교, 동네 어귀의 로컬 식당까지 두루두루 보여준 금홍이님은 동네 안쪽길로 접어 들어 제게 불쑥
"발리의 전형적인 전통가옥을 구경하겠느냐 ?"는 제의를 해옵니다.
저로서는 마다할 까닭이 없지요.
제 대답을 듣더니 이내 어느 집으로 들어가 "이리 오너라."의 포즈로 그 집 사람을 찾더군요.
조각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어느 노인장의 집이었는데 지금은 아들내외만 산다는 설명도 빼놓질 않습니다.
금홍이님의 뒤를 따라 다시 집안 여기저기를 살펴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폐쇄적이거나 배타적이지는 않지만 아직도 "카스트"라는 신분이 유지되고 엄격한 마을 공동체인 "반쟈르" 로 유지되는
이 시골마을에서 한국의 자유로운 사내 하나가 참으로 조화롭게 살고 있구나 하고 말입니다.
집을 다 둘러본 뒤에 사랑채와 같은 공간에 둘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집 주인의 며느리는 커피며 과자며, 과일을
연신 내어다 주는데 나중에는 밥까지 먹고 가라는 기색이 완연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우리네 시골에서 사라진 정겨운 인심을 오늘, 우붓의 시골에서 다시 만난 것입니다.
- 뇨만 마위 할아버지의 문패가 선명한 바로 그 이웃 집입니다. 금홍이님의 뒷모습만 담았습니다.-
- 이 집의 보이는 모든 석물과 건축물의 마무리 장식들은 모두 집주인 할아버지의 솜씨랍니다. -
처음 생각으론 적당한 길안내만 부탁하고 돌아 나오려 했는데 "우리 동네까지 왔으니 점심이라도 같이 드시자"며 붙드는
금홍이님의 제의를 뿌리칠 수 없어 결국 집까지 따라 갔습니다.
정원이 또래의 아들녀석과 예쁜 공주님이 아빠와 낯선 손님을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아주머니는 별달리 차린 게 없다며 스파게티를 내오시는데 휴일의 불청객인 저는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아이들 얘기며 사는 얘기를 나누다보니 너무 많은 시간을 뺏은 것 같아 늦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서둘러 일어섰습니다.
정원이와 마누라가 오면 다시 만나기로 하고 말이지요.
이제 온 길을 되돌아 나와 다시 길을 걷습니다.
- 잘란하노만과 몽키포레스트로드가 갈라지는 삼거리에 자리잡은 자유분방형 까페 "차이나 문"(여기는제법 먹음직스런
팥빙수도 팝니다)과 바로 옆 제가 좋아하는 실속형 빵집까페 "챤틱"입니다.-
막차로 미리 끊어놓은 쁘라마의 출발시각이 6시인 까닭에 아직 시간은 충분하고, 거리 좌우를 배회하며 낯익은 장소,
낯익은 풍경에 카메라를 디밀어 봅니다.
- 우리 나라의 우붓매니아들이 좋아하는 그린필드 방갈로네요. -
- 그린필드 방갈로 맞은 편에 예전엔 못 봤던 이집트 풍의 이름모를 방갈로도 담아봤구요. -
그렇게 거닐다보니 조금은 덥기도 하고 다시 팔도 욱씬거려 쁘라마 정류장 바로 옆의 "라야까페"로 들어와 앉았습니다.
비록 주인장이 일본인이라 예나 지금이나 스모경기만 중계하는 모니터가 불만이지만 정류장과 가깝다는 이유와
착한 가격으로 우붓에서는 뜻막만큼이나 자주 들리는 곳이지요.
시내와 꽤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늘상 손님이 거의 없다는 것도 책읽기엔 나름 괜찮은 곳이구요.
- 약간은 어두워 보이는 실내지만 책읽기에는 전혀 불편이 없는 곳입니다. -
- 가격이 정말 착한 편이지요? 우붓 안쪽의 시내보단 조금 싼 편이지만 맛은 별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 라야 까페 안의 유일한 좌식테이블인데, 사진으로는 운치있고 고풍스러워 보여도 사실은 많이 낡은 편입니다.. -
- 제가 이 집을 좋아하는 또다른 이유가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은 저 책들 때문이기도 하지요. -
- 제가 앉은 자리입니다. 그림과 책들의 찰떡궁합이니 저같은 사람이 시간 보내기엔 적격인 곳이지요.
- 갈아온 과일쥬스와 함께 티슈상자를 가져왔는데 처음엔 저 휴지를 눌러놓은 받침장식이 마치 큼직한 쿠키처럼 보여서
한 번 살짝 깨물어보았습니다. 헌데 아니더군요. ㅋㅋㅋ
쁘라마를 타고 사누르로 되돌아 오는 길은 그야말로 교통정체의 연속입니다.
발리에서는 되도록 현지인들에게 소요시간을 묻지 말라지만(저마다가 다르니) 답답한 마음에 앞 좌석의 아주머니에게
도대체 얼마나 걸리겠냐고 물어 봅니다.
"거의 다 왔는데... 이제 10분 정도 남았어요." 그때부터 꼭 40분이 더 걸렸습니다.
마음의 애를 태운 까닭은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떠나기 전 분도선배님께 전화를 드린 때문이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리셨을텐데...
일찌감치 셔터를 내려 어두컴컴한 사누르 정류장 앞에 차를 받쳐놓고 계시더군요.
짐바란의 가까운 식당에 둘이 앉아 오랫만의 회포를 풀어봅니다.
한 반년쯤 만에 뵙는 것인데 그리 오랜 시간을 사이에 둔 것은 아니지만 그새 흰 머리는 더욱 늘어나 보입니다.
아프셨다는 얘기도 왠지 가슴이 쨘해오구요.
무뚝뚝한 말투는 예의 그대로이지만 여전히 정많은 그대로의 모습...
선배는 점점 발리를 닮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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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우붓모습 너므 좋네요 ^^ 빨랑 가고 싶어여~ㅋㅋㅋ
~잘 보고 갑니다 ^^ -
우왕...우붓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보믄 혹시라도 금홍이님을 뵙지않을까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ㅋㅋ 저한테는 그런 행운이 따르질 않았는데 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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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꾸닝... 언젠가 의료봉사하시는 외국분이 살고 계시다는 마을로 어렴풋하게 제 기억에 남아 있고, 이제는 금홍이님의 동네로 더 유명해진 그 마을을 저도 다녀왔더랬습니다. 저 운동장을 지나치면서 잘란 몽키 포레스트의 운동장보다 좀 작긴 하지만 깔끔한 느낌을 받았구요...알람지와 라 보이는 글씨 앞에서 기념사진 한 번 찍고 마을도 주욱 둘러보았습니다. 조각마을 답게 집앞 대문 양쪽에 세워진 돌조각상도 확인했네요...ㅎㅎ 역시나 아담하지만 잘 정돈되고 참 살기 좋은 동네일거란 생각을 하면서 떠나왔는데 이렇게 사진으로 다시 보니 반갑군요. 한데 의문이 하나있어요. 각 집에 주차장이 있던가요? 분명 마을 분위기로 차를 소유하고 있는 집들이 많을 것 같은데 주차장이 안보여서요.^^
-
점점 살기 좋은 마을이 되어 가는지
외국인이 늘어나는 까닭에
차가 들어오는 입구에 바리케이드와 검색요원은 보였지만
주차장은 눈에 띄질 않더군요.
저도 며칠 후 가이드가 운행하는 차로
가족을 태우고 다시 방문했는데
그냥 집 앞 길옆에 바싹 붙여 주차 했더랬습니다. -
정원 아버지는 사실 작가셨죠.
글들이 장난 아니게 진```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
하와이에서 발리풍 조각품 수입하는 분이 주도해서 많은 사람들의 기부로
병원이 지어지고 미국에서 의사 2명과 간호사, 행정 등 자원봉사자가 7명 와있습니다.
쓰나미 이후에 아체 긴급구호갔다가 상설로 병원이 세워지고 지금은 족자에도
생겨서 총 3곳이랍니다.
'해가 진 후에 도로에 주차'는 마을 규칙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어두운 동네라 사고 위험이 높기 때문이죠. 낮에는 통행에 지장만 안주면
길가에 주차합니다.
이 규칙 때문에 차가 있는 집은 담 일부를 허물어서 주차장을 만들기도 합니다.
주차장 만들 공간이 없으면 마을 공터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귀가한답니다.
마을에서 정한 여러 규칙이 있는데 대부분 합리적입니다.
"도로에서 세차하면 안된다."
"건축자재(모래,나무 등)은 배달 후 하루를 넘기지 않고 치워야 한다."
하지만 "마을에서 공기총으로 새를 사냥하면 총 가격 만큼 벌금을 내야한다." 이건...
사용한 총 가격따라 벌금이 달라지는 건 왜 인지 잘 모르겠네요. -
혹시 담에라도 혼자와서 너무 심심하시면 쪽지 주세요.
마을 구경이라도 안내할께요.
길에서 한국사람, 일본사람 구별하는게 힘들어서
한국어 가이드 북 펴놓고 지도 보고 있는 분 아니면 먼저 말걸기가 어렵더라구요.
몇일 전 왕궁앞에서 '인사이드 발리' 펴서 지도 보고 있던 커플
뒤에서 차들이 빵빵 거리는 바람에 못 도와드리고 그냥 지나왔어요. -
아무래도 해 떠있는 시간에 만나서
이야기가 '진한' 단계까지는 못 간게 아쉽네요.
담에 우붓에 숙박하시면
알콜 조금씩 섞어가며 길게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
작가 아니걸랑요. ㅎㅎㅎ
(이 말투 잘 쓰시던데 한 번 흉내 내봤습니다.)
참 그저께는 게으름 부리다 못하고,
어제는 새벽같이 투표하고 장인어른 밭에 나가
매실 따느라 못하고,
오늘 매실주를 담을 항아리를 사러
읍내에 나갔다가
간신히 씨티로 부쳤습니다.(요 대목은 추상적으로 애매하게 쓸 수 밖에 없네요.)
너무 늦어서 미안하네요.
건강하세요. -
금홍이님도 술 드시나요?
와우!!!
진짜로 다음번에는
우붓에서 밤드리 노니겠네요. ㅎㅎㅎ -
자세한 설명 감사해요.^^
금홍이님 말씀 듣고보니 뭔가 미래가 밝아보이는 마을 같아서 괜히 더 관심이 가는 뉴꾸닝입니다... -
쾌청한 일요일아침에~~북한산행있는 남편을위해 부지런히 오징어부추전 부쳐
막걸리랑 싸 보내고나니 free 라 ~~ 젤 즐겁게 열어보는 이곳에 들어왔더니
아침내 바빴던 제게 보상이라도 해주시려는듯, 책 한권을 선물로 주셨군요
것도 시원한 사진까지 곁들인 논픽션을 말이어요 참말로 잼나고, 감질나지않는
정원이아빠의 글~~엘톤 죤까지 가세하니 행복하기 이를 데 없네요
--정원이 싸인은 필기체로 garden 이라 쓰고 나무한그루 그려넣음 어떨지요ㅎ -
아니... 그 좋은 산엘 왜 같이 안 가셨대요?
어쨋거나 프리한 일요일에
제 글이 좀 더 up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다행이네요.
헌데
정원이를 garden으로 유추하신다면
혹시 잠수네 멤버세요 ? -
무슨말씀인지?
늘 그 이름이 예쁘다고 생각했었어요
한자뜻은 다를 수 있겠지만, 손주를 보면 그렇게지을까
울애들한테 얘기했었구요
정원가꾸듯이 삶도 소중하게 가꿔가야 된다는뜻도 되니까요
후후~ 제 블로그에 어설프나마 생전처음 사진도 올려봤답니다
그래도 우붓보니 새삼 . 살짝 그리워짐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