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아빠
Lv.17
2010.06.06 00:49
추천:3 댓글:3 조회:4,586
- 다들 사진찍히기를 싫어하는(?)가족인지라 이번에도 함께 찍은 사진은 별로 없더군요. 띠르따 강가의 수로에서
정원이의 학교 제출용 체험학습보고서 인증샷 하나를 간신히 건졌습니다. -
지난 밤, 사흘 만의 가족상봉(?)을 했습니다.
KAL은 늘 자정이 훨씬 넘어 도착하는 스케쥴이라 호텔 스텝을 대동하고 마중을 나가려는데, 황송하게도 사장님이
직접 픽업을 자청하십니다.
매번 직원들만 내보낼 수는 없다며 오늘은 시간이 나니 같이 가자는 건데 그 배려가 마치 용장 밑에 약졸 없는 것처럼
나름 쨘하게 느껴집니다.(시간이 나서가 아니라 직원들과 저를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는 느낌이었거든요.)
기다린지 얼마 안되어 두 사람은 시종 웃는 얼굴로 입국장 밖으로 나오는데 마누라는 저으기 상기된 표정입니다.
서울에서 평소 다니던 길도 방향을 자주 잃어버리는 초고수급(?) 길치인지라 충분히 그럴만도 하지요.
" 나 이제 발리는 혼자서도 올 수 있을 것 같아.!!! "
저도 맞장구 쳐줬습니다. "그럼. 당신이 갈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곳이 여기지. 여섯 번이나 연습삼아 왔는데 ..." 라구요.
이윽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풀면서 마누라는 제 부자연스런 팔동작을 드디어 알아챘습니다.
늘 지니고 다니는 수지침 도구들을 주욱 늘어놓고 엉거주춤 모드로 있는 제 손의 경혈을 짚고 익숙한 동작으로
뜸을 떠주는데, 한 30분쯤 지나자 거짓말처럼 오른팔이 작동을 시작하네요.
평소 마누라의 실력을 폄하하고 낮추어 본 터라 고마움과 무안함이 교차하는데 마누라 왈,
"거 봐. 이젠 살 만 하지 ? 나 아니면 누가 당신 거둬주겠어 ? " 라며 의기양양하게 물어 옵니다.
저는 연신 "맞아. 맞아."라는 대답 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보면 저도 어느새 마누라 앞에만 서면 점점 작아지는 착실한(?) 중년의 사내가 되어가는 모양입니다. ㅎㅎㅎ
- 아침식사를 하자마자 물에서 노는 아들 녀석... 머무는 기간 내내 저 공간은 아들 놈의 개인풀장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러면 호텔스텝 중 누군가가 조용히 다가와서 저렇게 선베드에 예쁜 타월을 놓고 가더군요. -
- 그럴 때면 저희 부부는 양지바른 저 자리에 앉아 멍 때리는(?) 시간을 즐겼구요. -
새벽이 다 되서야 잠이 들었지만 처음으로 푹 잔 느낌입니다.
간 밤에 도착한 가족들에 대한 배려로 오늘은 특별한 일정을 잡지않고 그냥 늘어지다가 점심 때쯤 꾸따로 나섰습니다.
마누라가 빠뜨리고 온 USB케이블도 살 겸, 아이쇼핑도 할 겸 말이지요.
조만간 다시 뵐 금홍이님에게 제 노트북의 영화 몇 편을 다운로딩 해 주려해도 그렇고, 고물 디카의 빈약한 메모리 카드도
용량의 한계상황이 되어 사진을 못 찍고 있으니 서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집에서는 이 방 저 방 굴러다니던 케이블을 센트로에서는 좀처럼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 디스커버리 몰 3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칼레이터를 타면 정면으로 마주치는 "까페 솔라리아" 입니다.
- 이 집의 미덕은 통유리 가득 담은 꾸따비치의 바다전망입니다. 물론 여유로움도 2층 셀시우스보다 낫고, 가격도
착한 편이지요. 다만 쥬스종류는 갈아 내오는 것이 아니라 좀 밍숭밍숭합니다.(음료는 다른 걸로 주문하시길...)
점심 식사를 먼저 하고 가족들은 모두 흩어져 저마다의 관심사대로 움직입니다.
제가 USB케이블을 찾는 동안, 마누라는 옷이며 신발 파는 곳을 기웃거리고, 정원이는 저대로
페르플리스 책방을 훑어 보고있습니다.
마땅한 물건을 찾지 못한 저희 부부와는 달리 이 녀석은 제게로 와 우리 나라에서 아직 나오지 않은 신간이 있다며
책 세권을 사달라는군요.
이 곳의 영어서적이 서울보다 비싼 것은 알고 있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책 사달라는 데 안 사줄 부모는 없으니
녀석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 읽는 것은 제법인 편인데 도통 입을 떼지 않는 녀석을 마누라는 "네가 가서 직접 말해." 라며 등을 떠밉니다. -
결국 저는 찾는 물건이 없어 가족을 데리고 옮겨간 곳이 바로 문제의 그 "롯데마트"였습니다.
그 곳 이야기는 지난 번 자유게시판에 충분히 써 놓았으니 생략하기로 하지요.
어쨋거나 그 곳에서도 찾지 못한 케이블을 사러 마지막이라며 들른 곳이 "까르푸"인데 다행히도 그 곳엔
무척 많은 종류를 구비하고 있었습니다.(제가 산 건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멀티모델인데 요긴하겠더군요.
가격도 싼 편이었구요.)
온 김에 과일이며 필요한 몇 가지 물건들을 사서 숙소로 돌아오니 긴 시간은 아니지만 제법 돌아다녔다고
배가 출출해져 옵니다.(배꼽시계는 언제나 정확합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된 것이지요.)
- 주방장 "에카"가 멀리 보이네요. 옛날 우리네 어르신들이 며느리로 삼고 싶어할 스타일의 맘씨 고운 발리 아가씨입니다. -
저녁식사는 다시 밖으로 나가기도 귀찮고해서 발리다이어리의 주방을 접수(?)하기로 했습니다.
가져 간 칼국수와 햇반을 곁들여 먹으려 했는데 흔쾌히 부억을 내준 것도 모자라서 김치도 한 사발 준비해주네요.
주방을 담당하는 에카에게 미안해서 설겆이는 마누라가 직접 하겠노라고 나섰는데 오히려 더 미안해 하는 건
에카입니다.
난처한 표정으로 옆에 서서 몸둘 바 몰라하는 모습에서 그네들의 고운 마음씨를 엿봅니다.
방으로 돌아와 포만감으로 늘어지는 사이, 또다시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진한 어둠 속의 비 오는 소리는 낮동안 바깥 탁자의 그늘을 만들던 지붕위로도 리듬감있게 떨어지는데
어디선가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비를 피해 우리 방안으로 쏜살같이 들어옵니다.
정원이 어머님 손이 정말 약손이신가봐요 ~~
아드님도 의젓하구요.
발리까지 가서 책을 고르다니 ..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