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아빠
Lv.17
2010.06.0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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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년전 쯤의 일이었을 겁니다.
그 때도 세 식구가 발리로 왔더랬는데 아마도 페키지였겠지요.
예나 지금이나 판에 박힌 듯한 코스를 돌던 우리 일행이 일정중의 어느 날 마지막 들른 곳이 덴파사의
르논 박물관이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리라 생각하고 차에서 내렸는데 생각과는 달리 입구 계단과 광장 앞에서 사진만
찍고 급하게 다시 올라타야 했습니다. 잔뜩 박물관 구경을 기대했던 정원이의 실망은 매우 컸는데,
그 이후에도 한번 더 같은 곳을 거의 비슷한 시각에(오후 5시쯤)와서 "이미 폐문이 되었으니 사진만 찍고 갑니다" 라는
예전과 똑같은 말을 듣고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페키지의 일정과 이동하는 동선상 여긴 들어가서 보질 않고 그냥 인증용 사진만 박는 장소라는 걸요.
물론 발리를 찾는 우리 여행자들의 대부분이 박물관을 과히 좋아하지 않는 성향도 한몫 거들었을테지만 말입니다.
그 처음에 저는 울상을 짓는 아들 녀석에게 "다음에 함께 오면 꼭 르논박물관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오늘 드디어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함께 나섰습니다.
- 낯익은 입구에서 먼저 인증샷을 한 장 찍습니다. 올 때마다 뒤로 보이는 저 문이 늘 철문으로 닫혀 있엇는데 닫힌 문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도 집에 꽤나 많더군요. 그때의 어린 꼬마가 이젠 제법 많이 컸습니다.
- 들어서는 현관 로비 전면에 박물관 직원이 "쨔낭사리"를 정성스레 올리고 있습니다.
- 일종의 독립기념관인지라 이렇게 현대적으로 그려진 그림도 있고,
- 이런 독특한 발리풍의 그림도 있는가 하면,
- 덴파사 공항에 자기 이름이 헌정되고 바이패스에 동상으로 서있는 독립의 영웅 "응 우라라이"의 초상사진도 보입니다.
1층 전시실은 주로 사진들로 구성되었는데 부지의 규모나 전시물은 우리와는 비교할 바가 못되지만 그래도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은 것은 공통의 사실이기에 학살,전쟁하는 모습들이 우리 근현대사의 사진들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찬찬히 돌아보는 와중에 한 무리의 단체 관람객이 들어서는데, 공교롭게도 일본인들이더군요.
대동아공영을 외치며 이곳까지 쳐들어 온 그들의 후손이 이 전시실의 지울 수없는 기록들을 보면서
과연 침략의 아픔을 준 걸 후회할런지 아니면 히로히또의 소화시대를 그리워 할런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2층 전시실로 올라갑니다.
여기엔 역사의 자료들이 많지 않은 탓에 앙증맞은 미니어쳐로 만들어진 시대별 구성인데 오히려 정원이같은 아이들의
눈높이에는 제 격일 듯 싶어 보입니다.
- 인근 섬에서 구석기 이전의 쟈바원인이 발견되었으니 이들의 뿌리도 오래 되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 원주민들의 생활상인데 바로 앞 광주리에 담은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화장전의 가매장을 위해 석관에 시신을
임시로 넣어 두는 것이라고 와얀이 설명을 해주더군요.
- 고왕국 시대의 모습인데 이러한 전통은 아직도 반쟈르로 훌륭하게 계승되고 있습니다.
- 현재의 따바논지역에 따나롯 해상사원을 지은 힌두의 고승 니라르타의 모습도 보입니다.
- 16세기 무렵부터 점점 지금의 사원양식이 갖춰지고 있습니다.
- 드디어 네덜란드의 침략이 시작되었습니다. 동인도 회사를 앞세워 쳐들어온 그들은 무려 350년 가량을 지배하게 되지요.
- 독립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은 번번히 실패하고, 오히려 2차대전중에는 일본의 침략까지 받게 되었구요.
- 독립후에도 네덜란드의 식민지 재탈환을 위한 위협을 물리치고서야 인도네시아는 마침내 단일공화국으로 태어납니다.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하나 하나 들여다보며 이들이 이 곳을 뿌뿌딴이라 부르는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피흘리는 투쟁 또는 한 방울의 피도 남김없이를 뜻하는 그 말은 자랑스런 그들의 승리와 동의어일테니까요.
3년만에 지킨 약속은 아들 녀석에게도 제게도 나름 의미가 있었습니다.
- 1층과 2층 계단 중간에 저렇게 나선형으로 된 계단을 올라가면 시원한 조망의 최상층이 나옵니다.
- 르논 박물관의 최상층에서 바라본 덴파사의 전경입니다. 때마침 몰려든 비를 머금은 먹구름이 결국 이곳에선 보기 드문
폭우를 하루종일 퍼붓더군요.
르논 박물관을 나와서 막바로 우붓으로 향하려던 생각은 또다시 와얀의 훈수(?)로 인해 바뀌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발리 민속박물관이 있는데 가보셨어요 ? "
물론 가보기는 커녕 알 턱도 없었지요.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지라 흔쾌히 따라갑니다.
- 덴파사 발리박물관 앞에는 때마침 올해가 박물관 방문의 해라는 플랭카드가 내걸려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99칸 고택처럼 이 곳은 각각의 전시공간이 저렇게 들어오는 통로를 따라 구분되어 있어 산책의 묘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 유머러스한 이런 돌조각상도 마당의 눈에 띄지 않는 한 구석을 지키고 있고,
- 모성을 듬뿍 드러낸 이런 발리맘들도 볼 수 있습니다.
- 문화사적인 자료를 비치한 곳이지만 지방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역시 양적인 수준은 아쉬움이 많이 듭니다.
-이런 그림들과,
-아까 전 르논의 모형으로 보았던 가매장용 석관도 보이더군요.
-족쟈카르타에 있는 보로브드르 사원의 정교한 미니어쳐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그중에서 인상적인 건 위의 사진 속 물건이었습니다. 마치 옛 그림 같아서 큰 감흥없이 지나치려는데 와얀 왈
" 이게 옛 발리의 글자입니다. " 라고 말해주더군요. 이 곳 사람들의 고어는 바로 상형문자였습니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더러 가르치는 곳이 있다지만 워낙 배우기가 어렵고 또 전승이 잘 안되어 조만간 사어가 될
운명의 슬픈 발리글자인 것이지요.
아침일찍 서둘러 나왔는데도 박물관 두 곳을 둘러보니 정오가 가까와져 옵니다.
빨리 우붓으로 가 금홍이님댁도 들르고 브두굴의 식물원까지 가려면 시간이 촉박한데 속절없는 비는
추적추적 모드에서 점점 더 굵어지고 있습니다.
발리하면 휴양지란 생각이 먼저인데 박물관서 배우는 발리역사도
좋네요 ^^
덕분에 정원이도 현장학습 확실히 했겠구요 ..
아이들과 오시는 분들께 추천할만한 곳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