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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

 먼저 거짓말같은 이야기 하나부터 들려드리지요.
 대단원이라 말하긴 뭐하지만 마지막 글이라 언듯 생각난 제목이 위에 쓴 그대로 Time to say goodbye 였습니다.
 해서 제가 알고 있는 자료로 이 곡을 찾아보니까 그동안 몰랐던 사연이 들어 있더군요.
 이 곡을 얼핏 들으면 이별하는 연인들의 이미지일것만 같았는데 사실은  예전에 한 시대를 풍미한 독일의 라이트헤비급
 복싱챔피언 헨리 마스케가 자신의 마지막 은퇴경기를 위해 시합의 오프닝 곡으로  새라 브라이트만에게 의뢰한
 노래가 바로 이 곡이랍니다.
 새라는 함께 부를 남자 테너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가 어느 날 이태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시각장애인인
 안드레아 보첼리의 노래를 듣고서 그를 찾아가 함께 부르자고 제안했다는군요.
 더욱 감동적인 것은 헨리 마스케는 고별전에서 판정패로 지고 쓸쓸히 링을 내려와야만 했는데 그때, 관중들이
 모두 기립해서 그를 위해 이 노래를 불렀고 모두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는 것이지요.
 정말로 거짓말같은 이야기지만  한편으론 간절히 믿고싶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balisurf.net
- 꾸따성당 옆 벽에는 성당임을 알리는 큼직한 사인보드가 새겨져 있습니다.balisurf.net
- 9시에 시작하는 미사라 일찌감치 왔는데 의외로 미사시간이 무척 길어져 저는 밖에서 한참을 기다려야했습니다.

다른 때에 비해서는 제법 길었던 이번 여행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라 덤덤히 받아들이지만  그래도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 건 여전합니다.
새벽에 뜨는 비행기라  일찌감치 late-check out을 신청해놓고 여느 때처럼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그저 주일이니 마누라는 미사나 드리겠다고 하길래 아침일찍 어제 미사시각을 알아낸  꾸따성당엘 갔습니다.
둘을 들여보내 놓고 저는 미사가 끝날 때까지 다시 거리를 걸어봅니다.


- 셋째날인가 이 앞까지 걷다가 되돌아선 기억이 나는 부띠끄호텔 앞 삼거리 입니다.


- 사실 오늘 점심은 발리서프에 소문이 났던 바로 이 집에서 테이크 아웃을 해가려고 했는데 폐문이네요.
  인연이 아닌가 봅니다. 삼거리 맞은 편에 있는 와룽 세가르의 모습입니다.

- 전 세계의 도시들과 발리와의 거리를 마치 이름표처럼 다닥다닥 붙여놓았는데 왜 서울은 보이질 않을까요 ?


- 로컬식당 앞에서  어느 소녀가 음식을 사러와선 진열대를 찍는 저를 참 별 놈 다 본다는 포즈로 빤히 쳐다봅니다.


-인근 k 마트의 종업원이 쨔낭을 올릴 시간이 되었는지 밖으로 나와 정성스레 향을 사르고 있습니다.
- 5월 31일자 환율 시세표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야박하지만 원화환율도 고시되었는데 이제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대략 1시간쯤 거리를 돌아보다가 성당으로 돌아왔습니다.
멀리서도 꽤나 많은 신자가 찾아오는지 성당 안 주차장은 정말 차들로 빼곡합니다.
들어가지 못했거나 아예 다음 미사를 기다리는 신자들은 성전 밖에서 나즈막히 의식을 따라하는데 가족을 동반한 
신자들의 모습은 여기나 거기나 매한가지로 보입니다.
아무튼 이슬람의 나라에 힌두가 공존하고, 힌두의 섬에 카톨릭이 함께 한다는 것은  참 보기좋은 모습입니다. 






- 예수께서 하늘나라가 이들의 것이라고 말했던 어린이들... 성당 안에서 만난 저마다의  아름다운 얼굴들입니다.

미사가 끝난 후 그냥 돌어가기가 뭣해 발리갤러리아 뒤 마타하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야외 광장도 있고 2층엔 다양한 물건을 구비한 하이퍼 마트도 있으니 마누라는 빠뜨린 물건 몇 가지를  더 살
심산인데 이럴 때마다 남겨진 우리 부자는 참 심심합니다.
제아무리 많이 왔어도 길치인지라  행여 길이 어긋날까봐  자리도 뜨지 못한 채  기다려줘야 하기 때문인데 그래도
어느 자리가 됐든 책 한 권만 들면 용케도 버텨주는 아들 녀석이 기특합니다.


- 일용할 먹거리와 책만 몇 권 건네주면 이렇게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몇 시간이라도 눌러 앉아 있는 녀석입니다.

이제 풀었던 짐을 다시 꾸립니다.
어쩌면 여행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짐을 풀고 꾸리는 일련의 연속된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단지 저마다 지닌 가방의 감당할 무게가 다르고 내용물이 다른 정도일뿐 이지요.

프랑스에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이 고리타분한 남자는 30여년의 직장생활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 어느덧 자의반 타의반으로 물러나게 되었지요.
하지만 그는 은퇴를 한 62살의 나이에 터키의 이스탄불에서부터 중국의 시안까지 무모한 도보여행을 꿈꾸고
결국 저지르고 맙니다. 4년에 걸친 1만 2천km의 여정...
그의 느린 걸음이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그가 걸었던 길이 조금은(?) 먼 길이었다는 이유와,
그리고 그가 느리게 걷는 가운데 보고, 듣고, 느꼈던 세세한 것들을 모두 기록으로 모아두었다는 사실때문이지요.
사진 한 장 없이 모두 세 권으로 이루어진 "나는 걷는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에 관한 이야기랍니다.

지금은 일흔을 훨씬 넘은 할아버지 나이인데 아직도 여기저기를 걷고 있는 중이지요.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거나 어쩌면 발리의 우붓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글을 접하면 절로 참 많은 생각이 들게 되는데 거의 대부분이 인생이란 여정을 어떻게 가느냐 라는 것이지요.
자기주장을 큰 목소리로 떠밀듯 강요하는게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을 잔잔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드는 그에게서
저는 아직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작정하고 제 짧은 여정을 소개하는 글에 그가 자신에게 성찰과 관심을 북돋는 말로 들렸다는
네레 데, 네레 예를 감히 붙여본 것입니다.
네레 데, 네레 예는 그가 묵묵히 길을 걷던 터어키의 아나톨리아 지방에서 여정이 힘들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가는 곳마다 만난  "착한 터어키 인" 들이 그에게 손내밀며 묻던 관심과 사랑의 말이었습니다.

네레 데, 네레 예 .....
그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




- 또다시 많이 그리울 겁니다... 하지만 그리움은 힘이 됩니다.





 








  • lhs253 2010.06.10 13:51 추천
    지금까지 잘 봤습니다 노래도 좋았구요..
  • 정원이아빠 2010.06.10 14:36 추천
    고맙습니다.
  • woodaisy 2010.06.10 17:56 추천
    남미 어느 곳에선가 그 곳을 기점으로 세계 각 도시의 이름들이 이 곳 처럼 주렁주렁 걸려 있었는데 거기도 서울 은 보이지 않았어요.
    주인공인 여행자가 임시로 써서 매달아 놓고 담당자에게 요구하는 걸 본 적이 있네요.
    아직 발리에는 저 이정표의 도시들보다 우리나라 관광객의 수가 많이 모자른가 봅니다.
    그동안 후기 쓰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 정원이아빠 2010.06.10 18:53 추천
    다음엔 서울이 써진 이정표 하나를 들고 가서
    저도 달아달라고 떼를 써 봐야겠네요. ㅎㅎㅎ

    예전에 정원이를 낳고
    집 부근 공원에 키작은 느티나무 하나를 심고서
    "정원이 나무" 라고 명찰 하나를 달아준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그 공원 안에서 제법 넉넉한 그늘을 주는 나무로 커줘서
    갈 때마다 닦아주는 명찰이 내심 흐뭇한데
    다음 번 발리행에는 비슷한 거 하나 만들어
    달아놓고 와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Greeny 2010.06.10 21:18 추천
    네레데 네레예가 그런 뜻이었군요, 모르고 읽다가 마지막 편에서야 알게 됩니다. 소중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 정원이아빠 2010.06.10 23:03 추천
    감사합니다.
  • 청아 2010.06.18 01:56 추천
    정원이아빠님은 기행문전문 작가 같습니다...
    청년시절 문학도였을 것 같습니다...^^잘 봤습니다...
  • 정원이아빠 2010.06.18 08:49 추천
    잘 보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청년시절 문학도는 아니고
    다 늙어서 시간이 좀 나다보니
    생각이 글에 실리네요.
  • 풀레 2010.06.24 00:09 추천
    정말 잘 봤습니다..
    요즘 더운 날씨는 발리를 생각하게 한답니다..
    다시 가게 될 수 있을지..
  • achiwool 2010.07.02 21:59 추천
    음악에 아는 것이 없던 저는 이 노래가 추성훈의 시합전에 나오길래 무슨 인연인가 했더니 그런 사연이 있군요.

    좀 더 찾아보니 마스케가 이 곡을 불러 달라고 한 것은 아니네요.

    자기 은퇴 시합 오프닝때 노래를 불러 달라고 새라 브라이트만에게 요청했었고, 새라가 레스토랑에서 보첼리의 노래를 듣고 이 노래를 부르기로 마음을 정하고 보첼리를 찾아가 영어로 번역해서 같이 불렀다고 하네요.

    원곡은 보첼리의 앨범에 있다고 합니다. 덕분에 좋은 노래의 사연을 알고 갑니다.
  • 정원이아빠 2010.07.03 18:37 추천
    저 역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역시 오픈된 공간은
    이런 게 좋은 것 같아요.
  • shyyounga 2010.10.30 01:50 추천
    2007년 신행후 오랜만에 들어온 발리서프에서 좋은 글을 읽게 되니 행운이네요. 뜻밖의 발리 여행을 가게되어 설렘 반 우려 반인데 정원이아빠님의 후기에 감명 받아 저도 돌아오면 담백한 후기를 남기리라 다짐해보네요. 여기가 호주라 사진은 많이 못올리겠지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