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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
2011.01.30 22:15 추천:3 댓글:8 조회:4,012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녁에 눈이 떠졌습니다.
 작년 6월 발리에 왔을 때 어깨 통증으로 혼쭐이 난 이후  한동안 게으름을 부리긴 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한의원엘
 정기적으로 다니며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데도 이 놈의 오십견이라는 게 여간 부대끼는 게 아닙니다.
 잠이 들면 더 아프고 결국  날마다 한 두번쯤은 으레 통증으로 잠을 깨기가 일쑤니까요.
 연식이 오래된데다  항상 책상물림으로 지내니 별 수 없는 노릇이지만  때론 마음을 저버리는 세월이 야속할 때도 있습니다.
 뒷채에 사는 까데가 깰까봐 발소리를 죽여 부엌엘 들어가 커피 한 잔을 타서는 바깥 소파에 나와 앉아봅니다.
 어스름한 새벽 하늘은 우기라서인지 별 하나 보이질 않지만  소슬한 바람은 이내 정신을 맑게합니다.
 일출과 함께하는 찬란한 여명은 못되더라도  점차 어둠이 가시고 희뿌연 빛의 그림자가  주위의 사물들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새로운 하루의 시작은 이 곳에서도 역시 새벽에 눈 떠 있는 부지런한 이들의 차지인가 봅니다.

 문을 살그머니 열고 그 아침을 보기위해 밖으로 나섰습니다.

balisurf.net
 - 집아래 길로 내려오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작은 가게 하나가  아침 찬거리를 사러 나온 손님을 맞느라 제법 분주하다.

balisurf.net
 - 바로 옆에는 아침에만 문을 여는 작고 허름한 동네시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 서민들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장 안엘 들어서면 어디나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다 똑같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이른 통학과 출근을 위해 오토바이 떼들이 연신 지나가고 상인과 손님들이 흥정을 벌이는 낯익은 모습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거리 길의 한 방향을 목표로 잡고서  계속 좀더 내려가보기로 합니다.


 - 좀더 걸으면 동네 스파인 레이디스 스파가 나온다. 종류도 무려 3시간짜리까지 다양한데 가격은 아주 저렴했다.
   며칠 뒤 함께 간 마누라는  현수막 광고처럼 테라피스트 양성을 겸하는데다 시설도 동네사람 상대라서 별로라고 했지만
난 싼 맛에 한 번 더 갔다.(처음 간 날 어두운 칸막이를 나오다 부딪혀 피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


 - 스파 바로옆 건물을 유심히보면 구몬이라는 현수막이 보인다. 마누라와  "이게 우리나라의 그 구몬수학은 아니겠지 ?"라는
 대화를 나눴는데 나중에 와얀 스위리아에게서 들은 얘기로는 한국에서 진출한 바로 그 구몬수학 강습소가 맞단다. 
 지금 이 곳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대대적인 광고를 통한 확장에 나서는 중인데 1학년짜리 와얀의 딸도 현지물가로는
 결코 싸지않은 1달 35만루피를 내고 다니는 중이란다. 인도네시아의 교육열도 점점 우리를 닮아가는 중일까 ?


 - 좀더 걸으면 나오는 인도네시아 토종브랜드편의점  "인도마레". 더 내려가면 코코마트도 있어 모기향이나 1회용밴드 등
 급한 물건을 사러 나오기엔 용이했다.


- 발걸음을 돌려 숙소로 되돌아가는 길에 시장 한 모퉁이를 차지한 어느 아주머니의 노점이 눈길을 끈다.
 대체 뭘 파는 것일까 ? 유심히 지켜보았다.


 - 아하  발리의 붕어빵이었구나.!!! (그런데 모양이 좀 ...)

 길 하나의 지형지물을 익힌 성공적인 아침 마실을 끝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주인장께서  아침 상은 일찌감치 준비했는데 마실나간 저를 기다렸다고 하시네요.
 식탁에는 먹거리에 꽤나 까다로운 마누라도 깜짝 놀랄만큼 정갈한 아침상이 이미 차려져 있었습니다.


 - 새댁처럼 보이는 젊은 안주인이 날마다 차려주는 아침상은 든든한 우리 음식이었다.(간혹 푸짐한 오므라이스도 나온다.)
 그 덕분에 우리 가족의 하루는 늘 상쾌했지만 출산을 앞두고 몸이 무거운 터라 송구스럽기만 했던 아침상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론 오늘 오전이 제법 바쁠 것 같아 서둘러 아침을 먹었습니다.
 이미 전화는 드렸지만 모처럼 온 김에 사양사양의 분도형님께도 찾아 뵈어야하고, 신권 달러를 바꾸러 발리 다이어리에도
 들러야하고 미덥진 않지만 카드회수를 위해 써클 K에도 가야합니다.

 오랫만에 찾은 사양사양도 예전 모습 그대로인데 자세히 보니  내부구조는 살짝 바뀌었습니다.
 제가 묵을 때만 해도 자리를 펴고 앉아서 밥을 먹던 사양사양의 아고라엔 언제부턴가 식탁이 놓여있고  귀염둥이 아구스네
 가족이 머물던 방은 사무실로 개조한 모양인데 제가 늦장을 부린 탓인지 부지런한 분도형님은 일찌감치 바깥 일을 보러
 나가셨다네요.  (예고없이 찾아간 제 불찰입니다.)


 - 담쟁이 덩굴이 무성한 사양사양의 진입로도 여전했다.

 분주했던 오전 일을 끝냈습니다.
 비록 분도형님은 못 뵈었지만  발리 다이어리의 사장님으로부터 고맙게도 신권지폐 700불을 바꿀 수 있었고, 예상대로
 써클 K에서는 어제와 다른 직원 녀석들이 역시 어제와 똑같은 허튼소리를 해댔지만 까짓 이미 신고된 카드라 그다지
 걱정할 일은 없을테니까요
 그사이에 마누라와 정원이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둘이서 오전을 보냈는데 미안한 마음에 모처럼의 꾸타 나들이를 나갑니다.
 처형으로부터 부탁받은 화장품도 살 겸 해서 발리DFS엘 나왔는데 그 종류만 없다길래 뒤편 마타하리도 어슬렁거려봅니다.




 - 마누라가 아이쇼핑을 하는 동안  웬지 처량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아들녀석. 사내자식이다보니 쇼핑은 안중에도 없다.
 먹거리와 책이라면 또 모를까 ?


 - 옆 코너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엄마가 두 아이를 데리고 쇼핑을 나왔는데 아들녀석은 들어서자마자 보채고
 누나는 편안한 포즈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들의 보채는 정도가 점점 커지자 급기야 엄마는 얼르고 달래는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황급히 퇴장하게 만든 아들녀석의 가벼운 한판승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경과하자 그 녀석처럼 정원이도 슬슬 힘들어지는가 봅니다.
 다른 건 견뎌도 시장기는 못견디는 녀석은 낯익은 푸드코트에서 밥 먹을만한 곳을 두리번거리고 이내 한 곳을 찾았습니다.
 작년까지만해도 못 봤던 일식체인점 "료시"가 눈에 띄인 것이지요.


 - 브래드 토크의 반대방향인 푸드코트의 끝부분 코너에 자리잡은 "료시"는  저렴하고 대중적인 일식전문식당이다.


 - 튀김을 하거나 깔끔하게 스시나 롤을 말아내는 모습을  창문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 인테리어에도 일본내음이 물씬한 료시의 내부. 통로를 기준으로 좌측은 의자형, 우측은 다다미형의 좌석으로 되어있다.




 - 가벼운 식사를 위해 스시가 아닌 도시락(벤또)을 종류별로 시켜보았다. 맛도 양도 가격까지도 모두 만족할 만하다.

 한나절을 잘 놀다 들어온 숙소는 조용하기만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희 밖엔 머무는 손님이 아무도 없으니 (일주일동안 지속되네요.) 고즈넉한 우리들만의 세상인 것이지요.
 밤으로는 가까운 오토바이 경주장의 소음과 확성기를  통한 로컬 나이트클럽의 음악소리가 다소 귀에 거슬렸는데  지금은
 바깥의 소리조차 모두 차단된 듯 합니다.
 시간을 구분하지 못한 채, 시도 때도 없이 "꼬끼오'를 외치는 개념없는 닭들과  낮게 비행하는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만이
 우리와 함께하는 가운데  발리에서의 또 하루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 이 놈들이 문제의 그 개념없는 닭들이다. 그냥 울어대는 "꼬끼오" 가 아니라  우렁차고 박력있게 한 목소리를 내는 
 녀석들인데  알고보니 다들 산란용이 아닌 투계용 닭들이란다.


 - 묵직한 닭들을 정원이가 들어올려 보더니 노트북보다 더 무겁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 먼저 출발한 엄마조차 따라잡을 수 없는 정원이 녀석의 수영 폼이 제법 그럴 듯 하다.
  • Acoustics 2011.01.31 01:14 추천
    사양사양에서 첵아웃 하고 지금 사누르홈에 머물고 있습니다...

    다녀가셨단 소식은 금홍이님께 들었습니다... 고생고생해서 오니 완전 신세계네요 ㅎ
  • 정원이아빠 2011.01.31 09:00 추천
    저도 쿠알라룸푸르에서 고생깨나 해가면서
    발리에 도착하니 지상낙원이 바로 여기구나 싶었는데
    저보다 몇 배 더 고생을 하시더니
    드디어 도착하셨네요.
    홍콩에서 발이 묶여 날린 알토란같은 시간들을
    보상받으려면 열심히 다니고
    부지런히 보시고 맘껏 누리세요. 화이팅 !!!
    여행기간 내내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 청아 2011.01.31 10:16 추천
    정말 평화스러운 모습입니다.발리행 티켓을 구하지 못해 앙코르를 가기 위해 이동중입니다만 혹여 이번도 고행만 하고 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한달뒤면 저도 정원이 가족들이 느끼셨을 그 지상낙원의 평온과 안락함을 맛보겠지요?
  • 정원이아빠 2011.01.31 10:52 추천
    홍콩영화 "화양연화"를 보면
    양조위가 앙코르와트의 사원 안에서
    속깊은 비밀을 담아두던 장면이 있던데
    가시면 한 번쯤 따라해 보세요.

    앙코르도 좋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발리에 비해 결코 꿩 대신 닭인 곳은 아닙니다. (좀 불편하긴 할테지요.)

    잘 다녀오세요.
  • 파사랑 2011.01.31 14:21 추천
    저도 아침식탁을 보니 사누르홈에 머물고 싶네요.. 허허..
    구정연휴엔 이미 풀리북이겠죠?
  • 핑크 2011.02.01 22:46 추천
    아이랑 여행다니시는 모습이 참 인상 깊네요...
    여행만큼 좋은 교육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은 절대 아니구요...발리 딱 한번 가본 사람으로써 진짜...
    인생관 자체가 바꼈습니다(너무 거창할 진 모르지만요^^;;)내가 그동안 왜그렇게 살았나 후회 아닌 후회로 ㅜㅜ
    아이 낳고...사는게 바쁘다 보니...늘 꿈만 꾸죠...여기 와서 대리만족하고, 언젠가는
    꼭 자유롭게 떠나리라!!! 합니다^^
    아이가 좀 더 크면 꼭 같이 발리에 가볼려구요...
    여행후기 너무 재미있습나다.
  • 정원이아빠 2011.02.02 02:53 추천
    꿈이 간절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진답니다.
  • zeepmam 2011.02.07 01:19 추천
    모든 인연을 소중히 여기시는 맘이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
    언제쯤 저도 그런 경지에 오르게될런지 ..

    사람사느건 어디나 다 같다는 말에 동감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