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3주간 발리에서 저하고 아이둘이 지냈습니다.
발리의 하루라고 해서, 3주간 있었던 일을 하루라는 시간에 맞추어 적어보려고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초등학생 딸아이라고 가정했습니다.
재미있게 봐 주세요.^^
1.
오늘도 새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아빠 말에 따르면 새들은 6시만 되면 울기 시작한다고 한다. 밤새 비가 왔다고 하지만, 곤하게 자는 나는 오늘도 빗소리를 듣지 못했다. 발리는 지금 우기여서 매일밤 비가 내린다. 다행인 것은 낮에는 흐리기는 하지만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새벽 6시에 들려오는 새소리는 매일 듣는다. 내가 잠이 들고 나면 밖에선 다양한 소리가 들려오는 모양이다. 우리보다 늦게 잠이 드는 아빠는, 우리가 한참 잠에 빠져 들면, 우선 폭죽소리가 해변에서 들려온다고 한다. 한밤중엔 폭우가 쏟아지거나, 천둥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폭죽소리나, 폭우소리, 천둥소리는 꼭 들어보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며칠전 아빠가 지붕에서 들려오는 소리이야기를 했을 때는, 다시 한번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하고 바랬다.
그날은 어쩐 일인지 밤에 비가 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빠는 침대에 누워 한참 잠을 잘 자고 있었는데, 지붕에서 갑자기 쾅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겁이 많은 아빠는 지붕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 소리에 너무 놀란 아빠는 이불을 꼭 감싸고 다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고 했다. 그러다 지붕 위에서 ‘타타타’ 하면서 뭔가가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고, 또다시 쾅 소리와 함께 ‘타타타’ 소리가 났다고 했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아빠는 겁에 질려 밤잠을 설쳤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는 깔깔대고 웃었다. 그때 아빠는 정색을 하고, 아빠가 어려서 시골집 천장에 쥐들이 살아서 쥐들 소리는 아는데, 그 소리보다 엄청 커서, 어젯밤 소리는 쥐가 아니라 원숭이가 낸 것 같다고 했다. 원숭이가 몸집이 작지만, 무섭지 않냐고.
아빠가 원숭이를 무서워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지난번 몽키포레스트monkey forest에서 본 원숭이들은 동물원 우리에 갇혀 있는 놈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원숭이숲에 들어가기 전, 아빠는 경고문을 읽지 않는 실수를 저질렀다. 물병, 어깨에 매는 가방을 들고 가면, 원숭이 주의를 끌고, 빼앗길 수 있으니, 휴대를 자제해 달라는 경고문을 말이다. 아빠는 우리가 목마르다고 할까봐, 물통하나, 카메라가 들어있는 카메라가방을 가지고 갔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원숭이들이 사람들을 피하는 기색도 없이 앉아 있어 신기하다는 생각도 잠시, 한 놈이 내게 달려오더니, 내가 쥐고 있던 물통을 그 놈이 쥐었다. 내가 안간힘을 써서, 그 놈 손아귀에서 물통을 지키려 해 보았지만, 그놈에게 주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내가 힘을 풀었더니, 그놈은 물통을 낚아채서, 아주 자연스럽게, 물통 뚜껑을 따고, 물통에 있는 물 절반을 땅바닥에 쏟아 붓고, 물통에 있는 물을 조금 마시는가 싶더니, 다시 물을 다 쏟아 버리는 거다. 원숭이 주변에서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어이가 없어하면서도,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와 원숭이를 번갈아 보며, 나에겐 동정과 안타까움의 미소를, 원숭이에겐 비웃음의 미소를 날려 주었다. 그때 아빠는 원숭이를 약간 피하는 듯 했다. 숲 안쪽으로 더 들어가지 이번엔 새끼 원숭이가 아빠 가방에 관심을 보이는가 싶더니 가방줄에 매달리는 거다. 겁쟁이 아빠는 가방끈을 어깨에서 풀어 가방을 빙빙 돌렸다. 한참을 매달리며 버티던 그 놈이 나가떨어지자, 아빠가 한숨을 돌리는 것도 잠시, 또 그 놈이 달려들었다. 아빠는 우리를 향해 웃어 보이긴 했지만, 잔뜩 겁에 질려, 그놈을 피하기에 바빴다. 나는 재미있었지만, 아빠 표정을 보고, 마냥 재미있어 할 수 없어, 그냥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새끼 원숭이를 쫓아냈나 싶었는데, 그 원숭이의 어미인 듯한 큰 놈이 아빠에게 다가가자, 아빠는 더욱 겁에 질렸다. 그 놈도 아빠의 가방을 빼앗으려고 하고, 아빠는 어쩔 줄 몰라서 또 가방을 빙빙 돌리려고 할 때, 현지인 가이드가 아빠에게 뭐라고 하자, 아빠는 우리에게 가자고 했다. 아빠가 걷기 시작하자, 원숭이는 아빠 가방에 흥미를 잃고 아빠에게서 물러났다. 아빠에게 그 사람이 뭐라고 했냐고 하자, ‘keep going’이라고 했다고 했다. ‘계속 가라’는 뜻이다. 나중에 아빠가 경고문이 있는 곳에서 글들을 읽더니, 원숭이가 달려들면, 당황하지 말고, 계속 천천히 걸어가면, 흥미를 잃는다고 적혀 있다고 했다. 미리미리 읽었어야 했는데, 아빠답지 않는 실수를 하다니.
아빠가 원숭이를 무서워 한 것은 인도에서부터라고 했다. 엄마하고 인도로 여행을 떠났을 때, 인도 북부지역인 다람샬라 산속 길을 걷다, 원숭이 무리를 만났는데, 그때 원숭이가 엄마 아빠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했다. 아빠는 그 이후로 원숭이를 무서워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 원숭이숲에서 그런 일이 있었으니, 아빠가 원숭이를 더욱 무서워하게 된 거다. 불쌍한 아빠.
한밤중에 사람은 아니고, 쥐도 아닌, 원숭이가 지붕에서, 기왓장이 깨질 정도로 큰소리로 떨어지며, 뛰어다니는 소리를 들었으니, 아빠가 놀랐을 법도 했다. 그러나 난 그 소리가 꼭 듣고 싶어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빠는 그 소리를 그 날 이후로 듣지 못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