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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
2011.07.17 19:19 추천:3 댓글:9 조회:3,374
balisurf.net

  우리반 화단 가득 흐드러진 팔월 여름꽃
  꽃잎마다 싱싱히 돋아나는 아침 이슬인 양
  다투듯 금빛 물방울을 튀기며 너희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바다가 환히 보이는 텅 빈 교실
  앞 줄 옆 줄 나란히 맞추고 서 있는 빈 책상들을 보면
  이제 열 세살 여리고 착한 너희들 마음에
  나는 저렇듯 반듯한 형식주의의 칼금을 긋고 있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진다. 풀꽃을 보면 그냥 그대로 고운 풀꽃이 되고
  산맥을 보면 힘차게 달려가 푸른 산맥이 되는
  중학교 일학년 우리반 아이들에게
  자유와 사랑, 나누어진 조국과 슬픈 역사에 대해
  더운 가슴을 열어 따뜻이 껴안게 하지 못하고
  옳은 것은 항상 옳은 것이라 말하게 하지 못하는
  순응과 적응을 길들이고 있는 분필 묻은 내 손이 부끄럽구나
  분단이여, 나누어진 마흔 한 해의 우리나라여
  남남이듯 남과 북이 무심히 칼금을 긋고 살아가듯
  태연히 우리반 아이들 가슴에 칼금을 긋고 있는
  죄 많은 시대, 더욱 죄 많은 선생인 내가 두려워진다.                    정 일근의 "바다가 보이는 교실2"

 
 발리로 들어가는 탑승수속을 밟으려다 뜻하지 않은 낭패를 만났습니다.
 혼자 여행이라 마누라가 신경써서 챙겨 넣어준 먹거리들과 마누라의 눈을 피해 몰래 쑤셔넣은 댓병짜리 소주가 화근이었지요.
 사실 조짐은 인천을 떠나올 때 이미 보였습니다.
 발권 카운터의 직원이 기준량 15kg을 3.7kg이나 초과하자 잠시 고민하더니  "다음부터는 중량을 맞추세요." 라며 순순히
 보내줄 때 좀 더 신경을 쓸 걸...
 도착해 몇 시간을 그냥 아무 생각없이 책만 보다가 발리행 카운터에 다가서니 여간 까다롭기가 그지 없습니다.
 깐깐한 인상의 안경을 낀 젊은 녀석이 무조건 웨이트 오버챠지를 내라는 것이지요.
 젠장, 짐을 풀고 몇 가지를 제 손가방으로 옮겨 다시 라벨을 붙이려면 적지않이 시간이 걸리는 지라  "인천에서는 그냥
 통과했다. 이제와서 무슨 소리냐 ? 좀 봐달라" 며 통사정을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습니다. 
 결국 1kg당 40링깃씩, 120링깃의 오버챠지를 내고 말았습니다.(그나마 1kg미만의 중량은 절사해 주네요.)
 거의 발리행 편도 비행요금이 순식간에 날아간 것이지요.
 제 딴에는 단단히 준비를 한다고 해도 이런 일을 겪는 걸 보면 역시 사람은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는 모양입니다.
 해서 툴툴 털고 까짓 수업료를 낸 셈 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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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리까지 타고 갈 비행기가 급유중입니다. 좀 작아 보이지요? 처음 알았는데 에어 아시아 안에도 3개 회사가 있다네요.
 우리나라처럼 장거리노선에 배정되는 대형기종의 에어 아시아X와 그보다 작은 기종의 에어 아시아 인도네시아, 타이로
 나누어져 있답니다. 


- 출국수속을 마치고 들어선 청사의 화장실 안에 별도의 샤워공간이 있더군요. 당연히 호기심이 동해 문을 열어봤는데 
 유료인 마닐라 공항의 라운지 샤워룸보다 훨씬 깨끗하네요.  비누와 수건만 별도로 지참하고 간다면 짬을 내어
 때빼고 광내기에도 충분한 공간입니다.(여자 화장실 안에도 있을테지요 ?)


- 탑승 대기장 안쪽으로 들어오면 여러 종류의 딤섬을 파는 코너와(먹을만 합니다.) 슈퍼마켓도 있어 서민적인 분위기가
 물씬합니다. 물까지 유료인 기내식을 이용하지 않고 여기서 사들고 탑승하는 사람도 적지않네요.

 발리행 좌석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평소같으면 창쪽이거나 통로석을 달라고 얘기했을텐데 오버 웨이트로 다투다가 녀석에게 밉보인 탓인지 3인석의 중간에
"꼼짝 말아" 자세로 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좌우가 다들 한 덩치씩 하는 친구들이더군요.(역시 그 녀석의 고의성이 다분합니다.)
 통로쪽의 인도 친구 "산쟈이"는 발리로 식당 일을 하러 가는 유창한 영어의 소유자였고 그와 반대로 창쪽의 "모하메드"는
 영어로는 의사 소통이 전혀 안되는 이란 사람입니다.
 승무원이 입국신고서를 작성하라고 서류를 갖다주자  잠시 눈치를 보던 모하메드는 말없이  여권과 서류를 제게 디밉니다.
 어지간한 건 여권을 보며 써주겠는데 뭘 하러 왔는지, 어디에 머물건 지는 아무리 물어봐도 거의 동문서답 수준입니다.
 저는 영어로 묻지만 그 친구의 대답은 시종일관 알아 듣지못할 이란말이었으니까요.(거의 배째라 수준입니다.)
 손짓발짓으로 보아서는 왠만하면 내 것처럼 써 달라는 의사표시로 해석되었지만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는 무슬림이라면
 입국심사에 고생깨나 할 건 분명한데 딱하기 짝이 없습니다.



 덴파사 공항에서의 입국심사는 여전히 지난 번처럼 빨랐습니다.
 비행편이 겹치지 않는 점심 때인데다 입국비자를 파는 부스도 세 곳이나 늘어서인지 금방 나설 수 있겠더군요.
 드디어 도착입니다.
 하지만 내심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도착한 오늘부터 7일까지가 갈룽안 휴가이고 갈룽안 데이로부터 열흘 뒤인 16일이 꾸닝안인데 그 모두가 제 일정에
 포함되어 있으니 구경도 좋지만 혹 있을지도 모를 사소한 불편이 앞서는 게지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몇년 전 녀피데이의 불편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겪은 지라 "혹시 이번에도" 라는
 생각을 한 셈이지만  터무니없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숙소까지 택시를 타고 오면서 문을 닫은 가게들도 제법 보였지만  철시의 수준은 아니었고 오히려 교통체증으로 막힐 법한
 바이 파스도 소통이 원활합니다.
 공항에서 사누르까지의 택시요금은 새벽이나 한밤중에나 나올 법한 6만Rp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숙소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스텝들도 예전의 얼굴들이 대부분인지라 다들 반갑게 맞아주네요.
 때마침 마당 한 가운데의 수영장에서는 호주의 젊은 총각들이 왁자지껄하게 노는데 들어앉은 풀이 비좁아 보일 정도입니다.
 짐을 풀고 나니 2시가 넘었고 그제서야 허기가 밀려오는데 숙소 앞에 새로 생긴 "샹쿠" 가 괜찮다네요.
 퓨젼 형태의 중식당인데 차린 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나름 깔끔하고 가격도 만만합니다.
 사실 중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저인지라 큰 기대없이 한 끼 떼운다는 심정으로 들어섰는데 차려 나온 나시고렝 맛이
 보통이 아닙니다.(깡꿍 튀김과 아얌 샹쿠도 술도둑입니다.)
 중독성이 있는 나시고렝을 오랫만에 만난 것이지요.(오는 날까지 거의 하루에 한 끼는 먹었던 것 같습니다.)

 때늦은 점심을 먹고 나른하게 쉬고 있던 차에 "순이 아줌마" 가 찾아 왔습니다.
 늘상 발리로 올 때면 어비스 폰을 렌탈하다가  이번에는 순이 아줌마에게 빌리기로 한 것이지요.
 초면인 얼굴인데도 한국의 여느 아줌마들처럼 붙임성이 강한 지라 금방 친밀감을 느끼게 됩니다.
 바쁠텐데도 고작 15만Rp에 빌린 휴대폰을 갖다주고자 오토바이를 타고 와선  일일이 설명해 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제 여행이 그다지 가이드가 필요하지 않음에도 한 번쯤은 쓰고 싶을 정도로 친절과 열성을 보여주더군요
 
 그러고보면 발리 섬도 발리 사람도 늘 그대로인데 갈대같은 우리네 인심만  부대끼고 쏠리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지고 누리는 것은 별로 없지만  그들의 소박한 삶과 수줍은 미소가  때로는 부러운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많이 보고 느끼고 가야겠지요.  설사 못 보고 못 느끼면 다음에 오면 될 일이구요.
  • 꼬망 2011.07.17 20:31 추천

    "비밀글입니다."

  • 꼬망 2011.07.17 20:36 추천
    정원이아빠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수필집을 보는듯한 느낌이 듭니다.

    전 글재주가 없어서 리뷰만 쓰고 후기는 못남기겠더라구요.

    사누르의 한적한 시내도 눈앞에 아른거리구요..

    우붓도 옛날엔 한적 했었는데 ^^;;

    주시하고 있겠습니다. 빨리 다음글 올려 주세요 ...
  • 정원이아빠 2011.07.17 20:53 추천
    글쎄요,
    저는 늘 1.5L 한 병이 기본인데...
    안 잡던데요.
    물론 그 이상은 안 가져 갔고...
  • 정원이아빠 2011.07.17 20:54 추천
    속도를 붙이겠습니다.
  • 주유소습진사건 2011.07.18 20:47 추천
    샹쿠... 시양취 ... 향기란 뜻이라네요...
    나시고렝 및 해물누룽지탕이 죽이는 곳 입니다.
    가격도 대박 싸고요.... 맛또한 일품인 집 입니다.
  • 정원이아빠 2011.07.18 21:45 추천
    I think so....
  • itsbrave 2011.07.24 20:31 추천
    초보여행자도 알기쉽게 그리고 중간 중간 유용팁도 넣어주시고...도움이 많이 되겠습니다. 공항 뿐 아니라 더운 나라답게 공공서비스 장소에 무료 샤워장이 있으므로 비누와 수건만 있으면 더위에 지친 몸을 달랠 수 있지요. ㅎㅎ
  • heo574 2011.08.15 21:20 추천
    글보고 막 웃으니깐 옆에있는 6살난 아들이 엄마 정신차려~~~ 이럽니다 ㅡ.ㅡ;
  • zeepmam 2011.08.24 00:16 추천
    아이고~~ 그 무슬림 총각?? 정원이 아버님 옆자리 아니였슴 어쨌을지 ~~ㅋㅋㅋ

    이번 여행은 혼자 가셨군요 ^^

    저가항공이라 수화물 무게규정이 상당히 엄격하네요 ~~
    그래도 오버차지는 너무 아까워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