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아빠
Lv.17
2011.07.18 03:00
추천:3 댓글:14 조회:3,489
어둔 바다 같구나 말없이
고여 썩어가는 저 검은 바다 밑 같구나
유리창 밖에는 늘 익숙한 어둠,
꽃피는 봄과 찬란한 여름
저리도 넉넉한 우리나라 가을 또한
어둠 깊숙이 묻어두고
기약도 그리운 마음도 없이
지금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
저마다 ?표로 가득 찬 머리를 숙이고
밑도 끝도 없이 작은 거부의 몸짓도 없이
우리들은 가라앉고 있구나
늪 같구나 우리가 딛고 사는 이 시대가
스스로 갇혀 가라앉는 늪 같구나
일어서야 하는데 뛰어가야 하는데
잠든 너희들을 흔들어 깨워
저 바다 건너 그리운 마을에 등불 꺼지기 전에
함께 가 닿아야 하는데
유리창 밖에는 어느새 겨울바람이 일고
빈 나무들이며 겨울산이 온몸으로 우는 소리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열다섯 어린 영혼들을 불러 깨워야 하는데
나는 무엇인가 ?
헐떡이며 넘어가는 시간에 몸을 기대고
말없이 흘러가는 나는 누구인가 ?
아아, 나는 누구인가 ? 정 일근의 " 바다가 보이는 교실 3 "
일찌감치 아침을 먹으러 식당엘 나갑니다.
얼마 전 결혼했다는 에까도 갈룽안이라 집엘 가고 없어 다른 스텝들이 열심히 조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재료로 만든 평범한 오믈렛도 에까가 만든 것만 못한 느낌입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더라면 근사한 맏며느리감이 될만한 맘씨좋고 솜씨좋은 처녀였는데 이제 어느 집 막내 며느리가
되었다네요. 어느 운좋은 총각녀석인지 살다보면 훗날 대박을 만난 걸 알게될 겁니다.
헌데 발리에서는 우리와 달리 막내가 부모를 모신다고 하니(맏이는 형편이 나으니 재정적인 지원을 하고 막내는
부모와 함께 살며 도움을 받는 대신 몸으로 떼우는 나름 합리적인 구조랍니다.) 우리로 말하면 천상 맏며느리인 셈이지요.
그게 어딜 가겠습니까 ?
]
제 방 앞 뜨락에 의자 하나를 더 갖다놓고 노트북을 얹어놓은 모습이 영 딱해 보였던지 사장님이 자그마한 사방탁자로
바꿔준 덕에 책이며 담배갑이며 휴대폰을 올려놓고도 넉넉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가져 온 CD 몇 장을 들어가며(솔직히 말하자면 MP3는 작동법을 잘 몰라서...)노트북을 연결해 한국에서처럼 일을 보니
어쩌면 이보다 더한 신선놀음도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은 계속 비가 온다는데 양지바른 햇살이 살짝 비낀 그늘진 자리이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는 사이 어제 본 호주녀석들이 체크 아웃을 하고 우르르 몰려 나가자 작은 호텔 안은 이내 적막감에 빠져 듭니다.
분명 흐르는 시간은 똑같겠지만 느낌상 발리에서는 소처럼 느릿한 걸음이라면 서울에서의 시간은 쏜살같은 급류입니다.
점심 무렵 사누르 비치까지 걸어가 보려고 숙소를 나섰습니다.
길을 건너 골목을 내려가니 그 동네에선 제법 큼지막한 사원 하나가 나오는데 할머니 한 분이 향을 사르고 있습니다.
인기척에도 아랑곳없이 익숙한 손동작으로 향을 태운 뒤 여기 저기에 모셔두고는 돌아가고, 사원 안에는 색다른 구경거리를
찾는 이방인 하나만 달랑 남은 셈입니다.
골목안 양쪽으로 늘어 선 집들 앞에는 깔끔하게 단장된 벤죠르가 하늘을 지고 수직의 열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갈룽안이라 어지간한 집이라면 다들 새 것으로 교체를 한 모양입니다.
바다로 나가는 길을 묻는 저에게 하얀 전통 의상을 입은 가족들이며 자전거를 타는 소년들이 모두 함박웃음으로 화답해
줍니다.
이곳에서도 명절은 우리네 추석처럼 마음을 넉넉하고 풍요롭게 만드는가 봅니다.
- 바다를 향한 골목으로 내달리고 있는 녀석들을 따라갑니다.
- 독특한 출입문을 가진 이런 빌라도 나오고,
- 그 옆골목으론 프랑스풍의 이름을 지닌 이런 스파도 자리를 잡고 있는데,
- 담벼락에는 정체불명의 아리따운 발리니스 사진들을 걸어놓았습니다. 설마 저 아가씨들이 마사지를 해준다는 걸까요 ?
그늘진 골목길을 몇 번쯤 돌고 돌아 비치에 도착했습니다.
실은 머큐리 리조트의 전용 해변인데 비치라고 부르기엔 조금은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황량함이 있습니다.
게다가 현지인은 서빙을 하거나 간간히 보이는 호객꾼이 고작이고 대부분은 중년의 서양인들이라 감흥도 덜합니다.
굳이 발리가 아니더라도 식민지의 역사를 공유하는 동남아라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주객전도의 바다인 셈이지요.
헌데 감동이 실리지 않은 그 바다를 바라보는 해변 언저리에 묘한 건축물 하나가 지어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호텔 부지이니 당연히 머큐리 리조트의 부속건물 신축공사장임이 틀림없는데 그 모양은 마치 바다로 항해를 떠날
준비를 갖춘 배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제 눈에만 그렇게 보였을까요 ?)
공사장 앞에 놓인 완공후 그림설명을 보면 역시 발리적인 특색이 가득한 요가, 명상, 기공수련 등을 수행하는 곳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건물의 자재도 모두 친환경적인 나무와 대나무로만 엮어 만들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더 흥미로운 것은 마케팅의 한 방법쯤으로 여겨지지만 이 수련센터의 운영수익은 불우한 현지 어린이들을 돕는데
쓰여진다는 설명도 덧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마침 인부들이 잠시 쉬는 시간처럼 보여 한 번 안을 둘러볼 수 없겠냐고 물어보니, 이 친구들 흔쾌히 그러랍니다.
이층을 올라보니 역시 생각했던 것처럼 시원한 바람과 채광은 담고 열은 발산해 낼 수 있는 그런 구조입니다.
머큐리의 홍보처럼 어린이들을 위해 수익금이 쓰여진다면 금상첨화일테구요.
바로 옆 한 켠에는 울타리 두른 외양간 안에 잘 생긴 소 한 마리가 한가로이 되새김질을 하며 여물을 먹습니다.
역시 공존의 땅, 발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비치를 빠져나오는 입구에 마침 택시 한 대가 보이길래 잡아타고 환전을 위해 하디스 앞 써클 K를 찾았습니다.
바로 지난 1월 ATM기가 제 카드를 꿀꺽했던 곳이지요.
직원들이 바뀐 지라 환전을 하며 그 일을 알고 있냐고 물으니 다들 잘 안답니다.
사실 그 자리에서 카드회사로 전화를 해 막바로 정지를 시켜놓아 아무 탈은 없었지만 누군가가 습득은 한 모양이더군요.
돌아와서도 거의 일주일 동안 날마다 인출시도를 하는지 제 휴대폰엔 한동안 ' 발리에서 현금서비스 인출실패" 라는
문자메시지가 계속 떠서 마누라와 함께 웃던 기억도 납니다. (멍청한 녀석이 집요하다고 흉을 봤었지요.)
환율은 여전히 생각보다 좋은 편이더군요.
발리에서는 혼자 구경을 하다보면 늘상 식사 때를 놓치기가 일쑤입니다.
크게 눈길 두는 곳도 없고 마음 가는 것도 없지만 몸과 마음이 한결같이 이완된 탓이겠지요.
배꼽시계가 서서히 작동을 해오길래 시간을 보니 오늘도 어느새 두 시가 훌쩍 넘어있습니다.
해서 바투짐바와 엑조틱이 보이는 거리에 서서 두리번 거리는데 놀라운 간판 하나가 제 눈에 강렬하게 들어옵니다.
"와룽 나시"라는 식당이 골목 입구에 내어 걸은 메뉴판인데 이건 뭐 거의 환상적이네요.
그 골목 끝까지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중국청년 두 명이 식사를 마치고서 나오고 저는 들어섭니다.
일반 가정집 마당에 식탁 몇 개를 두고 영업을 하는 이 동네에선 좀처럼 찾기 힘든 로컬 식당처럼 보입니다.
자리를 잡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노인 부부가 운영하는 지라 온갖 잡화까지 취급하는 만물상처럼 보이는데 식탁이며
여기저기엔 먼지가 수북한데다 앞서 먹고 나간 중국친구들의 자리를 보니 식기며 컵 등의 위생상태가 장난이 아닙니다.
덜컥 들어서자마자 나시고랭과 빠빠야 쥬스를 시켜놓았는데 서서히 불안감이 엄습해 옵니다.
한참을 기다린 뒤 주인 할머니가 가지고 나온 식사는 역시 저의 예상대로였습니다.
분홍빛이 도는 밥에선 묘한 냄새가 스물거리고(향신료였을까요 ?) 수저는 기름기가 묻어있는데다 한 모금 조심스레
마신 쥬스도 무슨 분말가루를 탔는지 빠빠야 보다는 설탕물에 가깝습니다.
식대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죄다 합쳐봐야 9천Rp... 하지만 호기있게 현지인의 식사를 해보겠노라고 들어섰는데 그냥 나가면 노인들에 대한 실례가
될 것 같고, 먹자니 이건 100% 배탈이 뻔한 일이고 ...
결국 잠시의 고민 끝에 1만Rp 지폐 한 장을 놓아두고 조용히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음식이란 게 누구든지 아무렇게나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 중국청년들은 별 탈이 없었는지 무척 궁금하더군요.)
그 포기의 덕분인지 무탈하게 또 하루가 지나갑니다.
- 메뉴판은 정말 근사했습니다.
- 저 골목 안의 맨 끝집입니다.
- 이 문을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행복했습니다.
- 사진 상으로는 과히 별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좀 어수선하다는 것만 빼놓으면...
- 게다가 이 노인들 우리나라의 사극 매니아입니다. 저도 모르는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고 있더라구요...
- 해서 가까이 가 보았는데 자막이 없는 더빙이라 내용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더군요. 헌데 웃기는 건 예산부족인지
성우가 모자라서인지 임금이나 신하 목소리가 똑같고, 중전이나 상궁 목소리도 똑같습니다. 남녀 두 명만 쓴 걸까요 ?
- 드디어 문제의 식사가 나왔습니다. 제 입이 짧다고 타박을 주시거나 저 정도면 훌륭한 한 끼 식사로 여겨지거나, 아니면
튼튼한 장을 가진 젊은 혈기의 소유자라면 부디 도전해 보시길... 하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절대 지지 않습니다.
-
와룽 나시가 단골집이라면 정말 대단하시네요. ㅎㅎㅎ
저게 나시 고랭이랍니다.
저도 나이값은 하는 지라
어지간한 음식은 꾹 참고라도 먹는 편인데
저건 정말 못 먹겠더라구요.
한 숟갈도 못 뜨고 나왔으니까 ... -
비치로 가는 길 풍경!
다이어리에 있을때 걸어던 그길이네요~
가는길에 분재가 많아서 볼거리도 있었던 ㅋㅋㅋㅋ
짓고있는 요가하우스 멋지네요~ 요즘 자연주의 건설이 대세인가봐요
발리에서 애덜 데려다가 자연학습같은거 하던데 거기도 저런 건물이였던 기억이.
가물가물...^^;;
식당가격은 무지싼데.. 흠 너무 싸면 전 못가겠더라구요 ㅋㅋㅋ
1만루피는 넘어줘야 그래도 왠지 안심이 ^^;;; -
낯이 익다는 건
반가운 겁니다.
길이거나 사람이거나 ...
먹거리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의
가공할만한 위력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여행중에는 더더욱 그러할테지요. -
테이인지 티인지 모르는 콜라병비스무리한 음료수와 밥에 닭볶음을 주면서 1만루피를(3년전) 주고 맛나게 먹었던 저는 대관절 무엇이랍니까???ㅋㅋㅋ...
그래도 잘 찾아보면 저렴하고 맛나는 곳 많을 것이라 믿어봅니다...ㅋㅋㅋ -
ㅋ 예전에 꼬망님 후기보고 여기 다녀온적 있는데..ㅋ
정원이 아빠님도 저랑 식성이 비슷 하신가 봐요...
꼬망님은 적응력이 대단 하신거 같습니다. 전 아직 덜 됬나 봅니다 -
Me too...
-
전에 식당리뷰로 남긴적이 있었는데
그때제가 먹어보고 사진찍은 나시고랭과 많이 다른데요 ... -
음.. 하긴 제가 식성이 좋긴 합니다. ㅋㅋ
밥 많이 먹는다고 부부싸움을 할정도니까요 ;; -
청아님과 꼬망님은
위(장이)대(단)한 분들이신 거지요.
사실 테 보틀도 차가우면 그런대로 마실만한데
상온에서 주는 건 밍밍한 보리차에 설탕만 잔뜩 넣은 느낌이라...
나이가 들면서 입만 까다로와지는 모양입니다. -
저역시 나시고랭은 꽤 먹어봤노라고
나름 자부해왔는데
이건 밥 위에 올려진 정체불명의 동물성 건데기도 그렇고
살짝 맛이 간 색깔의 고운 분홍빛도 그렇고
그것들이 모두 합쳐 조화를 이루는 시큼하고 묘한 냄새도 그렇고...
해서 할머니를 붙들고 다시 물어봤습니다.
헌데 저를 빤히 쳐다보더니 나시고랭 맞답니다.
세월이 흐르면 나시고랭도 바뀌나요 ? ㅎㅎㅎ -
요즘 발리서 한국 드라마 인기가 하늘을 찌르더군요 ~ㅎㅎㅎ
지난번 탔던 택시 기사도 한국서 왔다고 하니 한국 드라마 예찬을 펼치더군요
선덕여왕 미실과 비담의 팬이라면서 ~~~~
한참 웃었답니다 ~~ -
요즘 그들.. 동이에 빠져 있다죠.. 너도나도 동이..동이.. 하더군요..
흐뭇한 일입니다.. -
사진과 글솜씨가 좋으세요
시간은 마치 새로사온 치약처럼 느껴집니다.
퉁퉁 불어있는 시간덩어리.. 그때의 느낌이 참으로 좋답니다.
와롱나시는 제가 애용하던 곳인데.. 아얌바까르 끝내줘요
나시고랭과 나시빰뿌르등등 다 먹어봤는데 위 사진의 메뉴는 무었인지 몰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