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아빠
Lv.17
2011.07.21 01:53
추천:3 댓글:10 조회:4,485
심장병을 앓는 우열이 체육시간이면
바다가 환히 보이는 운동장 한켠
가을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색종이를 접어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솔숲 사이 바다로 굽어져가는 푸른 오솔길을 따라
단숨에 달려갈 수만 있다면, 새가 되어
바람이 되어 훨훨 날아갈 수만 있다면
우열이의 꿈은 종이비행기가 되어 날아간다
푸른 하늘 푸른 새를 꿈꾸는 우열아
숨이 가빠져올 때마다 은행나무에 이마를 기대는
늘 고통과 함께 해온 열다섯 전생애를 용서해라
하루에도 몇번씩 찾아오는 죽음의 예감마저
모두 용서하며 바라보아라
네 손을 떠난 색색의 종이비행기가
저리도 아름다운 몸짓으로 훨훨훨 날아가
솔숲 사이 바다로 달려가는 오솔길은 단숨에 지나고
바다를 건너 산을 넘어
삶과 죽음의 거리 또한 자유로이 지나
우리가 돌아갈 신의 마을로 날아가고 있구나
우리 다 함께 슬픔없이 돌아갈 뛰놀
그 마을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며
색종이로 곱게곱게 접혀 날아가는 종이비행기를 본다
영혼을 접어 날리는 우열이의 종이비행기를 본다. 정 일근의 "바다가 보이는 교실 6"
여행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평소 쉽게 갈 수 없는 곳을 찾아가 이곳저곳 바삐 쏘아다니는 것이 일반적인 유형이라면 한 곳에 머물러 여유있는
방콕 생활을 즐기는 것도 정적인 여행이라 불러 마땅합니다.
그 둘 사이는 어떤 게 더 좋고 나쁜 우열의 차이가 아니라 취향의 다름이거나 아니면 서로 보완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그때 그때마다의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어제 약속한 픽업시간인 아침 5시 45분이 지났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6시 반에 사누르 정류장에서 짠디다사행 버스가 출발하는데 온다는 녀석은 감감 무소식입니다.
어제 철통같이 약속을 했건만 역시 이번에도 싼 게 비지떡인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야 될 모양입니다.
6시 20분이 지나 제 방으로 돌아와 둘러멘 가방을 도로 풀려는데 그때 마당을 쓸던 당직스텝 루카스가 쫓아오더니
차가 왔다고 알려주네요.
너무 늦어서 부아가 치밀긴 했지만 속으론 "그래, 1만Rp짜리니까 녀석들이 시간에 빠듯하게 오토바이로 정류장까지
실어 나르나보다... "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헌데 밖으로 나와보니 어럽쇼, 아예 쁘라마 버스 한 대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습니다.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이 친구들의 픽업은 정류장까지 데려다주는 개념이 아니라 제 숙소에 들러 저를 태우고 가는 것을 말한다는 것을 ...
- 바로 이 버스입니다.
꾸따에서 바이파스를 따라 올라오면서 여기저기 들르며 픽업을 한 까닭에 늦은 것일테지요.
그래봤자 차 안에는 저까지 포함해서 다섯 명의 외국인이 고작입니다.
오히려 숙소에서 차로 5분거리인 사누르 정류장에선 타는 손님이 없어 밖에 선 직원이 수신호를 보내자 서지도 않고
그냥 지나칩니다. (옛날 우리나라 시골버스의 전형적인 시스템과 아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역시 이 차에도 에어컨은 없었지만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면 스치는 아침공기가 훨씬 더 청량합니다.
게다가 덤인 것은 느린 속도로 달리니 지나치는 마을과 거리의 정경 또한 느리게 지나갑니다.
어느 집 담장 위의 닭을 고양이가 부리나케 뒤쫓는, 애니메이션의 실사모드같은 장면도 제 눈을 심심치않게 합니다.
헌데 이상하네요. 길을 자꾸자꾸 달려도 제게 아주 낯익고 익숙한 정경들만 나옵니다. 마치 잘 아는 곳처럼 ...
흐미... 30분도 채 안되어 도착한 곳은 우붓이었습니다.
제가 차량을 잘못 탄 게 아니고 이 버스가 우붓을 경유해 간다는 걸 몰랐던 거지요.
지도상으로 우붓은 정북방향이고 짠디다사는 동북쪽이라 전혀 돌아가리라고는 생각을 안했던 겁니다.
타는 손님은 몇 없는데도 10분간 휴식이랍니다. 젠장 ...
- 낯익은 빠당바이 항 여객터미널이네요.
결론적으로 짠디다사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지난 1월, 한쪽 방향씩을 막고 벌이던 도로공사도 아직 여전했고(듣자하니 부실시공으로 허가가 안 나서 다시 한다네요.)
그러니 이른 아침의 외곽인데도 교통체증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게다가 도로의 요철이 심해 낡은 버스가 한 번씩 덜커덩거리면 마치 말을 타고 장애물을 넘어가는 느낌입니다.
그래도 쿠삼바의 검은 모래 해변을 끼고 돌아 빠당바이에 무사히 도착했는데 여기서는 아예 차를 바꿔 타라네요.
헌데 점입가경인 것은 이번엔 아예 30분 정도의 휴식시간이 주어진다는 겁니다.
- 빠당바이에 있는 쁘라마 스테이션인데 식당과 환전도 겸하는 곳입니다. 앞에 보이는 승합차가 짠디다사 행이구요.
그래도 누구 하나 달다 쓰다 불평이 없습니다.
기다리는 시간동안 대부분 늦은 아침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데 저는 항구 앞까지 걸어나갔다가 돌아와선 투어부스
몇 곳을 기웃거렸습니다.
며칠후 길리를 다녀올 생각인지라 이곳에서 물어보면 좀 소득이 있겠다 싶었던 게지요.
사실 그동안 길리행에 관해 이것저것 알아보니 가장 애매한 게 교통수단의 선택(국내선비행기 or 쾌속선)과 루트를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쾌속선(스피드보트)으로 가기로 했지만 출발지와 도착지를 빠당바이로 할 지 누사베노아로 할 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고 게다가 대동소이하긴 하지만 쾌속선의 요금문제도 좀 더 알아볼 요량이었습니다.
쁘라마 정류장 옆 "요기" 라는 친구가 있는 부스(마리나 스리칸디)가 가장 설명을 잘 해주더군요.
안전상 약간 문제가 있다는 에카자야도 팜플렛에는 왕복 120만Rp로 되어있는데(물론 네고가 가능할테지만) 자기네는
픽업과 드롭오프를 모두 포함해서 85만Rp에 해 줄 수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출발이나 도착을 빠당바이든 누사베노아든 내 맘대로 정할 수도 있구요.
구미가 당기는 흡족한 제안이었지만 좀더 알아볼 시간은 충분한지라 일단 녀석의 명함을 받아 챙겼습니다.
빠당바이에서 짠디다사는 멀지가 않습니다.
예전에 몇 번 다녀가긴 했지만 사실 늘 가이드를 동행한 하루 일정중 급하게 지나가던 코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다를 낀 밥집이면 아무 곳이고 들어가 먹기가 무섭게 서둘러 돌아나온 곳이기도 합니다.
바다를 바라보는 입구에 쁘라마 정류장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오늘에서야 알았습니다.
그러니 사람의 눈에는 보고싶은 것만 보인다는 말이 맞는 걸 겁니다.
쁘라마 정류장 바로 옆에는 kufabal님이 소개했던 예쁜 식당 "디닝 룸"도 보이네요.
-짠디다사의 버스 정류장은 바로 코 앞에 이런 바다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 오른쪽을 보아도,
- 왼쪽을 보아도 바다만 보입니다.
- 바닷가 버스 정류장이 외로와 보입니다.
- 롬복에서 숨바와를 거쳐 플로레스섬까지의 6일짜리 투어상품을 쁘라마에서 내놓은 모양이더군요. 다음번엔 이것도
한 번 알아봐야겠습니다. 더 나이가 들기전에 말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짠디다사의 연못까지 걸어가는 길은 눈이 심심할 겨를이 없는 예쁜 산책로입니다.
길 양쪽으로 식당이며 묵을 곳들이 저마다 개성있는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데다 도로를 지나는 차들도 별로 없어
길 이쪽과 저쪽을 옮겨다니며 사진찍기에도 좋습니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그늘진 자리를 골라 걷는 호젓함도 있구요.
실컷 구경을 하다보니 어느새 연못까지 왔습니다.
흰색,연분홍,노란색의 수련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꽃을 피운 연못에는 어린 아들 둘을 데려온 아버지가 한창
낚시를 가르쳐주는 모습도 보입니다.
너머로는 하늘과 맞닿은 바다가 손잡힐 듯 가까이 자리잡고 있는 이 곳이 그지없이 평화롭고 고요한 짠디다사의
중심인 것입니다.
오는 길은 멀어도 역시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나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정신은 늘 한 곳에만 머물러 있지는 못하는가 봅니다.
바다와 연못이 보여주는 "따로 또 같이"의 아름다운 모습도 시장기가 들면서부터는 처음보단 시들하게 보입니다.
게다가 바다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제게 몰려와 끈덕지게 해상스포츠를 싸게 하라는 권유를 받고나서부턴
어딘가 들어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만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연못 옆 바다로 가는 길을 돌아 나오면서 딱히 정해놓은 곳도 없고 마음에 드는 쉴 공간을 찾을 때까지 좀더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힘은 좀 들겠지만 무언가는 만날테지요.
점심 때가 되다보니 몇몇 식당은 직원들이 길 앞까지 나와 팜플렛을 돌립니다.
그렇게 걷다가 어디쯤에선가 눈에 익은 바다로 향한 골목 하나를 발견하곤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지난 해, 가족과 함께 왔던 "뿌리 판단" 입니다.
바다도 식당도 그떄처럼 여전한데 단지 홀로 찾아왔다는 것만 다르네요.
정원이가 쏜살같이 백사장으로 달려가 놀던 그 자리엔 꼬마 아이 둘이 신나게 모래터널을 파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이 앉아 밥을 먹던 자리는 아무도 없이 그저 바다와 잘 어울리는 배경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그때와 달라져 있는 것 하나를 발견해냈습니다.
바다를 내다보는 파라솔 좌석의 엮어만든 지붕 언저리에 스피커를 달아놓아 예전에는 듣지 못했던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겁니다.
우리 돈 3500원도 안되는 특 나시고랭을 시켜놓고 라지빈땅 한 병도 곁들였습니다.
절로 생각에 잠기게되는 뉴에이지 음악과 몽환적인 가믈란의 연주가 귀까지 즐겁게 하는 혼자만의 식사는 온전히
외로움이 아닌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자리로 바뀌고 맙니다.
그 때였습니다.
장중한 서주와 함께 애잔한 바이올린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은 ... ...
순간 전율을 느끼고 말았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35를 짠디다사의 바다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주 오래전의 신혼 초였나 봅니다.
삼성동 무역센타가 가까운 곳에 사무실이 있었더랬는데 어느 해 여름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야근을 하게 되었지요.
지금은 안으로 제법 들어가야 반디&루니라는 서점이 나오지만 그때는 지하도를 빠져나오는 초입에 서울문고라는
대형서점이 있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려고 그앞을 지나다가 레코드점에서 흘러나오는 정 경화의 연주를 듣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전율을 느끼곤
한참을 서있다가 사들고 나온 LP가 바로 그 곡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차이코프스키에게는 이혼의 상심을 덜기위해 만든 곡이지만 그날 이후 제게는 젊은 날의 열정과 고뇌를
떠올리게끔하는 상징처럼 되어버렸던 곡인데 ...
원래 저는 그다지 감수성이 예민하지 않은 편입니다.
오히려 다소의 불편에도 애닳아 하지않고 유행에도 데면데면한 걸 보면 둔한 쪽이 훨씬 가깝습니다.
집사람은 TV를 보면서 조금만 슬퍼도 잘도 울지만 저는 그런 감정의 신체적 일치가 늘 신기하게만 여겨지기도 했는데
오늘 이 자리에 와서는 갑자기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가 누선을 자극합니다.
혼자하는 여행이라 고독해서였을까요 ?
아니면 가족과의 추억이 어린 장소엘 와서 그리움에 떠밀린 걸까요 ?
그런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마치 바다가 연주하는 듯한 바이올린의 애수어린 음조속에 일순간 제 삶의 모든 면들을 일시에 만난 듯 했습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교차하고 ...
즐거움과 슬픔, 기쁨과 분노의 시간들도 만났습니다.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모습도 지나가고, 기억으로 각인되는 순간들도 스쳐갑니다.
그렇습니다. 뜬금없는 외로움의 눈물이 아니라 짧기는 해도 좀처럼 만나기 힘든 자기정화의 시간을 맛본 셈이지요.
- 그 시각, 어느 서양아줌마는 바다가 코 앞인 정자에 누워 최상의 맛사지를 받고있네요.
짠디다사 바다를 통째로 차지한 채 음미한 점심식사를 끝냈습니다.
후식으로 주문해 목이 짧은 포트에 담아 내어온 향좋은 카프치노도 조금씩 식어갑니다.
그냥 일어나기가 아쉬워 식당과 붙어있는 "뿌리 판단" 방갈로를 들여다 보기로 했습니다.
지난번에는 밥만 먹고 일어나 아쉬웠던 까닭입니다.
둘러본 방은 작지만 혼자나 둘이 지내기엔 크게 불편해 보이질 않았고 그늘깊은 뜨락은 한 점 햇살도 용납하질 않습니다.
이런 방 하나가 1박에 20만Rp ...
아마도 짠디다사를 혼자서 다시 찾는다면 그때는 꼭 묵어가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그때도 변함없이 저 바다가 모두 제 것일테니까요.
-
차로바로가면 사누르에서2시간 정도밖에 안걸리고 길도 대로인편인데 쁘라마로 가셔서 고생하셨네요 짠디다사 사진으로보니 반가워요 ㅋㅋ
-
정원아버님의 글은 잔잔하면서도 임팩이 있어 읽는이..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이입이 절로 되게 하는듯합니다.. 정적이든 동적이든 여행에서 오는 감동은
크게 다르지 않을거 같습니다.. 제한적인 장소만 오갔던 제게도 자극이
되는 글입니다.. 이번에 짠디다사도 함 올라가볼까 싶네요 ㅋ -
그러게요.
정말 무지 고생했습니다.
아직도 엉덩이가 얼얼할 정도로 ... -
아직 번잡함보단
한가로운 여유가 남아있는 곳이라
조용한 휴식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 다녀올만한 곳입니다. -
짠디다사... 함 가보고 싶네요 ㅋㅋ
-
반갑네... 스위시군.
더운 날씨에도 잘 지내는 모양이지 ?
나중에라도 다시 발리에 갈 기회가 되면
한 번 꼭 들려봐.
그 바다에서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안 취할 것 같으니까 ㅎㅎㅎ -
3주 후면 저도 저 짠디다사 바다를 보며 노트를 끄적이고 있겠군요.
미리 행복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
가서 푹 쉬었다 오시면
한동안은 행복하실 겁니다.
잘 다녀오시길... -
코모도왕도마뱀사진투어(?) 이 번 8월에 신청했습니다. 시간이 없어 4박5일 전 일정으로 데크 300만 루피아짜리입니다. 캐빈은 400만인데 어짜피 공용이고 건기에는 데크도 괜찮다는 론리포럼글을 믿고 신청했습니다. 무사히 다녀오면 후기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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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녀오시고
꼭 후기 올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