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아빠
Lv.17
2011.08.02 15:19
추천:13 댓글:10 조회:4,106
음악 실기 시험이라도 있는 것일까
새벽 빈 교실에서
누군가 리코더를 불고 있네
열세 살 온 영혼 리코더에 담고서
서툴게 한 음 한 음
머나먼 스와니강을 홀로 건너가고 있네
아름다워라 새벽 리코더 소리여
맑은 영혼의 향기여
나의 가르침 나의 시에도
저리 맑은 영혼을 담을 수는 없을까
내 영혼은 어떤 향기를 머금고 있을까
조용 조용 발길 돌리며
착하게 뉘우치는 순결한 새벽
환하고 따뜻한 아침 오네
가슴 열어 부둥켜안고 싶은
눈부신 아침 오네 정 일근의 " 바다가 보이는 교실 11 "
며칠 전 외신을 통해 아쉬운 소식 하나를 접했습니다.
연초부터 문을 닫느니 마느니 하며 소문이 분분했던 외국의 밥집 하나가 결국 문을 닫은 것이지요.
저의 버킷 리스트에 언젠가는 꼭 한 번 가볼 곳으로 담아두었던 식당인지라 저도 많이 아쉽더군요.
세상에 무수히 많은 식당이 있는데 왜 꼭 거기여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곳에서 준비하는 남다른 식사에는 철학이
담겨있고 때론 미시적인 우주조차도 음식에 그려내는 까닭입니다.
더불어 음식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끊임없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장인의 열정을 직접 보고자 함이었는데 말입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북쪽지방 코스타브라바 해변의 산자락에 작은 밥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차를 타고도 두어 시간 거리인지라 교통도 불편한데다 내세울만한 유구한 역사도 없습니다.
오히려 고객의 입장에서 일반적으로 따져보면 감수해야할 불편함이 더 많은 곳이지요.
저녁에만 문을 여는데다 좌석도 50석에 불과하니 단체손님은 당연히 사절일테고 게다가 1년중 4월부터 9월까지만
문을 열고 나머지 반은 장기휴점을 하는 곳입니다.
박수를 받으며 손을 흔드는 이가 바로 그 식당의 괴짜 주인 페란 아드리아입니다.
그는 식당 문을 닫는 반 년동안 새로운 재료와 아이디어를 찾아 세계 곳곳을 여행하거나 아니면 독특한 맛과 질감의
요리를 만들어 내기위해 연구에 매진한다네요.
그의 이력도 참 흥미로왔습니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군대 취사병이 요리 경력의 전부인 그가 이 식당의 수습으로 들어온 게 24년전...
하지만 70만불의 적자를 남기고 폐업을 하는 식당주인치곤 너무나 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식당으로 평가된 "엘 불리"의 주인이자 요리장으로 분자요리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조한 이가 바로 그이니까요.
그러한 까닭에 통상 가게를 접는다는 건 망했다는 의미일테지만 그에게는 많이 달라보였습니다.
문을 닫기 전날 그는 식당의 모든 스텝과 그들의 가족까지 불러 모아 즐거운 최후의 만찬를 벌였습니다.
그와 함께 해준 것에 감사를 표하고 2년 뒤 새로운 음식연구재단을 통해 다시 만나자는 말도 했구요.
한 해 100만 건의 예약요청이 밀려 들어오고 그래서 2년치의 예약 리스트를 보유한 식당인데, 미식가의 바이블격인
미슐랭 가이드의 최고등급 별 세개를 14년동안 연속으로 받은 유일한 식당인데도 말입니다.
적자의 이유도 재료비를 아끼지 않은 때문이라 하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제가 "엘 불리" 의 폐업을 더 아쉽게 생각하는 건 모든 손님을 똑같이 대하는 그의 불편부당성 때문이었습니다.
언젠가 뉴욕 타임즈의 영향력 높은 칼럼니스트가 "식당을 크게 소개해줄테니 1주일 내로 자리를 달라." 고 하자
"뉴욕 타임즈니까 특별히 2년만 기다리게 해주겠다. "고 쏘아붙인 그였으니까요.
어느새 발리에서의 마지막 날을 다시 맞이했습니다..
때론 책과 함께 빈둥거리고 또 어느 때는 바다를 걷고 작은 골목길을 누비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이번에도 알뜰한
충전의 시간을 보낸 느낌이 듭니다. (자기만족일까요 ?)
숙소는 아침부터 분주합니다. 아니 사실 어젯밤부터 분주했었습니다.
쟈카르타에서 현지 공무원들이 워크샵을 온다며 준비가 한창이었는데 어느새 식당을 조촐한 회의공간으로 꾸며 놓았네요.
그래서인지 아침식사도 각자의 방으로 가져다주는 룸 서비스로 바뀌었습니다.
스텝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새로운 손님맞이에 열심입니다.
그들의 분주함에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저도 마실 길에 나섰습니다.
애써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한 건 아니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꾸따 시내로의 나들이는 결국 빠지고 말았습니다.
과히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제 동선과는 맞지가 않았고 몇 번이나 생각이 들다가도 시도 때도 없는 교통체증을 떠올리면
금새 마음을 접게 되었으니까요.
해서 마지막 날인 오늘은 모처럼 시내나 나가볼까 하던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해변을 걷다가 떠올린 그 생각조차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서 바뀌었습니다.
인도가 부실한 바이파스의 길을 따라 걸어올라오다가 낯익은 차 한 대와 마주친 것이지요.
단체손님 준비에 바빴던 숙소의 사장님이 겨우 한숨을 돌리고 때마침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이었나봅니다.
"어딜 다녀오세요 ?" "바닷가를 좀 보고오는 길인데..."
"점심은 어떻게 드실건데요 ? " "꾸따 시내에 나가서 살펴봐야지요."
"그러면 저랑 좋은 데 가실래요 ? " " .... ... "
그렇게 엉겁결에 차를 얻어타고 간 곳이 카르마 칸다라의 "디 마레"였습니다.
사실 저는 우리 나라에도 적지않게 똑같거나 유사한 이름을 가진 곳들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서울의 외곽인 저희 동네에까지 비슷한 이름의 이태리식당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곳을 지나칠 때마다 상상력의 빈곤으로 무조건 베껴 쓴 것 같은 그 작명솜씨를 탓하곤 했었지요.
MARE 라는 이태리어의 의미가 바다인지라 아무나 쓸 수 없는 고유명사는 아니지만 전혀 바다를 연상할 수 없는
장소거나 분위기에서조차 버젓이 간판을 내어걸었으니까 말입니다.
이름은 사물과 공간을 특징짓는 요소라는 걸 깜빡한 셈이지요.
그런 점에서 까르마의 "디 마레" 는 잊으려해도 잊을 수 없는 정직한 이름을 지닌 셈입니다.
바다를 지척에 두고, 아니 거의 바다와 한 몸으로 있는 식당은 아무래도 아직은 찾아보기가 드물테니까요.
마치 산토리니 섬의 돌담길을 닮은 출입구를 돌아 계단을 내려가자 한꺼번에 커다란 화폭의 바다가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마주하는 바람 또한 식탁보를 날릴 정도의 기세라 단단히 고정할 클립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할 정도였지요.
동행한 숙소의 사장님이 나중에 정원이 엄마와 함께 오면 점수를 딸만한 곳이라고 하길래 저역시 조금도 주저하지않고
동의를 했습니다.
아무리 감성적으로 무디어도 이런 풍광이라면 정신적인 무장해제가 절로 될만한 곳이니까요.(허니문 필수코스로 강추)
그래서 주문한 식사가 나오기 전, 그 풍광을 안주삼아 급하게 빈땅을 시켰습니다. (아쉽게도 라지는 없다네요.)
헌데 그때부터 이 식당의 스텝들이 즐거운 실수연발을 하기 시작합니다.
메뉴 리스트를 훑어보고 시킨 "오늘의 스페샬" 은 "어제의 스페샬" 로 바뀌어 재차 가져오는 소동을 하더니, 잠시 후
나타난 커다란 꿀벌 한 마리가 저보다 먼저 술내음에 취했는지 맥주잔 속으로 자유낙하를 하더군요.
얼마 남지않은 양이라 아까울 건 없었는데도 잠시 후 새로운 병으로 다시 하나를 가져옵니다.
가격은 제법 쎈 편에다 그다지 세련되거나 신속하지 못한 스텝들의 응대조차 밉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바다가 앞에 있으니 절로 그 바다를 닮게된 까닭이었겠지요.
식사를 마친 후 소화도 시킬 요량으로 천천히 한 바퀴를 둘러보았습니다.
바다로 나있는 식당 앞 계단을 내려가니 아래쪽 해변까지 궤도를 따라 오르내리는 리프트가 보입니다.
카르마 칸다라에 묵거나 아니면 이 곳에서 식사를 한 손님들의 경우에는 무료라길래 승차장 앞에 설치된 보턴을
꾸욱 눌러보았습니다.
아래에서 손님을 내려준 리프트가 올라오더니 저를 태우고 느린 속도의 하강을 합니다.
도착한 백사장은 서양아줌마들과 아이들 뿐인데 갑자기 아줌마들이 반색을 하면서 제게로 오더니 다들 카메라를
내밀고 찍어달라네요.
이런 포즈로, 저런 포즈로... 졸지에 해변의 전속사진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느릿느릿 짐을 꾸립니다.
짐이라고 해봤자 먹다남긴 소주 댓병과 부식거리를 빼고나니 단촐한 옷가지와 책들 밖에 없어 돌돌 말아넣으면
그뿐입니다.(먹거리들이 빠지니 한결 가볍고 수월하네요. 단지 다 비우고 가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 ...)
그리고 마지막 저녁식사는 그동안 말벗역할을 톡톡히 해주신 케이 리 할아버지와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멀리 나가기는 뭤하고 "샹쿠"는 너무 자주 드나들었던지라 길 건너의 "LA 요거트" 로 향했습니다.
"코피 발리" 의 바로 아랫쪽에 자리잡은 곳인데 사실 그동안 몇 번 와보긴 했었습니다.
내걸린 이름처럼 요거트를 전문으로 하는 지라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한 뒤 입가심을 할 생각으로 들렀던 곳이지요.
눈에 잘 띄지않는 위치와 공간은 비록 작아도 깔끔한 인테리어라 대번에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식사 메뉴에 한식도 있길래(여기 주인장이 우리나라 자매분들인지라) 간만에 불고기비빔밥을 시켜보았습니다.
주인장이 꽤나 정성을 쏟는 곳임을 금새 눈치챌 수 있는 정갈한 맛입니다.
오랫만에 입에 맞는 음식을 만난지라 허겁지겁 먹고있는데 주인장이 옆에 와서 조심스레 말합니다.
"양이 적으면 말씀하세요. 좀더 내어 올게요. 이곳사람들이 우리나라 분들보다 적게 먹는지라... "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음에도 은근한 배려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밥심은 양이 아니라 정성인 까닭이지요.
- 밤이라 사진이 많이 흔들렸는데 ... 아쉽게도 이것밖에 없네요.
이제 머무름의 시간이 다해 갑니다.
혼자서도 시간을 제법 잘 다스리고 큰 사고없이 지낸 날들이었는데 ...
하지만 제자리로 돌아가도 다시 올 날이 있음을 아는 까닭에 아쉬움 또한 제법 다스릴 줄 알 게 되었습니다.
뱃속 편한 마지막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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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의 마지막이시군요.. 개인적으로 정원이아빠님의 글을 못봐서 아쉽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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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님의 글은 너무 잘봤는데 아쉽네요.. 제가 여행하고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특히나 마지막 "제자리로 돌아가도 다시 돌아올 날이 있음을 아는 까닭에 아쉬움 또한 제법 다스릴줄 알게 되었는다는..." 저도 9월에 들어가는데 발리 떠날때 이 말씀 꼭 가슴에 새겨둬야겠습니다^^ -
허접한 글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나름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요.
부록같은 떠나는 날의 일기 한 편도
곧 올리겠습니다. -
아아, 저 사진은 꿀벌이었군요.... 바로 아래 줄에 '바퀴'라는 (한 바퀴 ^^) 글을 보고 소스라쳤다는...ㅋㅋㅋ
글 잘 읽고 갑니다~ -
정말 좋은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마음같아서는 올라오는글마다 마일리지를 쏴드리고 싶었지만,
그런식으로 하면 모자랄것 같아서.. 참고 또 참았습니다. ㅋㅋ
돈한푼 안들이고 발리 여행한 기분이들어서 너무 좋습니다.
오늘도 술안주로.... 사진과 글 잘 보았습니다. -
아프시다더니 좀 괜찮아진 모양이지요...
마일리지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잘 받고 있습니다.
언제 한 번 좋아하는 술이라도
대접해야 할텐데... ㅎㅎㅎ
직장이 광주 부근인듯 싶은데
저도 자주 오가는 곳이라
잘하면
조우도 가능할 듯 합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 -
안녕하세요
털보 할어버지입니다
안부메일을 보냈는데 전송이 않됬다고 표기 되서
아쉬운 마음에 이렇게 덧글이라도 남깁니다
부디 강건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
드디어 다시 뵙네요.
발리로 다시 들어가신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뜻하시는 대로
모든 일이 잘 될 수 있기를
저도 응원해드리지요.
건강하시길 ...
외손녀는 잘 크지요 ? -
저 미쉘링 3 스타 식당 저도 신문에서 보았는데요. 70만불의 적자가 원인 이었군요.
주인장이 이제 학교를 차려서 후배 양성한다고 식당을 접는다고 했는데 그런 뒷 소문이 있었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래도 1년에 운좋은 분들은 그 맛을 볼 수 있다고 하네요. -
항상 정원이 아버님 글은 왠지 모르는 아련함?? 같은 그런 느낌이 있답니다.
올리시는 후기 읽는게 저에겐 아주 큰 즐거움이기도 하구요 ^^
혼자만의 시간을 아주 충실히 보내시고 오셨네요 ~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올려주시구요 ^^
후기 아주 잘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