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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
2011.11.13 21:16 추천:3 댓글:12 조회:5,059


  
  새 한 마리 젖으며 먼 길을 간다.
  하늘에서 땅 끝까지 적시며 비는 내리고
  소리내어 울진 않았으나
  우리도 많은 날 피할 길 없는 빗줄기에 젖으며
  남 모르는 험한 길을 많이도 지나왔다.
  하늘은 언제든 비가 되어 적실 듯 무거웠고
  세상은 우리를 버려둔 채 낮밤없이 흘러갔다.
  살다보면 배지구름 걷히고 하늘 개는 날 있으리라.
  그런 날 늘 크게 믿으며 여기까지 왔다.
  새 한 마리 비를 뚫고 말없이 하늘 간다.                                             - 도 종환의 시 "우기" -


  이번 여행에서는 참으로 자주 비를 만났습니다.
  시기적으론 당연히 우기라서, 출발이 임박하여 받은 서진아빠의 메일에서조차  "짧은 3단우산 하나 정도는 챙겨 오세요."
  라고 친절히 적혀 있었는데 짐짓 외면해 버렸습니다.
  그동안 우기건 건기건 가리지 않고 드나들었기에  나름 체험한 발리의 비를 만만하게 여겼던 까닭이었지요.
  우기라해도 한국의 집중호우에 비하면 턱도 없이 적은 양인데다가  몇 번 겪어보니 새벽이거나 오후무렵쯤에 내리는 
  시간적인 규칙성마저 지니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요.
  게다가 오래 전에, 묵던 호텔에서 디포짓을 맡기고 빌린 장우산을 온종일 질질 끌고 다닌 경험이 있는 터라 "까짓 비오면
  좀 맞거나 잠시 피하면 되지" 하는 정도의 생각은 당연했습니다.
  헌데 이번 비는 묘하게도 저만 따라 다니는지 가는 곳마다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합니다.
  이 곳 역시 언제부턴가 지역적인 편차에 따른 국지성 강우로 바뀌었는지, 심지어는 신호 대기중인 교차로의 이쪽과
  저쪽에 내리는 양마저 달라 보이더라구요.
  걷는 것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좀 고역이었지만  대신 더 보고 가겠다는 욕심의 크기를 줄이고 행동의 반경을 과감히
  줄이기로  했습니다. (내 맘대로 여행의 특권입니다.)
  멀리 나가서 많이 보는 것도 좋지만 낯설은 스미냑의 골목골목을 꼼꼼히 챙겨보는 것으로 노선변경을 한 것이지요.
  이제는 과유불급을 알 만한 나이이길래 우기를 핑계삼아 자연히 안분지족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balisurf.net
- 도착한 다음날 아침, 대문을 열고 나가보니 길가의 동네 야옹이 한 마리가 낯선 이방인을 빤히 쳐다봅니다. 텃세였을까요 ?

  발리를 그렇게 자주 오가면서도 사실 공항을 나오면서 뜻밖에도 꽤나 긴장을 했습니다.
  그동안엔 입국장을 빠져 나올 때마다  안면있는 현지인 가이드 몇 녀석이 목례나 수인사를 해오면서 "낯익은 곳" 에
  다시 왔다는 일종의 만만함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게 전혀 아니었거든요.
  아침 비행기라 쿠알라를 경유하고도 밤 9시 무렵, 덴파사 공항엘 내렸는데 마침 다른 도착편이 하나도 없어 천천히
  걸어나왔는데도 입국비자를 1등으로 샀습니다.
  짐을 찾고 신고할 물건이 없으니 모든 걸 종료하고 나오는 데 채 20분도 안 걸리더군요.
 (KAL이나 가루다를 타고 오시는 분들이 오해하지 마시길...  도착 시간대에 비행편이 겹치면 완전 거짓말인 딴 상황입니다.)
  담배 한 개비를 피워물고 약속장소인 입국장 길 건너 서클K로 가려던 중 갑자기 제 앞을 가로막는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흠칫 놀라 쳐다보니 모두 한 덩치들 하는 체격에 얼굴은 현지인보다 더 구리빛입니다.
  그런데 세 사람 중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가운데 사람이 정중히 물어옵니다. "혹시 ... 정원이 아빠 되십니까 ?"
  알고보니 이번 숙소의 주인장인 서진이 아빠가 한집에 묵는 서프하는 청년들과 함께 나타난 것입니다.
  장소를 김포나 인천쯤으로 잡고 복장을 양복으로만 바꾼다면 마치 조폭(?) 마중처럼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지요.
  간단한 트렁크 하나에 노트북 가방만 들었는데 건장한 세 사람의 마중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으니까요.

balisurf.net
- 숙소로 들어가는 골목입구.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르기안 게스트 하우스의 이정표가 보입니다. (뒤의 뾰족한 첨탑은
  동네 유명식당 망앵낑의 지붕같네요.)하지만 오래지 않아 저 이정표 자리엔 "서진이네 집"이란 세로운 이정표가 대신할
  거란 강력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왜냐구요 ?
  불과 며칠이긴 하지만 열심으로 세상을 사는 이들의 모습을 옆에서 쬐끔은 지켜볼 수 있었으니까요.

  덴파사 공항은 확장을 한다고 드나드는 길을 바꾸는 공사로 밤에도 분주한데 차는 익숙하게 빠져 나옵니다.
  심빵시우르의 대책없는 교차로도 조금은 한갓진 시각...
  채 20분을 달려오지 않아서 숙소엘 도착했습니다.
  이후 제가 머무는 내내 택시를 타고 돌아올 때마다 기사에게 또박또박 알려주던 그 곳,
 "사야 마우 끄 잘란 나꿀라 띠무르 강 자타유 넘버 3" 로 말입니다.
  하지만 아띠가 닫힌 대문을 열기 전부터 비는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balisurf.net
- 사실 스미냑과 르기안이 만나는 경계인 변두리인지라 아직은 소박한 촌동네의 모습이 물씬합니다.
  왼쪽의 이슬람 마을을 지나 저 앞 차가 세워진 곳이 강원도 민박같은 "서진이네 집"이네요.
  
  • zeepmam 2011.11.14 00:59 추천
    입국심사는 정말 복불복 ~맞습니다 ~~
    작년에 한번 대책없이 쏟아지는 비때문에 오도가도 못한적이 있어서 발리행
    짐을 꾸릴때 항상 우산먼저 챙깁니다 .
    이번엔 거금주고 비옷까지 장만해놓았답니다 ~
    12월 발리행을 위한 준비?? 중 하나로요 ㅎㅎㅎ

    밖에 대기하고있는 가이드들과 눈인사까지 나누시는 경지시네요 ^^
  • malimali1234 2011.11.14 01:13 추천
    모처럼 맑은 날씨에 큰맘먹고 쇼핑나갔더니 짐바란을 통과할무렵 꾸따쪽에 먹구름이 가득하더니만 투반을 접어들면서 마구 쏟아지더라구요........ㅠㅠ
    할수없이 샌트로에서 가볍게...........발리의 우기엔 종잡을수없는 빗님들이......
    잘 도착하셨군요.........
    서진이네집이라 하심은? 혹시 jj하우스?
    저도 조만간 사진속의 이정표가 서진이네로 바뀌길 희망합니다
    뵙지는 못했지만 부지런하지않으면 손님을 위한 이벤트를 자주 가지긴 힘든데 그분들은 정말 성심성의껏 투숙객들을 대하시는것 같이 느껴지더라구요.......
    번창하세요 36_1_11.gif
  • malimali1234 2011.11.14 01:16 추천
    온니~ 우리 크리스마스 이브에 모하징?
  • 정원이아빠 2011.11.14 09:00 추천
    역시 아줌마(?)들은
    꼼꼼히 챙겨 가시는군요.

    이번에 숙소에 함께 머물던 막강 아줌마 한 분은
    믹서까지 싸 오셔서
    날마다 신선한 망고를 갈아 드시느라
    저도 그 덕에 자주 얻어 먹었습니다.

    예전에 정원이엄마도 녹즙기를 싸들고
    강원도여행을 갔었더랬는데
    역시 대한민국 아줌마의 힘은 대단합니다 ....

    준비성은 지나쳐서 나쁠 게 없으니까요.
  • 정원이아빠 2011.11.14 09:26 추천
    주인장 내외가 저한테는 별로 이벤트를 안 해주시던데 ... ㅋㅋㅋ
    이벤트가 뭐 별 겁니까 ?
    말씀처럼 그냥 마음을 써서 잘 대해주고
    받는 입장에서는 그걸 느끼면 되는 거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선지
    간혹 오해가 생기고
    마찰이 발생해서 시끄러워지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주인은 손님의 입장에서
    손님은 주인의 입장에서
    조금만 더 헤아려본다면
    과히 풀지 못할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 같아요.

    말이 통하는 같은 한국인인데...
    말로 안되면 술로라도 말입니다. ㅋㅋㅋ
  • prismd 2011.11.14 10:04 추천
    앙앙앙...
    크리스마스때 모하시려구요....ㅠㅠ
    발리에서 크리스마스라.... 부럽습니다.~~~
  • malimali1234 2011.11.14 12:54 추천
    크리스마스에 르기안을 접수할까해요.......ㅋㅋㅋ
    동참하세요^&^
    12월22일에 미모의 아가씨가 들어오거던요.....미인 앞세워 어깨 힘주고 다녀볼려구~ beaute.gif
  • Freesoul 2011.11.14 13:10 추천
    르기안 게스트 하우스 옆에 jj 가 있군요....
    JJ 아직 머물러 본적은 없지만 르기안게스트 하우스는 3일 정도 머물러
    보았지요... 아쉬운게 동네가 좀 아쉬어요.... 포장도 안돼있고 밤에는
    주변 현지인들이 사는 꼬스 요런게 좀.... 무섭게 느껴지더라구요
  • 정원이아빠 2011.11.14 15:00 추천
    맞습니다.
    덴파사나 사누르나 우붓 등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현지인들의 동네는 전형적으로 열악하지요.
    게다가 이슬람 동네라
    답답한 벽과 어두운 통로로 이어진 쪽방스타일의
    옹색한 모습입니다.

    그래도 다닥다닥 붙은 그 작은 집에
    노인부터 아기까지 함께 거주하며
    생활하는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어
    나름 의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자분이라면
    저녁에 혼자 걷기엔
    좀 무섭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 zihen09 2011.11.14 16:38 추천
    다음주면 떠나는데 우기 소식에 급 우울해지네요,,ㅠㅠ
    대식구가 비가와도 재미나게 지내다 올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ㅠㅠ
  • 정원이아빠 2011.11.14 18:17 추천
    우울해 하실 거 전혀 없습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라면
    오히려 발리의 매력에 푹 빠지실 겁니다.

    대책없이 하루종일 내리는 비는 아니니
    지레 겁먹지 마시고
    재미있게 놀다 오세요.
  • 꼬망 2012.01.07 04:58 추천
    드디어 시작이군요 오래기다렸습니다.

    돈안들이고 여행하는법은 역시나 정원아빠님 글 읽는거

    이번엔 아껴서 읽을랍니다. 너무 한번에 다 읽기엔 아까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