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아빠
Lv.17
2011.11.14 18:13
추천:3 댓글:2 조회:3,473
우산은 말라가는 가슴 접고 얼마나 비를 기다렸을까
비는 또 오는 게 아니라
비를 기다리는 누군가를 위해 내린다는 생각을 위하여
혼자 마신 술에 넘쳐 거리로 토해지면
우산 속으로도 비소리는 내린다.
정작 술취하고 싶은 건 내가 아닌 나의 나날인데
비가 와 선명해진 원고지칸 같은 보도 블럭 위를
타인에 의해 떠밀린 탓보단 스스로의 잘못된 보행으로
비틀비틀 내 잘못 써온 날들이 우산처럼 비가 오면
가슴 확 펼쳐 사랑 한 번 못 해본 쓴 기억을 끌며
나는 얼마나 더 가슴을 말려야 우산이 될 수 있나
어쩌면 들렸을 지도 모르는 질문에 소낙비에
가슴을 적신다.
우산처럼 가슴 한 번 확 펼쳐보지 못한 날들이
우산처럼 가슴을 확 펼쳐보는 사랑을 꿈꾸며
비 내리는 날 낮술에 취해 젖어오는 생각의 발목으로
비가 싫어 우산을 쓴 것이 아닌 사람들의 사이를 걷고 또 걸으면
우산 속으로도 비소리는 내린다. - 함 민복의 시 "우산 속으로도 비소리는 내린다" -
새날이 밝았습니다.
바로 옆 이슬람 동네에서 길에다 내놓고 키우는 닭울음 소리가 달콤한 늦잠을 결코 허락하지 않습니다.
대문을 살며시 열고 밖으로 나와보니 이슬람 동네사람들은 벌써 아침준비로 분주합니다.
잡은 건지 사온 건지 알 수 없는 물고기 몇 마리를 대충 손질해서 길 한 켠에 말려둔 야자껍질을 땔감으로 삼아 구워내는데
토막낸 머리며 내장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건너편 숲으로 휘휘 내던지는 모습에 잠시 놀랐습니다.
저렇게 숲 안에 내던져진 생활 쓰레기들은 얼마나 많을까요 ?
그러고보면 잘 살든 못 살든 인간은 자연과 환경에 그다지 호의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하긴 사람끼리도 더불어 살기가 어려운 세상인데 숲이며 나무, 강과 바다를 아낀다는 공존의 마음이 쉽게 들겠습니까 ?
그래도 순박한 웃음 앞에서는 저도 웃음으로 화답해 줄 따름입니다.
아띠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일상처럼 동네마실에 나섰습니다.
몇 가구 안되는 이슬람 동네를 지나 차가 지나는 도로에 서고 보니 바로 입구에 사원처럼 위용을 자랑하는 큰 건물
한 채가 한창 공사중 입니다.
바깥 전면엔 비계다리를 설치해놓고 인부들이 올라가 작업중이고, 육중한 높이의 담장 아래로는 시멘트와 검은 모래를
야적해 놓고선 채를 치고 타설작업에 여념이 없습니다.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입구에 선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본띠회장의 저택인데 리모델링 공사중이라네요.
"그게 누군데 ? " 친절한 그 친구는 물정 모르는 저에게 나름 열심히 설명을 해줍니다.
녀석의 설명인즉슨 "쿠데타"와 "더블 식스", 기타등등의 여러 술집과 고급식당을 가지고 있고 최근엔 크루즈 사업에까지
진출한 이가 바로 그집 주인이라는 거지요.
한마디로 물장사로 성공한 발리에서 잘 나가는 사업가의 집인 셈인데 설명을 듣고보니 내부도 궁금해지더군요.
"나 좀 들어가서 구경해도 되겠니 ?"
경비원 녀석은 귀찮은 내색없이 오히려 앞장서서 여기저기를 보여줍니다.(당연히 주인장은 부재중일테니까)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자리만 잡고있는 가구며 대형가전들과, 진행중인 수영장 공사로 안팎이 어수선합니다.
안뜰과 별채가 미로처럼 이어진 부잣집의 규모는 실로 엄청나더군요.
하지만 그 골목 뒤, 멀지않은 거리에 어두컴컴한 통로를 지닌 쪽방집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꽤나 많다는 건 아마도
본띠회장은 내내 모를겁니다.
굳이 알아야 할 이유도 없을테지만 하늘과 땅의 간극만큼이나 가진 자와 주린 자의 차이는 참으로 큽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 느낄 때마다 제 마음 한 켠으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묘한 감정과 여운을 뒤로 하고 그 집을 나와 두리번거리다 길 건너 간판 하나가 퍼뜩 눈에 들어옵니다.
저하고는 불가분의 관계인 황금빛 거품으로 유혹하는 알콜사진이니 당연히 멀리서 보아도 뭘 파는 집인줄 알아차리고도
남을 수 밖에요.
아직 이른 아침이라 문은 열지 않았지만 "엘리쟈베스"라는 이름의 이 펍은 좀 독특해 보입니다.
바깥벽에 붙은 사진이 그걸 증명해주는데 식사와 주류만 파는 게 아니라 댄스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의 끈적한 캬바레 분위기가 아니라 유쾌한 춤판처럼 여겨져 호기심이 동했습니다.
물론 쟝르구분없이 플로어에만 서면 뻣뻣해지는 몸치인지라 가당치도 않은 바램인 줄은 잘 알면서도 말이지요.
결국 환전을 위해 잘란 라야 스미냑의 빈땅슈퍼 근처로 가는 택시를 잡았습니다.
1만Rp도 안 나오는 거리인지라 거스름돈은 기사녀석의 몫입니다.
빈땅슈퍼 안에서도 환전은 가능하지만 저는 발리에서는 무조건 BMC(건너편의)만을 고집합니다.
현지인들이 "마스핀찐라"라고 부르는 이 환전소는 정확성과 높은 환율, 그리고 쾌적함까지 두루 갖추었으니까요.
길거리의 보드판에 휘갈긴 엉터리 환율에 현혹되는 건 거의 한국사람 뿐인 것 같아서 아직도 종종 환전사기 운운하며
기분을 잡친 분들의 글이 올라올 때마다 저는 이곳을 생각합니다.
잠시 거리를 기웃거리다 약속시간에 맞춰 금년 여름 사누르에서 처음 뵌 이 선생님의 숙소를 방문했습니다.
덴파사의 아유나리 수퍼 부근에 있는 숙소는 글로벌 공동체라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더군요.
사업차 한달 간의 일정으로 온 이 선생님은 이란 아줌마, 네델란드 할머니, 멕시칸 아저씨 등과 더불어 지내면서
점점 이 곳에 대한 적응도를 높이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얼마 전, 손주까지 봤다하니 적잖은 연세인데 아직도 도전의 열정은 젊은 친구들 못지않아 내심 저도 부러울 때가
있으니까요.
함께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가까운 동네와룽을 찾아 이 애기 저 애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제법 흘렀습니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왠지 허전한 기분이 들고, 한참 지나서야 그 분의 숙소에 핸드폰을 놓아두고 온 걸 알았지만
애꿎은 와룽엘 찾아가서 핸드폰을 찾는 야단법석을 떨었으니 역시 점심 반주로 먹었던 빈땅탓으로 돌려야 할까요 ?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비는 내리고 있습니다.
사람사는건 어딜가도 똑같다는말 변함없네요.
많이 가진 사람들 그렇지못한 사람들 ...
절대 변하지않는 사실일것도 같구요.
이번에도 부지런히 다니셨네요 ~~
그래서 항상 더많이 느끼고 오시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