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아빠
Lv.17
2011.11.15 11:41
추천:3 댓글:10 조회:3,723
이 세상 슬픈 작별들은 모두
저문 강에 흐르는 물소리가 되더라
머리 풀고 흐느끼는
갈대밭이 되더라
해체되는 시간 저편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시어들은
무상한 실삼나무 숲이 되어 자라 오르고
목메이던 노래도 지금쯤
젖은 채로 떠돌다 바다에 닿았으리
작별 끝에 비로소 알게 되더라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노래가 되지 않고
더러는 회색 하늘에 머물러서
울음이 되더라
범람하는 울음이 되더라
내 영혼을 허물더라 - 이 외수의 "비오는 날 달맞이 꽃에게" -
일반적인 분들과는 달리 제게는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쌔(경상도 말로 혀입니다.)가 빠지게 일을 하고나서 즐기는 휴식은 달콤하긴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직장풍토에서는
대기업조차 휴식은 정당한 보상이나 댓가가 아닌 윗사람이 베푸는 시혜 정도로 감지덕지 여겨야 하더군요.
게다가 때론 전사적으로 휴가를 반납하는 분위기로 몰아갈 때면 (물론 돈으로 보상은 해줬지만) 젊은 시절부터 그 알량한
보상보단 단호히 가족과의 휴식을 택하는 저였기에 지금처럼 혼자서의 벌이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물론 그 의미가 일할 때 쉬고싶다거나 정작 쉬어야할 때 두고온 일들을 염려한다는 게 아니라 혼자 하는 일이고,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기에 굳이 명확한 구분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숙소에 대한 느낌은 흡족합니다.
어떤 이는 룸 컨디션을 따지고, 어떤 이는 시내와의 접근성이나 주위의 분위기를 우선하겠지만 이 곳에서도 종종 일을
해야하는 제 입장에선 와이파이의 안정된 속도가 최고의 고려사항이었거든요.
한국에서 가져온 공유기를 두 개나 설치했다는 서진아빠의 말마따나 제 방앞 조그만 협탁에 앉아 노트북을 켜면
거의 저희 집 수준의 속도를 보여주니 다른 건 더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그래서 어제 두고온 핸드폰을 돌려받기 위해 꾸따로 나설 때까지 커피잔을 옆에 두고 오전내내 일처리에 분주했었습니다.
약속장소인 센트로(디스커버리 몰)에 내리니 또다시 조금씩 비가 오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좀 남아서 정원이녀석이 사달라는 책들을 알아보려 서점을 훑어봤지만 무려 20권을 적어준 메모와 일치하는
책은 단 한 권도 없어서 터덜터덜 나왔습니다.
무척 실망해 할 녀석의 표정을 생각하니 지레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해변엔 먹장구름이 가득 드리워 있네요.
제시간에 맞춰 온 이선생님을 다시 만나 핸드폰을 받고선 점심식사를 위해 "셀시우스"로 올라갔습니다.
원래는 뽀삐스1의 "스테이크 하우스"로 갈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굵어진 비로 인해 장소를 바꾼 것이지요.
비오는 날의 "셀시우스"는 평일의 한가로움 속에 고요함을 넘어서 적막하기까지 한 분위기입니다.
늘 손님으로 가득했던 곳이 날씨처럼 차분해진 것이지요.
안쪽 통로로 연결된 바깥 발코니에 앉아 비 내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점심도 나름 운치가 있었습니다만 쇼핑몰과
해변을 누비던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
서두를 일이 없는 식사를 천천히 마치는 동안 비는 그쳤습니다.
처음엔 저희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옆자리엔 신혼여행 커플이, 그리고 실내 중앙엔 한무리의 KAL 여승무원들이 차지한
"셀시우스"는 어느새 한국인 전용(?)카페처럼 변해있더군요.
식후의 산책은 해변길을 따라 뽀삐스의 거리까지 걸어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발리에서는 저또한 서울나들이 온 촌놈에 다름없지만 함께 동행한 분은 그야말로 까막눈인지라 인파와 차들이 혼재하는
도로변보다 고즈넉한 바닷길이 더 좋을 듯 싶었거든요.
번잡한 꾸따를 찾은 것도 모처럼이지만 바닷길은 더 오랫만이여서도 그랬습니다.
합판 쪼가리 몇 장을 둘러치고 공사중인 "블랙캐년"의 을씨년스런 모습을 뒤로하고 바다로 내려갑니다.
분위기 좋은 "오션스27"과 "보드워크"는 역시 깔끔한 모습 그대로이고 몇 발자욱 더 가니 큼지막한 대형거북 상이 보입니다.
예전에 없던 그 거북 상 앞에서 젊은 선남선녀들의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한참이나 부러운 듯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앞 백사장에서는 평소같으면 서핑손님을 호객하느라 분주했을 현지인 몇이 비때문에 공친 날임에도
무심하게 체스를 두고 있더군요.
언제나처럼 기쁨의 옆에서 스쳐지나기 쉬운 무심한 슬픔에도 눈길을 주어봅니다.
하드락호텔이 보이는 곳에서 바닷길을 빠져나오니 바로 코 앞에 낯선 건물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복합 콘도미니엄 스타일의 "꾸따 벡스"라는 건물인데 주변과는 달리 한껏 멋을 부렸지만 왠지 부조화스러워 보입니다.
그런 제 생각을 읽었는지 동행인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건물이란 사람처럼 저혼자 튀려고하면 아무리 잘 지어놔도 외롭습니다. 조화가 우선인 것이지요.
게다가 여기저기 멋을 부리긴했지만 공간의 효용성 측면에서는 오히려 불필요한 낭비처럼 보이는 건물이네요."
건축의 전문가인 분인데 뜻밖에도 생각은 아마츄어 수준인 저와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달랑 보드 한장 들고서 웃통을 벗어재낀 젊음들이 누비는 거리인데 그게 무슨 대수겠습니까 ?
뜬금없는 짧은 대화는 접어두고 사람구경,가게구경을 위해 뽀삐스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봅니다.
비 온 뒤라서인지 골목 안의 번잡도 다른 때보단 훨씬 덜 합니다.
오랫만에 온 저도 저이지만 모처럼 사람사는 냄새가 진한 골목의 정경에 함께 간 분이 더 좋아하더군요.
"스웰"이나 "뱀부코너"처럼 허름하지만 만만한 가격의 음식점을 알려주기도 하고 이 골목과 맞닿은 여러 갈래의 길도
안내해드리는 동안 연신 사방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오늘은 못들렀지만 나중에 혼자라도 한 번 와보시겠다길래 "스테이크 하우스"를 찾았습니다.
처음엔 그 자리에 있던 건물이 사라지고 포크레인으로 작업하는 공사장으로 바뀌어 일순 당황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예전보다 훨씬 깔끔하게 맞은편으로 옮겨가 있더군요.
헌데 무심코 바라보다 서툴지만 제법 공을 들인 태극기를 발견했습니다.
물론 마케팅의 일환이겠지만 얼마나 많은 분들이 찾아오길래 태극기와 한글 안내판이 자리를 잡았을까요 ?
이 골목은 그야말로 서양친구들이 바글바글한 곳인데 말입니다.
비록 태극의 곡선은 엉터리지만 뽀삐스의 허름한 골목에서 만난 그 모양새는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순간 제 마음의 푸른 하늘에도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입니다.
-
초딩수준보단 훨씬 낫지요.
사실 다들 그려봤지만
막상 태극기를 그리려면 만만치가 않찮아요 ?
일장기나
인도네시아기 처럼
단순하고 심플한 게 아니라
그 안에 우주 삼라만상이 다 들어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현지 사시는데
스테이크 하우스가 갈만할까요 ?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나
호기심 많은 관광객이거나
육식을 좋아해서 질보다 양을 선호하시는 게 아니라면 ... -
그러게요......저희집에도 맛난 스테이크가 있는데말이죠....ㅎㅎ
사실 어딘지도 모른답니다......
그래도 물어물어 가보렵니다
한국인 여행객들이 선호하는곳이라면 어디든 coba해보고싶네요.........^&^
이거 혹시 향수병일까요??????
우리 어릴땐 태극기 그리는 시험치고 그랬었는데 요즘도 그런거 하나요?
정원이 한테 한번 물어봐주세요.....ㅎㅎ -
정말 왠만한 직장인들은 휴가라는게 한번 내기가 참 어려운 일인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선 저도 조금은 여유있는 일을 하는지라 많은 시간을 내긴 쉽진않지만
쉬고싶을때 쉴수있고 좋아하는 발리를 계획한 날에 맞춰 올수있다는게 무척
행복하고 감사한일이랍니다.
꾸따 스테이크하우스가 Ap Inn Apt. 1층으로 이전하고 굉장히 깔끔해졌죠 ~~
한글 간판은 8월까지도 못봤는데 ~~
그만큼 한국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는 증거겠지요 ^^
정원이 책을 구입못하셨다니 정원이가 많이 아쉬워하겠네요.
책욕심이 많나봐요 20권씩이나 ㅎㅎㅎ -
저거 어떤 한국분이 그려 주신ㄱㅓ에요 ^^ 그분 블로그 에서 봤어요 ㅎㅎ
근데 가격은 맨날 주인장이 바꾸는 모양.. 분명 보름전엔 95000루피 였는데~~
뭐.. 주인 마음 이겠죠 ^^ -
향수병 맞는 것 같네요.
그래도 그곳에 계시거나
찾아오는 분들도
많이 계신 것 같던데...
5학년이 된 정원이는
3학년때쯤에 한 번 그려봤다는데
이것저것 물어보니
안 그려본 놈이랑 별 차이가 없네요. 끌끌 ... -
책욕심은
아마도
부전자전일겁니다.
제가 잘 읽지는 않아도
모아놓고 버리지 않는 성격이라...
녀석이 서운해하지는 않았어요.
그날 당장 즈그 엄마에게 연락해서
한국에서 구해놓으라고 했으니까요. -
ㅋㅋㅋ
날마다 가격이 변하는 환율처럼
그 집도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바뀌는 모양이네요.
그래서 손님이 별로 안 보였나 .... -
이 집은 싯가 의 개념을 도입했나 보네요
-
재미로 쓰다보니
약간 Anti 분위기로 바뀌는 것 같네요. ㅋㅋㅋ
시가는 아니고
메뉴판을 비치해놓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날 그날의 스페샬 메뉴만
좀 변동이 있는 듯 싶네요.
어쨋거나
저렴한 가격에 양도 많아서
고기생각이 간절할 때
한 번쯤은 먹을만 합니다.
스테이크하우스라........ 한번 가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