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아빠
Lv.17
2011.11.16 12:18
추천:7 댓글:18 조회:3,946
여름이 문을 닫을 때까지
나는 바다에 가지 못했다.
흐린 날에는
홀로 목로주점에 앉아
비를 기다리며 술을 마셨다.
막상 바다로 간다해도
나는 아직 바람의 잠언을
알아듣지 못한다.
바다는
허무의 무덤이다.
진실은 아름답지만
왜 언제나 해명되지 않은 채로
상처를 남기는지
바다는 말해주지 않는다.
빌어먹을 낭만이여
한 잔의 술이
한 잔의 하늘이 되는 줄을
나는 몰랐다.
젊은 날에는
가끔씩 술잔속에
파도가 일어서고
나는 어두운 골목
똥물까지 토한 채 잠이 들었다. (중략)
사랑은
바다에 가도 만날 수 없고
거리를 방황해도 만날 수 없다.
단지 고개를 돌리면
아우성치며 달려드는
시간의 발굽소리 (중략)
흐린 날에는
목로주점에 앉아
비를 기다리며 술을 마셨다.
인생은
비어있음으로
더욱 아름다워지는
줄도 모르면서 ......... - 이 외수의 "비를 기다리며 술을 마셨다" -
시인은 여름이 문을 닫을 때까지 바다에 가지 못했노라고 투덜거렸지만 저는 운좋게도 여름이 문을 닫은 한참 뒤에도
사방이 바다인 섬에 와있습니다.
어제의 꾸따 나들이가 즐거웠는지 이 선생님은 헤어지면서 넌지시 제의를 해오더군요.
특별한 스케쥴이 없다면 저와 동행을 해서 우붓이며 근사한 바다를 만나고 싶다고...
휴식에 무슨 계획이 포함된 것도 아니고해서 흔쾌히 그러마고 했는데 어젯밤엔 은근한 걱정이 앞섰습니다.
저와 달리 뭘 좋아하고 어떤 것에 감흥을 얻는지를 잘 모르니까 아무데나 갈 수는 없는 노릇이더라구요.
물론 일때문에 오가는 분인지라 무엇을 보아도 다 처음일테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좋은 하루"를 선사하고 싶은
욕심도 나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어젯밤의 괜한 걱정과 욕심도 아침이 되니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냥 빡빡하지 않게 제가 좋아하는 곳을 모시고 다니기로...
아주 유별나지 않다면 사람은 다 똑같은 법 아니겠습니까 ? 제가 좋으면 남도 그러할테지요.
그러한 마음의 여유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본 화창하고 맑은 하늘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은 숙소를 나서기도 전부터 좋은 예감이 듭니다.
부지런한 청년서퍼들이 일찌감치 숙소를 빠져나가고 약속한 시간이 되자 와얀과 이 선생님이 도착했습니다.
와얀녀석은 이제 특유의 성실함이 진가를 발하는지 손님맞기에 무척 바쁜 모양이더군요.
얼핏 본 녀석의 다이어리엔 달랑 하루만 빼고 모두 예약이 잡혀 있었습니다.
사실 오늘의 여정도 바쁘면 다른 친구를 보내달라고 했는데 말은 안해도 녀석이 눈치껏 제 스케쥴을 조정한 것 같아
저으기 미안하네요.
헌데 사누르를 향하는 바이파스에 들어서자 전에는 볼 수 없던 차들이 눈에 띕니다.
"저건 무슨 차니 ? " "새로 운행하는 버스예요."
맞습니다. 언젠가 발리서프를 통해 소개된 SARBAGITA라는 새로운 버스의 실체입니다.
어른 3500Rp, 학생 2500Rp라는 저렴한 요금이지만 버스는 무척 쾌적해 보입니다.
지금은 고작 2개의 노선(남북구간)으로 운행중이라지만 점차 다양한 노선을 계획중인만큼 저처럼 대중교통을 선호하는
사람에겐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아직 현지인들은 많이 이용하지 않으니만큼 접이식 자전거라도 싣고 이용하면 새로운 여행루트를 만들 수도 있겠구요.
늘 똑같은 모습이 아닌 발리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또다른 상징입니다.
하고 많은 바다를 두고서 왜 또 쨘디다사냐고 물으면 마땅히 대답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과히 사람과 차들로 붐비지 않는 조용함이 있고 조망하는 바다도 저를 압도하지 않는 적당한 넉넉함이 있어서인데
그리 알맞은 답변은 못되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한적한 여유만큼은 햇살처럼 충만한 곳이지요.
지난 여름보다 연못의 수련잎은 색이 바래지고 인적또한 그때보다 더 찾기가 어렵지만 바다의 자태는 그대로였습니다.
그러고보니 쨘디다사는 혼자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여럿이라도 그다지 많은 대화가 필요하지 않은 곳입니다.
함께 한 사람보단 바다와 나눈 이야기들이 더 기억에 또렷이 남기 때문이지요.
바다를 바라보며 이심전심이 가능한 장소,,, 동행인 이 선생님은 흡족해 보입니다.
사실 제가 오늘 예정했던 코스는 쨘디다사와 띠르따 강가, 따만아윤과 우붓 코스였습니다.
하루 일정으론 과하지 않겠다 싶었는데 출발을 늦게한데다 쨘디다사에서 너무 느긋하게 여유를 부린 탓인지
원래의 코스를 다 돌아보려면 어느새 빠듯한 일정이 되어버렸습니다.
계획이란 늘 수정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에 투철한 저는 과감하게 중간생략을 시도했지요.
그런 저에게 와얀이 넌지시 한 마디를 던져옵니다.
"그러면 가까운 꿀룽꿍의 까르띠고사로 갈까요?"
올 때마다 "오늘 못보면 다음에 보고" 식의 제 스타일을 잘 아는 와얀인지라 척척 죽이 잘 맞습니다.
그래서 코스를 바꿔 꿩 대신 닭으로 선택한 곳이 녀석의 말마따나 꿀룽꿍의 재판소입니다.
16C 고왕국 시절의 법원인 셈인데 현재의 법원과 교도소 시설도 인근에 자리잡고 있더군요.
까르띠고사는 널리 알려진 관광지가 아니라서인지 서양인 몇몇만 보이는 한가로운 곳이었습니다.
이채로운 건 재판정이 위치한 건물의 천정과 벽에는 옛 힌두의 법전인 마누의 내용이 그림으로 형상화 되어있어
"너는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으니 저 그림의 형벌에 해당한다."라는 식의 판결을 내렸다는군요.
당시를 생각하면 나름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또다른 건물엔 힌두의 서사시 라마야나의 내용을 그림으로 풀어놓았으니 여기도 어린이가 딸린 관광객이라면
한번쯤 고려해 볼만한 곳으로 보입니다.
안쪽으론 작은 박물관 하나가 들어앉아 있는데 규모는 작지만 이 지방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엿볼 수도 있구요.
정원에선 결혼을 앞둔 발리의 커플이 카메라를 디밀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포즈를 취해줍니다.
정말 좋을 때지요.
그때, 서쪽하늘에선 다시 먹장구름떼가 몰려오더니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황급히 차에 올라타 우붓으로 출발하지만 비는 그치기는 커녕 점점 굵고 힘차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우붓의 그 많은 볼거리들을 쏟아지는 장대비로 인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잘란 데위시타의 운동장이 내다보이는 커피점에 한동안 앉아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차를 타고서가 아니라 걸어야만 볼 수 있는 제대로 된 우붓의 매력을 오늘은 접하기가 어려울 듯 싶어
평상시에는 가지도 않던 왕궁만 둘러보았습니다.
그때, 멀리서 타악기의 소리와 함께 일군의 행렬이 나타납니다.
비를 피하려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관광객들과 엉기던 차량의 행렬도 일순 멈춰 섰습니다.
비는 드세게 퍼부어도 세레모니의 긴 줄은 한 점 흐트러짐이 없이 묵묵한 행진을 계속합니다.
우기의 거센 비도 종교적인 열정은 어찌 할 수가 없나 봅니다.
그 덕분에 저는 또다른 우붓의 얼굴을 만날 수 있었구요.
돌아가는 길에는 꼬마녀석들의 자전거 행렬이 좁은 도로 위에서 경주처럼 이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비에 다 젖어도 연신 싱글벙글하는 녀석들은 그래도 가방은 고이 간수하려는 듯 모두 상의 안으로 넣어 메었습니다.
하지만 다들 집에 도착하면 엄마의 불호령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 비가 좀 그치면 오지. 미련곰딴지같이... "
아주 오래 전의 어느 여름날, 저도 그러했으니까요.
밥이나 먹고 들어가자는 제 말에 와얀은 조심스레 되물어 왔습니다.
"뭘로 드실건데요 ?" "평소에 네가 잘 먹는 거..."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내 다시 물어옵니다.
"쇠고기로 된 소또 잘 드세요 ?" "없어서 못 먹지. 이 사람아."
그래서 와얀을 따라 르논의 와룽으로 소또 사피를 먹으러 갔습니다.
테이크 아웃을 해가는 오토바이의 행렬이 줄곧 이어지는 걸 보면 제법 하는 집인 것 같더군요.
커다란 솥에는 푸짐하게 든 박소도 꽤나 먹음직스럽게 보입니다.
오늘처럼 비오는 날에는 얼큰한 국물에 소주 한 잔 생각이 간절한데 이윽고 내어온 소또사피는 정말...
우리나라의 시골장터 쇠고기국밥, 딱 그 맛이었습니다.
크고 둥글게 썰어넣은 무우는 국물에 시원하게 배어들었고, 쇠고기는 물론이고 천엽에 도가니까지 모든 부위가
푸짐하게 들어있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처음엔 9천Rp짜리 현지와룽이니 그냥 요기나 할 요량이었는데 국물 한 방울 남기지않고 다 비워냈으니
현지인 몇 녀석은 계속 저를 힐끔거리며 쳐다보더군요.
함께 간 이 선생님은 아예 박소도 먹고싶다며 일어서면서 테이크 아웃을 하십니다.
비오는 날에 딱 맞아떨어지는 저녁식사가 발리에도 있었습니다.
-
맛 없는 것도 올려놓았습니다.
지난 여름, 사누르에서 겁없이 시도한
5천Rp짜리 나시고랭은
무슨 불량식품처럼 보이더라구요.
좋은 건 나누기 위해
나쁜 건 피해 가시라고
종종 먹거리들의 사진을
올리곤 합니다.
와얀 스위리아가 처음 저를 만났을 때는
"사장님"이라고 부르더군요.
저는 한 번도 사장이란 걸 해 본 적이
없다고 하니까 이 친구, 한참을 고민하더니
그때부터 "형님"이라고 부르네요. -
그렇다면 우리가(?) 만난적이 있을듯합니다.....ㅋㅋ
지난 7월쯤에 울루와뚜사원에서 점잖은손님 모시고온 와얀이라는 친절한 가이드가 사진을 찍어준적이 있는데요^&^
그 손님께 형님이라 부르면서 우붓으로 가신다고 하시더라구요.....남자분 혼자셨는데.....저희는 여자 두명이였구요^^
만약 맞다면 다시한번 반갑습니다^^ -
malimali1234님의 글을 읽고서
순간 당황했습니다.
정말 만나뵈었나 싶어서...
헌데 아무리 되짚어 보아도
아닌 것 같더라구요.
첫번째, 지난 7월 혼자 발리에 있었지만 울루와뚜는 간 적이 없고
두번째, 제가 점잖은 인상이 아닌데다가 (이건 좀 보는 분마다 견해가 다르겠지만)
세번째, 와얀 역시 드러내놓고 친절한 이미지를 주는 인상이 아니라서
종합해 본 결과
다른 분을 저로 아셨던 것 같습니다.
사족으로 첨부하자면
가이드 와얀이 아닌
예전 꼬끼의 와얀은
저를 진짜 형님처럼 대한답니다.(이 부분은 별로 드러내기가 뭣한데...) -
아~ 아니시구나......
7월에 뵌분은 깡 마르시고 웃음이 많은분 같으셨습니다....
자기 가이드가 우리쪽을 챙겨주고 사원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데(누구의 가이드인지 모를만큼) 그냥 뒤에서 미소만 지으시며 오시더라구요......사원의 반바퀴정도 같이 걸었나봐요...뚝떨어져서.....ㅋㅋㅋ..나가는 출구가 달라 정중한 한국식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 얼굴이 기억은 안나지만~
왠지 멋진글을 올리시는 제 상상속의 정원이아빠님과 매치가 되는듯해서......
실례를 한것같아 죄송합니다....허허
예전 꼬끼의 와얀님은 뉘신지 잘모르는데요......
-예전 꼬끼의 와얀은
저를 진짜 형님처럼 대한답니다.(이 부분은 별로 드러내기가 뭣한데...)-
뜻을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네요.......ㅎㅎ...제가 멍청한가요? -
까르띠고사가 힌두식 재판소였군요 .
그려진 그림들이 사찰에 있는 대웅전 벽에 그려진 탱화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말보다는 그림으로 설명하는게 이해하기쉬울것도 같네요
이번 여행은 정말 비와 함께 하셨군요 ^^
갑자기 몇년전 이병헌 기무라타쿠야 조쉬하트넷이 주연한 영화
" 나는 비와함께 간다 "라는 영화가 막 떠오르네요 ㅎㅎ
소또 사피 저도 무지 좋아해요 ~~ 혼자서 두그릇먹었더니 주변 사람들이
신기하게 보길래 한그릇 더먹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았거든요 ~
한솥가득 있는 박소도 먹음직스럽구요
이 밤에 참 ~~~~ 침이 마구마구 고입니다 ㅠㅠ -
아주 마른 편은 아니지만 웃음이 많은 건 맞구요.
그러고보면 저랑 좀 비슷하게 생긴 분을 뵌 모양인데...
발리가 가까운 곳은 아니지만
오다가다보면 정말 우연처럼
뵐 날도 있겠네요.
꼬끼의 와얀 이야기는
그 친구도 발리에 사는 한인이라 거론한건데
하도 본 지가 오래인
제가 아끼는 후배인지라
행여라도 알까봐
꺼낸 말이었고
별 뜻은 없습니다. -
액션에 종교적인 메시지와 철학을 잔뜩 담아서
관객들을 거북스럽게 만든 그 영화에도
비가 줄창 왔던가요 ?
머리가 나쁜 탓인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참, 한 가지 여쭤볼 게 있는데
소또 사피, 이거 우리 나라에서 비슷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레시피 알고 계시나요 ? -
와얀이란분이 한국분이시구나.......ㅎ~
전 우물안 개구리라 발리사시는 한국분들 잘몰라서요.............^&^
좋은하루 보내세요
오늘 발리는 어깨가 따갑도록 덥습니다 -
줄구장창은 아니지만 비가오긴 왔었죠 ~
영화내용은 참 ... 저도 이해가 안된 정말 거북스러운 ...
애석하게 소또 사피 레시피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요리는 해보지않아서요 ^^;;
하지만 언급하신것처럼 쇠고기 무국이란 표현이 적절하지싶어요 ~
요리는 못해도 먹기는 기가막히게 잘하거든요 ㅎㅎ
혹시라도 알게 된다면 제일 먼저 알려드릴께요 ~~ -
정원아빠 오랫만이네요 . 글 잘 읽어여 ^^
-
정원이아빠님의 글은 철학 문학 예술 그리고 해학이 함께 녹아 있어서 저의 메마른 가슴에 생수를 부어줍니다. 늘 고맙게 잘 읽고 있습니다.
-
저도 만드는 것보단
먹는 쪽이 더 발달해서...
헌데 이 소또 사피라는 놈이
중독성과 그리움을 내포하고 있네요.
오늘처럼
추적추적 비가 오고
으슬으슬 추운 날에는
생각이 간절한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날 와룽에서 제조법을
물어볼 걸 그랬어요. -
오랫만입니다.
예전엔 발리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쳤는데...
요즘도 자주 가시나요 ? -
겸손도 지나치면 실례이고
칭찬도 지나치면 반대로 알아듣게 되는데
다금바리님의 칭찬이라면
몸 둘 바는 없지만 감사하네요.
평소엔
드나들면서 얼굴도 안 보여드리다가
이번엔 돌아오기 전,
입장 곤란한 청탁전화(?)나 드렸으니
더더욱 송구스럽구...
어쨋거나
늘상 몸 건강하시고
여행자들의 든든하고 미더운 존재로
자리매김 하시길 바랍니다. -
소또사삐가 어딧을까요? 르논이면....
엊그제 르논 근처로 이사를 했는데 위치만 알믄 한번 먹어볼텐데요 ^^; -
그 동네 사시는 분이라니 부럽습니다.
와룽 소또 끄뚯 이란 간판이 있으니 찾으시기가 쉬울텐데....
지점도 두 어곳 된다고 들었거든요.(현지인들 사이에는 유명한 모양이예요.)
정확한 주소는 잘 모르겠지만 비오는 날 밤에 간지라)
지금 한창 증축중인 덴파사 성당에서 르논 대로 큰 길을 따라
내려가서 좌측이었던 걸로 기억이 나네요.(확실치는 않습니다.)
부디 찾아 가실 수 있기를... -
쪼오~기 배가 언뜻 보면 소금쟁이 같은 생각도 드네요..ㅋㅋ
어떻게 정원이아빠님이 올려놓으신 음식은 다 맛있어보이나 모르겠네요...ㅎㅎ
질문있는데요.....혹시 와얀이라는 가이드가 정원부께 형님이라 호칭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