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아빠
Lv.17
2011.12.01 07:58
추천:3 댓글:6 조회:3,842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숲에서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 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 것 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우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까지 내 할 일은
머리 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
눈사람 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 윤 도현의 노래를 닮은 안 도현 시인의 "겨울 숲에서" -
대설주의보가 내린 강원 산간지방에는 때이른 폭설이 내렸습니다.
미시령 길도 한계령 길도 눈으로 꽁꽁 묶이고 꼼짝달싹 못하는 차와 사람들을 보면서 12월의 첫 날을 시작합니다.
그러고보면 제아무리 이상기온이라 하더라도 계절의 흐름과 바뀜은 도도한 강물처럼 여전합니다.
발리에서처럼 우기와 건기로만 주고받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극에서 극을 오가는 우리의 날씨는 그래서 심성조차
참고, 기다리며, 감사하게끔 오랜 세월을 두고 적응시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땅에서 늘 살아가는 우리들이야 잊고 지내지만 봄에서 겨울까지 순환하는 계절을 갖는다는 것은 사실 축복입니다.
역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다이나믹한 자연의 흐름을 보면서 삶의 지혜를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따뜻한 곳의
사람들보단 훨씬 더 주어졌던 까닭이지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저는 겨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추운 날씨로 움츠러들어서가 아니라 아직도 가난을 등짐처럼 지고 살아가는 보이지 않는 이웃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겨울은 순백의 눈으로 상징되는 낭만은 고사하고 매서운 추위와 혹한으로 인해 일거리와 잠자리를 고민해야하는
시련의 시간일테지요.
그래서 저는 이제 막 찾아온 겨울의 문턱에서 춥지않은 짧은 겨울을 소망합니다.
아울러 거리로는 저 멀리 발리쯤에 자리잡고 있을 봄이 해를 넘어 빨리 찾아오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이라지만 저는 변함없이 거리구경엘 나섰습니다.
숙소를 걸어나오려는데 서진이아빠가 묻습니다. "오늘은 어디로 가세요 ?"
딱히 어딜 정해놓고 가려는 건 아니었지만 가까운 곳에 아트마켓이 있다길래 잘란 빠드마로 간다고 대답했더니 거기까지
태워다 주겠다네요.
손님들의 아침을 챙겨주고 세 식구가 집으로 들어가는 참이라 사양했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차를 얻어타고 르기안 아트마켓의 이정표가 보이는 잘란 빠드마의 거리에 내렸습니다.
지도에도 잘 나오질 않는 곳이라 큰 기대도 없었지만 와서 보니 역시 생각대로 작은 골목 안 노점과 천막가게의 연속입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서양인인지라 오히려 제가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거리에서 길 위의 아이들을 만납니다.
부모를 따라 구걸에 나선 아이들이 잠시 길바닥에 앉아 풍선놀이를 하며 쉬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디미니 환하게 웃으며 냉큼 포즈를 취해주는데 아뿔사,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녀석들은 계속 저를 따라오며 "머니, 머니"를 외쳐댔으니까요.
5천루피를 쥐어 줬는데도 몇 놈은 더 달라고 아우성이라 결국 지나가던 현지인이 고함을 치자 그때서야 부리나케
달아납니다.
녀석들이 달아나는 골목길 입구의 벽엔 색색의 도마뱀이며 온갖 동물들이 알록달록합니다.
언젠가는 녀석들이 지닌 저마다의 꿈들도 저렇게 개성있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요 ?
골목길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러시안으로 보이는 단체관광객들과 시장상인들의 흥정을 지켜보다보니 어느새 길의 끝은 또다른 길과 만납니다.
잘란 멜라스티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도로입니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의 번잡함이 싫어서 바다로 가는 길을 걷다보니 한 수공예품점 앞에서 주인장 할아버지가 손주를
위해 연주하는 타악기소리가 들립니다.
햇살이 잘게잘게 부서지는 바다를 앞에 두고 단 한 명의 청중을 위한 연주를...
멈춰선 저도 옆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이제는 둘, 하지만 더 이상의 청중은 오지 않았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집근방의 토산품 부띠끄샵도 들어가 보았습니다.
"Why not" 이라는 도발적인 가게이름 때문에 저절로 발걸음이 따라가지더군요.
가게 안은 아무도 없이 가믈란의 선율만 작게 들리고, 인기척에 2층에서 내려온 주인은 구경만 하겠다는 손님을
사람좋은 미소로 맞이합니다.
뒤를 졸졸 따라다니거나, 입에 거품을 물고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 그런 류의 가게가 아님은 이미 들어가기 전부터
짐작했지만 둘러보는 내내 아무도 없는 적막함은 오히려 제가 미안스러울 지경이라 서둘러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다가 길 건너편을 보니 헤어샵과 스파가 사이좋게 붙어 있습니다.
머리깎는 기술은 아직 우리보다 훨씬 못하니 이건 돌아가서 하기로 미루고 오랫만에 발리마사지나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동네 가게라는 선입견으로 본다면 과히 싸지않은 가격표에 주춤했지만 결과적으론 기우였습니다.
아니 오히려 가격이 과분할 정도로 흡족했더랬습니다.(저는 1시간 11만Rp의 발리니스 마사지를 받았습니다.)
안내되어 들어간 내실은 욕조가 설치된 작지만 깔끔한 룸이었고, 족욕으로 시작해 전신마사지와 이후 플라워베스까지
나름 코스에 충실합니다.(다 마치고 나니 거의 1시간 반이 걸렸네요.)
나오면서 카운터에 계산을 하자 스티커 한 장을 붙인 할인카드를 건네주며 친절한 설명도 덧붙입니다.
10칸으로 된 카드를 다 채우면 한 번 무료, 다섯 칸을 채우면 50% 할인이라는 설명이었지요.
소문까지 낼 정도는 아니지만 숙소 근방에서는 가서 후회하지 않을 만한 곳이라는 게 최종적인 제 판단입니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숙소에는 마침 볼 일을 보고 일찍 돌아온 손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엇그제 투숙한 발리서프의 고수분인 아주머님이셨지요.
짧은 사흘동안이긴 했지만 사실 이분에겐 많은 신세를 졌더랬습니다.
저야 사먹거나 숙소에서 주는대로 먹는 편이지만 역시 대한민국 아줌마들은 뭐가 달라도 달랐습니다.
과일을 사다놓고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생과일 쥬스를 해드시는데, 어쩌다보니 늘상 얻어 먹게 되었으니까요.
미안한 마음에 저녁식사나 함께 하자고 청했더니 흔쾌히 그러자네요.
해서 느닷없이 계획에도 없던 저녁식사를 하러 나선 곳이 "La place"였습니다.
오전에 거닐었던 잘란 멜라스티에 자리잡은 식당인데 인테리어가 인상깊었던 곳이라 가보기로 한 것이지요.
모든 식탁에 일일이 공을 들여 파낸 것도 그렇지만 식탁의 상판부터 하단까지 통으로 된 몸체를 지닌 것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헌데 들어서면서 자세히보니 바깥 테라스며 안쪽 모두 바닥은 모래로 깔아놓았습니다.
바다가 가까운 탓이라 여겼지만 흔한 발상은 아니었지요.
카리브 풍의 초록색 스트라이프를 유니폼으로 갖춰입은 아가씨들이 주문을 받는데, 이 대목이 조금 아쉽습니다.
아리따운 발리니스인지라 다들 얼굴값을 하는지 서빙매너는 영 아니더라구요.
꼭 불러야 오고(그것도 한번에가 아니라 몇 번을 부른 끝에) 뭘 부탁하면 없다고 하기가 일쑤고...
하지만 음식의 맛이나 색다른 인테리어는 한 번쯤 가 볼 만한 곳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일찍 돌아오려던 생각은 저녁을 먹으면서 바뀌게 되었었습니다.
한 마디로 죽이 맞았던 게지요.
그렇다고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아저씨와 아줌마의 그렇고 그런 대화로 상상력을 발휘하면 곤란합니다.
저보다 고수임에 틀림없는 해박한 지식과 그보다 더 놀라운 외국어 실력을 지닌 아줌마와 나눈 대화는 아이들의
교육이며 시시콜콜한 사람사는 이야기였습니다.
헌데 이분 왈 "저녁을 사셨으니 제가 2차를 살게요. 제가 원래 공짜는 체질적으로 못받는 성격이라..."고 하네요.
해서 자리를 옮겨 간 곳이 빈땅 슈퍼 앞 사거리에 자리잡은 허름한 펍입니다.
밤 시간임에도 손님은 한 테이블 밖에 없어 조용한데 오히려 떨어진 부스러기라도 얻어 먹으려는 강아지들이
훨씬 더 많은 곳이더군요.
빈땅을 비워내는 속도도 대한민국 아줌마가 저보다 한 수 위입니다.
그러더니 이내 옆자리에 앉은 현지인녀석도 합석을 시키시네요.
끄뜻이란 이름을 가진 작은 호텔의 스텝을 보는 녀석인데 이 친구 또한 주저없이 냉큼 자리를 옮겨 앉습니다.
때론 영어로 때론 현지어로 저보다 훨씬 유창하게 이야기를 주도해나가는 아줌마를 보며 녀석은 몹시 놀라는 눈치입니다.
녀석 또한 처음엔 우리를 일본인인줄 알았다더군요.
"일본사람은 우리만큼 말을 못하지." 제 말에 녀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확실한 동의를 표시합니다.
느즈막히 일어설 시간이 되자 또다시 비가 내립니다.
그러자 끄뜻이 나중에 꼭 다시 만나 뵙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쏜살같이 달려나가더니 택시를 잡아오더군요.
밥보다 빈땅으로 배를 채운 저녁식사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니 서진이네 식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냥 들어들 가시지..."
"얼굴은 보고 가야지요. 다음엔 저희 집에 안 묵더라도 꼭 다시 오시구요."
마지막 날이면 늘 맞이하게 되는 짧은 만남 긴 이별의 익숙한 장면입니다.
아니 이제는 그 간격이 길다고 느껴지지 않는 또다른 만남을 위한 예고라고 할까요 ?
그래서 저는 혼잣말처럼 다시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To be continued , I will be back soon."
-
저도 빨리 아윌백 하고 싶어욬ㅋㅋㅋㅋ
-
조만간 가신다죠 ?
제 순서는 이제 끝났고
다음번 글은 zeepmam님 차례네요.
추운 계절을 견뎌낼
그 곳의 이야기...
기대하겠습니다. -
그러게요.
kufabal 님도
다시 가실 때가 된 것 같은데...
다녀올 때마다
들려주는 새롭고 풍성한 소식이
제겐 제일 유용한 정보더라구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발리에선 소심한 저도 어쩐지 더 오픈마인드가 되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오늘 엄청 춥네요..매운 겨울날씨에 몸서리처집니다...허허 -
가고싶네요....조만간 가족과함께 ㅠㅠ
반전의 묘미까지 주시고 ㅎㅎㅎㅎ
재밌게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