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붓시장 앞쪽에는 우붓왕궁이 있었는데 정식 명칭은 뿌리 사렌 아궁이다. 16세기에 지어졌고 지금도 후손이 살고 있다는 왕궁. 사실 왕궁이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지만 화려한 색과 오밀조밀하게 꾸며진 정원과 건물과 석상들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소박한 규모의 옛 궁전으로 일부 방갈로에서는 숙소영업도 하고 있으며, 매일 밤 레공댄스, 바롱댄스 등의 전통무용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저녁까지 이곳에서 머물렀으면 공연을 한번 보았으면 좋았을텐데 아직은 공연보다는 봐야 할 것이 더 많아 공연관람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발리인들은 대부분 힌두교를 믿고 있다. 한 때 인도네시아의 종교는 힌두교가 대부분을 차지한 적도 있었지만 이슬람 세력의 성장과 함께 많이 사라졌고 발리만이 힌두교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15세기 자바의 마자빠힛 왕조가 몰락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발리로 피난처를 찾아 탈출하였고 이때부터 지금과 같은 발리 힌두교가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때 들어온 힌두교는 발리인들이 원래 갖고 있던 물, 산, 나무에 존재하는 영혼들 같은 자연신들에 대한 고대의 믿음들과 함께 결합하여 오늘날의 힌두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붓왕궁을 비롯해서 발리의 어느 곳을 가던 힌두교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왕이 살던 곳이라지만 그리 화려한 편은 아니다. 작고 잘 정돈된 정원에 있는 아름다운 건물에 작은 문을 통해 여기 저기를 다닐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출입이 금지된 문들이 여러 곳에 있었다. 아마 그 안쪽으로 왕조의 후손들이 생활하고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데 문을 열어 볼수가 없으니 그 너머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알 수는 없다. 이 왕조의 후손들이 발리에서 가장 부자라는 뉴스를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데 정확한 내용은 아니다. 왕궁답게 발리 전통 양식으로 지어져 있고, 주변에는 수호신 조각상과 이끼가 끼어있는 석상이 고풍스러워 보였다.
우붓왕궁 앞에 있는 도로가 이곳의 중심도로인 잘란 라야 우붓(JL Raya Ubud)이다. 일부 구간은 아스팔트가 아닌 보도블럭이나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왕궁정문을 배경을 사진을 찍는 순간에 차량이 지나가버려 사진이 엉망이 되었지만 더운 날씨에 또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기 싫어서 그냥 통과다.
우붓 왕궁을 둘러 보고 다음으로 방문한 네카 미술관(Neka Art Museum)은 개인 수집가 네카씨에 의해 설립된 미술관이다. 네카씨는 발리 회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온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미술관은 1982년 공식 오픈했다. 총 7개의 전시관에 다양한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는 네카 뮤지엄은 발리 회화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각각의 전시관은 다른 건물이긴 하지만 서로 가깝게 붙어있어서 돌아다니는데 힘이 들지는 않으며, 동선을 따라 관람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1 전시관은 발리 회화의 역사를 주제로 하고 있다. 발리의 가장 오래된 고전 회화부터 시간의 순서대로 발리의 회화를 조명하고 있다. 그 이후로 만나는 각 전시관은 각 룸별로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
미술관 전시실 사이 사이로 아주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정원이 아주 잘 꾸며져 있다. 외부 조경을 해 놓은 것이 미술관과 너무 어울리게 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마 미술관에서와는 달리 후레쉬를 터뜨리지 않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네카 미술관에서 본 그림중 가장 맘에 들었던 사진을 배경으로 한장 찍었다. 제목은 '정원의 두여인'. 옛날 발리에는 여성들이 토플리스로 생활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림이 그 시대를 반영한다고 보았을 때 토플리스로 생활했음이 틀림없다.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발리의 회화를 살펴보면 토플리스의 그림들이 굉장히 많았다. 이런 류의 그림에 관심을 많이 보이니 속물근성을 드러낸다고 집사람이 비꼬았다.
5 전시관은 현대 인도네시아 회화가 전시되고 있는데 Abdul Aziz(1928-2002)가 그린 '소녀와 소년'의 그림이 전시되고 있다. 이 그림은 원래 따로 그려진 두개의 그림인데 1980년부터 합쳐서 전시되고 있다. 발리의 관광지에서는 이 그림을 베낀 그림도 많았었고, 관광상품에도 많이 인용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그림이다. 관람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이 그림은 후레쉬를 사용하지 않고 한장 찍었다. 그림을 배경으로 집사람도 흔적을 남겼다. 후레쉬를 사용하지 않으면 괜찮을 것이란 자기 변명을 하면서...
미술관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면 매표소 왼편으로 서늘한 바람과 함께 라이스 테라스를 만날 수 있다. 우리가 관람을 마친 시간은 미술관 폐관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인지 관람객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오늘 하루 관광을 다니면서 보니 유물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조금 많았지만 미술관이나 전시관 같은 곳에는 생각보다 여행객이 없었다. 여행을 다니는 목적이 모두 다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 발리 건물의 특징은 천정을 높게 만들어 아래 있는 공간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원리를 사용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의 건물들은 어김없이 천정이 엄청나게 높았다. 이 건물도 천정이 엄청나게 높아서 에어컨이 없음에도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