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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
2005.10.04 12:48 추천:12 댓글:3 조회:2,592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유독 인연이라는 단어와 그 단어가 주는 어감을 좋아하는 내겐
가 본 여행지 중 첫 손에 꼽으라고 하면 단연 발리였다.

그러나 지난 후기에서도 밝힌 적이 있지만 인도네시아 끄트머리 조그만 섬에 불과한 그곳을
처음부터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끈끈하게 덥고 매연과 굉음을 뿜어내는 오토바이, 어수선하고 좁다란 거리,
가는 곳마다 관광객을 봉으로 삼는지 생각보다 비싼 물가와 지나치는 행로를 막아서는
삐끼들 때문에 다른 여타의 관광지처럼 내겐 그저 그런 휴양지로
인식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하던 그곳이 나를 인연이란 매개로 불러들이더니 끝내는 상상못할 사건으로
나와 그 섬을 엮어버리고 말았다.

02년 10월 12일 토요일

정말 되새기고 싶지않았던 그 날의 기억을 굳이 다시 꺼내서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다.
필카로 촬영한 그 당시 몇 장의 사진을 보노라면 - 신비로운 자연환경, 그에 걸 맞는 아름답고
착한 사람들이 사는 땅 - 발리의 기억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나와 비슷한 유형의 인간들이 또 있을지 모르지만 참혹했던 기억마저 그 땅의 아름다움에
굴복해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얼마 전 발리를 사랑하는 지인과의 통화 중, " 발리에선 안 좋았던 기억이 없어요. 좋지않았던
상황이라도 다 이해가 되요" 하는 대목에서  그니와 너무나 일치한다는 걸 깨닫고
그니에 대한 우러름이 더 솟아남을 깨달았다.

얼마 전 가족여행을 발리로 다녀왔다.
올해, 어이 된 일인지 지나치게 발리에 자주 다녀왔다. 그래서인지 이번 9월 여행에서는 매사가
불평불만의 대상이 되었다.

자꾸만 올라가는 물가, 굉음의 오토바이를 대신한 차들로 인해 인내력을 시험하는듯한 트래픽젬,
연달아 생겨나는 빌라들 때문에 점점 위축되는 로컬마을, 서구자본에 지배되는 그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가련해보이는 탓에 왠지모르게 짜증만 일었다.

내가 그리던 발리는, 내가 사랑하던  그 땅의 참모습은  이게, 이게 아닐텐데.... 

마치 날로 성장하여 이제 활짝 필 날을 눈 앞에 둔 꽃봉오리같은  딸을 시샘하는 삐뚠 모정을 가진
어미의 심정이었다는 걸 고백한다.

이제 발리여행은 시일을 띄우고 가리라 생각했다.
좋아하고 아끼는 것일수록 천천히 찬찬히 살피고 접근해야 오래가는, 심술궂은 애정도를 가진
내가 그 땅에 취할 수 있는 태도는 그게 다 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며칠 전에 들린 그 땅의
통곡소리에 깊은 잠을 못 이루고 있다.

가. 고. 싶. 다. 그. 곳. 에.

맛사지샵 스텝들과 수다도 떨고 싶고, 얼토당토않은 흥정으로 상인들과 애교어린  미소도
나누고 싶다.  눈부신 나신의 서퍼들을 한없이 바라보며 그들의 젊음을 시기하고 싶고
날 중국인으로 일본인으로 아는 삐끼들에게 "오랑 코레아"라 대꾸하며 보란듯이 거리를
활보하고 싶다.

이데올로기라는  이젠 잊혀져도 좋을 단어때문에 또 다시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 모든 건  신의 뜻이라고 쓸쓸한 웃음을 지을 그들의 손을, 어깨를 부여잡고 싶다.

신들이 머물다 가는 곳, 발리.....
그들이 그토록 숭배하는 신들에게 더 이상 버림받는 일이 일어나지않기를 극동아시아
조그만 반도의 한 곳에서 빌어본다.


















 

 


http://www.loveintravel.co.kr/
  • profile
    escape 2005.10.04 17:59 추천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2002년에 테러 사건 이후의 상황을 쭉 보아왔던
    저로서는 머리속이 터질듯이 복잡 합니다.
  • hon6996 2005.10.05 01:24 추천
    저도 감사드립니다. 어제 하루 종일 너무나 우울했었거든요. 저도 기원합니다. 발리가 그네들의 수많은 신들의 가호를 받기를......
  • 아빠사진사 2005.10.07 11:16 추천
    처음으로 발리를 다녀왔지만 마니또님의 말이 수긍이 가는군요. 6천루피의 현지 와룽 가격에 놀래지만 15만루피 스테이크를 상대적으로 싸다는 이유로 맛있게 먹으며 우리가 발리 물가를 점점 올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네요. 우리 기준에 미달한다고 해서 저렴한 숙소들을 외면하고픈 나의 모습을 보면 아직 발리를 잘 모르나 봅니다(당연?) 발리에 대한 환상은 광고가 만든 것일뿐 어느곳이든 내가 직접 느끼는 것이 광고보다 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