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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
남편이 10년 근속 기념으로 10일 휴가를 받게 되었다. 어디로 갈까 궁리하다가 딸이 제안하고 나도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발리를 가기로 했다. 근 몇 달 동안 행복한 인터넷 서핑을 했다. daum 카페 ‘발리’ 와 ‘발리지기balizigi.com’, ‘발리서프balisurf.net'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엄청 자상하고 상세한 정보를 만나면서 여행사보다는 자유여행을 결정했고 나도 또한 내 경험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남편, 11살 딸과 10살 아들, 시어머니가 함께 한 여행이었다. 항공권과 호텔 예약, 그리고 현지에서의 관광예약과 차량은 발리지기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의 일정은 아래와 같다.
19일 오후 7시 출발(대한항공 직행)
20일 새벽 2시경 도착. 우붓의 써니블로우 호텔에서 새벽잠을 자고 오전은 우붓 산책-뿌리루키산(PURI LUKISAN) 박물관, 우붓 마켓(시장) 오후는 낀따마니 화산, 브사끼 사원 관람
21일 래프팅과 코끼리 투어 하고 누사두아의 니꼬 발리(호텔) 도착.
22일 오전은 니꼬 호텔 풀, 해변, 패러세일링, 오후에 울루와뚜 사원, 짐바란 저녁 식사
23일 발리하이 크루즈, 마사지, 꾸따 거리
24일 새벽 2시20분 비행기 출발(직행)

19일. 며칠 계속 바빴던 탓에 이날 오전에 환전을 했다. 아이들 점심 먹이고 부엌 정리하느라 계속 바쁘다. 마지막까지 짐을 싸고 3시30분에 드디어 집을 나섰다. 공항버스를 타는 곳까지 가느라 택시를 탔는데 식구도 많고 짐도 꺼내기 힘들어 계속 고! 고! 공항까지 직행했다. 공항버스보다 조금 더 내면 되겠거니 했는데 거의 5만원을 택시비로 지불해야 했다. 너무 빨리 도착한 탓에 아이들은 기다리기 지루한 지 공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힘을 뺀다. 5시에 티켓 받고, 짐 부치고, 출국신고서 쓰고 지루한 수속을 밟고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태은이 필통에서 가위가 나왔다. 아이들 학용품인데도 비행기에 들일 수 없단다. "저거 되게 잘 드는 가윈데, 어휴~~" 딸 아이가 무척 억울해한다. 입국할 때 다시 찾을 방법도 없다니!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 대부분 가족 여행객이었다. 둘이 나란히 창가에 앉히고 난 일부러 통로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았다. 집에서는 앙숙인 남매는 눈물나게 사이가 좋다. 원카드도 하고 젤리를 나누어 먹으며 잘 논다. 남편 왈 '자주 비행기 태워야겠네~~'
준비하느라 틈만 나면 인터넷을 돌며 정보를 모은다고 했지만 사실 아무 것도 정해진 것 은 없다. 설렘 반, 불안 반으로 입국심사를 받는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발리지기에서 마중 나온 현지인 릉하의 차를 타고 우붓의 써니블로우 호텔에 도착했다.
남편과 딸은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항상 여유가 없는 남편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즐거웠다. 방 둘을 예약했는데 마음에 꼭 들게 배정해줬다. 큼직한 방은 시어머니와 아이들 둘이 쓰기에 충분했고 작은 침대 둘이 있는 자그마한 방은 남편과 내가 쓰기에 딱 맞았다. 짐 풀고 씻고 잠자리에 들려니 새벽 4시 벌써 새벽닭이 운다.

20일. 8시 조금 넘어 모두 일어났다. 늦게 잠들었던 것치고는 양호한 편이다. 우리 밖에 손님이 없어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아침을 먹었다. 쥬스, 나시고렝, 과일, 커피 등이었다. 많이 들어봤던 삼발 소스가 맛있었다. 써니 블로우는 우붓 중심가와도 좀 떨어져 있어 한가한 맛이 난다. 새벽부터 닭들이 울고 주변은 시골이다. 병아리를 좋아하는 아들은 아침부터 엄마닭을 따라다니는 병아리를 하염없이 보고 가까이 가자며 손을 이끈다. 크고 작은 방이 5개이고 방 앞으로 정원을 향한 개방된, 우리나라 구조로 따지면 마루가 있고 거기에 의자와 테이블이 있어 시원한 느낌을 준다. 정원을 따라 아담한 수영장이 있고 방 뒷문을 열면 천정이 없는 시원한 욕실이 있다. 일종의 야외 목용탕이다. 검은 자갈로 마무리된 욕조가 참 시원하다. 더운 기후에 썩 어울리는 구조였다. 두껍고 투박한 느낌이 나는 가구와 문도 좋았다. 테이블마다 발리를 상징하는 꽃(깜뿌짜?)을 얹어 놓는 친절도 좋았다. 전체적으로 발리는 무성한 나무와 지천으로 널린 꽃 - 우리는 꽃을 즐기려면 돈이 있어야 하지만 그래서 꽃잎을 띄운 욕조를 한없이 부러워 하지만 발리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돌아가면 접싯물에라도 꽃잎을 띄워봐야겠다 - 나지막한 건물이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중에 니꼬 발리에 갔을 때도 나와 남편의 취향은 써니블로우 쪽이었다. 내가 써니블로우에서 한 달쯤 머물며 박물관을 천천히 둘러보고, 우붓의 수많은 그림과 공예품을 봤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남편은 무심하게 그러란다. 그날이 언제일까..... 애들이 좀 더 크면?

아침을 먹고 프론트에서 서울에서 가져간 우붓의 지도를 꺼내 보이며 여기저기 물어보니 아예 호텔에서 인쇄한 지도를 주며 표시를 해 준다. 그 지도를 들고 발리의 여행을 시작했다. 네카 박물관은 바로 호텔 앞이니까 나중에 갈 수 있다는 판단에 - 결국 못 갔다 - 뿌리루키산(안내 정보에서 우붓에서 제일 유명한 박물관이라 하길래)뮤지움을 목표로 갔다. 근처에 시장도 있고 점심을 예정한 와룽 바비굴링도 있고 해서. 생각보다 길이 멀다. 게다가 비도 오락가락 한다. 가는 길에 구두를 신은 아들은 발이 덥다고 찡찡대더니 가게를 발견하고는 아이스크림을 사달랜다. 여기의 루피는 화폐단위가 너무 커 괜히 비싸게 생각된다. 아이스크림 하나에 4000루피라나. 처음엔 으악~했지만 우리나라 돈으로 500원 정도. 생수 500ml 한 병에 1050루피(약 1달러)에 비하면 비싸긴 비싼 편이다. 생수는 여기가 제일 쌌다. 다른 곳에서는 슈퍼에서도 2000루피, 공항에서는 7000루피까지 받았다. 가게가 엄청 많다. 그림, 공예가 압도적으로 많다. 포장이 파인 곳이 많아 걷기에 위험했지만, 그림그리는 학생과 이야기도 하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도 건넜다. 발리에는 이처럼 포장된 길을 가다가 불쑥불쑥 깊은 원시림의 계곡을 만난다. 화산도 있고 하니 한 때 지진 등으로 땅이 갈라진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드디어 박물관에 도착했다. 어른만 입장료 2만루피를 내었다. 울창한 나무와 연꽃이 핀 연못이 들어 앉아 있어 참 아름답다. 전시장은 두 곳이고 전시된 작품도 얼마되지 않았다. 주로 그림과 목공예였다. 그림은 발리의 신화를 나타낸 것이었다. 그림마다 친절히 영어 설명이 붙어 있어 좋았는데 아이들이 가만히 보게 놔두질 않는다. 나오는 길에 기념엽서를 살랬더니 우리도 잔돈이 없고 가게에도 잔돈이 없어 결국 그냥 왔다. 박물관을 나와 조금 걸어가니 우붓마켙이다. 재래시장이다. 아이들 조리 2켤레 7만루피, 어머니 핸드백(엮은 것인데 야자나무인 듯) 13만 루피를 지불했다. 계산기를 대고 절반 이상은 깎았지만 비싸게 준 느낌이다. 돈을 주니 주인은 돈을 물건 여기저기에 갖다대며 행운을 빈다.(정말 비싸게 준 것 같다)
과일을 사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흥정을 하려했는데 껍질을 막 벗기며 먹으란다. 예전에 홍콩에서 맛있게 먹었던 털털이(탁구공만하고 붉은 빛깔에 잔털이 나 있다), 망고, 망고스틴, 바나나를 샀다. 1kg에 1만 루피. 턱없이 높게 부르는 것을 많이 깎은 것이다. 비가 한참 쏟아진다. 시장을 가로질러 물어서 와룽 바비굴링을 찾아갔다. 친절히 길을 가르쳐주고 경찰은 차를 멈추며 길을 건너가게 했다. 자리가 꽉 찬 현지인 식당이다. 소쿠리에 기름종이를 깔고 밥과 나물, 순대, 고기, 딱딱한 뭔가를 얹어주는데 돼지껍데기였다. 어머닌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부엌을 못마땅해했지만 우리들은 맛있게 잘 먹었다. 4개를 시켜 다섯이 나누어 배부르게 먹었다. 현지인들은 손으로 밥을 먹는데 그래서 손 씻을 물을 준다. 레몬 한 조각 띄워서. 익숙하지 않았지만 싫지 않았다.
어제 발리지기의 릉하에게 2시에 호텔로 오라고 부탁했는데 여기서 호텔로 다시 가기는 힘들어 은진씨에게 전화를 해서 여기로 오라고 부탁했다. 전화는 와룽 주인아저씨의 핸드폰으로 공짜로 해 주었다. 전화비를 내려했는데 괜찮단다. 고마웠다. 점심값을 물어보니 5만루피란다. 4개 시켰는데 계산이 안맞는 것 같아 계산기를 보이며 한 그릇에 얼마냐고 물어보니 만 오천 루피라며 직접 곱하기 4를 하더니 6만루피란다. 에이, 1만루피 버는건데 괜히 물어봤나? 비는 계속 오고 밀려드는 손님에 자리를 차지할 수 없어 한참 서서 기다리니 릉하가 차를 몰고 왔다.
애들은 옷이 많이 젖었다. 준비해온 긴 옷은 두고 왔는데 낀따마니 화산은 젖은 반팔 옷을 입기에는 추웠다. 낀따마니에서 2만루피 입장료를 내고 차에서 건너편 화산을 바라본다. 산에서는 계속 연기가 나고 비도 조금씩 뿌리고 구름인지, 연기인지 주위가 자욱하다. 산 옆의 호수는 장관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잡상인들이 엄청 몰려들어 제대로 경치를 감상할 분위기가 안 된다. 계속 물건을 얼굴 앞으로 들이밀고 날씨 탓인지 관광객이 많지 않아 우리는 집중공격을 당할 수밖에... 남편이 표적이 되고 말았다. 체스판에 관심을 보였는지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상인과 흥정을 시도한 모양이었다.(떠나기 전 발리에서는 무조건 깎아야 한다. 80% 깎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나름대로 교육을 시켰건만) 사지 말라고 했건만 남편은 기어이 지갑을 꺼내고 체스판을 샀다. 지갑 속의 거금(돈은 남편이 다 가지고 있었다. 난 중요한 건 안 가진다.)을 확인한 상인들이 떠나려는 차 문을 닫지 못하게 한다. 한국에서 배워가지고 간 말 '띠당마우(필요없다)'를 연신 외치니 한 상인이 체스판을 10달러 라고 한다. 아차하는 남편의 표정, 바가지 썼구만. 얼마주었냐고 물어보니 대답이 없다. 나에게는 조잡하게 보이는 목각 연필을 사라는 한 여자가 있었다. 표정이 너무 애절하고 돌아가면 애들 친구들에게 줄까 싶어 얼마냐고 했더니 10개 한 묶음에 1만 루피란다. 딸내미는 친구들 그런 것 안 좋아한다며 사지 말란다. 결국 나는 돈이 없다고 했더니 남편에게 달라고 하랜다. 결국 차안까지 들이밀며 2개에 만 루피를 외친다.
힘들게 차문을 닫고 브사끼 사원으로 향했다. 릉하는 자기 나라 사람이라서 그런지 그들의 행동에 아무 제재도 않고 그냥 있기만 했다. 아주 착한 사람 같기는 했지만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가이드가 아니어서도 그랬겠지만 가는 길에 우리가 놓칠 수 있는 좋은 곳을 알려 달라고 했지만 우리의 뜻이 잘 전달되지는 않았다. 단지 우리가 가자는 곳만 갔다.

낀따마니의 상인들을 뒤로 하고 브사끼 사원으로 향했다. 높은 곳에 위치해서인지 꽤 쌀쌀했다. 젖은 옷의 아이들은 오들오들 떤다. 주차장에 내리니 싸롱 파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사원을 방문하려면 싸롱을 꼭 입어야 한다. 이 중요한 정보를 몰랐다. 알았다면 가자마자 하나 사는 건데. 하여튼 사볼까 했지만 천이나 색깔이 너무 안 좋다. 2만루피에 사라고 했지만 하나에 5천루피로 빌려 입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기분이 썩 좋지 않았는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잠시 후 입장료 한 사람당 3만루피를 내고 가려하니,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야 한다며 장부를 펼친다. 방문객들의 국적과 그들이 지불한 돈이 쫙 적혀 있다. 미국 45달러, 일본 6천엔, 프랑스 **유로.... 미국 사람 일본 사람 얼마 냈는데 한국인인 당신들은 얼마 낼거냐는 식이다. 세상에! 한참동안의 설왕설래 끝에 40달러로 합의를 보고 사원을 향했다. 발리의 최대 사원답게 규모나 풍경이 웅장했다. 여기서의 탑은 검은 야자수로 덮여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가이드의 된 발음 나는 영어, 나의 짧은 영어가 왔다 갔다 하며 대화가 이어진다. 발리에서는 집이든, 가게든 꼭 바나나 잎으로 네모지게 접시를 만들어 약간의 음식과 꽃잎을 신에게 바치고 절한다. 사원에서도 여기저기 많다. 매일 바치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사원은 종류가 많다. 가족 사원, 힌두 신의 사원, 불교사원, 중국의 음양의 뜻을 지닌 사원, 이런 다양한 주제의 사원들이 크게 하나의 사원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곧 발리의 문화이기도 했다.
사원을 설명하는 중간중간에 가이드는 자기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한다. 부모도 없고 힘들게 농사를 짓는단다. 약 한 시간 동안 같이 다니면서 이 말을 한 서 너 번은 했다. 거의 마지막 무렵 우리를 조그만 탑 앞에 데리고 가서 의식을 치르게 한다. 성수를 세 번 마시게 하고 물을 머리에 바르고 준비한 제물(문 앞에 놓아두는 예의 바나나 잎 그릇에 쌀과 꽃잎이 담긴)을 하나씩 주더니 돈을 놓으래나. 1천루피가 마침 있어서 놓았더니 너무 작다는 표정이다. 다섯이고 해서 대표로 5만루피 한 장을 놓았더니 한 사람 당 그릇마다 그렇게 놓으랜다. '우리는 돈이 없다.'며 나머지는 1천루피씩 놓았다. 속에서 조금씩 열을 받기 시작한다. 내려와서 가는 길에 내가 '당신은 행복하지 않느냐? 신이 당신을 보호해주니' 이 말에 그는 'no, sometime.'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또 테이프 돌아간다. 나는 부모도 없고 힘들게 일하는 농부라고. 그러면서 우리의 직업을 묻는다. 내가 관광객들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이렇게 신성한 곳과 신을 의지하며 사는 순박한 사람들이 관광지가 되면서 관광객들에게 팁을 요구하는 그들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대답은 '매우 좋아한다'였다. 어차피 이들과 마음을 나누기에는 시간도 말도 궁했다. 여기에도 닭과 오리들이 많았다. 내려오는 길에 현지인들에게 망고스틴과 망고를 좀 샀다. 옆에 섰던 한 소녀는 자기에게 망고스틴을 달라는 시늉을 한다.
아까 들어올 때 잔돈을 다 못 받아 다시 가서 잔돈을 받았다. 가이드가 막판에는 아예 돈을 달라고 조르다시피 해서 남편이 남은 돈 15달러 가운데 5달러를 주겠다고 했고 나머지 10달러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 옆에서 또 그 가이드가 이 돈 자기 줄 수 없느냐고 묻는다. 정말 싫다. 남편은 '소리(sorry)'라고 더 이상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줘 버릴까도 싶지만 이건 경우에 맞지 않는다 싶었다.
웅장하고 유서깊은 사원에서 받은 느낌과 관광객 우려내기에 대한 불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That`s o.k.' 'Thank you.' 뭐 이런 소리가 요란하게 오가며 차를 탔다. 피곤하다. 좋은 사원 본 값이라 생각해야지. 나중에 은진씨랑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래서 브사끼 사원을 잘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브사끼 사원은 한 번 가볼 만 하다. 가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돈은 정도껏,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만 내면 된다는 각오로 꼭 한 번 가보기 바란다.
점심 먹은 것이 더부룩하고 해서 저녁은 낮에 산 과일로 대신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망고가 익지 않은 것이다. 특히 브사끼에서 산 것이 그랬다. 안 좋은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맛보기로 준 건 속의 색깔이 주황색이고 물렀는데, 막상 파는 것은 안 익은 것을 판 것인가? 격물치지(格物致知)인가, 설익은 망고를 씹으며 잘 익은 망고 고르는 법을 깨닫는다. 물 많은 복숭아를 고를 때의 느낌으로 손으로 약간 눌러 무른 듯한 것을 골라야 한다는 사실을! 식구들 모두 그런대로 입맛에 맞는 망고스틴과 털털이로 위안을 삼자는 표정이다.

21일 아침을 먹는데 식당 진열대에 눈에 확 들어오는 싸롱이 걸려 있다. 티셔츠, 싸롱, 가방, 딱딱한 나무 조리가 한 세트였다. 20% 할인해 준단다. 그리고 마지막 가격이라며 42만 루피를 부른다. 잠시 망설였지만 남편의 흔쾌한 동의에 사기로 했다. 비싼지 싼지 모르지만 지금도 이걸 보면 마음이 흐뭇하다. 그리고 발리에서의 싸롱은 아주 요긴하게 쓰이기 때문에 꼭 사라고 권하고 싶다. 일단 사원을 가려면 꼭 입어야 한다. 현지인들처럼 아래에 둘러 옷으로 입어도 좋고, 수영복 위에 두르기도 좋고, 뜨거운 햇볕이나 서늘한 날씨에도 그만이다. 수건으로도 좋다.
아침 식사하고 아이들과 남편이 풀장에서 노느라 조금 시간이 지체됐다. 10시 20분쯤 래프팅과 코끼리투어 출발. 어제 줄줄 내리던 비가 자취를 감췄다. 레프팅 하기엔 그만이다. 무서워하는 우리 일행을 아주 유쾌한 기분으로 이끌어주는 가이드와 즐겁게 계곡의 물살을 탔다.
레프팅 비용에 점심값이 포함돼 있는데 식사 장소가 코끼리 투어 하는 곳이다. 큰 몸집이 움직이는 대로 출렁거리며 그 곳 정원을 한 바퀴 도는 것이다. 소요시간은 약 15분. 마지막에는 코끼리 코에 올라타기다. 위로 둥실 떠오르는 느낌이 신선하다. 코로 하모니카 부는 모습도 새롭다.
돌아오는 길에 꿀릉끌을 지나오는데 멋진 사원 같은 것이 보인다. 잠시 내렸는데 박물관이었고 이미 문을 닫아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역시 연못이 있엇다. 마주 보이는 곳도 웅장했는데 역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꾸따의 마타하리 마켙에서 과일을 샀다. 우붓 시장 보다 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다. 정찰제니 가격 흥정 안 해 좋았다. 계속 차를 달려 누사두아의 니꼬 발리로 갔다. 누사두아 지역에 들어서니 잔디를 다듬어 놓은 모습에서 인공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후에도 느낀 것이지만 누사두아는 니꼬발리를 위시해 일본풍 건물이 많다. 일본어 간판, 글씨, 식당, 사람들의 말에서도 쓰미마셍이 거침없이 나온다. 니꼬 발리 입구에 검색대가 있다. 뭔가 분위기가 삼엄하다. 규모도 써니블로우와는 비교가 안 된다. 풀장도 엄청 크고 호텔에서 보는 바다의 풍광이란! 니꼬발리는 아예 하나의 성 같다. 차가 아니면 도저히 이동할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준비해온 누사두아의 자료는 별 쓸모가 없었다. 저녁도 예정에 없이 호텔 식당에서 먹게 되었다. JALA JALA라는 씨푸드 레스토랑에서 정식에 해당하는 음식을 2인분 짜리 2개를 시켰는데 커다란 접시에 푸짐하게 담겨 나온다. 하지만 실속은 없었다. 모두들 서울 호텔 식당보다는 싸지 않느냐며 마음을 달랬다. 딸애는 간장소스의 작은 고추를 씹다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끝내 엉엉 운다.

22일 아침은 풀장 옆에 있는 예약대에서 패러세일링을 예약했다. 시어머니의 추천 종목이었다. 일인당 15달러로 해변까지 차로 데려다 주고 다시 호텔로 데려다 준다. 아들 녀석은 무서워 안 한다고 소리치며 버티다 결국 아빠와 함께 하늘로 날아 올랐다. 남편은 아이 덕분에 두 번 탔다며 싱글벙글. 돌아와서는 호텔 풀장에서 신나게 놀았다. 미끄럼대도 길고 멋지다. 발리지기 한 실장이 가족호텔로 추천해 주었는데 바로 이맛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풀장에서 몇 발자국 내디디면 바로 해변의 모래사장이다. 파도가 조금 센 편이라 맘놓고 수영할 정도는 아니다. 모래사장에 앉아 밀려오는 파도를 맞으며 하염없이 펼쳐진 대양을 바라본다. 다른 사람들이 스트로우로 쥬스를 빨아 먹을 때, 우리는 망고를 깎아 하나씩 들고 먹으며 뿌듯해하고 즐거워했다.
과일로 점심을 채우고 울루와뚜 사원으로 갔다. 브사끼 사원을 보다 이 사원을 보니 거의 장난이다. 하지만 여기 온 큰 목적은 바로 원숭이 때문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한 코스였다. 입장료를 내니 싸롱은 그냥 빌려준다. 원숭이 때문에 안경을 벗고 입구에서 땅콩 한 봉지를 사고 들어가니 정말 원숭이가 마구 뛰어다닌다. 갓 태어난 아기 원숭이는 엄마 가슴에 붙어 있다. 땅콩 까먹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나오는 길에 냥냥비치에 들렀는데 입장 시간이 지나버렸다. 저녁을 먹으러 짐바란 해변으로 갔다. 새우와 조개를 주문하고 해변의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구워서 가져다 주었다. 새우 1kg에 15만루피, 조개 1kg에 5만루피였다. 밥과 감자도 주었다. 아이들은 구워 파는 옥수수도 사 먹고. 어제 호텔보다 더 맛있게 먹었다.

23일 발리하이 크루즈 때문에 일찍 서둘렀다. 비싼 호텔 하루 자고 일찍 가기가 아쉬웠지만 할 수 없는 일. 체크아웃도 하고 베노아 항구로 출발. 어른 65불, 아이37.5불(75%) 배를 타고 가면서 안내지를 보니 스쿠버 다이빙이 옵션으로 있다. 나와 남편이 신청했다(1인당 50불) 도착하여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우리는 스쿠버 교육을 받고 어머니와 아이들을 바나나 보트, 물미끄럼틀을 탔다. 스쿠버 다이빙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63빌딩 수족관에서나 볼법한 예쁜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다닌다. 강사가 따라 들어가서 잡아주었지만 40분쯤 되는 시간에 별 망칙한 생각이 다 떠올랐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혹시 저 강사가 산소통의 줄을 끊고 날 바다 속에 버려두지는 않을까. 심청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등등. 스쿠버가 거의 끝날 무렵이 되니 숨이 가빴다. 줄을 빨리 잡아당기니 강사가 천천히 올라가라고 신호를 보낸다. 드디어 나왔다. 평소 멀미를 잘 하는 남편은 나와서 한 동안 어지러워 누워 있어야 했다. 점심을 먹고 쉬면서 배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여기서는 아무런 안내도 없다. 그냥 프로그램을 보며 알아서 움직여야 한다. 근처의 전통마을을 배로 잠시 둘러보고 스노클링을 했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나니 스노클링은 시시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스노클링만 해도 물고기는 마음껏 볼 수 있으니, 바다에서 수영할 수 있는 것이 애들에게는 제일 큰 즐거움이었다.
다시 베노아로 돌아와서 사누르에서 마사지를 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아이시스라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있어서 제일 짧은 코스를 부탁했다. 1시간 30분에 30불이었다. 아로마 오일 마사지였는데 처음 받는 것이라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다니느라 썬크림 바르고 제대로 씼지도 못한 몸인데 마사지 받기 전에 간단히 샤워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이런 배려를 미리 해 주었으면 좋겠다.
저녁은 아이들이 초밥을 좋아해 여행기에서 자주 소개되는 일식당 후꾸따로(福太郞)에 갔는데 초밥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다. 가격도 세금 포함하니 서울과 맞먹는다. 그냥 거리의 식당에 가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
남은 시간에 꾸따의 마타하리 백화점에 들렀다. 남은 6만루피를 어디에 쓸까하며 딸아이에게 뭐 사고 싶은 게 없느냐고 했더니 작은 손가방을 고른다. 처음에 부른는 값이 24만 루피였다. 좀 깍자고 했더니 22만 루피, 깎는데 지쳐 계산기를 내밀며 your last price를 치라고 했더니 12만루피를 친다. 붙드는 그에게 '난 오늘 발리를 떠난다. 내가 가진 돈은 6만 루피밖에 없다'를 두 어 번 하고 그냥 가려고 했더니 가져가랜다. 남편에게 갔다오겠다 하고 발걸음을 돌리니 변덕쟁이 딸이 안 사겠다나, 요 변덕쟁이... 기껏 깎았는데. 하여튼 발리에서의 제값은 어느 정도인지.
여기저기 둘러보다 대나무로 만든 풍경과 망사덮개가 달린 소쿠리(4만루피)를 샀다. 대나무 풍경은 19500루피였는데 남은 루피가 얼마 없어 하나밖에 못 샀는데 소리가 좋다. 기념품으로 괜찮다. 인사동 가면 한 2만원은 부를 것을 2천원 정도에 살 수 있다. 돈도 다 썼고 아이들도 힘들어 해 일찌감치 공항에 가서 쉬기로 했다. 일인당 10만 루피의 공항이용료를 내고 자리를 잡으니 아이들은 이내 잠에 빠진다.
새벽 2시20분 비행기를 타고 뒤척이다 자고 또 깨고 하다 기내식 아침 먹고 인천에 도착했다. 아침 10시10분.
여름옷을 다시 챙겨 넣고 싸롱을 접으며 발리를 생각한다. 아침에 가려다 체크 아웃하고 짐 챙기느라 못 간 네카뮤지움, 우붓의 여러 가게들, 정말 따뜻한 바다에서의 스노클링, 새벽잠을 깨우던 시끄러운 닭울음, 길거리를 배회하지만 그리 무서워 보이지 않는 개들, 아침마다 올리는 신을 위한 음식과 꽃, 무성한 나무들…, 이방인을 편안해 대해주던 그들의 인심을 좋은 추억으로 접어둔다. 발리에서 내내 메고 다녔던 그 가방이 지금 방에 걸려 있고 2층 거실 문 위에 걸어둔 대나무 풍경이 이따금 탁하지만 낭랑한 소리를 낸다. 남편이 마시는 발리 커피 내음.... 아직도 우리에게는 발리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