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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
2011.07.18 13:38 추천:3 댓글:4 조회:2,958
balisurf.net

  너희들은 달려가야 한다
  한 마리 뻣센 물고기가 되어
  작은 시냇물을 만나고 큰 강물을 만나고
  마침내 푸른 바다를 만나고 만나
  힘차게 달려가야 한다
  짧은 초겨울 해는 이미 지고
  운동장 가득 길게 누운 어둠
  누군가가 죽음의 냄새로
  우리 시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다
  열세 살,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반짝 살아오는 너희들을 죽이며
  형광등 불빛 아래
  흰 분필가루를 날리고 서 있는
  이 나라의 보충수업 10년
  우리 스스로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하루 일곱 시간 여덟 시간 지치고 지친
  후진국 교사인 내 수업보다 더 안쓰러운
  우리 아이들아
  한마디 거부도 없이 침묵하는 우리 아이들아
  너희들 겨드랑이에 지느러미를 달아주고 싶다
  저마다 금빛 은빛으로 빛나는
  해방과 자유의 지느러미를 달아주고 싶다
  나도 너희들과 더불어 해방하고 싶다
  유리창 밖 저 컴컴한 죽음과 같은
  우리 시대의 어둔 바다와 해협을 지나
  언제나 맑은 햇살과 바람이 자유로운 그곳으로
  함께 알몸으로 뒹구는 그곳으로                                               정 일근의 "바다가 보이는 교실 4"


 분주한 관광객이라면 아침부터 나갈 채비를 갖추느라 바쁘겠지만  저는 오늘도 서두를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식사는 제일 먼저 나와서 하는 편입니다.
 혼자 있더라도 과히 게으름을 부리는 체질이 아니라서 어지간한 일상은 집에서의 그것과 비슷한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저는 아무렇지도 않는데 보는 사람들이 갑갑해들 하더군요. 
"심심하지 않느냐 ?" 고도 물어옵니다. 전혀 심심하지 않습니다.
 제 일 자체가 노트 북이나  데스크 탑을 앞에 두고  이것도 살피고 저것도 기웃거리는 일인지라 남들이 볼 때는 마치
 무료함을 달래고자  시간을 죽이는 (?) 중년의 아저씨로 보이나 봅니다.
 뭐, 그렇게 비춰진다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인지 사장님이 오늘은 스케쥴이 없냐고 넌지시 물어옵니다.
"글쎄요, 이따가  점심이나 먹고나서 오후에 빠사르 바둥에나 다녀오려고 하는데..."
 그러자 반색을 하며 묵고 계신 손님 한 분이 자전거를 사러 나가려는데 태워다 줄테니 지금 함께 가지 않겠냐 ?고 물어오네요.
 굳이 점심을 먹고 나서려던 것은 가져온 먹거리들을 줄여야 하는 당위성 때문이었지만 바쁠 일이 아니라  그러자고
 선선히 대답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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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발리를 다녀가신 분들이 눈여겨 보셨다면 거리에 자전거가 제법 많이 늘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차량왕래가 많은 꾸따나 번화가에서는 힘들겠지만 사누르의 해변도로나 안쪽 길에는 허접하긴해도 자전거 전용
 도로도 갖추었고, 덴파사의 뿌뿌딴 광장 앞 길은 아예 특별한 요일과 시간을 지정해서 자전거만 통행할 수 있도록까지
 해놓았다더군요.
 늘 차량과 오토바이만 떼로 보이던 바이 파스에서도 무리를 지어 달리는 자전거의 행렬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여기도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소위 레져라는 측면에도 조금씩 눈을 떠가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열악한 도로망과 신호체계, 요철이 심한 도로의 상태로 미루어 보아 아직 길에서의 자전거 타기는 위험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호젓한 시골길에서의 하이킹과는 너무도 다른 여건이니까요.
 그래도 사람들은 아랑곳 없습니다.
 차량들의 사이를 비집고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그 옆 갓길로 자전거의 곡예 운전이 이어집니다.


- 아직은 자전거포가 많지 않아 그리 눈에 띄질 않습니다. 대부분은 까르푸와 같은 대형매장엘 가야 볼 수 있더군요.

 그런데도 자전거를 사겠다는 그 분은 나름 이유가 있었습니다.
 저보다 먼저 한국에서 들어와 더 길게 묵어갈  이른바 장기체류 손님인 셈인데 걷기에 어중간한 거리를 타거나, 아니면
 택시에 싣고 돌아올 때 이용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제 견해는 그런 용도라면 스쿠터가 더 나을텐데 싶지만 그냥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자전거포는 파사르 바둥 못 미쳐  몇 곳이 보이는데 구색을 갖추지 못해 마땅한 것도 별로 없지만 가격도 "허걱" 수준입니다.
 그 분이 원한 건 차에 싣기 용이한 접이식이었지만  이곳에선 접이식이 일반형보다 훨씬 더 비쌌습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각 신문사의 구독경쟁이 한창일 때, 조중동이 6개월만 보면 무료로 끼워주던 바로 그 자전거가
 여기서는 최상품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지요.
 저렴할 거란 기대를 저버린 걸 확인하고 우리도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 자전거포 안의 공간이 좁아 아예 벽에 선반을 달아 제단을 만든 이 청년의 정성이 갸륵해 보입니다.

 헌데 빠사르 바둥을 향해 걷는 길이 오늘따라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발리 최대의 시장거리라 늘 인파와 차량으로 떠밀리던 이 길이 사누르의 호젓한 골목길처럼 여겨지는 것이지요.
 아직 갈룽안의 휴가기간인 까닭입니다.
 한산한 거리엔 걷는 사람도 별로 없고 차들도 부쩍 줄었습니다.
 사롱이며 바틱, 전통의상을 파는 가게들도 포목점 거리도 문을 연 곳 보다는 닫은 곳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원래 시장이란 시끌벅쩍하고 마주 걷는 사람과 스치고 떠밀리거나 온갖 것들의 냄새가 진동하는 삶의 생생한 현장인데
 오늘은 햇살 따가운 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장을 가로 지르는 개천가에 노점을 연 상인들도 별로 흥이 나질 않는지 지나가는 사람구경만 할 따름입니다.
 한 바퀴를 빙 돌아 토산품점 상가로 올라가니 그래도 거기엔 호객꾼 몇이 연신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한 아줌마를 따라 2층 점포를 둘러 보았지만 제법 큰 점포들은 셔터가 내려져 있고, 작은 가게들만  옹색한 손님맞이를
 하는 터라 이내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 여기가 그지없이 한가로운 빠사르 바둥의 입구입니다. 그 많던 사람들과 차량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


- 아쉬움에 인적없는 상가건물만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저녁 무렵 와얀 스위리아가 숙소로 찾아 왔습니다.
 손님맞이에 늘상 바쁜 탓에 짬을 내기가 어려울텐데도 녀석은  제가 올 때마다 들여다 봐줍니다.
 가이드를 하면서 늘 운전만 해온 탓인지 와얀은 점점 살이 쪄 꽤 배불뚝이가 되어 있습니다.
"운동 좀 해라." 보다 못한 제가 한 마디 합니다.
"시간이 별로 없어요." 와얀의 대답입니다.
"바쁜 건 좋지만 그래도 식구들 챙기려면 네가 건강해야지 "    " ..... "
 말은 그렇게 해도 여전히 든든해 보이는 녀석에게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고 붙들었습니다.
 헌데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자전거를 사러 갔다 허탕을 친 이야기가 나오자  녀석은 자기네 동네에 자전거포가 있다며
 내일 아침에 함께 보러 가자네요.
 합석한 장기 투숙객 분은 좋아하시지만 저는 또 녀석에게 미안해집니다.
 내일 오전 공항에서 새롭게 맞을 손님과의 약속이 있다면서도 아침에 일찍 서두르면 문제없다며 씨익 웃고 말았으니까요.
 와얀 스위리아는 그런 녀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