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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
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
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
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김 중식의 [이탈한 자가 문득] -

balisurf.net
- 꾸따비치 해변의 작은 놀이터에서 동심의 추억을 만난다. 우측의 서 있는 세 녀석은 배불뚝이 친구를 박수까지 쳐대며
  끊임없이 놀려대 결국 울음보를 터뜨렸고, 모래장난을 하던 세 놈중 한 녀석이 무슨 이유론가 울어대자  근처 백사장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노천 마사지를 하던 할머니가 달려와 장난감으로 어르고 있다. -

balisurf.net
- 해변의 맛사지. 한 눈에 봐도 거의 50년 이상은 내공이 쌓였을 할머니들도 적지않았다. 원화로 환산하면 1시간에 불과
  1~2천원의 가격이지만 왠지 불편해지는 마음이라 몸을 맡기고 누울 수 없을 것 같은데 서양사람들은 편안히 코까지 곤다.
  이것도 문화적인 차이일까?

엇저녁의 유쾌한 술자리는 기분좋은 단잠으로까지 이어져 푹 잘 자고 일어났습니다.
눈을 떠도 서두를 일이 없는 지라  어슬렁거리는데 오늘 호주로 돌아가는 퍼스부부와 비즈니스로 동분서주하는 앤디는
분주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심 미안한 마음에 방으로 들어와  가급적 인기척을 삼가하고 독서로 소일하다가  다들 나간 다음에서야  다시
마당 한 곁에 나와 앉습니다.
왠지 오늘따라 꾸물꾸물한 날씨가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진종일 숙소에 들어앉아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고 해서
차를 불러 꾸따 스퀘어로 향합니다.
특별히 그 쪽에 볼거리가 있어서라기보다 떠나기 전 처형으로부터 지난번 왔을 때 우붓에서 샀던 기린 한 마리가 너무
외로와 보이니 짝이라도 맞춰달라는 부탁을 받은 지라  아트마켓이 제법 즐비한 그 부근 골목들이 생각이 나서였습니다.
거리의 좌측 끝에서 우측 끝까지를 느린 걸음으로 두리번 거리니 호객하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몇 군데 샵에 들어가 보지만 마땅한 물건은 없고  또 마음에 든다싶으면 황당한 가격을 부르고...
넉넉한 시간이다 보니 중고책방까지 기웃거리다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꾸따비치로 향합니다.
이 곳 발리에서는 모든 길은 역시 바다로 통하는 모양입니다.


-꾸따 마타하리의 맞은편 건물 뒤쪽에 안으로 끝까지 걸어가면 바다와 만나는 파사르(시장)가 있다. 키작은 차양을 치고
 조악한 옷가지나 토산품을 파는데 건물 하나만 돌면 나오는 꾸따 스퀘어의 즐비한 브랜드샵과는 엄청난 차이...-
 

- 시장 입구에 있는 제단에서 마주친 신들을 위한 공양의 시간. 세상에서 가장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 -


-서프를 하는 동네 청년들의 브레이크 타임(?) 한쪽에선 일본아가씨 세명이 모래바닥에서 보드에 올라타는 지상강습을
 맹훈련중이었는데 너무 안스러워 보여 차마 카메라를 들이댈 수가 없었다. -

해변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니 우측으로 다시 뽀삐스로 들어가는 작은 길들이 보입니다.
막다른 정면에 건물이 있는 게 아니라면 어지간해서는 막히는 길없이  그 끝에서 좌나 우로 방향만 바꾸면 되는 지라
특별한 목적지가 없음에도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립니다.
그러다가 마주한 곳이 뽀삐스1과 2가 연결되는 중간지점 쯤의 허름한 음식점  "스테이크 하우스" 였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서 조금 들어가 있는지라  간판들에 눈길을 주면서 어슬렁거리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쳐
버렸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시간상으론 한창 점심 손님이라 붐벼야 할 때임에도 한산한 실내가 마치 제가 오늘 이 집의 첫 손님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들어갈까,그냥 갈까 고민되더라구요.)
메뉴판을 들고 앉아 이것저것 보는중인데 그제서야 인근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서양친구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더군요. 


-스테이크 하우스 전경. 부근의 서양친구들은 애용하는 곳인 모양인데 뽀삐스 안의 다른 식당들과 차별화 될 만한
 특별한 인상은 못 받았다. 스테이크의 양이 엄청 많다는 게 굳이 다르다면 다를까?-



-늘 드리는 얘기지만 내가 가는 곳의 대부분은 근사한 서비스와는 좀 거리가 멀다. 맛을 앞세우는 분에게도 좀 껄끄러울
 것이고, 하지만 들어가기엔 만만한(심정상,가격상 두루두루) 장소이다. 여기도 마찬가지


-메뉴판. 난 치즈버거와 카푸치노를 시켰는데 생각보단 속이 두툼하다.(고기는 약간 짠 편이나 야채가 신선했음.)
 게다가 적당한 양의 감자튀김이 곁들여 나온다. 오전에 오면 대신 오렌지쥬스나 레귤러커피를 공짜로 주는 모양이다.

식사를 하는 동안 하늘이 거뭇해지더니 드디어 비가 내립니다.
물론 비라고 해봐야  서울의 여름 날씨에서 갑자기 만나는 소나기거나 국지성 호우가 아닌  얌전히,어찌보면
찔끔 내리는 실비 수준이라 맞을만 합니다.
그런데도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 다들 가장 빠른 속도로 와이퍼를 작동시키고 있습니다. ㅎㅎㅎ
좀 더 구경거리를 찾아볼까 하다가  저녁에 와얀과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이 떠올라 귀가를 서두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헌데 차를 타고 사누르의 입구에 진입할 즈음, 홈스테이까지 한 번 걸어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워낙 현지인들의 동네인지라 몇 번을 나가고 들어오면서도 방향감각이 잘 안 잡혀 내심 불편했기에 치기가 발동한 것
같습니다.
큰 길을 따라 걸어 올라보니 학교나 유치원, 경찰서 같은 곳들이 나오는데, 얼마 못가 두 갈래 길이 나오면서부터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약도를 보여줘가며 몇 번을 되물어 확인하는 눈 뜬 장님이 되어버렸습니다.
등에선  후덥지근하게 땀이 배고  이제 반 정도쯤이나 온 것 같은데 저만치 해양경찰학교가 보입니다.
거기서 다시 좌측 길로 조금 올라가다보니 아니, 이런 변두리에도 스파&마사지 샵이 있네요.
"그래. 쉬었다 가자." 들어가봅니다.
"메구미"라는 일본식 상호가 별로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안은 생각보다 쾌적합니다.
은은한 조명에 넓은 공간도 그렇고 안락하게 몸을 감싸주는 발 마사지용 체어도 푸근합니다.
젊은 녀석 하나가 조심스럽게 들어오더니 끝날 때까지 세심하게 발과 등의 피로를 풀어주더군요.
뜻밖에 만난 흡족한 휴식이었습니다.



- "사양사양"을 찾아 도보로 걷다 만난 동네 마사지샵 "메구미". 난 발과 등을 받았는데 안에 들어가면 카운터에서 리스트를
   내밀고 종류를 선택한다. 인테리어가 좋아서인지 가격은 오히려 꾸따시내보다 조금 높다. 하지만 젊은 남자 직원들이
   정성을 들여하는 까닭에(반응에 따라 강도나 세기 조정) 만족도는 높았다. -

집으로 아니 "사양사양"으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메구미"에서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걸었는데 역시 생각대로 남은 길은 절반만큼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자마자 웃통을 훌훌 벗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처음으로 풀장에 들어가 수영을 해 봅니다.
내친 김에 저녁식사도 가져온 신라면에 냉장고를 뒤져 찾아낸 계란과 김치를  넣어  끓였는데  햇반까지 곁들이니
모처럼 뱃속이 즐거운 모양입니다.
저녁이 되니 약속대로 와얀이 찾아오더군요.
예전에 만나기 전 서울에서 와얀에게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역호아"란 글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오히려
와얀이 저를 맞이해주는 모양새는 훨씬 그 이상입니다.
그러고보니 이 밤이 발리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밤인데 이 친구가 있어 또다시 새로운 추억 하나를 보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