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아빠
Lv.17
2009.09.08 19:10
추천:8 댓글:22 조회:3,961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않게
옷을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 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도 해탈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 황 동규의 [풍장 1] -
- "사양사양"의 비좁지 않은 마당. 돌이켜보면 저 긴 좌탁은 든든한 아침을 먹고 하루를 시작해서, 저녁엔 돌아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양사양"의 아고라였다. 짧은 날들을 묵으며 저 자리에서 마신 술이 얼마였는지... 보이지않는 우측의 원탁에선
포트만 연결하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인터넷을 무시로 사용할 수 있다. -
- 드디어 내가 묵었던 방을 공개한다. 그다지 깔끔을 떠는 성격이 못되어 책 몇 권만 머리맡에 꺼내두고, 옷장안에
옷가지들만 걸어둔 채 그대로 지냈다. 침대가 두 개라서 이쪽저쪽을 오가며 마음 내키는대로 뒹굴었는데 ... -
09.09.02(수)
어제 와얀과 밤들이 노니다가 홈스테이로 돌아오니 그 늦은 시각에도 새 손님들이 마당에서 술상을 펴고 있더군요.
대한항공에서 늦은 휴가로 온 직원들인데 술상을 앞에 두고 앉기를 청하니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자연스레
합석한 자리가 거의 새벽까지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한창인 총각사원들이 대부분이라 술도 막걸리에서 소주와 맥주, 그 양과 청탁을 전혀 가리질 않더군요.
(술에는 어지간하다는 저도 하마트면 익사할 뻔 했습니다.ㅎㅎㅎ)
해서 실컷 늦잠을 자다가 "잘 들어가셨냐?"는 와얀의 안부전화가 모닝콜이 되어 간신히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올 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그다지 알차게 보내지 못했음에도 유수처럼 흐른 시간은 또다시 예정된 때에 이르렀습니다.
가져간 죽으로 앤디와 함께 속을 달래고선 기운을 차려 느즈막한 마지막 바깥나들이를 나가기로 합니다.
- 내 방 바로 앞 목욕탕겸 세면장/공간분할을 기막히게 한 화장실도 따로 그러나 함께 있다.-
일 나가는 앤디의 호의로 차를 얻어타고 디스커버리몰 부근에서 내렸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길을 걷다가 쇼핑센타 입구의 계단쯤에서 한 눈에도 보기에 우리나라 여행객으로 보이는 다섯 분이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평소 오지랖이 넓지 않아 남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게 제 성미인데 그 날은 왠지 발걸음이 멈추어지더군요.
"왜 그러세요?" 한국말로 물으며 다가서는 저를 그들은 처음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경계하더니 제가 같은 여행자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맘을 놓고 일식당을 찾는다는 겁니다.
일식당은 이 건물에는 없고 꾸따스퀘어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있다고 알려주니 그때부터 질문의 공세가 쏟아집니다.
"이 근처에 플라워베스를 할 수 있는 좋은 스파는 어딘가요?"
"지금 우붓에 다녀올 수 있나요?"
아쉬운 건 이들이 저와 함께 오늘밤 비행기를 같이타고 돌아가야 하는 펙키지 관광객들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별다른 준비없이 와서 여행사의 일정만 내내 소화하다, 가는 날에야 비로소 가이드의 양해하에 공항에서 만나기로 하고
시내로 나왔지만, 그 중 한 사람이 "인사이드 발리"책자를 끼고 있었음에도 우왕좌왕하기는 어쩔 수 없었던 겁니다.
주변엔 근사한 플라워베스도 없고 우붓도 지금 가기엔 불가능하다는, 그 분들을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대답만 하고서
돌아서는 제 발걸음이 왠지 무겁습니다.
하루 이틀만 일찍 서둘렀어도 발리를 더 많이 보고, 체험할 수 있었을텐데...
저는 내친 김에 꾸따스퀘어까지 걸어가 어제 사려다가 흥정이 어긋났던 목각기린상을 다시 사고서(어제 제가 불렀던 가격
그대로) 늦은 밤의 비행을 위해 귀가를 서둘렀습니다.
- 전면사진이 아니라서인지 왼쪽건물이 디스커버리몰처럼 보이질 않는다. 나만 시야가 좁은 탓일까? -
애당초 풀었던 짐이 별로 없어서인지 주섬주섬 꾸려야 할 거라곤 입었던 옷들 중에 미처 빨지 못한 빨래감뿐인
트렁크를 챙기고 누워서 다시 책을 봅니다.
TV가 없는 까닭에 가져온 몇 권의 책들을 짬짬이 읽다보니 짧은 여정중에도 심심치는 않았고 오히려 고즈넉한
이 완전한 휴식이 참으로 평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와얀'이 다시 찾아 왔습니다.
물론 제가 청한 건 아니고 떠나는 이에 대한 보내는 사람의 배려겠지만 사흘 내리 찾아올 빌미만 준 것 같아 내심 또
미안해집니다.
멀지않은 날의 재회를 약속하며 그들과 작별을 하고 돌아서는 밤하늘엔 별이 초롱합니다.
서울에서는 보려고 애써도 볼 수 없던 별들이 발리의 하늘엔 여름날 숨죽이던 메밀꽃밭처럼 지천으로 흐드러져 있습니다.
-그동안 조악한 글 읽어 주시느라 감사했습니다. 부디 가시거든 가슴에 소중한 추억 담아 오는 발리행이 되시길 기원하며
몇 장의 사진을 첨부합니다. 메마른 환절기에 모두의 건강을 빌면서.....
- 마지막 늦은 식사를 했던 "스웰" .늦은 오후가 되자 인근 나이트클럽의 할인쿠폰을 돌리는 "삐끼맨"도 볼 수 있었다.-
- 발리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된 "스웰"의 "씨푸드케밥".강한 향료의 맛보단 담백함을 좋아하는 내겐 굿.(4만루피정도) -
- 푸리 루키산 미술관의 쉼터자리.앉으면 미술관련 잡지,발리책자도 놓여있고 앞의 정원을 바라보는즐거움을 만끽한다.-
- 푸리 루키산으로 들어서는 길. 비밀의 화원같은 그 입구에 프랑스 여인 하나가 오래도록 저 자세로 앉아있었다. -
- 다음 번의 발리행에서는 정원이와 함께 꼭 저 요트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보고싶다. -
-
혼자였으나 혼자가 아닌...
여유와 충만함이 물씬 묻어나는 후기 잘 봤습니다.
그나저나 저 침대위에 개켜져 있는 이불이 혹시 담요인가요?? -
미흡한 글,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사양사양으로 가신다니 좋으시겠네요.
무뚝뚝한 주인장 분도형님과 앤디에게는 정원이 아빠 안부도 전해주시면
고맙겠네요.
제 후기는 참고로만 하시고 더 좋은 경험 만끽해보세요.
충만한 길위의 여정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
한편의 긴 시를 읽는 기분으로 님의 글을 모두 읽었습니다.정말 글을 잘쓰시네요 ^^.
발리에서의 기억들이 님의 글, 사진을 보면서 다시 그리움으로 다가와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
역시 예리한 눈썰미의 소유자십니다.
담요 맞습니다. ㅋㅋㅋ
모든 방이 일반 호텔처럼 시트가 아닌 만만한 담요를 사용하시더군요.
좀 예민한 분은 모르겠지만 저는 새벽엔 끌어다 덮고
아니면 한 쪽에 밀쳐놓고 취침했더랬습니다. -
님의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데 한 조각
도움이 되었다면 그걸로도 제 글의 보람이 있네요.
감사합니다. -
ksgktg1님 마음의 글로 시작되는 여행기!! 정말 잘 봤습니다.
글귀들 하나하나가 포근히 와 닿아 참 좋았어요.
담백한 글귀와 사진까지 감사합니다.
왠지 발리에서 읽기좋은 책 추천받고싶어요 ㅋㅋ
추천도서 부탁드려요~ -
글 정말 잘 쓰시는거 같아여^^
저도 10월에 사양사양 가는데 많은 도움 받고 갑니다~ -
송구스럽게 무슨 책을 추천하라고 그러십니까?
님께서 집의 서가에 간수했던 책들 가운데 그동안
묵혀두었던 것들 중 읽기 편한 것 몇 권만 들고 훌훌 떠나시면 될 것을 ...
굳이 제 경우를 말씀드린다면
- 박완서 님의 기행산문집 "잃어버린 여행가방"
-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선 "별에서 온 아이"
-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 숲"
- 손철주 님의 미셀러니집 "인생이 그림같다"
- 오르한 파묵의 "검은 책"(상/하)
이렇게 6권을 가져갔더랬습니다.
여하튼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밀쳐 두었던 책들을 가져가셔서
기내거나 숙소거나 아니면 식당이나 미술관 벤치 의 한 켠에서라도
눈을 맞추는 소중한 시간 되시길..... -
무탈하게 잘 다녀 오시기 바랍니다.
-
잘 메모해 두었습니다.
감사드려요 -
후기 잘 보았습니다. 형님.
워낙 책도 많이 보시고 박학 다식 하신 분이라 후기 글 구구 절절이
한편의 책을 읽는것 같았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뵐때까지 몸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제목에 그리운 섬이 나오고
풍장이 눈에 띄이기에
그 짧은 일정중에
풍장 하는 곳에 다녀온줄 알았더랬습니다.
손철주 님의 "인생이 그림 같다" 저도 이거 많이 추천하는데
읽으셨다니 반가움이 배가 됩니다.
혹여 그 책 사양사양에 놓고 오시지는 않으셨는지요? -
와얀까지 그런 소릴 하면 쓰나! 쩝....
책보단 술하고 더 친하고 박학다식과는 영 거리가 먼 별 볼 일 없는 사람인 줄
내 진면목을 뻔히 보고 알면서 그런 객쩍은 소릴.....
여하튼 건강 조심하시고,
하는 일로 속 끓이지마시고,
다시 뵐 때까지 잘 계시길.... -
ㅎㅎㅎ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제목을 달아서 죄송합니다.
발리는 화장을 하는 곳이라 풍장은 없다더군요.
아마 풍장의 진귀한 구경을 하려면 티벳쪽으로 가셔야 할 것 같은데...
그리고
워낙 덜렁대는 성격이라 소소한 물건들은 종종 잘 흘리고 다니는 편인데
반대로 책욕심이 많아서 지금까지 책은 절대로 단 한 권도 흘린 기억이 없네요.
ㅎㅎㅎ
어쩌죠 ? -
ㅎㅎㅎ
발리는 풍장이 아직 남아 있는 곳이 있습니다.
뜨루냔 (Trunyan)
지난 번에 근처까지 갔다가
호객꾼에 질려 버려서 나왔답니다.
바뚜르 호수 동쪽에 있는 발리 아가(발리 원주민)의 마을. 동부의 뚱아난 마을과 마찬가지로 힌두교의 영향을 받지 않아 마을 전체에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발리의 옛 풍습을 아직도 지키고 있는데 그 중 한가지가 풍장이다.
교통 - 쁘넬로칸에서 차로 약 15분. 급한 경사길을 내려가 오른쪽으로 꺽어지면 뜨디산 선착장이 나온다. 끄디산에서 배로 약 20분.
출처 : Just go 발리 -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여행의 여유로움이 묻어 나는 아주 좋은 글 이었습니다. -
이런.... 미처 모르고 있었네요.
예외도 있는 모양이었군요.
저는 그냥 다들 화장을 하는 줄 알았는데...
제가 몰랐던 부분에 대한 정확한 지적
감사드립니다. -
일상에 지칠때면 항상 가고 싶은 곳 언제라도 떠나고 싶은 곳 김선배와 다녀왔던 신들의 섬 발리
발리의 설날에 보았던 행렬들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는데
아내가 출산하여 갓난장이를 대불구 가고는 싶은데 참아
시절이 하수상하여 조금 참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좋은 구경 눈으로 만 먼저하고 갑니다.
즐거운 여행이 되었기늘 바라며 담번에는 다시 같이 한번 gogo -
멋집니다.
-
침대 2개를 붙여서 주무신건 아닌지
-
출간된 기행문을 보는듯 말끔한 문체의 글이 막힘없이 읽어가게 만들었습니다.
정보가 아니라 예술이군요.
어른이 되니 읽고싶은 장르의 책만 읽느라
시나 수필은 접해본지가 오래인데,
고은님의 시에 감명받아 한국에 있는 언니에게 책 한권 청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저도 그 사양사양으로 목요일에 떠납니다.
아마 올려주신 그방에서 묵을 것 같습니다.
올려주신 후기대로 한번 움직여 볼 생각입니다.
좋은 정보 주샤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