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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2014.05.14 21:51 댓글:14 조회:1,983

balisurf.net


  어디 남태평양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섬은 없을까
  국경도 없고 경계도 없고
  그리하여 군대나 경찰은 더욱 없는
  낮에는 바다에 뛰어들어 솟구치는 물고기를 잡고
  야자수 아래 통통한 아랫배를 드러내고 낮잠을 자며
  이웃 섬에서 닭이 울어도 개의치 않고
  제국의 상선들이 다가와도
  꿈쩍하지 않을거야
  그 대신 밤이면 주먹만 한 별들이 떠서
  참치들이 흰 배를 뒤집으며 뛰는
  고독한 수평선을 오래 비춰줄 거야
  아, 그런 "나라" 없는 나라가 있다면 !
                                                                                                        - 이 시영의 시 "나라" 없는 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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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남동생마저 몇 년전 사고로 잃은 터라 정말 둘도 없는 피붙이인 셈이지요.
  녀석이 얼마 전 긴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유달리 남보다 바쁘게 사는 녀석인지라 평소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운 탓에 기껏해야 오누이의 동행은
  그동안 국내가 고작이었더랬습니다.
  해서 드디어 큰 맘먹고 함께 떠나려했는데 이번엔 제 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더군요.
  할 수 없이 일정을 변경해서 호주에 사는 여고동창을 혼자서 만나러 가는 걸로 대강의 계획을 잡고 
  미안한 마음에 티켓팅에서부터 숙소예약, 동선 및 스케쥴을 대략 잡아주었습니다.(호주에서의 일정만 빼고요,)

  쿠알라에서 멜라카를 경유하고 다시 쿠알라로 돌아와 발리에서 보름을 지낸 뒤 재차 쿠알라에서 호주의 애들레이드로
  가서 맬버른과 시드니를 들러 마지막도 쿠알라를 거쳐 귀환하는 약 5주간의 일정...
  티켓팅은 미리부터 손을 쓴 덕에  총 90만원 정도로 마무리를 짓고(맬버른 -시드니 구간만 현지구입)
  숙소도 호주부분만 제외하곤 아고다를 통해 빠짐없이 예약을 완료하고 그래놓고도 못 미더워 70페이지 가량되는
  오빠표 여행안내서까지 만들어 쥐어준 것이지요.



   내내 옆에서 지켜보던 마누라는 너무 챙겨 준다며 짐짓 시새움을 드러내지만 하늘 아래 달랑 둘만 남은 오누이의
   심정을 다복한 친정을 둔 마누라가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
  "그런 거 없어도 아가씨는 잘 다녀 올 수 있어."
  "코스가 다 초행길인데 해줘서 나쁠 것 없잖아"
  "아가씨 혼자서 유럽을 몇 달씩이나 누비고 다녔는데 그 핏줄이 어디 가겠어? 게다가 나이어린 애들도 아닌데..."
  "유럽하고 발리하고 똑같냐 ? 그리고 내가 먼저 갔다왔는데 남이라도 난 그 정도는 가르쳐주겠다."
  
  그렇게 보내놓고서도 저는 솔직이 한동안 노심초사를 했더랬습니다.
  그건 마누라 말마따나 너무도 아날로그적이라는 저희 집안의 유전적 요인 때문이었지요. 
  얼리 어댑터는 고사하고 남들 다 가지고 다니는 그 흔한 스마트폰조차 우리 남매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행지에서는 초행이더라도 직관에 힘입은 탁월한 방향감각을 지녔으니 겁낼 일도 별로 없었구요.





  하지만 세상이 워낙 어수선하다보니 짐짓 불안한 마음을 떨칠 길이 없더군요.
  아무리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자주는 아니더라도 간혹은 연락이 있어야 되는데...
  녀석은 아예 똑딱이 핸드폰조차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날 그날 묵는 숙소며 동선은 대충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안심이 되는 건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러던 차에 멜라카에선 어느 PC방에선가 딱 한 번 영문 메일을 보내오더니 
  발리로 들어가자마자 난데없이 다금바리님으로부터 메일이 왔습니다.
  "동생이 잘 도착해서 잘 다니고 있으니 걱정말란다."고... ㅎㅎㅎ
  시대에 역행하는 별난 오누이의 모습에 아마 그 분도 웃었을 겁니다.
  다행히 호주에서는 길마다 공중전화가 즐비한 덕분에 자주 연락을 취하더군요.
  세월호 소식도 물어오고 말입니다.

  녀석은 지금 감기로 고생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호주의 을씨년스런 늦가을이 무척 쌀쌀했던 모양이예요.)
  그리고 우리 남매에게는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저는 작년 가을 선물로 받아놓고 쳐박아놓은 스마트 폰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번 여행에서 스마트 폰의 위력과 필요성을 저보다 더 실감한 녀석은 이제껏 버텨오던 016과 드디어 작별을 고했습니다. 
  필요와 깨달음 ..
  이것도 여행이 가져다주는 미덕의 하나일테지요.


  • dorote 2014.05.15 17:54 추천
    와, 이건 저도 부러운데요,, 오라버니가 없는지라.
    아날로그라 할지라도. 그게 여행의 참맛이지 않을까요?ㅎㅎ
    여튼 완전 멋진 오라버니십니다. :)
  • 정원이아빠 2014.05.15 18:07 추천
    ㅋㅋㅋ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랍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게지요.

    원래 나이차가 많이 나는데도
    어려워하지 않는 녀석의 성격이 좋은 건지
    아니면 넉넉하게 대하는 제가
    체신머리 없는 건지는 몰라도요.
  • kufabal 2014.05.15 23:06 추천
    짠디다사 라군!!! 오~ 사원안으로 들어가신건가요~
    저도 높은데서 내려다보고 싶어용~
  • 정원이아빠 2014.05.16 04:06 추천
    구파발님 덕분에
    연못 앞으로 완만하게 계단을 올라가는
    힌두사원이 하나 있던 게 기억났습니다.

    저는 그냥 녀석이 구도를 잘 잡아 찍었다고만 생각했지요.

    제 기억으론 지나칠 때 출입금지 팻말을 본 것 같았는데
    물어보니 힌두신자가 아님에도
    선뜻 무사통과 시켜 주더라네요.ㅎㅎㅎ

    저같았으면 지레 포기했을텐데
    초짜의 용감함이 좋은 사진 한 장을 건졌네요.
  • 착한바위 2014.05.18 00:17 추천
    좋은 글 감사드려요...
  • 꼬망 2014.05.20 20:02 추천
    역시 저는 정원아빠님의 펜입니다.
    제가 보았던 짠디다사에 또다른 모습과 의미를 소금처럼 더해주시네요.
    발리던 한국이던 다시 뵙고싶어요.
  • 정원이아빠 2014.05.20 21:28 추천
    고마운 댓글

    저도 감사합니다...
  • 정원이아빠 2014.05.20 21:33 추천
    내가 정말 꼬망의 왕팬인데...ㅎㅎㅎ
    그럼 우린 서로 팬인감 ?

    같은 장소를 찍어도
    동생이 찍은 사진은 많이 다르더군.
    주로 나무며 꽃을 많이 찍어와서
    내가 써먹을 게 없어서 탈이지만.

    그리고 언제라도 전화만 주면
    서울이든 광주서든
    오랫만에 회포를 풀어보자구.

    얼굴은 안 잊어버렸는지 몰라. ㅎㅎㅎ
  • eugel 2014.05.23 01:31 추천
    좋아요. 정말 좋은 글입니다.
  • 청아 2014.05.25 20:43 추천
    울오라버니들에게는 언제쯤 정원이아빠님같은 여유가 생기실지...
    ㅠㅠㅠ...
    정말 부러운 오누이의 정입니다...
  • Santi_imut 2014.05.31 23:06 추천
    이런 오라버니 한분 계심 좋겠네요 70페이지!!! 대단하십니다!!
  • 정원이아빠 2014.06.01 22:48 추천
    집안 내력만 늘어놓은
    잡문도 좋은 글이라고 하시네요.

    감사합니다.
  • 정원이아빠 2014.06.01 22:53 추천
    세월이 흘러흘러
    제법 나이가 지긋하게 들면
    마음의 여유만큼은
    저절로 알아서 찾아오던데요... ㅎㅎㅎ

    비움과 채움이 반복되는 여행처럼
    우리네 삶도 다 비슷한 궤적을 보이니까요.
  • 정원이아빠 2014.06.01 22:56 추천
    동생이 둘이라면 이런 고역을 안 했을텐데
    하나뿐이라서
    어쩔 수 없었지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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