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두굴(Bedugul) 지역에 있는 발리 식물원과 브라딴 사원을 관광하기 위해서 숙소에서 출발해 해발 1,500여m 위치에 있는 산악지대로 이동했다. 브두굴로 이동하는 길가에는 산비탈을 깎아 만들 비좁은 다락논들이 계속해서 이어져 있었다. 온 산이 통채로 계단식 논처럼 되어 있었고, 각각의 논에는 벼를 심은 시기가 달라서인지 추수를 한 논과 모내기를 한지 얼마되지 않은 논등 제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식물원으로 가는 도중에 차에서 내려 계단논의 풍경을 구경하고 싶었으나 우선 식물원과 브란딴 사원을 구경하고 돌아 오는 길에 보기로 하고 부지런히 산을 올라갔다. 산을 오르는 도로인지라 주변의 풍광이 아주 보기 좋았다.
이번 발리 여행중에 운좋게도 한번의 비도 만나지 않았는데 스트로베리 힐 언덕을 넘을 때부터 구름의 양이 많아지면서 비가 내릴 것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주변의 기온도 뚝 떨어져 에어콘을 틀지 않고 차창문을 열고 가도 다른 지역과는 달리 선선한 느낌이 몰려올고 있었다. 발리식물원이 1.5km 남았다는 표시와 함께 식물원내 트리탑 어드벤쳐 파크를 선전하는 광고판을 보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트리탑 어드벤쳐 파크와 식물원은 별개의 장소에 있는 다른 장소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 있는 발리 식물원의 표시판을 지나면서... 이 문을 지나고 나서도 2km를 더 가야 발리 식물원이 나온다. 이곳의 높이는 해발 1,300미터 이상 고지에 있어 평균기온이 20도 정도인데 오늘은 구름까지 가득해서 선선한 초가을 날씨 같다는 느낌이다. 식물원에 도착하니 높은 산악지대여서 에어컨이 없이도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고, 식물원이니 풋풋한 느낌의 공기도 좋았다. 브두굴 지역과 발리식물원은 발리 사람들도 휴가를 받아서 오거나 학생들이 소풍장소로 이용되는 곳이라고 한다.
발리식물원 주 출입문을 지나니 발리 트리탑 어드벤쳐 매표소가 나타났다. 이로서 발리 식물원 안에 트리탑 어드벤쳐가 함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여행정보 책자에는 트리탑 어드벤쳐에 대한 내용이 없어 사전에 알지 못했던 탓이다. 보기에도 튼튼해 보이는 나무를 잘 가꾸어 이런 멋진 놀이시설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매표소 유리창에 종류별 금액과 각 과정을 지도할 강사들의 사진이 담긴 라이센스를 붙여 놓았다. 군대 있을 때에 받았던 유격훈련장과 비슷한 곳이지만 안전을 위해 자일을 연결해 놓고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었으며, 각 코스를 강사가 계속 따라 다니면서 지도를 해 주어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어린이부터 어른들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놀이로 아래에서 쳐다보니 제법 스릴이 있어 보였다. 코스는 초보단계에서 중간, 고난이도 등 6단계로 나뉘어지는데 난이도에 따라서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고 시간 제약은 없으며 모든 코스를 마무리 하는데는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도 즐기고 있었는데 시간적인 여유나 있거나, 사전 정보를 가지고 왔었다면 한번쯤 참가해봐도 괜찮았을 것 같았다.
식물원 안쪽 숲속 놀이터라 사방이 하늘로 쭉쭉 뻗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차 있고, 숲에서 풍겨나오는 나무향기가 상큼했다. 트리탑 어드벤쳐의 코스중에는 그물망을 통과하거나 원통들을 통과하는 과정도 있는데 안전장비를 갖추어 위험해 보이지는 않아 보였다. 겁이 많은 집사람도 시간이 허락한다면 트리탑 어드벤쳐에 참가하고 싶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안되고 다음에는 시간을 가지고 와서 꼭 한번 참석해 보기로 약속했다. 발리의 여러 곳을 다녀 보았지만 다음에 왔을 때 꼭 다시 한번 와 보기로 한 1순위가 발리 식물원으로 결정했다.
트리탑 어드벤쳐 지역을 벗어나 난초정원 방향으로 이동중인데, 잘 관리된 잔디와 나무로 둘러싸인 공원이 부럽기만 하다. 나무 이름이 궁금했지만 설명이 없었던 이 나무는 크기도 엄청나게 컸고, 잎이 모두 아랫쪽으로 늘어져 있어 특이해 보였다. 나무 그늘에 않아 있는 사람의 크기를 비교해 보면 얼마나 큰 나무인지 알 수 있다. 이곳은 비가 많이 내리고 나무가 자라기 좋은 여건이 형성되어 있어 큰 나무를 많이 볼 수 있었다. 경제성이 높은 큰 나무를 볼 때마다 부럽다는 생각이...
몇 개의 테마 정원을 제외하곤 식물원 전체가 식물원이라기 보다는 잘 꾸며놓은 공원같은 느낌을 주는 식물원이었다. 식물원 곳곳에 게스트하우스도 있었고, 켄벤션 홀도 있어 여러 행사도 개최되는 듯하다. 관상용 열대화초인줄만 알고 있었던 식물에서 예쁘게 피어난 꽃도 볼 수 있었고, 향수에서만 맡던 라벤더 꽃도 직접 볼 수 있었다. 발리의 다른 곳과는 달리 언덕을 오르내려도 덥지가 않아서 좋았다.
발리식물원은 1959년 자와섬 보골에 있는 식물원의 분원으로 개원했으며, 난초 정원, 약초 정원 등 11개의 정원이 배치되어 있다. 약 154만 평방미터(45만평)의 넓은 대지에 4천5백종 이상의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500종이 넘는 야생란 컬렉션이 유명하다. 발리 식물원의 제일 볼거리는 식물원사무실 옆에 있는 난초 정원이다. 잘 가꿔 놓기는 했지만 관리가 조금 허술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이 이 나라에서는 풍요와 귀함을 나타낸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기도 한데...
난초 정원을 돌아보는 동안 서양인으로 보이는 한사람만 만나 사진 한장을 부탁하고 그 이후로는 관람객을 만나지 못해 난초 사지만 잔뜩 찍어왔다. 발리 식물원이 소풍장소로도 이용되고 결혼식으로도 이용된다고 들었지만 우리가 방문한 시기에는 그다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시기였나 보다.
난초 정원 근처에는 작은 유리온실이 있어 선인장등을 키우고 있었다. 발리가 더운 나라이지만 부두굴은 선선한 지역이어서 이렇게 온실을 만들어 선인장을 키우는 듯하다. 온실 속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열대식물원보다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 이곳은 관리가 잘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담박에 알 수 있었다.
식물원 중앙에 있던 메인 사무실. 그 어디에서도 식물원에 대한 자료를 얻을 수 없어 자료를 얻기 위해 들어갔더니 줄만한 자료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겨우 얻을 수 있었던 자료가 식물원 배치도 한장. 잘 가꾸어 놓은 식물원에 비해서 너무 관광 인푸라가 부족한 현실이다. 우리나라 말로 된 것이 있었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최소한 영어로 된 안내서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지...
산책하기 너무 좋았던 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란 나무가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식물원은 넓은데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은 시기여서인지 산책을 하는동안 현지인이나 관광객을 많이 볼 수 없었다. 우리 부부는 발리 여행지중 이곳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사람들마다 취향이 다르다보니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던 듯하다. 산책로를 따라서 베고니아 하우스로 이동중 나무에 올라가 이름모를 열매를 따 먹으며 놀고 있는 현지학생을 만날 수 잇었다. 열매이름을 물어 보았는데 기억력의 문제로 인해 기억하지 못한다. 과일 맛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걸어서 돌아본 식물원중 제일 끝으로 찾은 베고니아 하우스. 수백종이나 되는 다양한 베고니아를 키우고 또 전시해 놓았다. 베고니아가 이렇게 많은 종이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온실이나 따뜻한 집안에서만 키우는 이 식물을 이곳에서는 야외에서 키우고 있었다. 잎이 워낙 커서 베고니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다양한 베고니아에서 꽃이 피어 있었고, 실내외에 전시되어 있는 다양한 베고니아를 실컷 구경했다.
발리 트리탑 어드벤쳐 매표소가 있는 입구 부분에 세워져 있는 발리 식물원의 랜드마크와도 같은 'Kumbakarna Laga 상'. 아주 커다랗고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 상이다. 발리의 곳곳을 다니면서 이런 종류의 조각상을 상당히 많이 보았는데, 이 조각상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 수가 없어 조금은 갑갑하다. 이 상 역시 힌두 신화에서 나오는 신들중에 하나일 것으로 추정이 되지만, 식물원내 어디에도 'Kumbakarna Laga 상'이라고만 되어 있을 뿐 내가 원하는 추가적인 자료는 없었다. 관광대국을 꿈꾸면 관람객이 궁금해 하는 이런 부분에도 신경을 더 써야 하지 않을까싶다.
중앙에 모여 있는 몇 개의 정원을 모두 보고 나서 이제는 차를 타고 식물원의 다른 곳을 돌아 다녔다. 도로를 따라서 크고 곧게 자란 나무와 잔디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인공미와 자연미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보기에도 상당히 좋았다. 걸어서도 한바퀴를 도는데 3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고 하는 공원같은 식물원을, 날씨도 서늘해서 한번 시도해 보고 싶었지만 시간적인 제약으로 걷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하다 못해 커다란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여유를 부려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할일이 많은 여행자는 마음 뿐이다.
발리 식물원이 154만 평방미터(45만평)의 넓은 대지에 조성되어 있어 차를 타지 않고는 짧은 시간에 식물원의 곳곳을 둘러 볼 수가 없다. 식물원의 한쪽 끝에는 브란딴 호수를 감상할 수 있는 뷰 포인트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보는 호수 경치가 근사했다. 하지만 곧 비가 내리려는듯 호수위로 구름이 가득해 호수 전체를 관망할 수는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식물원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거나 안내 가이드가 없었다면 식물원에 와서도 이렇게 좋은 장소를 알지 못한채 그냥 돌아 갔을 것이다.
워낙 규모가 큰 발리식물원은 차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도록 도로가 만들어져 있었고, 중간 중간에 걸어서 다니도록 적당한 길이의 산책로도 만들어져 있었다. 시간적 여유가 조금만 있었다면 산책로를 걸으면서 숲속을 거닐어 보는 것도 괜찮았을덴데 오늘 또 봐야 할 것이 할 수가 없었다. 부두굴에 오는 사람들중에 식물원에 볼 것이 없다고 생략해버리고 부라딴 사원만 보고 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는데, 이런 발리식물원은 이곳에 여행을 와야지만 보고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여행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14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