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누르 지역에 숙소를 정해 놓고 있으면서 사누르 비치에 한번 나가보지도 않으면 억울할 것 같아 떠나는 날 아침 사누르비치 (Sanur Beach)를 방문했다. 숙소에서 콜택시를 부르면 차가 바로 왔겠지만, 너무 이른 새벽에 빌라주인이 자고 있는 상태에서 콜택시를 불러 달라고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번거롭게 할 것 같아서 조용히 숙소를 빠져 나왔다. 숙소 근처에도 이른 아침에 빈택시가 다니고 있는 것을 보았었기 때문이었다. 사누루 비치 쪽으로 걸어가다가 빈택시가 오면 탈 생각이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어선지 빈 택시가 오지 않아 한참을 걸은 뒤에서야 겨우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조금 걸었더니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걸었으면 땀으로 흠뻑 젖을 뻔 했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조금 흘러서 사누르 비치에서 일출을 보려고 했던 계획은 조금 어쩔 수 없이 수정되었다.
사누르 비치는 발리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꾸따지역과 누사두아지역이 발전하기 전까지 가장 번성했던 지역으로 오래된 리조트들과 여유로움이 베어있는 곳이다. 부담 없는 수준의 숙소가 해변가를 따라 이어져있고 해변 역시 조용하다. 꾸따해변이 발리 남부 서해안의 대표 휴양지라면 이곳 사누르는 남부 동해안의 대표격이다. 꾸따의 해변가가 대중적으로 너무 유명해 많은 외국인과 현지인이 넘쳐나는 곳이라면 상대적으로 여기는 비교적 한적한 편이다.
일출을 보려고 부지런히 서둘렀음에도 비치에 도착할 무렵에 해가 떠올랐다. 일출을 보고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숙소쪽과 관광버스로 이동하고 있어 이 사람들은 일출을 보고 되돌아 나오는 것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바닷가에 도착하니 해가 수면위로 훌쩍 솟아 있었다. 조금만 더 서둘렀으면 일출광경도 볼 수 있었을텐데 조금은 아쉽다. 발리에서는 이곳 사누르 비치와 누사두아 비치에서 일출을 즐길 수 있고, 꾸따와 짐바란에서는 일몰을 즐길 수 있다. 해변에는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다목적 배인 쭈꿍이 세워져 있었다.
일출을 감상하기 위해 모였던 수많은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 나간뒤 사누르 비치는 한가해졌고, 조용해졌다. 오히려 비치를 산책하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아진 듯하다. 그동안 발리의 해안가를 여러번 가 보았는데 이곳 사누르 비치의 해안처럼 깨끗하고 해안도로가 잘 갖추어진 곳이 없는듯하다. 해변은 자전거를 타거나 걷기 편하도록 길이 잘 꾸며져 있어 천천히 산책을 하기에는 더 없이 좋았다. 더구나 산책로를 따라서 나무숲이 형성되어 있어 뜨거운 햇살을 피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사누르 지역은 정말로 한국인보기 힘들다. 한국 사람들의 관광 비수기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발리의 다른 곳에서도 한국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지만 사누르 비치에 와서는 아침 이른 시간인데다가 더구나 관광코스에 들어 있지 않아서인지 한국인을 만날 수도 우리말을 들을 수도 없었다. 거의 추운 겨울이 시작된 호주에서 온 나이든 사람들과 가족단위의 여행객이 많이 보였다. 간단하게 음료나 식사를 할 수 있는 카페와 우리나라의 포장마차 같은 간이음식점이 많이 있었다. 아침 시간이 아니였다면 산책하다 카페에 앉아 아이스커피 한잔 시켜놓고 느긋하게 바다를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오늘도 일정이 바쁘다.
산책하다가 만난 해양경찰 파출소....
사누르 비치의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다가 만난 르 마요르 뮤지엄 (Le Mayeur Museum). 벨기에인 화가였던 르 마요르가 발리에 와서 30여년간을 살며 작품 활동을 했던 집을 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발리에 오기 전에 이곳도 한번 방문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너무 일러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청소를 하고 있는 관리인에게 언제 오픈하는 지를 물었더니 개장시강이 한참이나 남았다고 하면서 찾아온 손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발리에서의 또 다른 화풍을 한번 접하고 싶었는데 결국 다음에 다시 와봐야 할 운명인가 보다.
르 마요르 뮤지엄은 그랜드 발리비치 호텔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입장은 하지 못했지만 입구의 철문 사이로 안쪽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아쉬운 마음에 안쪽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왔다. 내부은 청소하는 관리인이 깨끗하게 정리해 놓았고, 소품이 여기저기에 놓여 있었다. 아쉽기는 했지만 다음에 와서 볼거리를 하나 남겨 두었다는 심정으로 통과...
사누르 비치에는 이곳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렘봉안 섬과 그 옆에 있는 큰 섬인 페니다 섬 으로 갈 수 있는 선착장이 있다. 램봉안 섬에서는 다이빙과 스노클링을 비롯해서 제트 스키니 바나나보트등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할 수 체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데 이번 여행은 체험보다는 보는 것에 중점을 두기로 했기에 매표소를 배경으로 사진 한장만 찍고 지나갔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 영업을 시작하지는 않았는데 램봉안 섬투어의 겨우 1인당 55달러(미화)하니 이곳의 물가로 보았을 때 상당히 비싼 편이다.
사누르 지역에 위치한 발리에서 제일 고층인 호텔인 '인나 그랜드 발리 비치 호텔(Inna Grand Bali Beach Hotel)'이다. 발리는 법적으로 야자나무보다 높은 건물(보통 4층)을 짓을 수 없는 환경보호 규정이 있는데 이 규정이 제정되기 전인 1966년에 지어져서 발리에서 유일하게 10층 높이를 자랑하는 호텔이다. 발리에서는 힌두교와 불교, 그리고 토속 신양이 어우려줘 신으로 섬기는 대상이 많으며, 야자나무도 신으로 생각하고 신들이 다니는 길에 높은 건물이 있으면 신들이 다니는데 방해가 된다고 해서 높은 건물을 짖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건물은 높고 전망는 좋아보였지만, 만들어진지 오래되어 상당히 낡아 보였다.
해변을 따라서 만들어져 있던 특이한 조형물과 장식물들....
특이한 구조물이 있어 사진을 찍었는데 자세히 보니 이곳에 결혼식장이다. 남태평양 바다를 바라보면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규모가 크지 않아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결혼풍습에는 맞지 않을 듯하다. 그야말로 아주 가까운 친척과 신랑 신부의 친구 몇명만 초대해서 결혼식을 할 수 있는 규모이다. 사실 결혼식이 결혼하는 두사람의 언약을 맺는 의식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형식에 얽매여서 조금 변질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엄청난 규모의 식장과 평소 큰 안면도 없는 하객들의 참석과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여러 낭비적 요인들... 아담한 식장을 보면서 반성해 보았다.
사누르 해변에서 만난 발리인. 한국말을 거의 완벽하게 구사하는 분이다. 이곳 해변에서 보트도 빌려주고, 한국인을 상대로 가이드도 하는 분인데 해변 청소를 하고 있다가 사진을 한장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하자 한국인임을 알고 적극적인 영업활동을 해 왔다. 낙천적인 성격의 전형적인 발리인으로 보여졌다. 명함도 받았는데 이름이 와얀(Wayan)이고 명함에 163번 보트를 가지고 있다고 되어 있다.
발리사람들의 이름은 같은 이름이 굉장히 많다. 발리는 인도처럼 신분의 계급이 정해져 있으며 농민계급인 수드라는 발리인의 95%를 점하고 있는데 이 평민의 이름이 자녀의 출산순서에 따라 지어지게 때문에 같은 이름이 엄청나게 많은 것이다. 첫째의 이름은 와얀(Wayan), 뿌뚜(Putu), 거대(Gede), 일로(Iluh 여자만 ), 둘째의 이름은 마데(Made), 능아(Nengah), 카덱(Kadek), 셋째의 이름은 뇨만(Nyoman), 꼬망(Komang), 넷째의 이름은 꺼뚯(Ketut), 다섯째의 이름은 다시 와얀, 뿌뚜, 거대로 이어진다. 이 순서의 이름은 남자 여자 동일하게 사용되고, 구분은 남자 이름 앞에 I(이), 여자 이름 앞에 Ni(니)를 붙여 구분한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인은 수마트라 북부와 칼리만탄 다약족을 제외하고는 성(family name)이 없다고 한다. 이 아저씨도 첫째라는 뜻으로 와얀(Wayan)이였던 것이다.
다시 해변을 따라서 오다 보니 기념품등을 판매하는 사누르 비치 마켓이 나왔다. 이곳에는 규모가 작은 상점들이 밀집해 있으며, 레스토랑, 바등이 있는 사누르의 제일 번화한 관광지역이라고 들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의 방문이어서 아직 시장이 문을 열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에 사누르 비치 마켓에 대한 정보를 들었기에 한번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결국 다음에 또 한번 더 사누르를 방문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사누르 해변을 따라서 내려오다 보니 계속해서 굉장히 아름답고 보기 좋은 장소들이 이어졌다. 사누루 해변의 바닷가는 발리의 서쪽에 비해서는 파도도 잔잔한 편이였고, 해안가에 파라솔과 여러가지 휴식공간을 만들어 놓아 휴양의 개념에서 보았을 때 썩 괜찮아 보였다. 호텔들도 해변 근처에 풀장과 식당, 휴게실을 만들어 놓았고, 이런 각종 시설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라는 생각이다.
여유를 가지고 사누르 비치를 걷고 싶었는데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집사람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어 1시간 반동안의 해변 산책을 마치게 되었다. 아침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뜨니 상당히 더웠졌다. 걷는 것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더운 날씨에 아침도 먹지 않고 걷는 것이 집사람에게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였다면 편하게 지내면서 절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해변을 걸으려고 하지 않았을터이지만 함께 걸은 것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한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 많이 걸었으면 좋겠다. 다음에 한번 더 사누르 비치를 방문하겠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사누르 비치 방문을 마쳤다. 시간이 되었으면 비치뿐만 아니라 시내 중심가 도로도 걸으면서 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1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