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아빠
Lv.17
2011.01.30 03:43
추천:6 댓글:6 조회:4,412
똑같은 곳을 여행한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저마다의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취향이 틀리고 서로의 관심사가 다른만큼 그 차이는 되도록이면 존중되어야 하는 법이겠지요.
이를테면 어떤 이는 쇼핑을 좋아하고, 또다른 이는 식도락에 관심을 두는가하면 스포츠와 같은 액티비티에 열중하는
분도 계실테고 드물지만 이국의 유흥가를 기웃거리며 밤문화의 탐닉에 열중하는 이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여행 스타일은 좀 다릅니다.
남들보다 여행을 조금은 더 자주 다니는 편이지만 그 장소가 어디이건간에 주로 늘어지며 푹 쉬는 쪽에 가까우니까요.
사실 엉덩이가 무거운 마누라가 이번 여행길에 선선히 따라나선 것도 발리라는 만만한 공간과 아울러 오기전부터 봐두었던
숙소의 안락해 보이는 모드때문이었는데 사누르 홈은 그 기대를 100% 이상 만족시켜주고도 남았습니다.
- 현지인들의 동네 작은 길가에 접한 저 문을 열고 이제 사누르 홈의 집구경을 시작해보자. 사나흘 정도 저 곳에 묵었다면
마실을 나갔다 들어오면서 오른쪽 문에 난 네모공간 안에 손을 넣어 빗장을 푸는 법도 자연스레 익힐 수 있다.
-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나오는 모습. 눈밝은 분들이라면 이미 발리서프 안에서 종종 만난 낯익은 풍경이리라.
- 위의 사진에 난 왼쪽 작은 문을 들어서면 숨어있던 계단식 샘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도 없는 시각에 바로 옆 소파에
앉아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마치 몰토 아다지오(아주 느리게)로 흐르는 물의 노래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 비스듬히 기대어 차를 마시고 책도 보면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명당자리인 바깥소파.
둘러보면 눈에 잘 띄지않는 곳까지 그림과 소품으로 디스플레이를 한 주인장의 섬세한 배려를 엿볼 수 있다.
헌데 맞은편의 삐딱한 저 개구리 그림은 바로 걸어둔다고 생각만하다가 그만 깜빡 잊고 와버렸다.
- 그림도 잘 그리고 목각솜씨도 좋다는 관리인 아저씨는 항상 무언가를 손질하는 부지런한 모습이었다.
우리가 가기 전 심한 비바람으로 찢겨 나간 누드 파라솔을 손보는 것일까 ?
- 예전 발리서프에 어느 고마운 분이 올린 사진 속의 부처님 두상은 거실 중앙의 자리를 힌두신에게 내어주고 집밖으로
나와 있었다.
- 우기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디포짓없이 나갈 때마다 들고가는 장우산도 저렇게 비치되어 있으니까 ...
안도 다다오라는 제가 드물게 존경하는 일본인이 있습니다.
알고 계신 분도 있겠지만 김연아 선수로 인해 우리가 제법 익숙하게 된 피겨선수 안도 미키의 오빠거나 아빠는 절대로
아닙니다.
그는 일본이 나은 세계 건축계의 거장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건축분야의 마에스트로라서 그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의 범상치않은 인생역정에 고개가 수그려지는 까닭에
그를 좋아한 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물론 작품이 좋은 건 기본이구요. 제주도에도 그의 작품 두 곳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교수로서 동경대와 하버드를 오가며 강의도 하고 자신의 연구소에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지만 실은
학창시절엔 대학 문턱조차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방 소도시의 작은 인테리어 샵의 점원노릇을 하며 17살엔 권투선수 생활도 했던 헝그리 청년이었지요.
그런 그가 7년여에 걸친 세계여행을 하며 현지의 건축물을 직접 대하면서 건축가가 되기로 했다지만 길은 험했습니다.
수도 없이 공모전에서 떨어지고, 냉혹한 비평을 받으면서도 잡초처럼 성장한 그는 독학으로 책을 보고 수백번에 걸쳐
도면을 필사해가며 점차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건축에는 빛과 물, 바람과 하늘과 나무 등 늘 자연이 함께 동반되는 까닭이었습니다.
뜬금없이 안도 다다오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사누르 홈을 그의 반열에 비교하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물론 이 곳도 꽤나 이름있는 네델란드 인이 설계를 했다지만 그냥 편안한 집일뿐 예술작품과도 같은 안도의 건축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안도 다다오의 철학과도 통하는 집들을 저는 발리에서 종종, 아니 자주 만납니다.
바람과 자연을 보듬어 안는 편안한 공간, 그리고 건물이 주인이 되어 사람을 압도하지 않고 사람이 자연을 배려하는 공간,
바로 우붓이나 짠디다사, 또는 낀따마니나 아궁산으로 가는 시골길에서 보게되는 그들의 평범한 전통 가옥들에서 말입니다.
그들의 집들은 신들에 대한 공간까지 배려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그렇다면 멀리에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옛날 우리의 전통가옥 또한 그러하지 않습니까 ?
이처럼 전통은 첨단과 통하듯이 발리와 우리의 삶은 많이 닮아 있고 이또한 발리가 낯설지 않은 하나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 이번에는 숙소 안으로 들어가보자.
- 매일 아침 깔끔한 한식이 차려지는 식탁.
- 주방으로 가는 벽에 바로 첫번째 이야기에 나온 다금바리님이 궁금해했던 발리니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 사누르 홈에서 머무는 8일동안 딱 한 번 앉아봤던 거실 소파. (바깥 소파가 더 좋아서...)
- 부처님의 두상을 밖으로 밀어내고 거실 중앙에 입성한 힌두의 신. (누가 이름 좀 가르쳐 주세요.)
사실 이 집을 발리서프에서 처음 봤을 때 저는 올리신 분이 DSLR급의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꽤나 공을 들여 찍은
사진이라고 생각했습니다.(홍보를 위한 약간의 뽀샵처리도 하지않았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실제 와서보니 어느 각도에서든지 카메라를 디밀어도 좋은 그림이 나올 수 있는 집이란 걸 알았습니다.
대게 사진이 실물을 미화하는데 반해 사누르 홈은 실제가 사진보다 훨씬 더 잘 생긴 예쁜 집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오기 전 e-메일로 문의할 때만해도 와이파이가 집안 전역에서 잡힌다길래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는데 어라,
가져온 노트북이 좀처럼 말을 듣질 않습니다.
제 노트북이 고물인지 아니면 와이파이 접속에 문제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미루어 짐작컨대 망의 속도가 느려터진
후자일 것 같습니다.
국내에 두고온 일들을 처리하려면 밥벌이 도구인 노트북의 연결이 관건이라 결국 예전에 접속이 잘 되었던 발리다이어리를
떠올리고 아침을 먹자마자 택시를 불렀습니다.(알고보니 걸어가도 될 거리입니다. 딱 기본요금인 5천Rp가 나오네요.)
반 년만인데도 주방의 에카가 수줍은 웃음으로 반겨주고 사장님 역시 여전히 씩씩합니다.
제 볼일을 마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구권달러로 인한 어려움을 들은 사장님은 흔쾌히 바꿔주시겠다네요.
하지만 오늘은 수중에 돈이 없으니 내일 다시 방문해달라는데 저로서는 감지덕지할 따름이지요.
고마움에 점심이나 같이하자고 청해 사누르비치의 남쪽 끝인 뿌리 산트리안 호텔 부근 "스모"로 함께 갔습니다.
한국에서 바깥 분이 들어오시면 간혹 데이트삼아 가는 곳이라는데 아담하고 깔끔한 일식집입니다.
발리특유의 착한 가격은 여기도 마찬가지였지만 푸짐한 양으로 인해 스시 몇 점은 결국 남기고 일어섰습니다.
한국에서는 일식이란게 워낙 소량이라 남길 일이 없었는데 매니아인 저로서는 새로운 식당을 만난 게 꼭 횡재한 기분입니다.
- 사누르 하디스매장 1층을 들어서면 왼쪽 안내데스크에 비치된 무료 신문들.
위의 것은 말 그대로 각종 다양한 할인쿠폰들이 들어있는 신문형태의 쿠폰북이고 아래의
발리 어드버타이져는 우리 나라로 치면 벼룩시장이나 교차로쯤 되는 정보지이다.
특히 정보지는 숙소로 들고와 심심할 때 펼쳐보니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구인광고며 각종 "팝니다" 광고뿐 아니라 발리의 주택들에 대한 매매, 렌트기사까지
사진과 함께 실려 있는 등 온갖 잡다한 정보의 보고였다.
숙소로 돌아오니 마누라와 정원이도 가져온 라면이며 햇반으로 점심을 해결한 모양입니다.
게다가 수영까지 한 뒤라 두 모자가 편안한 휴식모드로 늘어져 있습니다.
"심심하지 않았냐 ?"고 물으니 "등 따시고 배 부른데 웬 심심이냐 ?"며 오히려 반문하는 마누라...
우리의 일상과 대화는 공간만 달라졌을 뿐 한국에서나 발리에서나 한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늦은 오후가 다 되어서야 숙소를 나섰습니다.
저녁도 먹을 겸, 일단 필요한 만큼은 환전도 할 겸 해서 가장 환율이 좋은 하디스 앞 써클 K에 도착했습니다.
헌데 2000년도판 100달러 두 장을 내미니 직원녀석이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Money Condition이 안좋아 바꿔 줄 수가
없다고 정중하게 거절을 합니다. (아니 무슨 돈도 컨디션이 있다고... 찢어지거나 심하게 훼손된 게 아니면 다 똑같은
돈인데. 욕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릅니다.)
할 수 없이 ATM기에서 카드인출을 하기로 하고 조심스레 터치스크린을 해가며 100불만큼 돈을 꺼낸 것 까지는 좋았는데
아뿔싸, 인출된 Rp를 헤아려보다 시간지연으로 카드가 자동으로 들어가버린 겁니다.
국내에서도 ATM기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촌놈이라 신경을 쓴다고 썼는데도 그만 사고를 쳤습니다.
(우리나라는 카드를 긁고 돌려받은 뒤 터치 스크린을 하는데 반해 여긴 카드가 물려져 있는 상태에서 전 과정이 끝난 다음
카드를 돌려받더군요. 유념하시길... 물론 저같은 분들도 많지 않겠지만.)
하지만 이 친구들의 반응은 강건너 불구경입니다.
ATM기에 돈을 넣는 카드사나 은행직원이 날마다 정시에 올텐데도 아는 녀석이 없고, 점포의 책임자도 없으니 대답은
하나같이 영 신통치가 않습니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카드회사나 ATM기의 관리회사 전화번호도 모른다네요.
몇 번을 되물으니 간신히 한 녀석이 내일 오전 11시쯤 와보라는 말을 하는데 도저히 신뢰가 가지않아 일단 녀석들이 보는
앞에서 서울의 KB로 전화를 해 분실신고를 해버렸습니다. (마음 편하게 ...)
- 보드판에 휘갈겨 쓴 여느 환전소와 달리 여기에는 전광판으로 시세를 알리고 있어 믿을만하다. 물론 환율도 좋고.
- 내 카드를 꿀꺽 삼킨 문제의 ATM기.
이제 조치는 취해 놓았으니 크게 문제될 건 없고 별로 볼 건 없지만 하디스 매장을 둘러봅니다.
- 하디스 옆 신발,의류매장에 걸리버여행기의 거인국에서나 입을 법한 초대형 코트가 걸려있는데 눈밝은 마누라 왈
"저거 몇 년째 먼지를 뒤집어쓰고 저 자리에 걸려있는거야."라고 말한다.
- 하디스 바로 맞은편의 환율은 좋았으나 카드때문에 속터졌던 써클 K.
사누르 비치의 거리를 잘란잘란하는 동안 해는 어느새 뉘엿뉘엿 지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 이 근방을 걷다가 길을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느 식당의 여직원 하나가 너무나 친절하게 가르쳐 준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나중에 다시 오면 꼭 그 집에서 식사를 해야지 싶었는데 오늘 저녁에야 그 집엘 가게 되네요.
하디스에서 하이얏트호텔 방향으로 조금만 올라가다가 만나는 "바투짐바" 옆의 "마닉 오가닉"이 바로 그 식당입니다.
주인장이 일본인인데 모든 식자재를 유기농 제품으로 쓰는 곳으로 꽤나 알려진 곳이지요.
아쉽게도 작년의 그 아가씨는 없었지만 친절한 종업원을 두었던 식당또한 역시 생각대로였습니다.
단순히 맛으로만 승부하는 곳이 아니라 눈과 귀까지 만족시키려는 그들의 노력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 마닉 오가닉의 입구 전경. 바깥 테이블과 실내좌석을 지닌 작은 공간이다.
- 화사한 베네통 칼러풍의 쿠션으로 만든 바깥 좌석.
- 각종 유기농 과일과 야채로 직접 갈아 만들고, 보기좋게 진열해놓는 공간도 있다.
- 너무도 색감있는 실내의 정경. 고작 네 개 정도의 테이블이 들어있는 공간을 바닷속 사진과 각종 그림 ,소품 등으로
장식해놓았는데 벽과 테이블보 등 모든 것들과 매치되는 느낌이었다. 평소같으면 불쾌하게 들렸을 일본악기 샤미센의
CD 연주조차 훌륭한 조화로 여겨졌으니 말이다.
- 우린 특별한 걸 주문하지 않았다. 물론 쥬스는 같은 특성을 공유하는 3가지 과일을 함께 갈은 것들로 시켰지만...
나시 고랭 역시 색감이 좋은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지녔다.
- 밥을 먹고 나서면서 본 이 식당의 안내판에는 놀랍게도 요가프로그램과 유기농 야시장을 운영한다고 알리고 있었다.
- 마닉 오가닉에서 사온 쵸콜릿 "몽고". 모든 유기농을 취급하는 것에 걸맞게 이 역시 오가닉 제품이란다.
하지만 난 신문재생지로 만들었다는 예쁜 종이봉투에 더 눈길이 갔다.
거의 모든 오감이 호사를 누린 저녁식사는 나시고랭과 쥬스뿐인 단품식사였지만 그 어느 만찬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식당을 나와 어둠이 깔린 길을 다시 걷습니다.
급하게 해야 할 일도, 가야할 곳도 없는 여유로움으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려도 이 곳 사람들은 귀찮아하거나 싫어하는
내색이 없습니다.
오히려 천천히 둘러보라네요.
서울에서는 화살이나 총알처럼 빨랐던 시간들이 역시 발리에서는 물처럼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환한 또는 수줍은 미소를 지닌 순박한 인간의 얼굴을 한 채로 말입니다.
- 마닉 오가닉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 걷는데 길건너 제법 큰 g갤러리가 보인다.
- g갤러리의 전시실을 우리 가족이 누비는 동안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 아무도 없는 전시실의 마지막 모퉁이를 돌자 허걱, 식당과 연결되는 곳이다.
예전 우리나라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처럼 발리에는 이처럼 수많은 "미술관 옆 식당"을 만날 수 있다.
아니 거의 모든 밥집이 미술관이고, 대부분의 미술관이 밥집이라 해야 더 옳은 표현이리라.
- 늦은 시각임에도 우리에게 갤러리 입장을 허락해 준 여직원이 쨔낭을 바치고 있다.
심성착한 발리니스 아가씨의 뒷 자태가 곱기만 하다.
-
다음 발리여행에 사누르 지역여행을 넣고싶을정도로 가보고 싶은 사누르홈 후기 잘봤어요~헌데 1박가격이 얼마일까요?
-
주인장께서 대답해야할 답변같은데 몸이 무거우시니 제가 수고를 대신하지요.
방 4개중 수영장뷰인 큰 방이 70만Rp, 작은 방이 60만Rp
저희가 묵은 정원뷰의 큰 방이 60만Rp, 작은 방이 50만Rp였습니다.(현재가격)
조식(한식)은 포함이고 세탁 서비스도 해주시더군요.
별도의 텍스가 없으니만큼 아주 착한 가격입니다.
저희처럼 일주일 정도를 다른 손님없이 통째로 쓰는 행운까지 누린다면
근사한 풀빌라도 부럽지 않을 정도지요. -
사누르 홈 저번에 올린 글보구 호감도 100% 였거든여~~
이번에 다시 바도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네여~~ -
곧 만날 사누르 홈! 이번주 금요일입니다... 아------빨리 가고싶다.......이번주 금요일은 꼭 옵니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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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시겠네요.
잘 다녀오세요. -
정원이가 더욱 의젓해 보이네요^^
예전 사진중 발리까지 와서 공부하던 정원이모습은 보고 혼자 웃던 기억이 ㅎㅎㅎ
사누르 홈 후기는 항상 많은 칭찬들이 올라오네요.
가보진 못했지만 사장님이 한결 같다는게 느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