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그렇게 놀다가, 아빠는 이제 스탠드 불을 켜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나도 책을 읽으려고 자리 잡으면, 심심해진 무창은 밖으로 나가서 밥을 먹자고 졸라댄다. 산트리안griya santrian의 아침식사는 7시부터 10시까지 이다. 발리시간으로 7시면 한국시간으로 8시이기 때문에 아침 먹을 시간으로 적당하기는 하다. 그래서 나와 아빠는 7시에 식사를 해도, 양껏 먹지만, 먹을 게 없는 무창은 딴 짓을 하면서 밥을 먹지 않는다. 무창은 배가 고팠던 것이 아니라, 방안이 답답하니까,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거다. 그러나 산트리안의 아침식사에서 무창이 먹을 게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침식사는 아메리칸스타일이어서, 한국에서 아빠가 차려주는 것과 달랐다. 그나마 무창이가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이틀에 한번 나오는 핫케이크와 수박, 우유뿐이었다. 머핀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도 무창이 입맛에 썩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볶음밥이나 볶음국수가 번갈아가며 나오긴 하지만, 무창은 아침부터, 맛이 강한 그것들을 먹고 싶어하지 않았다. 아빠가 오믈렛을 한입 떠서 줘 보았지만 무창은 그것도 먹기 싫어했다. 한국에선 아빠가 해주는 계란말이는 잘 먹었는데, 버섯, 햄, 양파, 토마토 등, 여러 가지가 계란속에 섞여 있어 그런가 보다 생각한 아빠는, 다음번에 양파와 토마토만 넣은 오믈렛을 가져왔는데, 그것도 먹지 않았다. 무창은 입맛에 맞는 음식이 없자, 수박만 먹어댔는데, 수박과 함께 우유를 마셨으니, 배가 금방 불러, 다른 것을 먹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그렇게 먹으면, 배가 금방 꺼진다는 거다. 아침법을 먹고, 수영장이나 바닷가에서 노는데, 배가 금방 꺼진 무창은 10시만 되면, 배가 고픈지 밥을 먹으러 가자고 졸라댄다. 아빠는 그래서 아침밥을 늦게 먹고 싶어했다. 늦게 먹으면, 무창은 배가 고파서 많이 먹을테고, 그러면 10시부터 밥먹으러 가자고 떼를 쓰지 않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무창은 아빠의 그런 속셈도 모르고 밥을 먹자고 졸라댄다. 그러면 아빠는 7시 알람이 울어야 나갈 수 있다고 무창을 설득한다. 무창은 그러면 뭔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운명의 시간 7시가 되어 아빠 휴대폰 알람이 울리면 무창은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방을 나서면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우리 방은 2층에 있기 때문이다. 무창은 아빠가 문을 닫는 게 부럽다. 그래서 아빠한테 ‘내가 닫을께요.’한다. 방문은 방안쪽에서 손잡이에 버턴식으로 잠그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버턴을 누르고 문을 닫아야 하는데, 이때 ‘쾅’ 소리가 나게 닫아야 하고 힘이 많이 들어가서, 무창이나 나에게 맡기지 않고, 아빠가 직접 닫으려고 한다. 무창에게 한번 맡겼다가, 복도 전체가 떠나가도록 크게 닫은 이후로 말이다. 아빠는 무창이나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은 하게 하지만, 문 닫는 것은 아직 힘조절이 미숙하기 때문에 가능한 아빠가 하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창은 매일 아빠에게 자기가 문을 닫겠다고 했다. 무창은 포기를 모르는 아이이다.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수영장이 하나 있다. 아침이면 부지런한 노인들은 일층 테라스 의자에 앉아 쉬거나 책을 읽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다. 아빠는 그 사람들에게 일일이 고개를 까딱이거나, ‘good morning’ 하면서 지나간다. 조금 지나면, 두 번째 수영장이 나온다. 길가쪽에 기계실 나무문이 있는데, 그 문을 볼 때마다 무창은 “문이 하하, 즐거워서 웃고 있어요.”한다. 그 수영장을 지나면, 그 수영장 바깥쪽 벽 아래쪽에 작은 연못이 있다. 수련이 있고, 물고기들이 있는데, 가만히 보니, 올챙이들이 바글거리며 살고 있었다. 3주간 있었기 때문에 올챙이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며칠 지나자, 다리가 없었던 올챙이들에게서 다리가 생겼고, 또 며칠이 지나자, 내 손톱만한 개구리가 수련 잎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잡아보려고 했지만, 아빠가, ‘잡아서 뭐할거야’해서, 손만 대 보겠다고 했다. 작은 놈이어서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쉽지 않았다. 매일 그곳을 지나면서, 개구리로 변해가는 올챙이를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우리가 있었던 산트리안의 방은 해변을 기준으로 안쪽에 있었고, 식당은 해변에 있었기 때문에, 밥을 먹으러 가기 위해선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가는 길이 멀어서 힘들거라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산트리안은 숲속에 있는 팬션과 같았다. 물론 그곳에 있는 나무들은 우리나라 나무들과 달랐다. 야자수 나무를 비롯해서 각종 열대성 식물들이 아름드리로 하늘 높이 치솟아 있어, 아주 우거진 숲과 같이 있어서, 아침 먹으러 가는 길은 숲속길을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지난번 푸켓에서 많이 보았던 프란지파니 꽃도 있었는데, 그때 푸켓의 오키드리조트에서 보았던 그 나무는 아빠키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면, 이곳 산트리안의 그것은 키가 숙소 2층 높이보다 더 높이 자라 있었다. 아빠 말은 숲을 잘 가꾸고, 숙소가 오래되었기 때문인가 보다 하며 놀라워했다.
아빠 말에 따르면 사누르 주변에 있는 숙소들이 대부분 2층 이상의 건물이 없다고 했다. 해변을 따라 산책을 하다보면, 사누르 북쪽 끝에, 높은 빌딩형 호텔이 있는데, 그 빌딩이 들어서자, 사누르를 지배하고 있던 사제, 학자들은 코코넛 팜coconut palm보다 높이 지을 수 없다는 법안을 만들었고, 그래서 2층 이상 건물이 없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숙소들은 나무들보다 높이 올라가지 않아, 숙소에 있는 나무들과 함께 잘 어울려 있는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 수영장을 지나면 숙소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는 작은 갤러리가 있다. 갤러리는 길가에서 작은 나무들로 담이 있어서 길가에서 바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다. 그 작은 나무담장과 갤러리 사이에 작은 샛길이 있다. 아침 이른 시간에는 갤러리 지붕에서 갈대 차양이 내려와 있어, 나무 담장위에 드리워져, 그 샛길이 밖에선 보이지 않는다. 무창은 그 길을 지나며, 길가쪽에서 아빠와 내가 보이지 않고, 길이 끝나는 곳에서 갑자기 나와 ‘까꿍’하며 노는 것을 재미있어 했다. 무창이 하도 재미있어 하길래, 며칠이 지나면서, 나는 그 샛길에서 무창이와 달리기 경주도 하며, 아빠 혼자서 길가로 걷게 했다. 노는 법을 잘 개발해 내는 무창이라고나 할까.
갤러리는 우리가 처음 도착했을 때는, 전시할 벽면을 새로 배치하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준비가 끝났는지, 전시회를 했는데, 그림과 조형물을 보던 아빠는, 자연을 보호하자는 주제로 그림을 그린 것 같다고 하면서, 그림에 있는 장면들, 조형물들을 설명해 주었다. 색깔들이 화려해서 눈길을 끌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니, 좀 끔찍했다.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기괴하고 슬퍼보였다.
가는 길에는 온통 꽃들이 떨어져 있다. 특히 프란지파니 꽃을 무창과 나는 좋아했다. 아빠는 깨끗한 것들을 주워 무창 귀에 꽂아 준다. 나에게도 하나 찾아 달라고 하면, 아빠는 나에게도 하나 귀에 꽂아 준다. 그러면, 무창이도 ‘나도. 나도’ 한다. 아빠는 중얼거리며, 귀찮아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또 하나 무창에게 꽂아 주어, 양쪽 귀에 꽃을 꽂게 된다. 난 남자애가 그렇게 꽃을 꽂고 있으면, 약간 우습다고 생각했는데, 아빠는 뭐가 좋은지, 흐뭇하게 무창을 바라본다. 그러고 보면, 발리에선 남자들도 꽃을 그렇게 꽂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러, 약간 비싼 ‘사왓디카’라는 태국 식당에 갔을때, 그곳 종업원이 프란지파니를 이수시개에 꽂아 우리들 귀에 꽂아 주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할아버지, 아저씨에게도 모두 꽂아주고 있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는 프란지파니 꽃을 귀에 꽂아서 놀고,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무창이 새끼 손가락만은 작은 흰색꽃을 가지고 논다. 처음에는 그게 눈에 잘 띄지 않았는데, 우리방 앞 수영장 가까이에 가면, 그것들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꽃은 흰색이고, 모양은 바람개비처럼, 꽃날개들이 완전히 펼쳐져 있고, 대롱이 길게 있다. 그 긴 대롱을 쥘 수 있다. 내가 그것을 발견해서 아빠에게 보여주었더니, 아빠는 갑자기 꽃자루를 집어서 던져버리는 거다. “아빠 던지지 마세요.”라고 말하려는 순간, 그 꽃이 떨어지면서, 회전을 하는거다. 아빠는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내가 아빠에게 “아빠, 어떻게 한거예요?” 했더니, 아빠는 다른 것을 주워서, 엄지와 검지로 꽃자루를 집더니, 그것을 손가락 두 개로 비비면서 던져올리는 거였다. 나도 아빠가 했던 대로 했더니 회전을 하면서 떨어졌다. 아빠랑 다니면 주변에 있는 것 가지고 노는 법을 배워서 좋다. 한국에 있을 때도, 아빠는 내게 당단풍나무 씨앗 날리는 법을 가르쳐주어, 그것 때문에 친구들에게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적도 있었다. 당단풍 씨앗처럼 집에서도 놀면 재미있을 것 같아 그 꽃들을 욕심껏 방으로 가지고 가면, 금방 시들어버려서 날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오래 오래 그것들 가지고 놀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프란지파니도 향이 좋아 방으로 가져오면, 그것도 금방 시들어 버려서 갈색으로 변해서 안좋았다. 열대 꽃들은 금방 시들어서 안 좋다.
떨어진 것을 주워 침대맡에 놓아두곤 했어요~
그 때 생각이 많이 나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