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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
2011.02.06 03:17 추천:3 댓글:5 조회:2,856
balisurf.net

  풍경이 우리의 내부로 걸어 들어와서
  우리의 일부가 되는 것은
  그 낯선 본질 때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산다는 것은 낯선 것을 받아들여
  낯설지 않은 친숙한  것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낯선 것을 만나기 위하여 우리는 오늘도 길 위에 선다.                         - 허 만화 의 시 "풍경" -

  일찌감치 잠에서 깬 덕분에 또다시 고즈넉한 아침시간을 맞이합니다.
  오늘은 숙소부근 시장의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보았습니다.
  문득 아련하게 중학교 시절쯤에 배웠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않은 길" (The road not Taken)이 떠오릅니다.
 "노랗게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로 시작되는 가지 못한 길(삶)에 대한 안타까운 회한과 아쉬움을 담은
  영미문학의 대표적인 그 시말입니다.
  그렇게 삶은 한  번 선택한 길을 다시 되돌리거나 바꾸기가 힘들어도 이렇듯 여행 중의 걷기는 제 마음 가는대로 입니다.
  어제는 저 길로, 그리고 오늘은 이 길로 , 내일은 또다른 길로 걸을 수가 있는 법이지요.
  물론 그 역시 저절로 주어지는 건 아니고  제법 부지런한 호기심과  애정어린 시선과 때론 인내마저도 필요로 하지만 
  길 위의 여정은 힘들거나 지치면 바꿀 수도 있고, 언제나 돌아올 자리를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감사할 일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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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리의 전형적인 골목이 이렇게 나오고...


 - 몇 발자욱 더 걷자  "팜 슈이트 "라는 빌라 하나가 뜬금없이 나타난다.


 - 호기심이 발동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 마음 같아서는 저 열린 빌라 안을 들여다 보고싶었지만 인기척 하나없는 이른 아침에 더이상의 접근은 필시 무단
 가택침입이 될 터이라, 이 정도에서 뒤돌아섰다. 그래서였을까 ?  다음날 생각지도 않게 이 곳은  안과 밖의 모든 것들을 
 속속들이 드러내 보여주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젊은 시절과 달리 지금의 저는 온갖 핑계를 대어가며 성당가기를 회피하지만, 마누라의 믿음은 그 때나 지금이나 한결
  같습니다. 
  거창하게 활동하는 열성당원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 드러내지 않음이 때론 저를 부끄럽게 만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 마누라를 위해 여행중이더라도 미사참례에 빠지지 않도록 데려가 주는 이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배려의 전부입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그런 마음조차도 불편했더랬는데  힌두와 카톨릭이 공존하고 인간과 신들마저 상생하는  이 곳에서라면
  그 불편함마저도 그다지 큰 흠이 되지 않을 듯 싶습니다.




 - 언제나 안녕한 꾸타성당에서는 주일이면 천사를 닮은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마누라의 미사시간 동안 저는 길을 걷습니다.
  처음엔 낯설었으나 이제는 익숙해진 그 길에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작은 변화들이 있습니다.
  느리게, 천천히 걸으면서 그 미세한 변화들을 찾고 알아보는 것도 무료한 시간을 해소하는 나름의 방법이 될 것 같네요.


 - 성당 아랫길 작은 갤러리의 변화는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모든 그림이 다 바뀌어 있었으니까 ...


 - 길건너 맞은편의 부띠끄 호텔은 이렇게 바깥자리에 "펍"과 같은 공간을 새롭게 조성해 놓았다.

  미사를 마치고 다시 모인 우리 가족은 그리 멀지않은 센트로(디스커버리 몰)까지 걸어가기로 합니다.
  그 곳에 사는 분들이야 무심한 일상일테고, 또 우리같지 않은 여행자들에겐 쓸 데 없는 시간낭비로 보일 지도 모르지만 
  그 길에는 볼거리가 참 많습니다.
  식당이며 카페들의 예사롭지 않은 간판과 쇼윈도를  들여다보다가 잠시 지나가는 비가 오면 가까운 편의점에 들어가
  쉬고, 다시 걷다가 갈증이 나면 아이스크림을 사먹기도 하고, 또 눈밝은 정원이가 길 잃은 달팽이 한 녀석을 잡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놓아주고 ...
  그렇게 놀며놀며 가다보니 짧은 거리임에도 제법 시간이 흘렀습니다.




 - 발리에 온 지 일주일만에 처음 본 꾸타 해변. 저만치 꼬마녀석들은 아예 홀랑 다 벗어버렸는데도 아무도 눈길 주는
  사람이 없다.

  센트로에 들어서니 마누라와 정원이는 둘 다 물 만난 고기입니다.
  저와는 달리 쉽사리 포기 못하는 성격의 마누라는  지금껏 사지 못한 그 시즐리화장품을  아직도  단념할 수 없는데다
  정원이마저 "페리플러스 서점"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는 까닭에 우린 이내 나중에 만날 약속장소를 정하고  다시
  이산가족이 되어버렸습니다.


 - 걱정이 되어 정원이 녀석의 뒤를 따라 가보니  혼자서도 금방 서점을 찾아 들어간다.  신나게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결국 신간코너 한가운데에 진열된 "레드 피라미드"를 발견하고선  우리나라에는 아직 나오지않은 거라며  사달란다.


 - 꾸타 비치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센트로의  명당 자리인 "블랙캐년"은 여전히 분주하고,


 - 바로 옆 나시 고랭이 맛있는 세가라 식당은 점심 때인데도 드나드는 사람이 없어 한산해 보인다.


 - 약속 장소인 블랙캐년은 마땅히 앉을 자리도 없어 보여 옆집인 "코코 비스트로"에 자리를 잡았다.


 - 이렇게 길 하나를 사이에 두었는데 유명세를 타는 블랙캐년에 비해 훨씬 한가로와 더 좋다.


 - 게다가 블랙캐년에는 없는 예쁜 실내공간도 두고 있다. 물론 커피와 쥬스류의 맛도 과히 떨어지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려도 마누라는 나타나질 않습니다.
  길을 못찾아 헤매는 건지, 아니면 문제의 그 화장품이거나  다른 무엇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고 있든지, 둘 중의
  하나일테지만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결코 마음이 편할 수 없습니다.
  바닷 바람은 삽상하게 불어오고 생과일로 갈아 내온 쥬스도 훌륭하지만 이 쾌적함은 점차 가시방석에서 바늘방석으로
  바뀌어 갑니다.






 - 시간이 흐를수록 변하는 정원이의 표정에서도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이 역력하다.

  결국 둘이서 양쪽 통로를 하나씩 맡아 거슬러 올라갔다 되돌아오기로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마누라는 어디선가  태연스럽게 나타나는데 얼굴엔 살짝 흥분과 미소까지 담고 있습니다. 
  화장품은 여기도 없었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아주 맘에 드는 가방 하나를 건졌다네요.
  이십년 이상을 함께 살다보니 저도 이런 일에는 이제 대면대면하게 되지만  배고픈 정원이는 준엄하게 엄마를 타박합니다.
  젊은 시절의  제가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ㅎㅎㅎ
  그러는 동안  점심시각은 꽤 지나있었고 우린 선택의 여지없이 가까운 2층으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 오랫만에 셀시우스를 찾았다.


 - 일요일이라서일까 ?  식사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 그래도 운좋게 안쪽의 목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 창밖으로 보이는 바깥 전망도 여전하다.
 

 -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건너편의 저 녀석과 몇 번 눈맞춤을 하자  이 녀석이 냉큼 달려왔다. 그러자 엄마도 먹다말고
 부리나케 쫒아와선 점잖게 사과하고 부드럽게 타일러 데려가는데 영낙없는 프랑스 엄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다시 녀석이 통로를 누비며 말썽을 부려대자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내며 결국 엄마는 폭발하고 말았다.


 - 드디어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이전의 셀시우스는 전망만 좋았는데 나시고랭과 해산물 스파게티에 그릴드 치킨까지 
  모두 먹을만 했다. 셀시우스가 밥먹으러 갈 만한 괜찮은 곳으로 바뀐 것이다. 


 - 후식마저 든든했다.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와선 수영장으로 직행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숙소 수영장은 지금껏 우리 가족만의 차지라서 좀처럼 물에 들어오질 않는 마누라도 늘상 함께 합니다.
  기분좋은 식사에 물놀이까지 즐기다보니 뒤늦게 식곤증이 밀려오는지 이내 세 식구는 모두 골아 떨어져 버렸습니다.
  얼마나 잤을까요 ? 깨어보니 해는 석양으로 바뀌어 가고 어느새 다시 저녁식사를 하러 나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먹고 자고 또 먹고를 반복하는 건 그다지 반갑지않은 휴가의 유형인데 오늘은 영낙없이 우리 가족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 며칠 전 발리다이어리의 사장님과 점심을 함께 했던 "스모"를 다시 찾았다.  일본색이 짙은 식당이지만  먹거리의 
  관점에서는 작지만 빼어난 곳이다. 특히 가족들을 동반한 식사장소가 마땅치 않을 때에 한 번쯤은 ...


 - 단점이라면 실내공간이 너무도 단촐한 두 개의 테이블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만들어진 신선한 스시와
 롤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데다 후식으로 제공되는 수제 아이스크림 또한 별미라  실내가 비좁거나 자리가 없다면 바깥
 테이블도  마다할 바가 아니다.


 - 위의 김마끼와 스시 그리고 아래의 도시락(벤또)까지가 1인분이다. 그러니 남길 수 밖에 ...

  배가 불러서 좋았고, 가격마저 착해서 즐거웠던 저녁식사를 끝냈습니다.
  먼저 들어와 있던 옆좌석의 젊은 미국인 가족은 서툰 젓가락질에도 불구하고 마치 연구하듯 천천히 식사를 하는데
  몇 번이나 집었던 반찬을 떨어뜨리고 다시 줍기를 반복합니다.

  어둠이 깔린 작은 골목을 빠져나와 다시 거리에 섰습니다.
  바로 옆 푸리 산뜨리안 호텔은 마치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 마을에 환한 불을 밝혀놓은 것처럼 몽환적인 조명을
  보여주고 있고 바로 옆 카페테리아에서는 살사춤 공연이 한창입니다.
  그러고보니 이 거리는 참으로 특이합니다.
  카페며 식당이며 심지어는 그림 몇 점을 내어놓은 길거리 허름한 갤러리까지 저마다 자기만의 색깔을 담은 조명이지만
  그것들 하나하나가 "따로 또 같이"의 묘한 조화를 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두운 거리가 그로 인하여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전혀 딴 세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는 동양도 아니고 서양도 아닌 모든 것이 혼융된 발리의 사누르 비치 남쪽 끝 이름모를 거리입니다.


 - 푸리 산뜨리안 호텔의 야경을 찍었지만 싸구려 카메라인지라 그 1/100 도 담아내지 못했다.




 - 이 동네에서 제법 유명한 카페 "캣 & 패들" 의 모습




 - 역시 이름깨나 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메쪼니"


 - 그 옆으론 제법 근사한 카페 "트로피칼" 이 있다.


 - 이 거리에 함께 자리 잡은 때문인지 "마리아" 라는 이름의 스파마저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 보이는 손님들은 이처럼 모두 서양인... 동양인은 눈을 씻고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 그들만의 동네 ? )


- 이 거리에도 예외없이 길 갤러리는 자리잡고 있는데...


 - 때마침 거리의 화가가 불을 밝힌 채 작품을 그리고 있었다.  산과 바다를 품은 그들의 섬 발리를 ...



  • zeepmam 2011.02.07 01:45 추천
    정말 진심으로 발리 기행문 한권 내셔야 할듯~~~
    정원이 아버님 글을 읽다보면 미소가 저절로 지어집니다 .

    덕분에 제가 모르고 있던 발리를 많이 알아가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
  • 정원이아빠 2011.02.07 08:34 추천
    원 별 말씀을 ...

    그냥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저또한 감사합니다.
  • joonhui 2011.02.10 20:59 추천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대단하세요,,, 라는 말밖에~~
  • red0598 2011.02.13 01:19 추천
    영어를 잘못하는 사람으로써..며칠전 식당에서 아드님처럼 두꺼운 원서책을 읽는 아이를 보며 감탄했거든요..어떻게 하면 저 나이에 저렇게 될까하고요..아드님을 보고 또 그런 생각이 드네요..
    공부 좀 해야겠다는 생각과 아들 영어가 걱정됩니다. ㅎㅎ
  • 정원이아빠 2011.02.13 11:16 추천
    외국어라는 게 알고보면 별 거 아닙니다.
    늘 사용하는 우리 말이 아니라 익숙하지 못하고
    자주 안 쓰니 까먹고
    그러다보니 두려움이 앞서는 건데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닌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애로사항일 따름이지요.

    어른이시니 쉬운 책 한 권 잡고 기초부터 열공하시고
    아드님의 경우는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딩정도라면
    "잠수네 아이들" 찾아보세요.
    아주 괜찮은 프로그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