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파사(Denpasar)는 북쪽(덴)의 사장(파사)라는 뜻으로 발리의 주도(州都)이다. 인구, 자동차, 교통량등 발리 제일의 도시로 그동안 다녔던 발리의 꾸불꾸불한 도로와는 달리 쭉 뻗은 도로가 발리 제1의 도시답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발리 제1의 도시이지만 특별한 볼거리가 없어 관광객은 별로 찾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덴파사에 박물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곳을 꼭 가야할 지역으로 분류해 놓고 찾아가게 되었다. 내가 덴파사를 찾아 간날은 일요일. 덴파사의 도심 곳곳에 교통통제가 이루어 지고 있어 우회도로가 심한 정체를 이루고 있던 날이였다. 첫 방문지인 전쟁박물관을 찾아가는 길이 교통 통제로 인해 참 어려웠다.
덴파사에서 처음으로 찾아 간 곳은 전쟁 박물관으로, 19세기 중엽 네덜란드의 침략을 막기위해 발리 사람들이 최후의 항거를 하던 거점으로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한 곳이라고한다. 전쟁 박물관 주위에는 공원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고 여기 저기 운동을 하고 있거나 데이트를 하고 있는 여유로운 공간이었다. 교통 통제로 인해 차량을 멀리 세워 놓고 전쟁박물관을 찾아가려니 아침이지만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더운 날씨에 넓은 공원을 돌아 돌아서 찾아왔는데 박물관이 개방되어 있지 않았다. 순간 오늘이 일요일이여서 휴관을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인해 보니 아직 개관시간이 되지 않았다고... 힌두교 축일에만 휴관하고 주말에는 9시가 되어야 입장하게 된다고 한다. 그냥 직관적인 판단으로 휴관이라고 생각하고 돌아갔다면 굉장히 후회했을 것 같다. 조금 기다린 끝에 입장권을 사고 기다린 사람들중 제일 먼저 전쟁박물관에 입장하게 된다.
전쟁 박물관은 1932년 네덜란드에 의해 지어진 건물이다. 전쟁박물관은 발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원 또는 왕궁의 형태로 건물이 지어져 있으며, 각 건물의 입구에도 가루다를 포함한 신들이 조각되어 있다. 8개의 기둥과 17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8월17일 독립기념일을 상징하고 있는 박물관은 관광지에 온 것처럼 화려하고 멋진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고, 박물관 외부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아도 화려한 조각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잘 꾸며져 있었다. 내부의 전시물을 보기에 앞서 박물관 외부에서 이미 충분한 볼거리를 보았다는 생각이다.
박물관 내부애는 덴파사 공항에 자기 이름이 헌정되고 바이패스 거리에 동상이 있는 독립의 영웅 '응우라 라이' 초상화 사진도 보인다. 1층 전시실은 주로 사진들로 구성되었는데 내부 규모나 전시물은 우리나라 용산에 있는 전쟁박물관과는 비교할 정도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오랫동안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았고, 또 우라나라처럼 일제에 의해 수탈과 고통을 받은 공통점이 있어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우리 근현대사와 너무도 비슷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2층 전시실로 올라갔는데 유물의 전시보다는 미니어쳐로 만들어진 시대별로 구성된 디오라마(축소모형)를 전시해 놓았다. 자바 인근 섬에서 구석기 이전의 쟈바원인이 발견된 것부터 시작해서 원주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것까지 다양한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네덜란드의 침략은 자세히 표현해 놓았다. 동인도 회사를 앞세워 쳐들어온 네덜란드로부터 무려 350년 가량을 식민지배를 받게 되었고, 독립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중에 오히려 2차대전중에는 일본의 침략까지 받게 된다. 일제로부터 독립후에도 네덜란드의 식민지 재탈환을 위한 위협을 물리치고서야 인도네시아는 마침내 단일공화국으로 탄생하게 된다. 인도네시아의 파란만장한 현대사이다.
1층과 2층 계단 중간에 저렇게 나선형으로 된 계단을 올라가면 시원한 조망의 최상층이 나온다. 이곳에 오르면 전망대로 꾸며져 있어 시원하게 펼쳐지는 광장과 도시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내려다 보이는 덴파사 시내가 인상적이다. 잘 가꾸어진 공원과 너무나 아름답게 보이는 녹색의 우거짐과 선명한 주황색 지붕이 조화를 잘 이룬다. 멀리서나나 집을 살펴보니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발리의 평균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듯한 느낌이다.
우리가 전쟁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올 무렵에 갑자기 대규모의 인파가 몰려 들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순례단 같아 보였는데 단체로 전쟁박물관을 관람하러 온 듯하다. 사람들이 별로 없이 조용하게 잘 보고 나왔는데 저 인파들과 함께 구경했다면 제법 더웠을 것이다. 박물관 내부에는 선풍기만 몇 대 돌아갈 뿐 에어컨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도로에 차량이 통제되고 있어서 다시 차를 세워둔 곳까지 걸어서 와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무에 올라가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가라데 복장으로 운동을 하고 있는 현지인들과 사진을 찍었다. 특히 운동복장을 한 사람들은 태권도복을 입고 있는줄 알고 반갑게 말을 걸었더니 가라데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해서 약간 실망을 했다. 일제에 의해 지배를 받았으면서도 일본 무술을 배우고 있다고 하니 씁씁한 느낌이다. 내가 편협한 것일까?
덴파사의 중짐지에 있는 뿌뿌단 광장이다. 동서로 약 150m, 남북으로 약 200m에 달하는 넓은 광장이다. 이 광장에 상징인 의용군 상이 서 있다. 1906년 네덜란드 침략에 항거하다 목숨을 잃은 의용군들의 용맹스런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첫날 전쟁 박물관을 둘러 보고 나서 이곳을 방문하고 싶었는데 기사 아저씨와 의사 소통에 문제가 있어 그냥 건너 뛰게 되었는데 브라딴 사원을 방문하려고 덴파사를 지나가게 되면서 뿌뿌단 광장을 가보자고 해서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뿌뿌딴이란 ‘마지막 전쟁’을 뜻하는 말로, 인도네시아의 독립전쟁을 의미한다. 장장 350년에 걸친 네덜란드 식민시기를 거쳤으며, 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일본에 의해 2년 1개월여간 점령상태에 들어갔고, 독립 후에도 다시 네덜란드에 의해 재점령당하는 등 시련의 역사를 겪어냈다. 1946년 신민지를 탈환하려고 돌아온 네덜란드에 대해 육군 장교 구스띠 웅우라 라이(Gusti Ngurah Rai)가 이끄는 독립군이 마르기 전투에서 치열하게 싸우게 된다. 이 전투로 웅우라라이 대위가 이끄는 군대가 몰살당하게 되고 웅우라 라이는 발리의 영웅이 된다. 지금도 발리에는 웅우라라이 장군의 동상이 여러 곳에 세워져 있고 그의 뜻을 기리고 있다. 그런 역사를 거쳐 소중한 독립을 쟁취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는 이곳 뿌뿌딴 광장이 큰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발리 대부분의 도로들은 이차선으로 주로 꼬불꼬불한 언덕과 산길로 이루어져 있고,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빈틈없이 집과 논과 밭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어서 거의 양쪽의 차들이 부딪힐 정도로 좁은 도로를 운전해야 하는 곳이 많았다. 그 도로에 오토바이들이 한 몫하고 있어서 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앞으로 차와 오토바이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어 발리의 교통상황은 더욱 심각해 질 것으로 보였다. 다만 이곳 덴파사에는 발리의 다른 곳과는 달리 도로도 넓고 잘 뚤려 있어서 시원스러웠다. 이런 곳은 발리에서 덴파사에서만 보았다.
여행을 갔다 와서도 아직 이해되지 않는 점은 전쟁박물관과 발리 박물관이 동일한 것인지 다른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덴파사가 한국의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 아니어서 여행책자에서 자세한 설명이 없었고, 겨우 구한 덴파사 지도에는 발리 박물관만 표시되어 있어 그 둘의 연관성을 아직도 모르겠다. 자유여행으로 다녀 좋은 점도 있지만 이럴 때는 조금 아쉽다.
뿌뿌단 광장 옆의 사거리에 서 있는 짜뚜르 무카 영웅 상을 배경으로. 얼굴이 4개이다. 부드굴의 뿌라단 사원을 가지 않았다면 덴파사를 다시 방문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터인데 부드굴을 가는 길에 덴파사를 다시 찾고 뿌뿌단 광장을 둘러 볼 수 있어 좋았다. 다음에 다시 발리를 오게되면 그 때는 시간을 좀 더 배정해서 덴파사를 자세히 둘러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6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