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아빠
Lv.17
2012.11.01 21:11
댓글:4 조회:3,175
이번 여행중 저의 제일가는 애마는 말씀드린 것처럼 "사바기따" 버스였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초저렴의 가격때문에 애용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아무리 쾌적한 신형 버스라해도 고작 두 개 밖에 안되는 노선과 들쑥날쑥인 배차간격은 "아직 멀었다."니까요.
그러니 평소같으면 블루버드라야 마땅했지만 선뜻 택시를 잡을 수 없었던 건 이곳의 교통체증이 너무나 극심했던 까닭입니다.
심빵시우르 교차로의 상징인 데와루치 동상 앞 지하차도 공사로 꾸따 중심가로의 진입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남쪽으론 누사두아-사누르 구간의 고속고가도로 공사현장을 오가는 트럭들이 분주했고, 동시에 중앙분리대를
새로 단장하는 작업이 한창이라서 때론 전구간이 오도가도 못하는 우리나라 귀성길 고속도로처럼 느껴지기도 했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예전 같으면 택시로 3만Rp면 충분할 거리가 5만Rp를 가볍게 넘기고, 5만Rp의 거리에는 차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서 10만Rp를 훌쩍 뛰어넘기 일쑤입니다.
그러다보니 일부 택시기사는 미터기는 아랑곳없이 아예 흥정을 하려 들더군요.
때론 미터기 요금보다 자기가 부르는 게 더 싸다면서요. ㅋㅋㅋ
놀라운 건 블루버드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교통체증에 속 시커먼 택시기사 녀석들만 살 판 난 셈이지요.
이러한 저간의 상황이 대충 파악되자 저는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사바기따"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처럼 갤러리아 입구며(여기서는 가급적 버스타지 마세요. 공사현장이 바로 앞이라 비산먼지가 장난이 아닙니다.),
까르푸, 롯데마트 등 어지간한 곳엔 정류장이 완비되었으니 급할 것도 없는데 천천히 쾌적하게 다니기로 한 것입니다.
사실 "사바기따" 버스는 발리 주정부의 야심찬 장기플랜 가운데서도 비중이 아주 큰 핵심사업입니다.
미완의 노선도를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2019년까지 순차적으로 17개 노선을 만들어 우붓 아래의 남부지역을 완벽하게
커버하겠다는 의지를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동시다발적으로 벌여놓은 공사가 하도 많아 의욕적인 노선확장이 말처럼 쉬워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금년말까지 4개 노선이 완료되어야 함에도 간신히 1개 노선이 추가된 실정이니까요.
뭐, 그래도 제 입장엔 만족합니다.
뜸한 배차간격은 시비를 걸 수 있어도 다른 건 모두 비교우위에 있으니까요.
그래서 목적지가 어디든 일단 "사바기따"를 타고 가까운 지점까지 가서 택시로 바꿔 타는 방식으로 나름 제 나들이의
공식을 세웠습니다.
그 덕분에 생각보다 경비절감이 꽤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물론 금쪽같은 시간이 아까운 분들에겐 저를 따라서 하라는 얘기가 절대 아닙니다.
위의 사진들이 정류장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따가운 햇살을 피할 지붕과 지루한 기다림을 다스리는 붙박이 벤치가 있는...
물론 뒷벽엔 배경처럼 언제 완성될지도 모를 큼지막한 희망사항형 노선도도 붙어 있구요
하지만 이 버스..., 타고 내릴 때의 문제점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지하철을 타면 "다음 역은 승강장과 출입구의 간격이 넓어..."라고 나오는 안내방송을 간혹 들은 기억이
있을 겁니다.
우리 나라에서의 "간혹" 은 여기서는 "한 군데도 빠짐없이" 에 해당됩니다.
모든 정류장이 차내 발판과의 거리를 마치 체육시간 도움닫기를 해야 할 수준으로 벌려 놓았으니까요.(조심!조심!)
게다가 운전이 서툴거나, 정류장 부근에 다른 차량이 세워져 있으면 그나마의 간격조차 못 맞춥니다.
그럴 때는 아예 점프를 해야 하느냐구요 ?
아닙니다. 슬그머니 앞문을 열어줍니다.
또 하나는 정류장 같지 않은 정류장도 더러 있다는 겁니다.
제가 이 버스를 처음 타던 날, 무진장 걷게 만든 그 원인이지요.
사진상으론 마침 슬레이트 지붕이 있는 폐창고를 배경으로 해서 정류장 비슷한 모양새로도 보일 수 있겠네요.
하지만 제 숙소인 "따만 뭄불"의 실제 현장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길에 아무런 표지판 하나 없이 다섯 계단의 단 하나만 달랑 놓였더랬는데...
그 누가 저걸 버스정류장이라고 감히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
하지만 버스 안은 저렇듯 한가롭고 조용합니다.
연거푸 거의 날마다 타다보니 구성원의 파악도 절로 되더군요.
일단 주머니 가벼운 웨스턴, 그리고 신기한 건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일본인이 외국인의 주류이고,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 지긋한 연세의 현지인 아주머니들과 무슬림 여학생들,
그리고 인근 섬에서 건너와 공사판 막노동으로 먹고사는 한무리의 근로자들까지...
생각보다 그 스펙트럼은 다양하고 광범위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노아 스퀘어" 앞에서 흉칙한 뱃살을 출렁이며 보무도 당당하게 호주 영감 하나가 올라탔습니다.
처음엔 그냥 꼴볼견이다 싶었지요.
나잇값도 못하고 천박스럽게...
헌데 이 영감, 안내양에게 차비를 낸 다음 지도를 꺼내들면서 막바로 시빗조입니다.
뜬금없이 "왜 이 버스는 공항까지 운행을 안 하느냐 ?"는 거지요.
감당못한 안내양이 멀찌감치 도망치자 영감의 목소리 톤은 점점 올라가더니 아예 고래고래 고함을 지릅니다.
하지만 특정한 대상을 두지않고 질렀던 그 고함 속에는 분명히 욕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맨 뒤에 앉은 제 귀에도 "Stupid"에 이어 "F"로 시작되는 보편적인 서양 욕 한 마디는 여러 번 들렸으니까요.
결국 몇 정류장을 못 가서 연락을 받은 "사바기따"의 직원들이 대거 출동을 하더군요.
그런데도 이 영감..., 한 10여분간 버스 안을 공포 분위기로 만들어 놓고도 끝까지 안하무인입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처음엔 달래기만 할 뿐 크게 뭐라고 하지도 않더군요.
그러다 그 중 한 사람이 용기있게 대답을 합니다.
"이 버스는 공항을 가지 않는다고 노선도에도 나와 있습니다. 굳이 가시려면 내려서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됩니다."
그제서야 영감은 천연덕스레 딴청을 부립니다.
"나는 물어본 것 뿐이지 지금 공항을 가겠다는 건 아니다." 라면서요. (아주 질나쁜 영감님이지요.)
오죽했으면 제가 죄다 사진으로 찍었겠습니까 ?
하기야 어딜 가든 정신나간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지요.
어글리 오스트렐리언, 어글리 아메리칸, 어글리 코리안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 해프닝을 빼곤 저는 그 버스를 타는 내내 참 행복했습니다.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던 아줌마들이 지녔던 보따리를 풀고 한 번 먹어보라며 건넨 피상고렝도 사바기따의 추억 속에
녹아있고, 날마다 시내로 구걸을 다니면서도 당당하게 차비를 내던 걸인 모자의 애잔함도 보았습니다.
몇 번 낯을 익혔다고 환하게 미소를 지어주는 보석같은 저 녀석들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
사장님 언제까지 발리 계세요??
-
ㅎㅎㅎ
제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멘트를
확실하게 날려주시네요.
저는 사장님 아니구요,
발리에서는 지난 달 27일자로
떠나왔답니다.
오매불망 하시던 곳이니
건강하게 잘 지내다 오세요. -
우후~ 정류장 커버라도 있으면 좋은 정류장이더라구요 ㅋㅋㅋ
계단 3칸 만들어놓고 정류장 이래버리니 첨에 어리둥절 ㅋㅋㅋ
손으로 가르켜주는데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보니 계단3칸 ㅋㅋㅋ
그리고 전 점프했어요 ㅋㅋㅋ
쾌적한 사바기따 3500루피아.. 참 건전한 가격입니다 -
드디어 현장에 도착하셨군요. ㅎㅎㅎ
건강하게
좋은 구경 많이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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