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액티비티
2008.09.06 20:53 추천:30 댓글:3 조회:4,635
발리를 "신들의 섬"이란 말을 자주 봅니다.

여행하면서 마주치는 힌두 행사들을 보면서 그 말을 실감합니다.

2만개가 넘는다는 사원에서는 발리력 1년 마다 행사가 열리고
장례식에 추모식, 주요 명절 등등 

발리 남쪽의 숙소에만 '콕'하는게 아니라면
한번 쯤은 마주치게 되는게 힌두 행사죠.

행사 말고도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숙소 직원이 "야자잎따고 모여서 뭘 만드느라 밤 늦게까지 일했다."
     단골 드라이버가 "마을 행사가 있어서 고향을 가야된다."고 말하고
     한국식당 사장님이 "현지인은 행사가 많아서 한달에 한두번은 결근한다."

 돈버는 일을 제쳐 둘 만큼 신앙심이 깊다는 이야기도 되겠지만
 참가하지 않으면 '버린 자식' 취급 받는다는 분위기였습니다.
  
balisurf.net

이걸 가능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의문이 들면서
운전기사와 숙소 직원, 길에서 몇마디 섞은 사람까지 많은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사람들이  '반자르 Banjar' 이야기를 하더군요.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 행사는 반자르에서 준비하고 반자르 단위로 진행됩니다.
자주 보게 되는 반자르 모임 장소의 수만 봐도 발리에서 반자르의 위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건을 사고 팔때 같은 마을 사람이라도 
자기 반자르 사람과 다른 반자르 사람은 가격이 달라진다고 설명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들은 반자르에 대한 걸 이야기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반자르의 규모
반자르는 100가구(가족) 정도로 구성되고 마을이 크면  한 마을에도 2개 이상의 반자르가
있기도 합니다.  

반자르와 카스트
반자르 안에는 카스트의 4가지 계급이 모두 존재하며 종교행사때는
'브라만'계급이 사제의 역활을 맡는다는 군요.


반자르의 형성
반자르는  '화산섬'에서  '벼농사'를 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이전에 발리의 풍요로움을 가능하게 한건 '벼농사'입니다. 
발리는 우리나라 제주만큼은 아니지만
화산섬답게 물을 관리하기가 쉽지않은 토양에  농사를 위한 넓은 평야가 없는 곳입니다. 
여기에 건기, 우기가 뚜렷한 기후까지 더해지면 
계단식 논이 아니라도 벼농사는 물과의 싸움이 됩니다.

물을 모을 '저수지'를 만들고,  논으로 물을 댈 수 있는  '물길'을 만들고 관리할 능력이 없다면
벼농사의 풍요로움은 불가능한 것이죠.

대표적인 예가 캄보디아입니다.
앙코르 왕국시대에 거대한 저수지와 수로를 만들어 풍요로움을 실현했던
전통적인 벼농사 국가입니다만,  오랜 내전으로 저수지와 수로가 사라지면서
건기에는 먼지만 풀풀 날리는 1모작 논들이 많이 있습니다.

발리에서
저수지와 각 논으로 연결된 수로를 '수박'이라고 말하더군요.
이 '수박'을 만들고 관리하는 건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강력한 통제력을 가진 '노동 공동체'는 필수입니다.

이런 공동체는 논농사와 함께 형성됐을테니 시기적으로는 
힌두교가 발리에 들어오기 훨씬 전의 일이였을 겁니다.
 
자바섬을 이슬람 세력 빼앗긴 힌두왕조의 지배층들이 
발리를 지배하면서  "노동 공동체"는 힌두교를 받아들이게 되고 
강한 종교적 색채를 가지게 됩니다. 

  발리에서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결혼하고 죽는 모든 과정에서 중요 행사는 반자르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반자르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나고 그 속에서 발리 전통문화를 익히고, 반자르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하고
 삶의 마지막이 되는 장례식도 반자르가 준비해서 치르게 됩니다.

 예전에는 반자르에서 쫓겨나면 죽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반자르는 세가지 성격을 동시에 가집니다.

        '발리 힌두교의 종교 공동체'     '벼농사를 위한 노동 공동체'    '삶을 지배하는 생활 공동체'

 벼농사라는 같은 배경에서 나온  '두레', '향약'같은 공동체들이 산업화 과정에서 
 고유 문화와 함께 사라져 버린 나라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관광지로 개발된지 20년 넘고 수많은 외국인 거주자가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발리에서 
 발리 문화가 생활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모습이 부러울 뿐이었습니다.

 발리는 앞으로도 자기 문화를 지켜나갈테고 그 힘은 반자르에서 나올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짧은 여행 중에 들은 이야기로 잘못된 정보를 올리는게 아닐까 걱정이 되면서도
    반자르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올려봅니다.
  

  • woodaisy 2008.09.07 12:36 추천
    발리의 깊숙한 부분까지 알고 싶은데... 항상 목말라 하고 있던 중에 좋은 정보를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 Santi_imut 2008.09.08 00:24 추천
    오~ 멋진 설명이세요~ 얼마전 kbs에서 방영한 인도네시아에 관한 프로그램에서 발리 소개할 때도 반자르에 대해 설명해줫는데... 흘려들어버려 안타까웠는데.. 감사해요!!
  • 절대호감 2009.04.15 18:56 추천
    오~~~ 감사합니다.^^ 우리문화의 뿌리인 '공동체'...사라지고 있어서 한편으로 씁슬했었는데...저도 부러울 따름입니다..그리고 님 덕분에.발리인의 삶이 좀 더 이해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