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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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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누사두아에서 묵었던 숙소의 가장 큰 단점은 인근에 먹을만한 밥집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보다 앞서 묵어 간 꼬망님이 리뷰에다 그 소회를 쓴 바 있었지만 저는 예사로 가볍게 여겼던 것이지요.
 물론 언덕을 내려가면 번듯한 사마사마 레스토랑이 있지만 일찌감치 소 닭보듯 하기로 했고,(주머니 사정상)
 길 건너 자리잡은 서너 곳의 100% 현지 와룽은 몇 번 시도를 해보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피차 말이 잘 통하질 않는데다  '소또' 라며 보여준 게 닭발로 삶아낸 비릿한 국물이었으니까요.(다른 건 뭐, 안 봐도...)
 해서 처음엔 꼬박꼬박 하루 한 끼 정도는 가져온 먹거리로 해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장과 함께 마실을 다녀오는 길에서 짐짓 제가 먼저 제의를 했습니다.
"가까운 데서 저녁이나 먹고 들어가지요 ? "  "그럴까요 ?"
 딱 사바기따 한 정거장의 거리를 남겨둔 지점에서 다금바리님이 데려간 곳이 바로 이 곳이었습니다.
"간혹 들리는 덴데 싸고 먹을만 할 겁니다."  
 이후 제가 발리에 머무는 동안 가장 많이 들락거린 밥집,"와룽 깜뻥"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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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짝도 없는 허름한 저 출입구를 들어서면서 처음 든 생각은 엉뚱하게도 "목로주점"이란 노래의 가삿말이었습니다.

"월말이면 월급 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타서 낙타를 사자.
 그래 그렇게 산엘 오르고 그래 그렇게 사막엘 가자.
 가장 멋진 내 친구야  빠뜨리지 마. 한 다스의 연필과 노트 한 권도,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오래 전, 이 연실이라는 가수가 부른 쉬운 반복리듬의 경쾌한 그 노래가 왜 갑자기 떠올랐을까요 ?



 우선 늦은 저녁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삼십 촉 백열등은 아니었지만 칸델라등처럼 늘어진 촉수낮은 백열등이 주는 어둑한 분위기는 무척 고혹적이었습니다.
 그 흐릿한 불빛아래 현지인과 외국인이 자유롭게 섞여 밥을 먹는 광경도 나름 색달랐구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부근에 사는 웨스턴들은 거의 이 집을 단골처럼 애용하더군요.)

 하지만 그보다는 제 기억의 어느 한 꼭지에 묵혀있던, 한때 익숙했던 장소를 떠올린 게 더 큰 이유였습니다.
 제가 다녔던 대학교 부근의 이름조차 기억나질 않는 단골 학사주점...(요즘도 아직 이런 데가 남아 있나요 ?)
 어두컴컴한 실내엔 긴 장의자가 놓여있고, 늘상 막걸리 냄새가 진동하던...
 첫 대면의 이미지가 이렇듯 잊혀진 영상을 난데없이 끄집어내니 급속도로 가까와지는 건 두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술냄새가 나는 곳은 당연히 아니지만 사진상으론 깔끔한 듯 보여도 이 밥집은 과히 깔끔한 곳은 아닙니다.
 오히려 만만한 가격이 최고의 강점이고, 다양한 메뉴가 두 번째쯤 되겠네요.
 현지의 전통음식에서 퓨젼 중국요리까지... 거기에 더해지는 스프와 샐러드도 저렴하면서 먹을만 합니다.

 다만 낮이고 밤이고 손님들이 꾸준히 찾는 까닭인지 다른 곳보단 종업원들의 미소가 살짝 부족합니다.(힘든가봐요.) 
 게다가 이 밥집만의 독특한 룰도 있습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다지만 행여 처음 왔다가 당황하거나 다소 불편해 할 분도 계실 것 같아 
 미리 일러드리지요.
 이 밥집은 종업원이 주문을 받아 적는 게 아니라, 손님이 먹고싶은 모든 것을 적어 내야 합니다.
 들어가 자리에 앉으면 제일 먼저 갖다 주는 게 연필과 주문서 한묶음이니까요.
 처음엔 고르는 것도 벅찬데 적는 것까지 시킨다고 저도 내심 투덜거렸습니다.
 하지만 익숙해지니 오히려 먹거리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여유마저 생기더군요.
 단지 환한 대낮에도 약간은 어둑한 분위긴데 저녁식사 자리의 조도로는 주문서 쓰기가 조금은 쉽지 않은 경험일 겁니다. 



  그래도 먹거리가 나올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만족할 겁니다.
  또한 계산을 치루고 나올 때는 더욱 뿌듯할 겁니다.
  가격이 싸다고 음식마저 허름한 건 아니라는 드문 역설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니까요.

  "와룽 깜뻥"...
   다른 곳과의 비교는 사절하지만 누사두아에서만큼은 손꼽히는 착한 와룽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 profile
    대구사랑 2012.11.05 08:13 추천
    착한 와롱 꼭 기억 하겠습니다.
  • firstsang 2012.11.18 14:52 추천
    깜뻥아닌 깜풍으로 읽습니다.
  • 꼬망 2012.11.18 23:48 추천
    저도 딱한번 .. 다금바리님 덕분에 다녀왔었습니다.
    뭐.. 여긴 가격대비 만족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그런곳 ^^
    담번에 여기서 함 뭉쳐요 ㅋㅋ 제가 쏠게요 !! (가격이 너무 만만해서 ㅋㅋ)
  • Santi_imut 2012.11.25 17:50 추천
    kampoeng은 kampung의 옛 표기법이에요. 수하르토를 Soeharto라고 쓰는 것도 옛날사람(?)이라서 그렇구요. 종종 일부러 옛 표기법을 쓰는 건 향수를 불러일으키려고 그런 거 같아요. 세련된 레스토랑에서는 옛 표기를 잘 안쓰고 와룽과 깜뿡이라는 단어 자체가 밥집/"시골"이라는 뜻이니까 정겨운 느낌을 주기위해서 warung kampung보다는 waroeng kampoeng을 쓴 거 같습니다. 음식 사진을 보고싶은데 음식 사진을 봤으면 지금보다 위산이 훨씬 더 뿜어져 나왔겠죠. 글만 읽어도 배고프네요~
  • zaoaso 2013.01.29 08:03 추천
    여기 위치가 대충 어디쯤인가요????
  • sally74 2013.02.04 13:47 추천
    저두요 저두요 이달말 누사두아에서 3박하게 되는데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위치좀 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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