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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
2006.02.26 00:27 추천:9 조회:1,797

--2006.01.15. 다섯째날 : 브사끼 사원, 우붓


오늘은 우붓으로 떠나기로 한 날. 느긋하게 잠을 자고 나서 10시쯤 출발했다. 어제 살릿과 이야기해 둔대로 브사끼 사원에 들렀다가 우붓으로 가는 여정이다.
출발에 앞서 살릿이 친구를 한명 같이 데려가도 되겠냐고 묻는다. 어제 혼자 가서 심심했었나? 하긴 오늘은 혼자 먼 길을 돌아가야 하니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하지. 뭐, 차에 빈 자리도 많은데, 그렇게 하지 뭐. 조수석에 올라 탄 그의 친구도 역시 서글서글한 인상이다. 가는 내내 필요한 얘기가 아니면 우리는 우리대로 한국말로, 살릿은 살릿대로 발리말로 조용히 길을 갔다.

가는 길에 살릿이 은 세공을 하는 공방이 있는데 들러보겠냐고 한다. 마침 어제가 내 생일이기도 해서 인트 오빠가 뭐 하나 사준다고 들러보자고 한다. 살릿이 우리한테 권하는 거야 어차피 상술도 섞여 있는 거고, 그러면서 자기네들끼리 돈도 벌고 하는 거니 좋게 생각하면 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그다지 기분 좋진 않겠지. 딱 여기서 멈춰준 게 다행이다. 살릿.
은 공방에 도착. 우리가 왔다고 한 아주머니가 작업을 시작하신다. 사실 은 세공하는 거야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고, 조이고 붙이고 하는 모습이 어릴 적 엄마가 집에서 악세사리 만드는 부업할 때 하던 거라 비슷해 식상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예의상 놀라는 척 좀 해 주고, 옆에 붙은 상점으로 들어가니 은 귀걸이며, 목걸이며, 팔찌들이 즐비하다. 왠 일본 아저씨도 구경하고 계시고. 다행히 눈에 딱 들어오는 귀걸이가 있어서, 물론 가격도 적당했고 하나 샀다. 아니 생일 선물로 받았다. 인트 오빠한테. 어차피 주머니돈이 쌈지돈이지만.

- 은 팔찌 만드는 중

- 이 갈색 과일이 살랏

달리는 길가에 과일 장사가 하나 나와 있다. '살랏' 이라는 과일이라고 맛있다며 한입 먹어보겠냐며 살릿이 차를 세운다. 아줌마와 딸이 보고 있는 조그만 가게에서 살릿이 갈색의 과일을 까주었다. 딱딱한 껍질 안에 들어있는 하얀 과육은 약간 마늘 같기도 하고 망고스틴 같기도 한데,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상당히 맛있다. 한 봉지 샀다. 나중에 저녁에 숙소에 들어와 침대에서 살랏을 까먹었는데, 둘이 까먹으니 더 맛잇더라~ 보통 식사 때 과일을 먹게 되면 수박,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정도만 나오는데, 이 맛있는 건 왜 안나오나 몰라.


다시 달리는 길, 날이 서늘해지면서 바람이 제법 불기에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가는 길이니 바람이 시원하고 좋다. 드디어 브사끼 사원에 도착했다. 산 중턱에 위치한 브사끼 사원, 들어가려면 우선 싸룽이 필요하단다.
한국에서 정보를 모으면서 브사끼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보면 다녀온 사람들 중 대만족이었다고 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기분 나쁘고 짜증났다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았다. 이유는 대부분 바가지 요금에 각종 기부금이니 팁이니 해서 요구하는 것들 때문이었다. 브사끼 사원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반드시 가이드를 대동해야 한다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무리수가 생기는 듯 했다. 아예 가지 말라고 충고하는 글까지 읽었으니, 어느 정도일지 대강 상상은 했는데, 그래도 직접 부딪히는 것과 또 다르겠다 싶어 들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차에서 내렸다.
싸룽은 빌려면 된다는 살릿의 말과는 달리, 실제 내렸더니 무조건 사야 한단다. 일단 여기서 살짝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언제 또 힌두 사원에 들어갈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거고, 여행의 전리품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해서 큰 맘 먹고 샀다. 허리춤에 대강 둘렀더니, 역시나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엉거주춤 우스운 모양새이다.

- 싸룽 입고 올라가는 엉거주춤한 모습


- 브사끼 사원

자, 들어가 보자. 정문으로 들어가려니 한 떼의 발리인들이 우릴 잡는다. 살릿 말이 가이드를 데려 가야 한단다. 알고 있던 사실이니 놀랍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떼거지로 덤빌 줄은 몰랐다. 일단 우린 영어 잘 못하니 가이드 필요없다고 해도 통하질 않는다. 어차피 함께 가야 하는 거면 얼마냐 하고 물었는데, 글쎄 50만 루피란다. 우리 돈으로 5만원이 넘는 돈. 말도 안돼. 기가 차하는 우리를 보더니 이 사람들 두꺼운 장부를 꺼내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 장부는 가이드들의 이름이 각 장마다 적혀 있고, 그 밑에는 국적별로 요금이 좌르륵 써있다. 모두 하나같이 50만 루피, 50달러.. 자기네들은 모두 이 가격이고, 다른 사람들도 다 이 가격으로 관광을 했다. 거의 반 협박조다. 세상에. 영어도 잘 못하고 있는 우리를 비~잉 하고 둘러싸고 말이다. 어이가 없었다.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인 곳. 왜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열받고 짜증나서 안가겠다고 화를 냈다. 우리가 울그락불그락 하고 있는데, 글쎄 살릿은 그냥 멍하니 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싸룽까지 확 벗어버리고 안 보겠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 당신들 태도에 기분 나빠졌다 하고는 돌아서서 차에 올라 타려니, 우릴 막 쫒아 오면서 그럼 20만 루피에 주겠단다. 지금 뭐하자는 거야? 20만 루피에도 된다는 거 아냐? 진짜 신경질 나네.


우리가 씩씩거리며 차에 올라타니, 살릿이 미안하고 한다. 그렇게 비쌀 줄 몰랐다고. 우리가 안 보겠다 하고 우붓으로 그냥 가자고 하니, 잠시만 기다려 보란다. 그러더니 차를 옆으로 돌러 사원 옆쪽 샛길로 들어갔다. 여기로 가면 싸게 갈 수 있다며. 뭐야? 싸게 얼마? 한 5만 루피 정도. 참나. 이걸 좋아해야 하나. 결국 이 정도 가격이면 볼 수 있는 루트를 알고 있으면서도 우릴 정문 쪽으로 데려간 거네. 아, 살릿, 너도 그렇구나. 갑자기 살릿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 그래, 이 짧은 기간동안 인간적으로 깊은 신뢰를 쌓는다는 게 어렵기도 하겠지. 게다가 여행자와 여행가이드의 관계라면. 에잇, 씁쓸한 기분이다.
이윽고 오토바이를 탄 발리인이 한명 다가오더니 두 명 함께 5만 루피에 볼 수 있다고 가이드를 소개한다. 에이~ 기분은 많이 망쳤지만,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함 보자. 가이드를 만나고 옆길로 올라갔다. 정면에서 아까 우릴 협박해댔던 그 가이드들이 우릴 쳐다보더라. 으, 다시 봐도 짜증나네.

- 브사끼 사원

- 기도 드리고 나서

이 가이드, 처음 한참 동안은 친절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잘 해주었다. 우리도 기분 풀고 이왕 보는 거 재밌게 보자 마음을 고쳐먹고 있었고. 나름대로 기분내며 잘 둘러보고 있었는데, 우릴 열받게 하는 일이 또 일어난다.
여러 사원을 돌아보던 중 어느 한 곳에서 있던 일이다. 특별히 믿는 신이 있는 게 아니라면 어차피 신전에 들어간 거 그들의 신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기도나 한 번 해 보자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기도를 해도 되는 신전에 들어 왔길래 가이드씨가 가르쳐 주는 대로 앉아 기도를 드렸다. 앉은 자리에 준비된 차낭사리를 가져다 놓고, 노란 꽃 들고 한번, 빨간 꽃 들고 한번, 꽃을 흔들었다가 성수를 마셨다가, 복잡하다면 복잡할 수도 있을 의식을 차례차례 따라한 뒤 기도를 마쳤다. 뭘 빌었었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이마에 쌀알 몇 개까지 붙이고 기분 좋게 일어났다. 안그래도 나가는 길에 기부금을 얼마 낼 참이었다. 그들의 신전에 우리 같은 이방인을 들려 놓고 기도까지 들어주었으니 고마운 마음이 인 것은 당연한 거였다. 가이드가 가르쳐 주는 대로 헌금통 앞으로 갔는데, 글쎄, 다른 여행객들 모두 3,40 달러씩을 내고 갔단다. 내참, 어이가 없어서. 헌금이야 마음껏 정성껏 하면 되는 거지 액수까지 말하며 요구하는 법이 어디 있나. 게다가 그렇게 큰 돈을. 얘네가 우릴 봉으로 아나.


그동안 다니면서 마음에서 우러나는 서비스를 받았다고 생각될 때에는 조금이지만 팁을 주기도 했었다. 돈을 준다는 것이 낯설어 내키지 않기는 해도, 내가 정말 당신의 친절에 너무너무 감사한다는 마음을 그렇게라도 전하고 싶었다. 돈보다도 그걸 전해줄 때 우리의 표정과 우리의 손길에서 고마운 마음이 전해지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큰 액수를 주는 것은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어봐야 고작 2천 루피, 많으면 5천 루피였다. 우리 돈으로 바꾸면 백원 짜리 몇 개 밖에 안 될 푼돈이지만, 그래도 그 정도 돈에 그들은 정말 고마워했다. 우리의 마음을 감사히 받겠다는 수줍음과 겸손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근데, 이 상황이 말이 되느냔 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얼마를 내라고 요구를 하고, 그것도 3,40 달러나. 짜증이 확 솟구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우린 그때 돈도 없었다. 환전을 하지 않아 루피는 12만 루피가 고작이었다. 돈이 없다고 얘길 하자 달러로 내란다. 세상에. 상황이 점점 심해져간다. 그나마 달러는 환전용으로 가지고 있던 100달러 짜리밖에 없다. 내봐야 거슬러 줄 것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내냐고. 못 내지. 아니, 기분 나빠서 안내.
우리가 마음에서 우러나서 내는 건 이 정도 밖에 안된다 하고 천 루피짜리 몇장 꺼냈다. 그랬는데도 이 가이드 요지부동이다. 다른 여행객들 모두 3,40달러 냈다, 나한테 내라는 게 아니라 신에게 바치는 거다, 당신들이 발리에 도착해서 오늘까지 모두 신이 돌봐 준 거다. 거의 우릴 신의 은혜도 모르는 몰지각한 사람으로 모는 분위기다. 결국 10만 루피 내고 나서야 그 자리를 나올 수 있었다.

- 브사끼 사원

- 이 사람이 우리 가이드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사원까지 모두 둘러 보았다. 이 사람도 우리에게 별 볼 거 없다고 느꼈는지, 설명도 대강대강이다. 사원을 다 보고 나서 헤어지려고 하니, 세상에, 이 가이드 이젠 팁까지 요구한다. 들어오기 전에 가이드비 줬지 않냐고 했더니 뭐라뭐라 구구절절 얘기가 길다. 이 사람 팁의 뜻을 모르나 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야 주는 거지, 오히려 우리가 브사끼 사원한테 위자료라도 받아야 할 형편인데. 어찌나 얘기가 긴지, 다만 얼마라도 줄까 하고 지갑을 열었는데, 아까 기부금 내느라 돈이 얼마 없다. 2만 루피하고 몇 천 루피. 그러게 아까 우릴 그렇게 채근하지 말았어야지. 안 그랬으면 그 돈이 당신한테 갔을 거 아냐. 몇 천 루피 꺼내줬는데, 아까 2만 루피 있는 거 봤다고 그걸 달란다. 하~참~ 끝까지 기분 나쁘게 하네. 이 사람아, 그건 우리 점심 먹을 거라고!! 2만 루피로 점심값이 되진 않겠지만, 말야 말야 사람이 어떻게 그러나... 결국 그냥 뒤돌아서 버렸다.

으아~ 진짜 브사끼에서는 기분 나쁜 기억이 가득이다. 사원이야 발리 시골 동네에 있는 작은 사원도 감동인걸. 아니, 오히려 그런 작은 곳들이 더 감동이지. 굳이 브사끼처럼 관광지 분위기 물씬 풍기는 그런 곳에 가서 마음 고생하느니. 브사끼 사원은 다시 한번 말리고 싶다. 사원이 보고 싶으시면 거기 말고 작고 조용한 다른 사원을 찾으시라. 발리에 사원은 넘치고 넘쳤으니. 브사끼 사원의 기억이 얼마나 나빴는지, 우린 브사끼 사진을 봐도 그리 기분이 좋지 않다.

( 그래도 사진 보실래요? : 브사끼 사원 )


여하튼 얼른 우붓으로 가자. 브사끼 사원 근처에서 대강 점심을 해결하고 우붓으로 내달았다. 우붓에도 숙소는 정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살릿에게 몇군데 들러보자고 부탁을 했다. 아멧에서 있었던 와와위위2도 만족스러웠지만, 여행자금도 여유 있게 남았겠다, 좀더 좋은 방에 묵어 볼 요량이었다.
살릿도 우붓의 숙소는 자세히 모르는지 일단 무작정 몽키포레스트 거리로 왔다. 몽키포레스트부터 한 곳씩 그냥 들어가 보았다. 이왕 좋은 방에서 있기로 한 거, 인트 오빠가 더위를 무지 타니 에어컨은 필수고, 욕조도 있었음 좋겠고, 이왕이면 TV에 미니바까지 있었음 좋겠다. 이 정도 얘기하니 처음 데려간 곳은 너무 고급이다. 200달러가 넘는다는 브로셔를 보고 방엔 들어가 보지도 않고 손사래를 쳤다. 그래서 다음으로 간 곳은 우붓인 이랑 스리 방갈로, 숙소는 싸고 괜찮았는데 에어컨룸은 다 나갔다니 패스. 숙소 스텝들은 하나같이 우붓엔 에어컨 필요없다고 하는데, 인트 오빠가 워낙 더위를 타니 우린 무조건 에어컨을 고집했다. 실제로 지내보니 그 아저씨들 말이 맞다. 에어컨은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서 잠깐 틀 뿐이지 거의 필요없더라. 예산을 한 50달러 선에서 잡고 다시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페르티위. 일본 사람이 가득했던 그곳은, 60달러라고 써있는 스탠다드룸을 50달러에 준다길래 들어갔는데, 방이 얼마 없어 남은 방은 전망이 영 꽝이다. 에이, 여기도 패스.
대여섯 곳을 돌아다니니 피곤하기도 하고, 우릴 실고 다니는 살릿에게도 미안하다. 이제 왠만하면 정하자.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뽑아 놓았던 숙소 정보들이 이때만큼 아쉬울 때가 없었다. 숙소는 엄청나게 많은데, 들어본 곳들인지 가물가물하고, 가격대가 어느 정도였는지 머리 속에서 막 뒤엉키고. 결국 마지막으로 우리가 들어간 곳은 레스토랑 라막 옆에 있는 쯘다나 리조트. 음... 그 어느 웹사이트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곳인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잘 안가는 곳인가... 일단 스탠다드룸 가격은 50달러. 적당하네. (나중에 알고 보니 미리 몇몇 웹사이트로 예약을 하면 더 싸게 있을 수 있더만.) 방은 에어컨룸이고, 적당히 필요한 가구들이 적절하게 있다. 화장실도 넓고 욕조도 있고. 수영장은 2개. 논이 훤히 보여 전망도 우수. 이래저래 만족이다. TV나 미니바는 없지만, 그 정도야 뭐. 우붓은 거의 걸어서 다닐 우리에겐 위치가 너무 좋으니까, 모든 게 다 포용 가능. 그래, 여기로 하자. 더 다녀서 얼마나 더 좋은 곳 찾겠다고.

( 사진 보실래요? : 쯘다나 리조트 )

- 쯘다나 리조트

- 이부라이 레스토랑

자, 짐 풀고 잠시 쉬었다가 나머지 시간 계획을 세워보자. 일단 가장 중요한 건, 내일 낀따마니 자전거 투어 할 거 예약. 그 다음엔 저녁도 먹고, 나중엔 전통댄스도 볼까. 낀따마니 자전거 투어는 웹사이트 아쿠아에서 알게 된 투어인데,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발리의 자연과 생활에 대해 좀 더 가까이 알 수 있다는 글을 읽고 기대를 무척 하고 있었다. 낀따마니 자전거 투어는 우붓에서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내가 들은 그 투어, Eco & Education 투어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정보는 아쿠아에서 찾은 가이드 와얀의 명함 한 장. 일단 이걸 들고 나가 보자.

우붓의 거리는 한적하면서도 세련된 맛이 있는, 왠지 일본의 소도시 거리를 걷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일본 여자들이 왜 발리를 좋아하는지 알겠다. 아기자기하면서도 패셔너블하고 소박하면서도 도시적인 맛. 음~ 거리를 음미하며 걷고 있는데, 왠 아저씨가 전통공연 안 보겠냐고 다가온다. 순박하고 착하게 생긴 아저씨였는데, 명찰에 고유번호까지 적혀 있다. 께짝 댄스나 레공 댄스 같은 발리의 전통 공연은 여행자 정보센터에서 살 수도 있고, 이렇게 허가받은 거리의 판매원에게서도 살 수 있다. 가격은 5만 루피로 동일하다. 어차피 오늘 저녁에 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니 이때다 하고 얼른 구입했다. 아저씨가 께짝 댄스를 권해 주길래 그걸로 2장 샀다. 사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편해져 배가 고파졌고, 우린 저녁을 먹으러 들어갔다. 레스토랑 이부라이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서야 생각났다. 자전거 투어 예약해야 한다는 걸. 이런!!!
시간은 이미 6시 반이 넘었고, 저녁을 먹으면 공연 보러 가기 빠듯한 시간이다. 게다가 상점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있다. 어쩌지... 방법이 없다. 공연이랑 투어 예약 중 하나를 포기하는 수밖에. 우리가 내일 모레 떠나기 때문에 투어를 할 시간이 내일 밖에 없으니까 예약은 오늘 꼭 해야 한다. 공연은 내일도 볼 수 있으니 공연을 미루자. 나는 식사를 기다리고, 인트 오빠가 표를 바꾸러 갔다. 혹시 안 된다면 그냥 돈 버리는 셈 치자 얘기를 하고. 얼마 뒤 돌아온 오빠. 역시나 안 된단다. 그날그날 당일 공연표만 받아 오기 때문에 내일 표로는 바꿔줄 수 없다, 오늘 이 께짝 댄스 하는 팀이 가장 실력이 좋은 팀이다 하더란다. 시간이 없어서 볼 수가 없다고 했는데,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았나 보다. 환불해 달라는 말은 차마 하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온 오빠. 하는 수 없지 뭐. 밥이라도 맛있게 먹자.


식사를 하고 여행사를 찾아 나섰다. 명함에 나온 주소로는 메인 로드인 거 같은데, 벌써 날이 많이 어둑어둑해 찾기가 쉽지 않다. 왕궁 근처에서 길을 꺽어 메인 로드로 내려가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 우리를 부르며 달려오고 있다. 가만, 아까 공연표 판 아저씨 아냐? 헥헥거리며 달려온 아저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왜 공연 보러 안 가고 다른 쪽으로 가느냐고 묻는다. 우리가 지금 투어 예약을 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고 하지 않았냐 했더니, 이제야 우리 사정을 이해한 듯 오늘 표 밖에 없어 내일 표로 바꿔줄 순 없지만, 공연을 못 본다면 돈을 환불해 주겠다고 한다. 눈만 껌뻑껌뻑하며 아저씨 어찌나 순박하게 얘기하는지, 우리 너무너무 고마웠다. 대신 내일 자기한테 꼭 사달란다. 물론이죠~ 그렇게 허겁지겁 달려와서까지 우릴 얘길 들어줬는데, 물론이죠.

- 한적한 우붓 거리

- 나중에 찾은 낀따마니 자전거 투어 광고판

아저씨와 헤어져 여행사를 찾는데 도통 찾을 수 있을 거 같지가 않다. 물어봐도 사람들 모른단다. 에이, 방법은 하나. 전화를 하는 거다. 얼굴 맞대고 해도 영어로 대화하기가 수월치 않은데, 전화로? 자신 없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걸 어째. 결국 전화를 걸러 가는 내내 머리  속으로 계속 전화 회화들을 되뇌였다.
시간이 좀 늦은 거 같아 그냥 핸드폰으로 걸었다.
헬로우? ○○여행사의 미스터 와얀 씨 맞나요? 투어 예약하려구요. 아, 제가 영어를 잘 못하거든요. 네~ 내일 2명이요. 네? 네? 뭐라구요? 네~ 쯘다나 리조트요. 쯘. 다. 나. 리조트. 아, 7시 30분에요? 로비로 온다구요? 네? 네~ 고맙습니다. 내일 봐요.
우와~ 대화가 됐다. 그것도 아주 성공적으로. 처음에 영어를 잘 못한다고 했더니 아저씨가 쉬운 말로만 얘기 한 거 같다. 이야~ 스스로가 너무 자랑스럽다. ㅋㅋ

투어 예약도 했겠다, 공연 티켓도 환불했겠다, 이젠 맘놓고 쉬자. 데위시타 로드를 걸어 다시 몽키포레스트 로드로 돌아왔다. 불빛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한 거리의 상점들이 너즈넉한 매력이 있다. 잠시 목이나 좀 축일까. 목마르다. 그치? 전화한답시고 긴장해서 그런가.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본 카페 쓰리 몽키스로 들어갔다. 과연 소문만큼 분위기가 좋다. 작은 연못 앞자리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하루의 긴장과 피곤을 씻었다.
와.. 이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