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15. 다섯째날 : 브사끼 사원, 우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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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붓으로 떠나기로 한 날. 느긋하게 잠을 자고 나서 10시쯤 출발했다. 어제 살릿과 이야기해 둔대로 브사끼 사원에 들렀다가 우붓으로 가는 여정이다. 가는 길에 살릿이 은 세공을 하는 공방이 있는데 들러보겠냐고 한다. 마침 어제가 내 생일이기도 해서 인트 오빠가 뭐 하나 사준다고 들러보자고 한다. 살릿이 우리한테 권하는 거야 어차피 상술도 섞여 있는 거고, 그러면서 자기네들끼리 돈도 벌고 하는 거니 좋게 생각하면 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그다지 기분 좋진 않겠지. 딱 여기서 멈춰준 게 다행이다. 살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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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길가에 과일 장사가 하나 나와 있다. '살랏' 이라는 과일이라고 맛있다며 한입 먹어보겠냐며 살릿이 차를 세운다. 아줌마와 딸이 보고 있는 조그만 가게에서 살릿이 갈색의 과일을 까주었다. 딱딱한 껍질 안에 들어있는 하얀 과육은 약간 마늘 같기도 하고 망고스틴 같기도 한데,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상당히 맛있다. 한 봉지 샀다. 나중에 저녁에 숙소에 들어와 침대에서 살랏을 까먹었는데, 둘이 까먹으니 더 맛잇더라~ 보통 식사 때 과일을 먹게 되면 수박,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정도만 나오는데, 이 맛있는 건 왜 안나오나 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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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달리는 길, 날이 서늘해지면서 바람이 제법 불기에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가는 길이니 바람이 시원하고 좋다. 드디어 브사끼 사원에 도착했다. 산 중턱에 위치한 브사끼 사원, 들어가려면 우선 싸룽이 필요하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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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들어가 보자. 정문으로 들어가려니 한 떼의 발리인들이 우릴 잡는다. 살릿 말이 가이드를 데려 가야 한단다. 알고 있던 사실이니 놀랍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떼거지로 덤빌 줄은 몰랐다. 일단 우린 영어 잘 못하니 가이드 필요없다고 해도 통하질 않는다. 어차피 함께 가야 하는 거면 얼마냐 하고 물었는데, 글쎄 50만 루피란다. 우리 돈으로 5만원이 넘는 돈. 말도 안돼. 기가 차하는 우리를 보더니 이 사람들 두꺼운 장부를 꺼내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 장부는 가이드들의 이름이 각 장마다 적혀 있고, 그 밑에는 국적별로 요금이 좌르륵 써있다. 모두 하나같이 50만 루피, 50달러.. 자기네들은 모두 이 가격이고, 다른 사람들도 다 이 가격으로 관광을 했다. 거의 반 협박조다. 세상에. 영어도 잘 못하고 있는 우리를 비~잉 하고 둘러싸고 말이다. 어이가 없었다.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인 곳. 왜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열받고 짜증나서 안가겠다고 화를 냈다. 우리가 울그락불그락 하고 있는데, 글쎄 살릿은 그냥 멍하니 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싸룽까지 확 벗어버리고 안 보겠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 당신들 태도에 기분 나빠졌다 하고는 돌아서서 차에 올라 타려니, 우릴 막 쫒아 오면서 그럼 20만 루피에 주겠단다. 지금 뭐하자는 거야? 20만 루피에도 된다는 거 아냐? 진짜 신경질 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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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씩씩거리며 차에 올라타니, 살릿이 미안하고 한다. 그렇게 비쌀 줄 몰랐다고. 우리가 안 보겠다 하고 우붓으로 그냥 가자고 하니, 잠시만 기다려 보란다. 그러더니 차를 옆으로 돌러 사원 옆쪽 샛길로 들어갔다. 여기로 가면 싸게 갈 수 있다며. 뭐야? 싸게 얼마? 한 5만 루피 정도. 참나. 이걸 좋아해야 하나. 결국 이 정도 가격이면 볼 수 있는 루트를 알고 있으면서도 우릴 정문 쪽으로 데려간 거네. 아, 살릿, 너도 그렇구나. 갑자기 살릿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 그래, 이 짧은 기간동안 인간적으로 깊은 신뢰를 쌓는다는 게 어렵기도 하겠지. 게다가 여행자와 여행가이드의 관계라면. 에잇, 씁쓸한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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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이드, 처음 한참 동안은 친절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잘 해주었다. 우리도 기분 풀고 이왕 보는 거 재밌게 보자 마음을 고쳐먹고 있었고. 나름대로 기분내며 잘 둘러보고 있었는데, 우릴 열받게 하는 일이 또 일어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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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다니면서 마음에서 우러나는 서비스를 받았다고 생각될 때에는 조금이지만 팁을 주기도 했었다. 돈을 준다는 것이 낯설어 내키지 않기는 해도, 내가 정말 당신의 친절에 너무너무 감사한다는 마음을 그렇게라도 전하고 싶었다. 돈보다도 그걸 전해줄 때 우리의 표정과 우리의 손길에서 고마운 마음이 전해지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큰 액수를 주는 것은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어봐야 고작 2천 루피, 많으면 5천 루피였다. 우리 돈으로 바꾸면 백원 짜리 몇 개 밖에 안 될 푼돈이지만, 그래도 그 정도 돈에 그들은 정말 고마워했다. 우리의 마음을 감사히 받겠다는 수줍음과 겸손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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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사원까지 모두 둘러 보았다. 이 사람도 우리에게 별 볼 거 없다고 느꼈는지, 설명도 대강대강이다. 사원을 다 보고 나서 헤어지려고 하니, 세상에, 이 가이드 이젠 팁까지 요구한다. 들어오기 전에 가이드비 줬지 않냐고 했더니 뭐라뭐라 구구절절 얘기가 길다. 이 사람 팁의 뜻을 모르나 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야 주는 거지, 오히려 우리가 브사끼 사원한테 위자료라도 받아야 할 형편인데. 어찌나 얘기가 긴지, 다만 얼마라도 줄까 하고 지갑을 열었는데, 아까 기부금 내느라 돈이 얼마 없다. 2만 루피하고 몇 천 루피. 그러게 아까 우릴 그렇게 채근하지 말았어야지. 안 그랬으면 그 돈이 당신한테 갔을 거 아냐. 몇 천 루피 꺼내줬는데, 아까 2만 루피 있는 거 봤다고 그걸 달란다. 하~참~ 끝까지 기분 나쁘게 하네. 이 사람아, 그건 우리 점심 먹을 거라고!! 2만 루피로 점심값이 되진 않겠지만, 말야 말야 사람이 어떻게 그러나... 결국 그냥 뒤돌아서 버렸다. 으아~ 진짜 브사끼에서는 기분 나쁜 기억이 가득이다. 사원이야 발리 시골 동네에 있는 작은 사원도 감동인걸. 아니, 오히려 그런 작은 곳들이 더 감동이지. 굳이 브사끼처럼 관광지 분위기 물씬 풍기는 그런 곳에 가서 마음 고생하느니. 브사끼 사원은 다시 한번 말리고 싶다. 사원이 보고 싶으시면 거기 말고 작고 조용한 다른 사원을 찾으시라. 발리에 사원은 넘치고 넘쳤으니. 브사끼 사원의 기억이 얼마나 나빴는지, 우린 브사끼 사진을 봐도 그리 기분이 좋지 않다. ( 그래도 사진 보실래요? : 브사끼 사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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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얼른 우붓으로 가자. 브사끼 사원 근처에서 대강 점심을 해결하고 우붓으로 내달았다. 우붓에도 숙소는 정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살릿에게 몇군데 들러보자고 부탁을 했다. 아멧에서 있었던 와와위위2도 만족스러웠지만, 여행자금도 여유 있게 남았겠다, 좀더 좋은 방에 묵어 볼 요량이었다. ( 사진 보실래요? : 쯘다나 리조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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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짐 풀고 잠시 쉬었다가 나머지 시간 계획을 세워보자. 일단 가장 중요한 건, 내일 낀따마니 자전거 투어 할 거 예약. 그 다음엔 저녁도 먹고, 나중엔 전통댄스도 볼까. 낀따마니 자전거 투어는 웹사이트 아쿠아에서 알게 된 투어인데,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발리의 자연과 생활에 대해 좀 더 가까이 알 수 있다는 글을 읽고 기대를 무척 하고 있었다. 낀따마니 자전거 투어는 우붓에서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내가 들은 그 투어, Eco & Education 투어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정보는 아쿠아에서 찾은 가이드 와얀의 명함 한 장. 일단 이걸 들고 나가 보자. 우붓의 거리는 한적하면서도 세련된 맛이 있는, 왠지 일본의 소도시 거리를 걷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일본 여자들이 왜 발리를 좋아하는지 알겠다. 아기자기하면서도 패셔너블하고 소박하면서도 도시적인 맛. 음~ 거리를 음미하며 걷고 있는데, 왠 아저씨가 전통공연 안 보겠냐고 다가온다. 순박하고 착하게 생긴 아저씨였는데, 명찰에 고유번호까지 적혀 있다. 께짝 댄스나 레공 댄스 같은 발리의 전통 공연은 여행자 정보센터에서 살 수도 있고, 이렇게 허가받은 거리의 판매원에게서도 살 수 있다. 가격은 5만 루피로 동일하다. 어차피 오늘 저녁에 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니 이때다 하고 얼른 구입했다. 아저씨가 께짝 댄스를 권해 주길래 그걸로 2장 샀다. 사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편해져 배가 고파졌고, 우린 저녁을 먹으러 들어갔다. 레스토랑 이부라이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서야 생각났다. 자전거 투어 예약해야 한다는 걸. 이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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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하고 여행사를 찾아 나섰다. 명함에 나온 주소로는 메인 로드인 거 같은데, 벌써 날이 많이 어둑어둑해 찾기가 쉽지 않다. 왕궁 근처에서 길을 꺽어 메인 로드로 내려가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 우리를 부르며 달려오고 있다. 가만, 아까 공연표 판 아저씨 아냐? 헥헥거리며 달려온 아저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왜 공연 보러 안 가고 다른 쪽으로 가느냐고 묻는다. 우리가 지금 투어 예약을 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고 하지 않았냐 했더니, 이제야 우리 사정을 이해한 듯 오늘 표 밖에 없어 내일 표로 바꿔줄 순 없지만, 공연을 못 본다면 돈을 환불해 주겠다고 한다. 눈만 껌뻑껌뻑하며 아저씨 어찌나 순박하게 얘기하는지, 우리 너무너무 고마웠다. 대신 내일 자기한테 꼭 사달란다. 물론이죠~ 그렇게 허겁지겁 달려와서까지 우릴 얘길 들어줬는데, 물론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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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와 헤어져 여행사를 찾는데 도통 찾을 수 있을 거 같지가 않다. 물어봐도 사람들 모른단다. 에이, 방법은 하나. 전화를 하는 거다. 얼굴 맞대고 해도 영어로 대화하기가 수월치 않은데, 전화로? 자신 없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걸 어째. 결국 전화를 걸러 가는 내내 머리 속으로 계속 전화 회화들을 되뇌였다. 투어 예약도 했겠다, 공연 티켓도 환불했겠다, 이젠 맘놓고 쉬자. 데위시타 로드를 걸어 다시 몽키포레스트 로드로 돌아왔다. 불빛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한 거리의 상점들이 너즈넉한 매력이 있다. 잠시 목이나 좀 축일까. 목마르다. 그치? 전화한답시고 긴장해서 그런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