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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
2006.02.26 00:29 추천:9 댓글:1 조회:2,291

--2006.01.16. 여섯째날 : 낀따마니, 우붓


7시 30분. 낀따마니 투어를 가야할 시간이다. 아침이 포함된 투어니까 배고파도 그냥 어서 나가자. 로비로 나가니, 어제 전화해 둔대로 여행사 아저씨가 나와 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하얀 봉고차에 올랐다. 오늘 손님은 우리 둘이 전부인 가 보다. 운전사 아저씨와 와얀 아저씨, 모두 유니폼인 듯한 노란 티셔츠를 입고 있다. ‘Bike, Baik'이라고 써 있는.

- 와얀 아저씨와 운전사 아저씨(이름 까먹음 ㅠ)

- 와얀 아저씨 명함
이게 와얀 아저씨의 현재 명함

낀따마니로 달려가며 와얀 아저씨가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다.
“한국의 아쿠아라는 웹사이트에서 알았어요. 챨리(아쿠아 운영자) 라는 분이 쓰신 글을 읽고 인상 깊어 신청했어요.”
(물론, 영어로 대화한 거다. ^^)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그 웹사이트에 아저씨 명함이 있었어요.”
하고 프린트해 간 명함을 보여주자, 와얀 아저씨 한참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유.심.히. 그러더니 이 명함은 몇 년 전 명함이고, 자긴 지금 그 회사에서 나왔다고 한다.
“Eco & Education 투어를 하던 그 여행사는 사장이 호주인이예요. 그 사람은 발리에서 돈을 벌어 모두 자기 나라로 가져가죠. 그래서 작년에 그 회사에서 나와 현지인들이랑 새 여행사를 차렸어요, Bike, Baik라는. 당신이 어제 전화해서 옛날 여행사 이름을 대길래 깜짝 놀랐어요.”
오호~ 그런 사연이.
“우리 회사는 발리인들이 운영하는 회사기 때문에 발리의 문화나 자연에 대해 깊이있는 가이드를 해 줄 수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은 발리 경제에 도움을 주죠. 외국인이 오너인 회사는 그렇지 않잖아요?”
와얀 아저씨, 자기 회사에 대한 그리고 그들의 투어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우리는 발리에 대한, 발리인의 의한, 발리 경제를 위한 회사라는.
“옛날 정보를 가지고도 이렇게 연락이 되었다니, 당신들은 정말 행운이예요. 당신들을 만나 다행이예요. 내 회사가 바뀌었다는 걸 챨리 씨에게 전해 주실 수 있나요?
앗, 챨리님께 전해 주라고? 우린 챨리라는 분의 글을 읽었을 뿐이다, 만난 적도 없고, 잘 모르는 사람이다, 하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짧은 영어로 도통 통하는 것 같지가 않다. 나중엔 우리보고 챨리님이랑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사느냐고까지 물을 정도였다. 설명을 하다하다 제대로 전달되지 않자, 결국은 우리가 챨리님께 전해 주겠다, 와얀 아저씨 정보는 우리가 꼭 바꿔주겠다하고 약속을 해 버렸다. 지금도 와연 아저씨는 우리가 챨리님과 잘 아는 사이인 줄 알거다.
Promise 라는 단어가 나오자 당장 와얀 아저씨 얼굴에 큰 웃음이 번진다. 그날 우리는 와얀 아저씨에게 이 약속을 두 번 세 번 했다. 그 정보들은 이 여행기 쓰는 대로 따로 글을 써 올려 볼 생각이다.


나름대로 많은 대화를 나누어 먼저 도착한 곳은 발리니스 커피를 만든다는 농장이었다. 파인애플, 카카오, 바나나 등 각종 열매들이 달린 농장 안으로 쑥 들어가니 커피 볶는 냄새가 산에 가득하다. 계단식 논이 펼쳐진 산 중턱에서 모자를 비스듬히 놀러 쓴 멋진 할아버지가 커피를 볶고 계신다. 아침 일찍 커피향을 맡으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나무들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커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드디어 우리는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타 주던 농장의 젊은 직원은 한국말을 제법 한다. 박지성도 알고. 한국 여행객들이 자주 오나.
발리의 커피는 직접 내려 마실 수도 있고, 인스턴트용으로 만든 분말로 직접 타기도 한다. 그치만 인스턴트 커피라도 우리의 커피랑은 아주 많이 달라서 물에 좀처럼 녹지 않는다. 향은 굉장히 강하고, 찻잔 바닥으로 가득 가라앉아 점점 마시다 보면, 흑갈색의 가루들이 수북하다.

- 커피 볶는 할아버지


- 과일을 까주던 농장 직원

농장 직원들과 와얀 아저씨와 둘러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었다. 한국 얘기, 발리 얘기, 역사 얘기, 가족 얘기. 한참을 얘기하다 ‘와얀’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발리에 왜 그토록 많은 ‘와얀’이 있는 걸까에 대하여.발리인들은 첫째 아들에게는 의례 ‘와얀’ 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둘째는 ‘마데이’ 셋째는 ‘뇨만’, 넷째는 ‘끄틋’ 라고 부른다고 한다. 참 재밌는 일이지. 그래서 그렇게 와얀이 많구나. 설명에 뒤이어 와얀 아저씨가 “가장 잘생긴 와얀은 누구?”하고 소리를 높이니, 농장 여기저기서 서로 자기라고 손을 든다. ^^커피를 마신 후 옆에 있는 상점으로 들어갔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물건을 팔아먹으려고 여행객들을 끌고 가는 상술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달리 생각하면, 그들의 생활을 보여주면서 구매를 연결시키려는 그들의 노력으로 볼 수도 있겠다. 어차피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린 건데, 똑같이 물건을 팔아도 그 사람들의 마음과 배려의 미묘한 차이가, 그런 마음먹기를 좌우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보여준 발리인들의 모습이 우리 마음을 열기엔 충분했다. 발리 생각이 날 때마다 마시려고 커피를 조금 사고, 젯분 플라워의 향기를 담은 마사지 오일도 하나 샀다. 이것저것 소개해 주었지만, 결코 강하게 권하지 않아 쇼핑하기에 부담이 없었다. 오히려 쇼핑 후에 망고스틴 몇 개를 서비스로 주기까지 했다.


선하게 웃던 농장 사람들을 뒤로 하고 아침을 먹으러 낀따마니로 향했다. 낀따마니는 바투르산 서쪽의 위치한 지역으로 바투르 산과 호수의 전경을 시원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토스트와 과일 정도의 간단한 아침이었지만 눈이 시원해서 그런지 배부르게 잘 먹었다.
눈 앞에 보이는 바뚜르 산은 구름으로 휩싸여 있는데 지금이라고 화산의 용암이 뭉게뭉게 할 것 같은 힘이 느껴지고, 마주한 빠뚜르 호수는 넓고 깊어 또 하나의 산인 듯하다. 실컷 눈에 풍경을 담고 이제 자전거를 타러 간다.

- 바뚜르 산

- 인사하러 달려오는 아이들

조금 내려간 공터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던 자전거. 다섯 대의 자전거 중 크기에 맞는 걸 고르고 잠시 연습을 해 본다. 한국에서도 자전거는 자주 탔으니 자신이 있었는데, 자전거가 다소 높아 어깨에 힘이 많이 간다. 그래도 다닐만 하겠다. 자, 출발 !!
와얀 아저씨가 우리 앞에 자전거로 다니며 길잡이를 한다. 우리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연신 확인을 하면서. 하지만 굳이 고개 돌려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게 우리 뒤에 또 한 직원이 자전거를 타고 쫒아 오고 있다. 앞뒤로 우릴 보좌하고, 그 뒤엔 짐을 실은 봉고까지 뒤 따르고, 또 그 뒤엔 자전거를 싣고 왔던 트럭까지. 황송할 만한 서비스다. 우리 둘에 딸린 서비스가 직원 예닐곱에 차 두 대라니.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는 길은 주욱 내리막이다.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아 위험하지 않고, 바람 맞기에 딱이다. 한적한 시골길을 내리달리다 보면, 우릴 보고 저기서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몰려나온다. ‘할로’하고 손 흔들고 인사하기 바쁘다. 눈 마주치고 인사하면 그렇게 마음이 뿌듯할 수가 없다. 아이들 뿐 만이 아니다. 머리 위에 짐을 지고 가는 아줌마도, 손자를 업고 있는 할머니도, 길가에서 파리를 잡는 할아버지도, 맞은편에서 지나가는 오토바이도, 모두 하나같이 ‘할로’다. 발리 사람들 정말 잘 웃는다. 다음 여행으로 다시 발리에 오게 된다면 그 이유의 거의 8할은 발리 사람들의 이 웃음 때문일 것이다.


입 아프도록 할로를 외치면 지나가는 길, 시골 동네를 지나고, 작은 학교를 지나고, 슈퍼를 지나고, 논둑길을 지난다. 지나가다 숨이 차면 잠시 쉬어 숨도 고르고, 좋은 풍경엔 사진도 맘껏 찍는다. 너른 논이 나오면 멈춰 온갖 식물들의 소개를 받는다. 밭 일구던 아줌마가 웃으며 인사하면, 와얀 아저씨 짧은 담소도 나누고, 농사일에 대한 그들의 노고와 땀방울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여행 내내 우리는 와얀이 정말 발리를 아낀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그저 식물 이름, 열매 이름들을 피상적으로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이것을 가꾸는 사람들의 노력과 그것을 먹는 사람들의 즐거움, 그런 자연과 함께하는 발리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말 발리인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설명들이다. 이 여행을 와얀과 함께 하게 되었다는데 감사하는 마음까지 생길 정도다.

- 일하다 우릴 보고 웃어준 할머니

- 의식을 주관하는 성직자

또다시 내려가는 길, 저 앞 골목께 작은 사원이 있다. 깃발을 매단 대나무가 문가에 높이 세워져 있는 곳. 지금 세레모니가 있나 보다. 자전거를 잠시 멈추고 와얀이 설명을 시작한다.
“여기는 발리인들이 의식을 치르는 곳이예요. 마침 지금 의식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 혹시 들어가 볼 수 있을지 물어볼게요.”
신전을 지키는 아저씨와 짧은 이야기 끝에 우리를 들여보내 주기로 했다. 야호. 진짜 운이 좋다. 이렇게 이방인들을 그들 삶 깊숙한 곳까지 들여보내주는 개방적인 태도가 발리인들의 큰 미덕 중 하나이다. 싸룽을 입어야 한다며 싸룽은 가져다 입혀주고, 혹시 생리 중이 아닌지 묻는다. 생리 중인 여성은 사원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크게 당황할 뻔했다. 싸룽을 입고 사원에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의 눈이 우리를 향한다. 사원에서는 유난히 젊은이들이 많은데 빨간 색의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은 친구들이 간간히 보인다. 어라. 서로 눈인사를 나누고, 발검음도 조용조용 들어갔다. 와얀 아저씨도 목소리를 낮추어 설명을 하신다. 각종 깃발과 의식의 내용과 제물 등 여러 가지에 대해.
마침 한쪽에서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다. 흰 옷은 입고 종을 흔들며 의식을 주재하는 흰 머리에 주름 가득한 성직자를 따라 가족인 듯한 사람들이 무릎 꿇고 기도를 올리고 있다. 남자들은 이마에 흰 띠를 두르고, 여자들은 레이스의 화려한 옷으로 성장을 하고 있다. 눈에 가득 카메라 뷰파인더에 가득 사원의 모습을 담았다.
의식이 끝나면 너른 대청마루에 앉아 사원에서 제공하는 차와 음식을 나눈다. 우린 의식을 올린 신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물과 비스킷을 주셨다. 조심스레 먹고 나오는 길. 사람들이 정성껏 드린 제물들이 신전에 가득하다. 조그만 바구니에 담긴 달걀, 밥, 각종 과일. 그들의 정성만큼 그들의 기도만큼, 발리에 언제나 평화와 기쁨이 가득하길.

( 사진 보실래요? : 낀따마니의 작은 사원 )


다시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가다 처음으로 오르막을 만났다. 오르막에서는 기어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 지 배우고 왔건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조그만 오르막일 뿐인데도 자전거는 잘 올라가 주지 않는다. 에이~ 결국 내려 걸었다. 걸어 올라가 조그만 사당 앞에 멈추고 물을 마셨다. 이제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자전거를 탔나 보다. 시간은 꽤 되었는데, 내리막으로 와서 그런지 별로 힘들지가 않다.
와얀 아저씨가 이제 한 30분 정도면 자전거 타는 길은 끝난다고 한다. 통상적이 루트는 30분 정도의 길이지만, 좀 더 원한다면 1시간 넘는 루트가 하나 더 있다고 한다. 어떤 걸로 하겠냐며. 자전거 타기에 제법 자신도 생겼고, 타고 지나는 길들이 너무 좋아 우리는 호기 좋게 먼 길로 가자고 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다시 출발. 이제 점심때가 가까워져 가는지 태양이 중천이다. 팔이 뜨겁다. 썬블록 크림을 바르고 왔는데도 무지 탈 것 같다. 20분 정도 더 타고 갔더니 슬슬 힘들어진다. 중간중간 오르막도 생기고. 힘이 딸리는지 오르막마다 걸어야 했고, 쉬는 시간도 점점 늘어갔다. 땀이 비오듯 흐른다. 쉬면서 뒷 차에 실린 아이스박스에서 차가운 물도 꺼내 마시고, 차가운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보지만, 이젠 더 달릴 힘이 없다. 몸이 힘드니 사람들에게 할로 하고 인사도 못하겠다.
때마침 와얀 아저씨가 이젠 차타고 가자고 한다. 그냥 30분짜리 길로 갈 걸. 그래도 잘 왔네. 즐거운 길이었지?

- 우리 자전거

- 와얀 어저씨 부인이 준비해준 점심

점심 식사는 와얀 아저씨네 집에서 먹는다. 진짜 발리의 가정식을 먹는 거다. 보통 레스토랑의 요리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솜씨라며 아저씨 부인의 요리 솜씨는 자랑하는데, 하하, 기대된다. 구불구불 한적한 동네로 들어가 차가 멈추었다. 좁은 대문으로 들어가니 ㄴ자의 집이 나온다. 작은 화장실과 창고가 집 옆으로 있는데, 여기에 자전거들을 세워 둔다. 이 여행사는 사무실이 우붓에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 집이 바로 사무실이란다. 널찍한 마루에 상이 차려져 있고, 각종 반찬들이 밥과 함께 한쪽에 쌓여 있다. 뷔페처럼 원하는 데로 퍼 먹으면 된다. 음식을 담고 방석에 앉자마자 비가 쏟아진다. 와, 우리 진짜 운 좋네. 시원하고 좋~다.


그때 방에서 꼬마 여자아이가 나온다. 와얀 아저씨의 첫째 딸 데피. 노란 원피스에 예쁜 양말을 신고 색칠 공부를 하고 있다. 아빠한테 배운 짧은 영어로 우리에게 이름을 묻는다. ㅋㅋ  처음 만났을 땐 영 수줍어하더니, 자세히 보니 이 녀석 눈에 장난기가 가득이다.
맛있게 밥을 먹고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에서 브로셔를 가져와 꼭 한국에 잘 소개해 달라고 하신다. 네, 그래 볼게요. 커피까지 마신 후 아저씨네 집 구경을 했다. 와얀 아저씨네 집은 요즘 확장 공사 중이어서 집 뒤에는 공사가 한창이다. 집 앞에는 늘 그렇듯 조금만 사당들이 있고, 뒤편에는 돼지우리가 있다. 여기저기 닭들이 뛰어 다닌다. 공사하고 계시는 아저씨들 어김없이 여러 가지를 물으신다. 아저씨네 집에서 밥 먹고 구경하고 사람들과 사진 찍고 놀았는데, 시간이 한참 지났다. 아침 7시 30분에 나와서 벌써 4시가 다 넘었네.

 

 

 

( 사진 보실래요? : 낀따마니 자전거 투어 )

- 와얀 아저씨와 두 딸

- 논이 보이는 수영장

우붓으로 돌아가는 길. 아저씨의 차에 데피가 따라 탔다. 데피를 내 무릎에 앉히고, 서로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우붓으로 왔다. 안녕 하고 헤어지는 길, 아저씨가 가르쳐준 고맙다는 발리말, 마뚜르 쑥쓰마 로 아쉬운 맘을 대신 전했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면서 수영장에 들어갔다. 수영도 못하는 사람들이 수영장에 들어가 뭐하나 하겠지만, 그냥 물에 발만 담궈도 좋은 법. 제법 깊은 물속에 들어가 수영장 턱에 팔을 궤고 논들을 바라보니 이런저런 얘기들이 술술 나온다. 늘 같이 밥먹고 자고 놀며 얘기를 나누는데도 우리는 할 말이 참 많다.


자, 저녁 먹고 어제 못 본 께짝 댄스나 보러 갈까. 어제 그 아저씨에게 표를 사야지. 오늘은 시간이 넉넉하니 밥을 먼저 먹어도 되겠다. 나시고렝도 조금씩 물려가는 듯 하니 오늘은 이탈리아 음식을 먹자. 얘길 많이 들어본 발리 페스토로 들어갔다. 어, 발리 페스토가 두 개네? 우리가 들어온 곳은 뉴 발리 페스토. 분점 비슷한 거겠지? 발리니스 피자하고 스파게티를 시켰는데, 피자는 상당히 맛있었고, 스파게티는 좀 짜서...
밥 먹었으니 이제 표 사자. 몽키포레스트 로드로 걸어가 아저씨를 발견하곤 손을 크게 흔들었다. 아저씨 우릴 보더니 웃으면서 달려오신다. 다시 봐도 사람좋은 웃음. 서로에게 고마워 하며 헤어졌다.
공연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으니 좀 걸어올까. 어제 밤에 걸을 때 보니 데위시타 로드가 맘에 들던데, 그쪽으로 한 바퀴 돌아 공연장으로 가야지. 데위시타 로드는 몽키포레스트 로드와 하노만 로드를 잇는 길로 운동장 바로 윗길이다. 거리는 매우 짧지만, 오히려 작고 좁아 눈에 쏙 들어 온다.

- 뉴 발리 페스토

- 공연의 시작은 불밝히는 일부터

어느덧 6시 30분. 공연시간 30분 전에 들어가 좋은 자리를 맡아두어야 좋다길래 슬슬 떠나기로 했다. 오늘 께짝 댄스의 공연장은 우붓의 박물관 너머 있는 푸라 달렘 우붓 스테이지.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 야외 공연장이 괜찮으려나. 지도를 보고 걸어가는데, 꽤 먼거리다. 얼마나 더 가야 하나 싶어 사람들에게 물어보려 고개를 돌리면, 묻기도 전부터 500미터 더 가세요, 300미터 더 가세요,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드디어 공연장 도착, 야외무대에 빙둘러 플라스틱 의자들이 놓여 있다. 중앙 첫 자리에 자리를 맡고 둘러보니, 엥? 옆에 지붕이 있는 넓은 마루에도 의자들이 놓여져 있네. 어디가 무대인거지? 음료수도 팔고 과일도 팔고 모기약도 팔고 별별거 다 파는 할머니께 여쭤보니, 둘다 맞단다. 여기서 하다가 저리로 옮긴다고. 자리에 앉아 공연은 기다리니 빗방울이 좀 굵어지는 것 같다. 결국 공연은 지붕 밑에서만 하기로 한 듯, 모두가 자리를 옮겼다.

이윽고 등불이 꺼지고 고요해진다. 무대에서 한 아저씨가 나와 중앙에 놓인 등잔에 불을 붙인다. 그 뒤 성직자 아저씨가 나와 무대에 성수를 뿌리며 공연의 성공을 기도한다. 그리고 또다시 정적.


갑자기 ‘께짝!!!’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에 꽃을 꽂은 장정들이 손을 흔들며 우르르 몰려 나온다. 정말 ‘우르르’이다. 첨엔 끝도 없이 나오는 줄 알았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부터 자신감이 넘치는 듯한 장년의 아저씨, 아직은 장난기 넘치는 서툰 눈빛의 소년까지. 쉴새없이 ‘께짝께짝께짝께짝’을 외치며 달려 나온다. 한 공연팀만도 4,50명이 족히 될 법한데, 우붓에서는 이런 께짝 댄스만 하루에 두서너 공연이 있고, 한 공연팀이 대개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밖에 공연을 안 하는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께짝 댄스가 공연되고 있는 거면, 우와, 밤마다 우붓의 모든 남정네들은 다 께짝 댄스 추러 나오나 보다.
다같이 불빛을 둘러싸고 앉는데도 입으로는 계속 께짝 이다. 처음 시작부터 끝나는 마지막까지 께짝을 외치는데, 그게 모두 같은 께짝이 아니다. 장면이 전환되는 순간에는 ‘께짝!’하고 높은 소리로 앞을 이끄는 소리가 있고, 남들 모두 넘실넘실 께짝거릴 때 혼자 ‘둥 둥 둥’하며 추임새를 넣는 소리도 있다. 가끔 노래도 들리는데, 목청이 엄청 좋은 아저씨 몇몇이 돌아가며 노래를 부른다. 스토리가 진행될 때는 몸집 좋은 아저씨가 마치 변사처럼 신기한 목소리로 대사를 읊듯 설명을 한다. 계속 께짝거려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누가 추임새를 넣는지, 누가 노래를 부르는지, 누가 설명을 하는지 찾으려 똑같이 입을 움직이는 아저씨들 사이를 눈으로 정신없이 쫒는다.

- 께짝을 외치며 손을 흔드는 아저씨들

- 우리의 주인공

무대 위에서 한 여자와 남자가 화려한 분장을 하고 달려 나왔다. 손끝까지 힘을 잔뜩 넣은채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춤을 추는데, 멋지다는 생각보다는 신기하다는 생각 뿐이다. 뒤이어 빨간 원숭이도 나오고 하얀 원숭이도 나오고, 새도 나오고, 나쁜 놈도 나온다. 내용은 몰라도 누가 나쁜 놈인지는 알겠더라.
한참 정신을 쏙 빼놓고 보았다. 이윽고 주인공들이 화살을 쏴서 나쁜 놈들을 물리쳐 버렸다. 아자!!! 역시 권선징악!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사람들의 상기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공연이 끝나면 불쇼(?)가 나온다던데. 어떤 걸까나. 기대에 가득 차 눈빛이 초롱초롱. 곧 사회자인 듯한 아저씨가 나와 잘 봤냐고 인사를 한다. 물론이죠! 이제 파이어 댄스가 남앗는데, 아쉽게도 오늘 비가 와서....쏼라쏼라... 그 뒤에 얘기는 너무 빨라서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는데, 대강 눈치상, 원래는 야외무대에서 멋지게 해야 되는데 비가 와서 그냥 여기서 하게 되었으니 양해를 바란다, 뭐 그런 내용인 것 같다. ^^;
여하튼 불꺼진 무대 위에 젊은이 둘이 나와 마른 야자열매를 쌓고 불을 붙인다. 화르륵 불길이 오르자, 지푸라기로 만든 말을 어깨에 맨 아저씨가 눈을 감고 나와 춤을 춘다. 왜 눈을 감고 있을까나. 한참을 정신없이 춤을 추더니 활활 타오르는 야자 더미를 발로 막 차고 다닌다. 어, 맨발인데... 아저씨가 발로 차면 야자열매가 데구르 구르면서 불꽃이 파바박 퍼진다. 앉아 있는 사람들 앞으로 정신없이 불꽃이 파바박 파바박! 
오~~~
이 말 아저씨를 붙잡으면 공연이 끝이다. 공연이 끝나면 무아지경에 빠져 있던 아저씨가 기도를 하며 눈을 뜨고, 박수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뜬다.

( 사진 보실래요? : 께짝 댄스 )

- 불을 차고 다니던 아저씨

- 깊어가는 우붓의 마지막밤

이야~ 아직도 귓가에 께짝 소리가 나는 듯해 잠을 잘 수가 없다. 게다가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밤 아닌가. 잘 수가 없지. 암, 없고말고. 맥주라도 한 잔 해야겠는데, 어디로 가지?
어차피 숙소 앞까지 온 거,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갈까. 거기 꽤 화려한 분위기여서 맥주마시기 좋을 거 같던데. 안으로 들어가니, 과연 놀라운 분위기다. 나중에 한국 와서 찾아보니, 여기 제법 유명한 곳이더라. 라막 이라고. 맥주 마시며 께짝 댄스 브로셔에 나와 있는 줄거리를 띄엄띄엄 해석했다. 물론 전자사전의 도움을 받아.

적당히 술이 올라 기분이 붕 뜨니, 새삼 내일 돌아간다는 게 속상하다. 우리 참 잘 놀았지. 로비나 좋았지? 응. 응. 돌고래 멋졌지? 아멧도 좋더라. 오토바이 타고 다니길 잘했지? 오늘 자전거 투어도 최고였지? 다음에 여행하면 한 2주 정도 해보자. 다음엔 어디로 갈까. 베트남 중부로 갈까? 푸켓처럼 초록빛 바다 있는 곳도 괜찮겠지? 그래 태국을 안 갈 수 없지? ...
언제나 여행 마지막 밤의 레파토리는 늘 똑같다. 그동안의 여행을 주욱 돌이켜 보며 흐뭇해 하다가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언제가 될런지 도무지 기약할 수 없는 그 날을 계획하다가, 결국 결론은 이렇게 맺는다. 영어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그치?

  • ryusun 2006.03.02 10:23 추천
    낀따마니에 이런 투어가 있었다니요....전 미처모르고 가서 그런지 낀따마니에 대한 기억이 별루없네요. 사기꾼 레스토랑뿐 ㅡㅡ